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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7)
스테이시는 말다툼에서 저가 밀리는 것을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네가 머글 출신이라서 비열한 방식으로 시험을 친 건지도 모르잖아.”
말이 통하지 않네. 이건 뭐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그저 억지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논리도 없는 유치한 대답에 일일이 화를 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슬슬 열이 올랐다. 난 고작 이런 수준의 상대에게 당하고 있는 건가? 내가 흥분하는 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로 욱하는 마음이 이는 것을 참기는 쉽지 않았다. 이대로 화를 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진정시키기라도 하듯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옆에 선 익숙한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기숙사에 돌아온 것인지, 아이작이 자연스레 내 옆자리에 섰다.
그가 어깨를 끌어안다시피 한 탓에 아이작과의 거리가 평소보다 더 가까웠다. 벌꿀을 바른 듯 빛나는 백금발이 목 바로 위로 살짝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매끄러운 콧대 위로 늦은 오후의 푸른빛이 도는 그의 벽안이 단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색과 같은 황금빛 속눈썹이 눈동자 위로 드리워졌는데, 짙은 그늘이 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길고 풍성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자세히 아이작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푸른 눈동자를 스테이시에게 고정한 채 매끄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거든.”
내 어깨를 쥔 그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아이작은 분명 덤블도어 교수님의 호출을 받았는데. 이 분위기 속에서 차마 나는 그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묻지는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확실히, 그가 개입한 순간부터 학생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래번클로 내에서 꽤 입지가 있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래번클로 학생들은 그를 신임했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본즈가의 차기가주로서의 배경도 일정 부분 작용했겠지만, 아이작은 그 자체로도 꽤 성실하고 믿음직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이작의 등장에 학생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으나, 그는 전혀 긴장한 기색도 없이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아버지가 마법부에서 오러 일을 하시고 계셔서, 내가 원한다면 베리타세룸을 부탁드리는 건 어렵지 않아.”
아버지는 요즘도 내가 거짓말을 하려 들면 베리타세룸을 먼저 들이대곤 하시거든. 아이작이 농담조로 싱긋 웃었다. 베리타세룸이라는 말에, 당당해 보이던 스테이시의 표정에 눈에 띄는 당혹감이 일었다.
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어깨를 잡은 손을 부드럽게 놓았다. 그리고는 나와 스테이시의 가운데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과 신뢰를 이용할 줄 알았다. 아이작의 움직임에 따라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건 명백해 보여.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거지?”
대화의 초점을 다시 명확히 드러낸 그가 좌중의 동의를 구하듯 잠깐 말을 멈추었다.
“우리는 무엇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래번클로야. 무엇이 옳은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말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직접 입증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아이작이 스테이시와 눈을 마주치며 눈 끝을 살짝 휘었다. 평소처럼 친절하고 다정한 표정이었으나, 그 속에 희미한 위화감이 혼재해 있음을 나는 알아차렸다. 다년간의 아이작에 대한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기분은 상당히 저조한 상태였다. 스테이시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작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만약 거짓으로 한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함은 당연할 테고.”
아이작이 능숙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베리타세룸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는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책임을 지고 호그와트를 떠나 주는 정도로 대가를 치르면 되는 거 아닐까?”
그가 천천히 덧붙이며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사실 그가 중재라도 하듯 내뱉은 조건은 여자애들 사이의 싸움에 내걸기에는 상당한 무게감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작이 말하니 제법 설득력 있게 느껴졌던 모양인지, 몇몇 래번클로 학생들은 홀린 듯 그의 장단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로웨나는 당연히 찬성인 것 같고.”
그렇지? 아이작이 특유의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스테이시 파울리. 이에 동의해?”
스테이시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앙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영악했으나, 완벽하지는 못했다. 이런 식의 변수까지 고려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랬다. 지난 드레스 사건 때에도 사실관계고 뭐고 흐지부지 넘어갔고, 내 평판만 나빠졌으니까.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기대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조금 측은하다 싶을 정도로 분해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래번클로 학생들 사이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학생들이 스테이시를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스테이시의 얼굴은 불에 덴 것처럼 잔뜩 빨개졌다. 그녀는 차마 동의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싫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대답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저의 누명을 입증해보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스테이시가 오직 나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이 난장을 부렸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을성 있게 그녀를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리던 아이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쯤 됐으면 누가 옳은지 답이 나온 것 같네.”
* *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래번클로 휴게실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나는 조금 다행스러운 기분으로 낮게 숨을 내쉬었다. 스테이시가 그렇게 난동을 부리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개입해주지 않았더라면 헛소문이 돌 뻔했다.
“본즈 판사님께서 명석한 판결을 내려주셔서 다행이야.”
필리다는 아이작의 등을 몇 번 두드리며 통쾌해 죽겠다며 낄낄댔다. 그녀는 그간 스테이시의 악행에 대해 이것저것 늘어놓으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험담도 제법 재미있게 할 줄 알았다. 그녀가 재치 있게 스테이시 무리들을 비꼬아대는 덕분에 갑갑했던 기분이 한 번에 다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들이 도망치듯 떠난 복도 계단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필리다는 이 일로 떨어질 스테이시의 평판은 절대 회복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래도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많으니, 학교생활이 그렇게 힘들 정도는 아니겠지. 그저 몇몇이 수군거리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싶다.
나보다 더 신이 나서 한참 동안 그들의 비난하던 필리다가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나? 약초 물 줄 줘야 하는데.”
나 먼저 간다? 그녀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눈 깜짝할 새에 복도에는 나와 아이작이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
아이작이 대뜸, 나에게 사과했다.
“여자들 싸움에는 끼어들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걔가 여간 얄밉게 구는 게 아니라서.”
너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야. 아이작이 감청색의 푸른 눈동자를 내리깔며 덧붙였다. 나는 아이작의 말에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사과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고마웠으면 고마웠지.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그를 불렀다.
“아이작.”
“응?”
“내가 정말 머리가 좋아지는 물약이라도 마신 거라면 어쩔 뻔했어?”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는 당연히 내가 머리가 좋아지는 마법약을 먹지 않은 것을 전제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작이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아이작은 대답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올려 내 갈색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나는 이를 저지하지 않고 그가 말을 꺼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네가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잖아.”
한참을 기다려 들은 아이작의 대답은 간단했다. 마치 그것이 증명이 필요 없는 진리명제라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말투였다.
“너는 내가 친구로 인정한 마녀야. 수석 정도쯤은 온전한 네 능력으로 했다는 건 눈 감고도 알아.”
내가 항상 따뜻하다고 여겨왔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깊은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가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작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 어린양의 신실함을 믿는 성직자라도 되는 것마냥, 그의 눈빛에 비친 믿음에는 한 치의 거짓도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가 봐 온 게 얼만데. 내가 너를 안 믿으면 누구를 믿어?”
어쩐지 그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나는 괜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척 딴청을 피웠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그의 믿음을 배반해 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깊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를 내보이고 있었다. 내가 숨기고 있는 무수한 진실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속에서부터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아이작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짐작하지 않길 바랐다.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어, 아이작. …사실 비밀의 방을 발견한 건 나야.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던 진실을 힘겹게 삼켰다.
* * *
그는 왜 항상 나를 이렇게 세워두는 걸까.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리들 교수가 갑자기 연구실로 호출했다. 나는 오랜만에 오는 그의 연구실을 괜히 한 번 둘러보았다. 여전히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고, 물건 하나라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책상에는 책의 위치조차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한 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이 공간에 나만 흐트러진 허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화되지 못하고 덩그러니 서 있었다.
나는 찬찬히 리들 교수에게 시선을 두었다. 딱히 그를 바라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이 밀폐된 공간에서 내가 그나마 쳐다볼 만한 사람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둡다 못해 푸른 끼가 도는 머리카락 끝에서 시작한 내 눈길이 그의 정교한 얼굴선에 닿았다. 리들 교수의 콧날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어쩐지 내 시선을 들킬 것 같아 나는 그의 목 근처로 눈길을 떨구었다. 오늘 그가 입은 옅은 화이트의 셔츠는 항상 그랬듯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괜히 손목 쪽에서 각지게 나온 소매 끝을 응시하다가, 그의 손에 눈길이 닿았다. 깃펜을 살짝 쥐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음에도 손 위에 얇은 초록빛의 동맥이 도드라졌다.
나는 갑자기 그가 낯설어졌다. 리들 교수도 나와 같이 따뜻한 피가 흐르긴 하는 걸까.
그의 손놀림이 멈추었다. 나는 혹여 내 시선을 그가 눈치챌까 두려워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리들 교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처리하고 있던 양피지를 한꺼번에 정리했다. 할 일을 마친 리들 교수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옅은 떨림이 일곤 했다.
“왜 그렇게 멀리 서 있는 거지.”
그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벽난로 근처에 서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리들 교수가 앉아 있던 책상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나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서 두 걸음 정도 떨어져 섰다.
그러나 이 정도의 거리도 그의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리들 교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더 다가오라는 듯 고갯짓했다.
뭘 하려는 거지?
리들 교수가 굳이 나를 가까이 두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좁은 보폭으로 걸었다. 그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반걸음 정도의 사이를 두고 그의 앞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어.”
나는 리들 교수의 명령에 따라 고개를 들어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겁에 질렸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리들 교수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드는 눈썹 아래 눈가에는 살짝 그늘이 있었다. 시선을 마주친 우리 둘 사이에 끝을 알 수 없는 무거운 고요함이 채웠다. 리들 교수는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조금 일었다.
그의 눈길이, 순간 나의 입술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임이 분명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어떠한 의미도 읽어 내릴 수 없었다.
“…비밀의 방에 대한 기억을 읽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긴 침묵 후에, 그가 명령을 내렸다.
“방어해 봐.”
레질리먼스. 그는 중얼거리며 가볍게 내 기억에 침범했다. 그는 이미 나에게 비밀의 방에 대한 기억들을 제대로 간수하라고 경고한 적 있었다. 나는 틈틈이 연습해 두곤 했던 거짓 기억을 자연스레 내비쳤다. 비밀의 방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과 언제 습격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주로 부정적인 여러 감정들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내 머릿속을 한 번 휘저은 그가 레질리먼시를 해제했다.
“네 기억에는 호기심이 없군.”
“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비밀의 방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누가 열었는지에 대해 전혀 궁금해하지 않잖아.”
내가 꾸몄던 거짓된 기억들이 그랬던가. 리들 교수는 내 기억의 개연적이지 못한 부분을 단번에 짚어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내가 만약 정말로 비밀의 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면, 나는 오히려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아이작과 비밀의 방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겠지. 직접 찾으러 다니는 것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래번클로의 지적 관심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 주부터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을 시작하도록 하지.”
오늘 그가 나를 부른 이유는 내 오클러먼시를 통제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났다는 것이 조금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더 이상 나에게 볼일이 없다는 듯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리들 교수는 자연스럽게 손을 몇 번 휘둘러 양피지를 몇 장 공중에 띄웠다. 이대로 연구실을 나가도 상관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그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빌헬름 교수님이 실종되었다는 것은 계속 나에게 마음의 가책처럼 남았다. 물론 그의 실종이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것이 비밀의 방과 어떠한 연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그의 동료였다. 빌헬름 교수님에게까지 해를 끼쳤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차마 떠나지 못하고 몇 번이고 고민했다. 이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여 얘기를 꺼냈다가 꾸중이라도 듣는 건 아닌가.
“뭐 할 말이라도 있나?”
내가 돌아가지 않고 주저하고 서 있자, 리들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지금이 아니면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빌헬름 교수님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요.”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거지?”
리들 교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닌가 해서 순간 겁이 났다. 내가 변명이라도 하듯 다급하게 말했다.
“교수님이라면 알고 계실 것 같아서요.”
그는 눈을 내리깔고 양피지에 집중한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에게 다 가르쳐줘야 하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의 단호한 거절에 어쩐지 힘이 빠졌다. 애초에 뭔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리들 교수는 나를 세워둔 그대로 깃펜을 놀렸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
“…저에게는 교수님의 생사여부가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순간적으로 내뱉어놓고 나는 조금 놀랐다. 그는 깃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흐리고 탁한 눈동자가 잡아먹을 듯 나를 응시했다. 순간 겁에 질렸으나, 나는 당당하게 눈을 마주했다.
익숙한 침묵이 둘 사이를 메꿨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내가 방금 드러냈던 보잘것없는 반항에 후회의 감정이 드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그 교수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다.”
나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낮게 숨을 쉬며 리들 교수를 응시했다.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고 그는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심지어 용무가 끝났으니 돌아가 보라는 말도 없었다. 고개를 숙인 그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빌헬름 교수님이 무사하신 건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 계시다는 거겠지?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나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지만, 리들 교수에게 그 이상을 묻지는 않았다.
============================ 작품 후기 ============================
1. PS외전에서 필리다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분류모자는 처음에 스테이시를 슬리데린에 배정하려고 했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대대로 래번클로 집안이라 자기가 억지로 래번클로 가겠다고 우긴거에요. 스테이시 본인은 잘 모르지만 로웨나에 대한 감정의 본질은 지적열등감입니다. 똑똑한 것을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집안 분위기상 그렇게 배워왔는데 머글출신인 로웨나가 잘나서 열ㅋ폭ㅋ한 거...
2. 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내가 재밌는 걸 쓰자, 하고 시작한 소설이 벌써 1000키바를 넘었군요. 다크한 팟4는 얼른 끝내고 좀 신나는 걸 쓰고 싶어요. 역시 제 취향은 팟3이었던 듯.. 하.. 내 내면의 진정한 욕구는 역시 신데렐라 스토리였던 것인가..
+ 담편 업데이트는 내일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