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52화 (5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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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6)

빌헬름 교수님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쭉 나를 가르쳐 온 교수님이었다. 그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나는 빌헬름 교수의 실종이 리들 교수와 어떠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확신했다. 리들 교수에게 빌헬름 교수님의 생사여부를 묻고 싶은 것을 나는 몇 번이고 억눌렀다.

교수님의 실종이 알려진 이후로 학내의 분위기는 더욱이 암울해지고 있었다.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빌헬름 교수님을 납치하거나 살해했을 것이라는 섬뜩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교수님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입에 놀리는 그들의 태도를 쉬이 이해할 수 없었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모였다 하면 비밀의 방을 연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누구인지에 관해 추측성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휴게실에 앉아서 천문학 과제를 하던 오늘도 나는 래번클로 3학년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들은 제법 그럴듯한 추론 과정을 거쳐 가능성 있어 보이는 슬리데린 학생들 몇 명을 추려냈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깃펜을 놀리며 생각했다.

다 틀렸어. 범인은 리들 교수야.

하지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답을 래번클로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이 명확한 정답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이러한 불안한 기운에 일조한 것에는 어느 정도 나에게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들 교수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한 행동에 모든 학생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방을 찾고 글자를 쓰는 정도에 그쳤던 행위가 이렇게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당시에는 몰랐다. 묘한 자책감과 함께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위협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함을 안고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나는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나에게 ‘비밀의 방을 발견한 것은 저 애야!’라고 소리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입을 닫고 행동을 조심했다. 이제는 내가 비밀의 방을 찾았다는 것에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실을 들키는 것이 무서운 것인지 판별하기도 어려웠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엉켜 돌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제 진실을 숨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기도 했다. 기숙사 휴게실 소파에 앉아 깃펜을 놀리면서도 나는 불과 4개월 전의 평화롭고도 순진했던 나를 떠올렸다. 그간 나는 많이 변했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쪽으로의 변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참을 과제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소벨 선배가 근처에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소벨 선배.”

“어어? 안녕, 로웨나…….”

그녀는 당황한 듯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선배는 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조금 꺼림칙해 보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머글 출신인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이소벨을 이해했다. 내가 그녀였더라도 나를 상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머글 출신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니까. 여기는 래번클로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해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정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배려하는 의미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혼자 조용히 앉아있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아이작은 플리트윅 교수님과의 면담 때문에 약간 늦게 휴게실에 도착했다.

“로웨나!”

기숙사 입구 쪽에서 아이작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너, 나랑 같이 가자고 했었잖아.”

아이작은 먼저 기숙사로 돌아간 나를 가볍게 타박했다. 그는 어디로 가든 본인을 대동하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리들 교수를 배후로 둔 나는 호그와트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안전했다. 아이작이 유난을 떠는 마음을 이해하긴 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이작의 말을 한 귀로 흘러 들으며 괜히 그에게 플리트윅 교수님께 뭔가 새롭게 들은 이야기라도 있는지 물어보았다.

“요즘 교수님들이 전부 정신이 없는 것 같아.”

아이작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특히 빌헬름 교수님 실종이 타격이 큰 듯했어.”

“뭔가 진척이 있대?”

“아니.”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심지어 마법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아빠가 그러는데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대.”

나는 표정이 저절로 굳었다. 마음 한켠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내 기분이 급격하게 하락했음을 눈치챘는지, 아이작은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사실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호그와트를 나가서 교수님을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아이작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의 농담 덕분에 기분이 나아진 척 일부러 신나게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복도를 따라 대연회장 쪽으로 걷다가, 예상치 못하게 나는 시리우스와 마주쳤다. 멀리서 그를 발견하면 항상 내가 먼저 피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면에서 바로 마주치는 바람에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나는 어색한 눈길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의 무미건조한 눈길이 나를 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리우스는 별말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며 나를 스쳤다. 분명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변해버린 그의 태도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상처가 되었다. 시리우스는 이제 나와 겨우 이름만 주고받은 사이인 양 굴고 있었다. 이전처럼 나를 대할 마음이 없음을 확고하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렸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저렇게 쉽게 모른 척할 수 있는 정도의 감정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깊지도 않았을 테지.

아니면, 그도 비밀의 방이 열린 이 상황에서 머글 출신인 나에게는 친한 척조차 하기 싫다는 것일까.

안 그래도 비밀의 방 일로 머릿속이 어지러운 나에게 시리우스의 태도가 보여준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내 얼굴이 드러나게 굳었던지, 아이작이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원래 저런 사람이야, 로웨나.”

아이작은 시리우스의 싸한 반응에서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한 것 같았다. 그가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블랙에게 어떤 친절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게 아냐.”

나는 시리우스와 있었던 일을 아직 아이작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시리우스의 야멸찬 모습을 좋지 않게 평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이 사실을 아이작에게 말한들, 시리우스에 대한 아이작의 인식이 그리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시리우스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도 싫고, 동시에 아이작이 시리우스를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싫다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모순적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진짜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할게, 아이작.”

사실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에 가까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스스로의 다짐을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작은 그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저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하지 말라고 위로했을 뿐이었다.

* * *

나는 어찌 말을 못하고 가만히 교수 단상 위에 놓인 버섯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버섯이라고 분류하기에는 다소 거대해 보이는 몸집에서부터 주눅이 들었다. 버섯의 갓에는 귀처럼 보이는 것이 달려 있었다.

“여러분이 오늘 다룰 것은 춤추는 독버섯입니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반쯤 신이 나서 노래를 틀었다. 가만히 서 있던 버섯이 노랫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곧 버섯의 몸짓이 조금 더 격렬해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몸 전체를 뒤흔드는 그 모습은 표현만 춤이었을 뿐 거의 발작에 가까웠다. 가까이 서 있다가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바로 병동에 실려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은 이렇게 버섯이 몸을 흔드는 동안 맺힌 독을 빼내야 합니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버섯의 움직임이 멎은 잠깐의 틈을 타 금방 독을 채취해냈다. 땅에 박혀있는 잡초라도 뽑는 것처럼 보기에는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실제로 도전해보게 된다면 전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4년간의 수업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이 버섯은 춤을 출 때 가장 효과가 좋은 독을 품기 시작합니다. 춤추는 독버섯에게서 채취한 독을 아무 정제 과정이 없이 마시게 되면 당연히 위험하지만, 다른 재료와 함께 섞이게 되면 강력한 재생 효과를 띄곤 하죠…….”

버섯이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독을 채취하라니, 오늘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 헤맨다 하더라도 필리다가 성공해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필리다는 이미 스프라우트 교수님의 말이 시작하기도 전에 장갑을 끼고 마법사 축음기를 켜 노래를 들려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교수님이 시작하라는 말씀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직접 독을 채취해보라는 스프라우트 교수님의 지시를 시작으로, 학생들은 끙끙대며 거대한 독버섯에 달라붙었다. 버섯의 유일한 약점은 들짐승의 냄새밖에 없었다. 이 실습의 성공 여부는 들짐승의 냄새를 풍기는 타이밍을 잘 잡아서 그사이 독을 빼내는 것에 있었다. 버섯은 격하게 몸을 흔들다가도 들짐승의 냄새가 나면 멈칫거리곤 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독을 채취하기 위해 다람쥐의 털이나 쥐의 꼬리로 버섯의 신경을 교란했다.

“들었어? 시리우스 블랙이 에반 로시에르랑 한 판 붙은 거.”

나는 다람쥐의 털을 다듬다 말고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바로 뒤 테이블에서 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후플푸프 여학생들의 대화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필리다는 이미 귀가 늘어난 버섯의 끝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아이작도 그를 돕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은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기 때문에, 항상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가장 먼저 성공하곤 했었다.

“왜?”

“에반 로시에르가 호그와트에 있는 머글 출신 마법들은 다 제거되어야 할 거라고 대놓고 말했거든, 연회장에서.”

“완전 살판났네.”

로시에르 정도면 평소에 머글 출신을 혐오한다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티를 냈으니, 사실 그의 발언이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괜히 다람쥐 털의 체취가 제대로 묻어나지 않는다는 듯 몇 번을 다시 다듬으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로시에르의 말을 들은 블랙의 반응이 어땠는지 알아?”

“어땠는데?”

“그 자리에서 로시에르에게 주먹을 휘둘렀어.”

나는 멈칫했다. 시리우스 블랙과 머글식 폭력이라는 조합이 당혹스러웠던 까닭이었다. 그는 아무리 화가 난다 하더라도 지팡이를 먼저 들었지, 주먹을 사용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대화를 나누던 여자애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듣고 있던 한 여자애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대연회장에서 머글식 폭력을 썼단 말야?”

“반쯤 얻어터진 로시에르에게 너는 머글식으로 정신 좀 차려야 한다며 한마디 했다더라.”

야, 그거 제대로 잡고 말해! 옆에 있던 여자애가 황급하게 소리쳤다. 아, 큰일 날 뻔했다. 이야기를 계속하던 다른 여자애는 약간 놀란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후플푸프 여학생들은 그 후로도 한참을 춤추는 독버섯을 제대로 다루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쥐고 있었던 것이 다람쥐의 털이었나, 쥐의 꼬리였나. 나는 손에 아무거나 잡은 채로 그들이 대화를 재개하기만을 기다렸다.

“…여튼, 그리고는 그대로 기절주문을 쏴버렸다는 거야.”

“시리우스 블랙, 생각보다 무섭다.”

너무 폭력적이잖아. 그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로시에르가 순혈주의자라는 것은 교내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가 공공연하게 그렇게 떠든다 하더라도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왜 그랬대? 블랙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머글주의자였다고?”

여자애 한 명이 끼어들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블루로즈 때문이 아닐까?”

내가 듣고 있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괜히 다람쥐 털을 한 번 더 쓸어내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미 필리다는 독을 채취하는 것에 거의 성공한 단계에 이른 것 같았다. 분명 죽을 듯이 날뛰던 버섯의 움직임이 이제는 춤이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로 부드럽고 약해졌다. 아이작은 필리다의 기교에 감탄하며 그녀가 버섯의 갓을 잡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가 듣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여자애들은 대화를 계속했다.

“몰라, 요즘은 둘이 별로 안 친한 것 같던데.”

“이번엔 좀 징계를 심하게 받겠지?”

“당연하지. 평소 하던 장난이랑은 수위가 다르잖아.”

나는 그간 연회장에서 주시해왔던 시리우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보기에도 요즘의 시리우스는 뭔가 위태로워 보였다. 그가 평소와 다른 폭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는 거겠지. 로시에르가 얼마나 맞았는지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지만, 시리우스가 심한 징계라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징계 같은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지.”

그녀가 낮게 속삭였다.

“…슬리데린의 후계자에게 살해당하기라도 할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행동한 거야?”

“로웨나, 우리 성공했어!”

그때, 아이작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한쪽 팔로 버섯을 안고 있던 필리다가 의기양양하게 약병을 들고 흔들었다. 예상했듯 가장 먼저 성공한 것 같았다. 나는 내 기분을 억지로 감추며 아이작과 필리다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 *

래번클로 휴게실에 앉아 천문학 과제를 하면서도 시리우스에 대한 걱정이 쉽게 잊히지는 않았다. 나는 반쯤 기계적으로 깃펜을 놀리며 그가 어떤 징계를 받을지 생각했다. 한, 두 대 치는 것으로 끝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대판 싸우기라도 했다면 부모에게 호출이라도 갔을지 모른다.

“로웨나 블루로즈.”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스테이시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파티 드레스 사건 이후로 우리 사이에서는 일종의 불문율 같은 게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 하는 것. 우리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인사도 하지 않았고 말도 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 그렇게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별로 대답해주고 싶지 않아.”

나는 거부의 의사를 명백하게 밝히며 다시 시선을 도표로 향했다. 무슨 꿍꿍이인진 몰라도 분명 나에게 이로운 것은 아닐 테니까. 아예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해줘야 할걸.”

스테이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데이지가 기숙사 방에서 이걸 발견해서 말이야.”

내 시선을 끌 요량인 듯 그녀는 내 앞에서 보랏빛을 띠는 액체가 담긴 약병을 흔들었다. 그렇지 않니, 데이지? 스테이시는 데이지에게 동의를 구하기라도 하듯 그녀에게 물었다. 데이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와 눈도 마주치지도 못하고 금방 시선을 내리깔았다. 단번에, 그녀가 데이지에게 거짓을 강요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약병이었다. 대체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게 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야.”

뭐 어쩌라는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봤다. 나와 그녀의 대치에, 주변 학생들이 이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휴게실에는 이전 드레스 사건 때보다 학생들이 더 많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망신을 주고 싶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간시험을 치기 전에 안나가 나에게 해 준 말이 있어.”

그녀가 턱을 쳐들며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시험을 친 날 아침에 뭔지는 모르지만 마법약을 마셨다고 하더라구.”

“맞아.”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마시길 뭘 마신단 말인가. 나는 그날 아침을 떠올렸다. 전날 리들 교수가 저주까지 써가며 나를 괴롭힌 덕에, 뭔가 먹을 정신조차 없었다. 아침을 완전히 거르고 잔뜩 긴장한 채로 시험을 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네가 뭘 마시고 있는지 잘 몰랐어.”

안나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들이 어떤 거짓말을 할지 눈에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마법약 시간에 이 약에 대해서 배우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라니?”

내 말에 스테이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만년 차석이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수석을 갑자기 차지했다면, 뻔한 거 아냐?”

“하, 그래서 내가 이걸 마시고 시험을 쳤다?”

나는, 그들이 이런 유치한 모략을 짜낸 경위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근래 들어 아이작은 유달리 나를 걱정하며 따라다녔다. 그게 스테이시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아이작에게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머글 출신 마녀’로 취급되는 것도 싫었을 테고, 그러한 이유로 그가 나를 싸고 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스테이시는 어떻게든 내 평판을 끌어내리고, 아이작이 나를 ‘별 볼 일 없는 마녀’로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쯤 되니 그녀가 단지 아이작과 나의 사이가 나빠지기를 원하는 것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뭔가 앙심이라도 있는 것일까. 피로감이 몰려왔다. 스테이시의 개입이 없더라도 지금의 나는 충분히 최악이었다.

그녀는 멍청하면서도 영악한 구석이 있었다. 만약 나를 공격하고 싶었다면, 머글 출신에 대한 기피가 만연한 지금과 같은 시기가 사실상 가장 적기였다. 머글 출신에 대한 옹호발언이라도 했다가 습격이라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길게 변명할 마음도 없었다.

“어머,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척 시침 떼기엔 너무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네 장난질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네. 난 머리가 좋아지는 물약 따위 마셔본 적도 없어.”

누구와는 달리 별로 마실 필요성도 없고. 내가 그녀를 쳐다보며 시큰둥하게 덧붙였다. 그녀는 이런 식의 도발적인 말에 항상 격하게 반응하곤 했다. 나에게 어떤 지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분한 목소리로 스테이시가 말했다.

“이런 ‘중대한’ 사안 정도면 플리트윅 교수님께 보고라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보고 드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상관없어.”

나는 그녀가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사실이 아니니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내 평판에 대한 훼손일 뿐이었다. 좋지 않은 소문을 들은 아이작이 나에 대한 신뢰를 잃기를 바라는 정도겠지. 증거는 불충분했고, 이를 위해 스테이시는 교수님께 말씀드리는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궁지에 몰아놓기에는 적절한 타이밍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완벽한 작전은 아니었다. 뭔가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기에도 허술했고.

그녀가 그러든 말든 나는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그냥 피곤했다. 이 자리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녀의 공격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할수록 그녀는 더욱이 나를 집요하게 몰아세웠다.

“너, 제대로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내 반응이 그녀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던 듯싶다. 그녀는 드레스 때처럼 내가 열 받아서 달려들길 바란 것 같았다. 그녀가 일부러라도 나를 도발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저번엔 나에게 드레스를 찢었다는 누명을 씌워서 괴롭혔으면서, 이번엔 그냥 지나가려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지도 않았다. 뒤에서 나를 욕하든 말든 이제 별로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왜 이렇게 나를 잡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흘끔거리는 정도에만 그쳤던 래번클로 학생들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분노를 공론화시키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드레스를 찢은 건 네가 맞고. 나는 머리가 좋아지는 물약 따위 마시지 않았어.”

“징계를 받고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너.”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협박이라도 하듯 말했다.

“비밀의 방에 희생되기 싫으면 조용히 있어야 하지 않니?”

래번클로에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납셨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에 학생들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았다. 그 말이 정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래번클로 학생들이 나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지만, 그것은 내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속으로는 나를 측은해할지도 몰랐다. 정말 내가 습격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스테이시의 발언은 다소 과한 구석이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필리다가 굳은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 말은 조금 심한 것 같은데.”

분명 방금 전까지 필리다는 없었다. 언제 왔는지 몰라도, 먼저 나서서 나를 옹호해준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다들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 어느 누구 하나 스테이시를 자제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설령 내가 저 주변의 학생들 중 하나이고 스테이시의 말이 부당한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눈짓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했다. 필리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내 옆에 가만히 섰다.

“어머,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니?”

스테이시는 오히려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블루로즈 너, 머글 출신 아니었어?”

“논지는 그게 아니잖아.”

나는 약간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설령 내가 그걸 마셨다고 하더라도, 내가 머글 출신이라는 것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 같거든.”

============================ 작품 후기 ============================

1. 에피소드의 배치를 수정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퇴고가 늦어졌네요T_T 기다려주셨던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재배치가 되다보니 용량상 어중간한데서 끊겼습니다. 대신 내일 한 편 더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

2. 이전에 한 번 말씀드린 바 있는데, 필리다는 제가 창조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원작에서 약초학 교과서의 저자예요. 사실 이 장면을 위해 설정된 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3. 춤추는 독버섯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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