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 / 0115 ----------------------------------------------
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5)
나는 평소처럼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칠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교수님의 강의를 경청하고,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필기했다. 수업 중간중간 아이작의 말에도 잘 응수해주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나에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성실한 래번클로 학생이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상실감이 온종일 나를 따라다녔다.
열심히 집중하고 있다가도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느샌가 멍하게 앉아 있곤 했다. 딱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우울하다거나, 기분이 나쁘다, 라는 어떤 특정한 감정으로 형용할 수는 없었다. 그저 빛이 사라지고 서서히 어둠이 찾아오듯,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 나는 깊게 가라앉았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 휘몰아치다가 결국 향하는 곳은 하나였다.
그래서, 시리우스는 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걸까?
나는 모든 생각이 그에게 귀결되는 것이 나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결코 답을 알아낼 수 없을 의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는 진심이었을까? 애초에 그의 말이 고백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하기도 했다. 그냥 장난을 치는 것인지, 진심인 것인지, 진심이라면 대체 어느 정도까지 깊이의 마음인 것인지. 시리우스를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했는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설령 그의 마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나에게 올 정도로 절실하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내치는 것이 옳았다.
대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특히 시리우스에 관해서는 엉킨 실타래마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한참을 고민해 봐도 뭔가 나오는 결론은 없었다.
“블루로즈 양.”
“네?”
갑작스러운 호명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도, 리들 교수는 정확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인 것처럼 매번 스쳐 지나가던 평소의 시선과는 달랐다. 나는 그제 서야 지금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서 나는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리들 교수에게 지적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나를 추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수업 내내 칠판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반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저주마법의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뭐라고 말했었습니까?”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머리가 텅 비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수업 도중에 나를 지목하여 질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의 눈길이 나에게 쏠렸다.
“아, 저…….”
수업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떠오르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보통은 전날 밤 예습을 하고 오곤 했으나, 어젯밤에는 계속 시리우스가 신경 쓰여 오늘 배울 분량을 공부할 여력도 없었다.
아이작이 옆자리에서 깃펜으로 양피지에 답을 적어주는 것이 보였다.
“의지, 기교, 마력…… 입니다.”
더듬거리며 아이작이 써주는 그대로 읽었다.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의 대답을 들은 리들 교수가 연이어 질문했다.
“왜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었죠?”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들 교수가 대답을 기다리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방어마법에 있어 의지가 제일 중요했던가. 확신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추측들이 맴돌았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래번클로에서 5점 감점하도록 하죠.”
나를 향한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파문처럼 낮게 일었다. 내가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감점을 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빗자루를 제대로 타지 못하거나, 시연한 마법이 제대로 들지 않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교수님의 질의에 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내 자존심상 부끄러운 일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이 놀라웠던 모양인지, 앞쪽에 앉은 슬리데린 남자애 두어 명이 뒤를 돌아 나를 흘끔거렸다.
“어둠의 마법에서의 공격마법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해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발현됩니다. 그리고 이 의지의 정도에 따라 그 강도가 조정되지요.”
리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불안정하고 유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마력과 기교가 좋다 하더라도 이에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죠.”
어떠한 마법을 방어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주가 되는 것입니다. 리들 교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실전에 투입되어 어둠의 마법을 방어하는 대부분의 오러들에게는 자체적 마력이나 기술적인 면모보다도 그들이 갖추고 있는 강한 의지력이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그의 수업을 경청했다. 마치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리들 교수가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이해했다. 설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향하던 리들 교수의 시선이 잠깐 나에게 머물렀다. 나는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하고 괜히 교과서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어?”
리들 교수가 잠깐 뒤로 돌아본 사이 아이작이 그의 눈치를 보며 나에게 속삭였다. 여느 때처럼,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그의 당부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무슨 일 있었느냐고? 어젯밤 시리우스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이작에게만 들릴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아이작에게 이를 말해 주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으로 둔다 하더라도, 수업 시간에 그와 떠들고 있다가 리들 교수의 지적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이따 수업이 끝난 후에 생각해보자. 나는 다시 리들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슬리데린 학생 한 명을 단상에 불러내 저주와 반대저주를 시연해가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리들 교수가 나의 상념을 깨운 덕에 나는 잠깐이나마 시리우스를 잊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딴생각을 한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던 모양이었다. 조금 집중했다 싶었는데 금방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리들 교수는 ‘저주에 대한 반대저주의 효과’라는 주제로 양피지 10인치 분량의 과제를 내주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수선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떠들기 시작했다. 책을 챙겨 아이작과 교실을 나가려 하는데 리들 교수가 한 번 더 나를 호명했다.
“블루로즈 양?”
나는 리들 교수가 서 있는 교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팔짱을 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달 사항이 있으니, 지금 잠깐 보도록 하죠.”
나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아이작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오늘 감점까지 당해서 아이작은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았다. ‘괜-찮-아?’ 그가 입 모양만 살짝 보이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연회장 먼저 가 있어. 곧 갈게.”
내 말에 아이작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책까지 챙겨서 교실을 나갔다. 그런 아이작의 배려를 알아차린 것은 그가 나가고도 한참 후였다.
슬리데린 여학생 몇 명이 리들 교수에게 질문할 것이 있는지 그의 옆에 서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리들 교수에게 다가가려던 나는 교실 뒤편에 가만히 서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친절한 태도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의 기분을 살피는 것에 이력이 나 있는 내 입장에서 볼 때 리들 교수는 그들을 귀찮아하고 있었다. 그가 그 여학생들에게 저주 마법이라도 걸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래지 않아 질의를 끝낸 여학생들이 나를 흘끔거리며 교실을 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은 평소보다 더 넓고 황량하게 느껴졌다. 지팡이를 휘둘러 꺼내놓은 기자재를 마법으로 대충 정리한 리들 교수가 문가에 선 내 쪽에 시선을 두며 주문을 외웠다.
“콜로포터스.”
열려있던 교실 뒷문이 저절로 닫히며 잠금장치가 걸렸다. 나는 그가 잠금 마법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바짝 긴장했다. 평소에는 쉽게 드나들곤 하던 교실이, 단지 그가 문을 잠갔을 뿐인데, 금지된 숲보다도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제 이 밀폐된 공간에는 리들 교수와 나, 단둘만 있었다.
그가 허하지 않으면 나는 이 교실을 빠져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현실감각이 돌아오며 느슨했던 정신이 팽팽히 당겨졌다. 교실 양쪽 끝에 서 있는 나와 리들 교수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 나에게 고갯짓했다. 천천히, 리들 교수에게 다가가 일정 거리를 두고 서서, 나는 그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목요일에 듣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오후 마지막 수업이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해가 지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해 질 녘의 빛줄기가 경계를 만들 듯 길게 우리 둘 사이를 갈랐다. 그의 정교한 얼굴선이 저녁놀의 흐릿한 빛을 받아 뚜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리들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내가 침묵을 유지하자, 리들 교수가 한 번 더 물었다.
“어디다가 넋을 놓고 있는 거지?”
“조금 피곤해서요.”
내 대답이 그에게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음을 분명했다. 리들 교수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우아하고 세련된 눈매 뒤에 감춰둔 얼음장 같은 예기가 빛났다. 수업시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나에게만 드러내는 본디의 성정이 비집어 올라왔다.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그가 레질리먼시를 시도할 줄 알았다. 반쯤은 체념한 채로 그의 처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내 얼굴을 한 번 훑어볼 뿐이었다. 마치 그 정도만으로도 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듯이. 리들 교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지나가듯 내뱉었다.
“시리우스 블랙이군.”
나는, 정말로 놀랐다. 레질리먼시 없이도 그가 그렇게 바로 눈치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시리우스의 이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과 섬뜩한 두려움이 잠식했다. 나는 그의 말에 긍정하지도 부정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블랙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리들 교수가 냉담한 태도로 물어왔지만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스스로도 해결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나조차도 그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중얼거리듯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런 성격이라면 이미 자신의 마음을 말했을 법도 한데.”
“…네?”
마치 블랙이 나에게 마음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말투였다. 흔들리는 눈을 감추며 내가 되물었다. 무심하게 나를 훑던 리들 교수가, 심문이라도 하듯 연이어 물었다.
“제 마음을 고백이라도 했나?”
나는 그의 말에 이는 심적 동요를 감출 수 없었다. 혼란한 마음이 눈동자를 통해 조금씩 흘러나왔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리들 교수의 앞에만 서면 나는 마치 베리타세룸이라도 마신 것처럼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내 표정을 읽고 모든 것의 전말을 대충 짐작한 듯했다.
“저를 받아달라고 빌기라도 한 모양이군.”
나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리들 교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고개를 휘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그가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겨울 저녁의 옅어지는 햇빛을 받고 있었던 리들 교수가 움직이자, 그의 얼굴 반쪽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쓰디쓴 기분을 삼켰다.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러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네 감정은…”
리들 교수의 서늘한 눈동자가 나를 옥죄었다. 목소리가 무엇인가 형태를 가진다면 그것은 마치, 밧줄처럼, 나를 휘감아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건조한 목소리에 묶인 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온전히 네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흐린 눈이 나를 향했다. 나로서는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새까만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그가 나에게 저주 마법이라도 걸까 두려워 나는 숨을 삼켰다. 지팡이를 꽉 쥐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내 얼굴에는 반쯤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그는 옅게 떨고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고만 있었다. 침묵 사이로 교실 벽에 걸린 마법사 시계의 초침이 가는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리들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대로 처신하도록 해라.”
바짝 나를 조이던 그의 날 선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교실 전체를 채우던 밀도 높은 긴장감이 누그러들었다. 그는 적어도 지금 당장 나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니까.”
정신 차리고 있도록. 리들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기고 먼저 교실을 나갔다.
혼자 남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점점 검붉은 색을 띠기 시작하는 노을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는 그의 망토 끝이 잔상처럼 흐리게 시선에 새겨졌다. 리들 교수가 나에게 어떠한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한바탕 폭풍우라도 몰아쳤던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The Chamber of Secrets has been opened
Enemies of the heir, beware
비밀의 방이 열렸다
후계자의 적들이여, 조심하라
나는 대연회장을 돌아가다 말고 벽면에 휘갈기듯 쓰인 붉은 글씨를 바라보았다.
학교는 떠들썩했다. 지난 몇백 년간 비밀의 방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업은 평소처럼 진행되었지만, 학생들은 모두 그 얘기뿐이었다. 정말 비밀의 방이 열렸는지, 아니면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 뿐인지. 하지만 얼어붙은 채로 노리스 부인이 발견되었고, 학생들은 이것이 단순한 경고나 장난 정도는 아님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교내에는 짙은 불안감이 감돌았다.
붉은 글씨의 칠을 한 건, 나였다.
어젯밤 리들 교수는 나를 불러 술자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기록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쳤다. 나는 군말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마법을 연마했다. 어느 정도 이에 능숙해지자, 리들 교수는 무엇인지 모를 핏빛의 액체를 가지고 나에게 벽에 경고문을 쓸 것을 명했다. 그는 심지어 어떤 말을 써야 할지까지도 정해주었다. 나는 그의 명령에 따라 온전히 지팡이를 휘둘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비밀의 방이 뭔지도 몰랐고,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다. 비밀의 방을 ‘찾는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을 뿐, 그렇게 깊게 알아낼 기회도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리들 교수의 명령에 따라 시키는 대로만 했다. 그랬기 때문에 학생들의 표정에 불안이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희미하게나마 알아차렸다.
마법세계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었고, 호그와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누가 슬리데린의 후계자인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학생들은 서로 간 말을 조심했다. 특히 머글을 옹호하는 발언은 거의 금지되다시피 했다. 순혈주의자들은 좀 더 당당해졌지만, 머글 출신의 학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몇몇 학생들은 머글 출신의 학생들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아이작은 그런 류의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심지어 호그와트 벽면에 쓰인 붉은 글씨가 가진 의미를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았다.
“비밀의 방이라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비밀의 방이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누군가 증명해내지 못하는 이상 알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발생한 피해라곤 얼어붙은 노리스 부인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단지 슬리데린 남학생의 장난 정도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들이 과잉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전설 속에나 있을 법한 얘기 아니야.”
그는 예언자 일보를 넘기며 시큰둥하게 한마디 했다. 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해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비밀의 방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이 나라는 것은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비밀의 방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태연한 척했지만 아이작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아이작은 나를 수상하게 여기기보다는, 내가 비밀의 방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밀의 방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을 내뱉다가도, 그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후로 아이작은 내가 옆에 없으면 유달리 불안해하곤 했다.
나는 말없이 호박 스프를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아이작은 예언자 일보를 읽는 것에 집중하느라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한참을 신문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구석진 지면의 기사 하나에 꽂혔다. 고개를 살짝 갸웃한 그가 뚫어지게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한참 신문 기사를 읽던 아이작이 신문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대뜸 나에게 물었다.
“어제도 머글 연구 수업 안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우스와 다시 재회해야 한다는 것이 껄끄러워서 나는 수업이 연속으로 휴강했다는 것이 조금 다행스럽게 느껴졌었다. 왜 물어보는 거야? 내가 의문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않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내밀어 그가 읽고 있는 기사를 확인했다.
예언자 일보에는, 친머글주의자인 빌헬름 교수님이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1. 독자님이 원하는 흐름과 제가 짜놓은 이야기, 이 둘의 견제가 이렇게나 어려운 문제인 줄 몰랐네요. 원하시는 부분들을 다 충족시켜 드리지 못해서 항상 아쉽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목적을 분명하게 잡고 시작했고, 이를 달성을 위해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 목적이 결코 ‘로웨나 괴롭히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향후 전개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 밖에 없어서 이 이상 말씀드리기는 어렵겠네용 T_T
2. 웹페이지든 앱이든 '공지사항'에서 팬아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당 :)
한유주님께서 토순이 로웨나를 그려주셨습니다. 우리 토순이가 래번클로 여신님같아여ㅎ_ㅎ♡.. 저 요즘 (고작 두 개 받았지만) 팬아트 하나 받을 때마다 폰으로 가끔 살펴보며 실실 쪼갭니다. ..이거 뭐죠? 그린라이튼가여?
+3. 따뜻한생크림님 팬아트 방금 발견했습니다. 멍멍이 시리랑 로웨나.. 아.... 넘 귀엽습니다. 오늘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겠어요T_T
4. huixian님, 후원쿠폰 감사합니다. 응원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글 쓰도록 하겠습니당 ^_^!!
5. 다음회차 업로드 시간은 3일에서 4일로 넘어가는 0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