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50화 (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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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4)

“루모스.”

리들 교수는 지팡이를 들고 차분하게 주문을 외웠다. 상아색 주목나무 지팡이 끝에 환한 빛이 맺혔다. 갑작스레 쏟아진 빛 덕분에 화장실 바닥에 나와 리들 교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낮은 바람에 그의 망토가 살짝 팔락이고 있었다.

“너는 돌아가라.”

그가 나직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나는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리들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혼자 비밀의 방에 들어가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무엇이라도 삼킬 것 같은 저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발걸음을 내디딜 결심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불가해 하게 느껴졌다. 두렵지 않으냐고 묻고 싶은 것을 참았다. 대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기나 할까.

“비밀의 방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나는 말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리들 교수에게 물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끝난 건가요?”

비밀의 방을 찾았다. 어쨌든 그가 나에게 명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리들 교수가 내린 임무를 하나 완수했고, 여기서 종결되길 바랐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는 확언을 주지는 않았다. 나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거기에서 대화를 끊어버린 리들 교수의 시선이 다시 터널 쪽으로 향했다. 이제 내가 떠나주면 되는 건가. 그가 바라보고 있든, 그렇지 않든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조용히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가 비밀의 방 안쪽까지 나를 데리고 갈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만약 리들 교수가 나를 억지로 동행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그 깊은 어둠 속에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밀의 방 안에는 이를 가리고 있는 심연의 어둠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감춰져 있을 것 같았다.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나는 조금이나마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분명 터널 안쪽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나는 리들 교수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자유로운 기분일 줄이야.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기숙사로 향했다.

시리우스를 마주친 것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안녕, 래번클로.”

삐뚜름하게 복도 벽에 기대어 선 시리우스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를 보자 나도 모르게 심박이 빨라졌다. 그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왔던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2층 복도 끝이라는 장소도 똑같았다. 그와 하필 여기서 또 마주쳤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 뿐일까.

“안녕하세요, 시리우스.”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재회였다. 그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지만 나는 우리 둘 사이에 불편한 기운이 낮게 깔려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온전히 나로부터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리우스 또한 나를 이전과 다르게 대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널 만날 줄 몰랐는데 말이야.”

그가 벽에서 살짝 떨어지더니 내 앞으로 조금 걸어왔다. 겨울밤의 한기가 복도를 돌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이를 느낄 여력조차 없었다.

나는 다가오는 시리우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를 가까이서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조금 수척해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특정할 수 없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항상 느껴지던 가벼운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 일었다.

“지금 시각이, 밤 8시 30분.”

그가 손목시계에 짧게 시선을 두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래번클로 학생이, 이 시간에 호그와트 성 2층 복도에 있을 법하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딸꾹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의 질문의 의도가 노골적이었던 까닭이었다. 나와 호그와트 성 2층에 있는 리들 교수의 연구실 간에 어떠한 연관관계를 추론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의 눈동자에서 일전에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위험한 관심이 비쳤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곤 했다. 나는 더는 그의 호기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왜 그렇게 리들 교수에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 요즘 호그와트에 흥미가 생겨서요.”

“호그와트?”

내 대답이 의외라는 듯 그가 되물었다.

“재밌는 장소들이 많잖아요…….”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2층 복도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독특한 초상화나 복도 구조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마치 호그와트의 건축에 대한 래번클로 특유의 탐구심이라도 생긴 것처럼.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뭔가 찾고 있는 거라도 있어?”

“네?”

“방학 때도 그렇고, 학교를 자주 돌아다니는 것 같아서.”

그는 어떻게 내가 학교를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알까. 그렇게 호그와트 구석구석을 살피면서도 나는 한 번도 시리우스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예리한 질문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뭔가를 찾고 있냐고?

“아뇨. 그냥, 이리저리 구경해보는 거예요.”

나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듯이 얼버무렸다. 그가 더 물어볼까 두려워져서 나는 황급히 머릿속으로 변명이 될 만한 거리를 떠올려보았다. 호그와트의 숨겨진 장소를 찾고 있기라도 한다고 말해야 하나. 혹은 졸업하기 전에 호그와트 지도라도 만들 예정이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나는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 하면 그가 수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

왜인지 몰라도 시리우스의 눈이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다행히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옅은 침묵이 돌았다. 이 불편한 주제에서 벗어나려면 말을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잡다한 생각들만 머릿속에 스쳤다.

그가 나를 배려하듯 먼저 말을 꺼냈다.

“기숙사 돌아갈 건가?”

“네.”

“데려다줄게.”

시리우스가 천천히 걸어 내 옆에 섰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서 걸어 다녔던가? 예전에는 자연스러웠던 그와의 거리가 오늘따라 확연히 의식되었다. 너무 가까웠다. 나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반걸음 정도 살짝 떨어져 걸었다.

“요즘 잘 지내?”

그는 자연스럽게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근래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말을 꺼내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 엄청 친한 사이까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리우스와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 그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조금 낯설긴 했다. 나는 괜히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뭐, 그냥 그래요. 시리우스는요?”

“O.W.L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지.”

“시리우스가 공부도 해요?”

그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평소 같았더라면 맹랑하다고 지팡이라도 들었을 텐데. 고요하다 싶을 정도로 정적인 그의 반응이 익숙지 않아 나는 당황했다. 그냥 막연히 예상했던 그의 변화를 그대로 체감한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대답이 미지근해요?”

그가 잠시 침묵했다. 나는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시리우스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덤덤해 보였지만, 그에게서는 뭔가 상처 입은 사람 특유의 단절감 같은 감정이 흘렀다. 내가 무엇인가 말을 잘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시선이 불안한 내 눈동자를 향했다. 나를 한참 바라보던 그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너 나에 대해서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나 꽤 성실한데.”

그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같은 장난기가 희미하게 담겼다. 왜인지 몰라도 기분이 다시 되돌아온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내가 되물었다.

“시리우스가요?”

“어.”

“쉽게 믿을 수는 없는 말인데요.”

너 내 성적을 아직 모르나 보지? 내가 성실하지 않다는 게 오히려 믿을 수 없는 거 아니야? 시리우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이전과 같은 그의 반응에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그에 응대하듯 지금껏 머글 연구 수업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불량한 수업태도를 열거했다. 수업에 무관한 챕터를 펴놓고 멍하게 있는다든가, 책장에 의미 모를 낙서를 한다든가, 습관적으로 양피지를 학 모양으로 접는 것 같은. 내가 준비해놓기라도 한 듯 막힘없이 술술 말하자,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너 완전 수업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그가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언제 그렇게까지 날 관찰하고 있었던 거지?”

“너무 눈에 띄게 딴짓을 하니까 그렇죠.”

어딜 봐서 성실하다는 거예요. 내가 덧붙이며 투덜댔다. 그는 그런 단면만을 보고 자기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폰인지 아닌지는 털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당돌한 내 대답에 시리우스가 가늘게 눈을 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새 건방져진 것 같다, 너.”

그는 조련이 좀 필요하겠다며 손으로 내 머리를 한 번 꽉 눌렀다. 내가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되느냐고 그에게 대들었지만, 소원했던 그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 같아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다시 시리우스의 모습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투닥거리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6층쯤 올라왔을까, 계단을 오르는 것이 슬슬 지쳐갈 무렵이었다. 교수님들의 수업방식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시리우스가 말을 꺼냈다.

“리들 교수 말야.”

갑자기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움켜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나가는 길 어딘가에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나는 바짝 긴장했다. 속에서부터 이는 동요를 숨기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괜히 바닥만 내려다보며 계단을 올랐다.

“언제부터야?”

그가 흘러가듯 한 마디 던졌다. 나는 시리우스의 말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되물었다.

“네?”

“언제부터 그렇게 사모하고 계셨냐고.”

바짝 굳은 내 목소리에서 경계의 기미를 감지했는지, 그의 어조에 농담기가 섞였다. 그는 감이 좋았다. 나는 감정을 갈무리하며 의연하게 대답했다.

“꽤 오래됐어요.”

나는 그것이 꽤 깊은 마음이라도 된다는 양 확고하게 대답했다. 속내를 단단히 감추고 감정을 화려하게 포장하려 노력했다. 그가 내 단호한 의지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리들 교수에 대한 두려움을 읽지 못하길 바랐다.

“흠.”

내 보폭에 맞춰 천천히 계단을 오르던 시리우스가 내 쪽을 힐끔 바라 보더니 물었다.

“나이 차가 너무 나지 않나?”

“알아요.”

나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제가 좋으면 된 거잖아요.”

잠깐 동안 그는 대답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 칸 발걸음을 내딛으며 내가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왜 자꾸 이것저것 묻는 거예요?”

“궁금하니까.”

그는 비교적 태연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누가 보면 절 좋아하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럼 안 되나?”

“네?”

“내가 널 좋아하면 안 되는 거냐고.”

나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시리우스와 조금 떨어져 있었음에도 마치, 그가 나에게 바짝 붙어 귓가에 속삭이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목덜미 뒤로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내가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그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뒤따라오던 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그도 계단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조금 위쪽에서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차분해 보이는 그의 은회색 눈이 나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까닭 없이 나는 블랙 생각이 간절해졌다.

“지금 나 놀리는 거죠?”

“글쎄.”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인가? 아닌가? 나는 이것이 그가 나에게 하는 새로운 장난의 종류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으로 치기에는 너무 분위기가 무거운데. 진심인 걸까?

“정말로 내가 좋은 게 맞아요?”

“그렇게 못 들은 걸 들은 것처럼 싫은 표정 짓지 말아 줄래.”

“아, 죄송해요.”

내가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것이 반쯤 장난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가 그저 던진 말에 감정적 파문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얼굴에 드러났나요?”

내가 이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농담조로 말했다. 부끄러운 기분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연막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얼굴을 굳히며 나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진짜 너에게 마음이 있는 거라면 어쩔 건데?”

그렇다면 어쩔 거냐고? 난 시리우스를 받아줄 것인가?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뭘 어떻게 해요, 제가…….”

“나를.”

그가 내 말을 끊었다.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 리들 교수가 아니라, 시리우스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의미였다. 심장이 급하게 뛰면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격류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왔다. 갑작스레 이는 혼란스러움을 쉽사리 통제할 수 없어 나는 초조해졌다. 예리한 그의 눈동자에 내 흔들림이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전 리들 교수님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나는 시리우스가 나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지금보다 더 다가가도 되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쯤은 명확히 이해했다. 그러나, 시리우스와 가까워지는 것은 위험했다. 설령 내가 시리우스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아니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는 그를 멀리해야 함이 옳았다. 나에게 비밀을 공유할만한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을 리들 교수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었다.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판단이 무엇인지는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전 변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시리우스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시리우스는 별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호그와트 복도는 서늘하고, 차가웠다. 찬 공기와 함께 저릿한 감정이 잉크처럼 퍼졌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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