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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4 - (2)
나는 리들 교수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과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옆에서 열심히 수업을 경청하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그가 하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이번 학기에는 이론 수업이 전혀 없습니다. 모든 수업이 실습으로 진행되며, 시험 또한 저주에 대한 방어 실습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리들 교수는 작년 부임하여 첫 수업을 진행했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정갈하게 차려입고 단상에 선 그는, 여전히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리들 교수를 좋아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 앞자리 경쟁은 항상 치열했고,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하나라도 더 질문을 해 그의 눈에 띄려고 노력했다. 여학생들은 모였다 하면 그의 얘기를 했다. 7학년 선배 누군가 그에게 고백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도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가십이라도 된다는 듯 필리다가 몇몇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의 객기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실습은 주로 저주 마법에 대한 방어 마법의 연습에 한정될 것입니다.…”
리들 교수와 알게 된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분명 나는 웬만한 일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성격이었다. 좋고 싫음은 분명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낼 만큼 거기에 휘둘리지는 않았다. 특히나 어떤 사람에 대한 특정한 감정이 나를 뒤흔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리들 교수에 대한 나의 감정과 반응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마치 신체의 무조건반사처럼,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면서 긴장되었다. 그가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더라도, 그 깊고 고요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려움에 떨곤 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빠르고 순발력 있는 방어마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학생 누군가가 따뜻한 밤하늘 같다고 묘사한 그의 눈은, 설령 그 속에 다정함과 친절함이 담겨있어도, 나에게는 그저 먹이를 유혹하기 위한 맨티고어의 노래처럼 가장된 덫으로 보였다.
수업을 들을 때면 항상 천적의 공격범위에 있는 것마냥 위협을 느꼈다. 나는 거짓을 가장하는 데 그리 능숙하지는 못했기에 이를 숨기기는 쉽지 않았다. 리들 교수가 나를 쳐다볼 때마다 태연하게 수업을 경청하는 척했지만, 항상 정신적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나에게 가장 기력의 소모가 심한 수업이었고, 또 동시에 가장 남는 것이 없는 수업이기도 했다. 그가 어떤 것을 설명했는지 제대로 기억할 수는 없어도, 강의 도중에도 곧잘 나를 향하곤 하는 그의 어둡고 탁한 눈빛만은 잔상처럼 남았다.
“오늘은 지난 학기에 배웠던 방어술에 대해 복습을 하도록 하죠.”
그는 지난 학기의 방어마법을 한 번 더 연습해보라며 학생들을 짝지었다. 이번 실습에서 나는 아이작과 짝이 되었다.
“너 덤스트랭에서 방어술 배웠었어?”
“응. 나 시험도 쳤잖아.”
하긴, 그라면 굳이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아도 기본적인 방어마법 정도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순서를 정한 다음, 마주 보고 섰다. 아이작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으므로, 나는 그가 공격마법을 사용할 타이밍을 가늠했다. 곧 아이작이 무장해제 마법을 시전했고, 동시에 나는 방어마법을 펼쳤다. 푸른빛을 띠는 얇은 방어막이 내 주변을 가로막으며 그의 지팡이에서 쏘아 나온 빛을 튕겨냈다.
“로웨나, 너… 진짜 잘하는데?”
오러라고 해도 믿겠어. 아이작이 목소리에 놀라움을 담아 말했다. 그는 내 방어마법을 처음 보는구나.
“고마워. 너 없을 때 내가 연습 좀 했지.”
나는 방어막을 해제하면서 빙긋 웃었다. 뭐 경위야 어쨌든, 마법으로는 래번클로 원톱이라 볼 수 있는 아이작에게 인정받는 것은 나를 들뜨게 했다.
“누가 가르쳐주기라도 한 거야?”
아이작이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지금 완전히 실전용 방어마법을 쓰는데?”
나는 아이작의 예리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방어마법을 한 번 보여준 것만으로도 이게 어떤 종류인지 알아차리다니. 나는 혹여 리들 교수가 아이작의 말을 들을까 두려워 그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는 조금 먼 곳에서 래번클로 학생들 몇몇을 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혼자 연습 진짜 많이 했다니까.”
나는 대충 그에게 둘러대었다. 리들 교수가 나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할 수도, 할 필요도 없었다. 어쩐지 또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양심이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해야 할 말들이 너무 많았다.
“너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 재능이 있나 봐.”
마법 능력은 조금 연습한다고 해서 쉽게 증진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마다 타고난 정도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내 방어마법을 처음 보는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타고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나는 아이작에게 한 번 웃어주고 말았다.
* * *
고대 룬 문자는 다 좋은데 과제의 부담이 심한 편이었다. 마치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만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듯, 고대 룬 문자 교수님은 첫날부터 방대한 양의 과제를 내주었다. 사전을 끼고 하루 온종일 잡아야 하는 종류라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팠다. 대체 왜 내가 날짜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옛 시절의 주술자가 만든 문자표를 해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울상을 짓고 있던 나에게 아이작이 먼저 제의했다.
“이건 머리를 맞대고 같이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사실 지난 학기의 과제를 할 때에는 아이작이 없었기 때문에 전부 나 혼자 해야 했다. 아이작과 나눠서 하면 어느 정도 부담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무임승차해도 될까?”
우리 앞에 앉아있던 요한이 뒤로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짓궂게 요한에게 말했다.
“엄격하게 분량을 분배받겠다고 약속한다면.”
“오, 공명정대하신 독수리 여왕님이시여.”
요한은 마치 위즌가모트에서 합당한 판결이라도 받은 것처럼 과장해서 중얼거렸다. 나는 일부러 책상을 탕탕 치며 ‘요한 브래들리, 양피지 15인치 형(刑)!’ 하고 소리쳤다. 요한은 웃겨 죽겠다는 듯 낄낄댔다.
아이작이 해야 할 과제의 분량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오늘 저녁에 연회장에서 같이 분배하는 게 어때?”
“좋아.”
나는 책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머글 연구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갈게. 나중에 저녁때 봐.”
아이작과 요한에게 인사를 하고 교실을 나왔다. 산술점 수업을 듣는 그들과는 교실 방향이 반대였던 까닭이었다. 나는 책을 잔뜩 껴안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머글 연구 수업 교실은 북쪽 탑에 있었다. 발걸음을 내딛으며 생각했다. 교실에 도착하게 되면 분명 시리우스를 만나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대화를 상상해보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아무리 그가 신경 쓰인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뭔가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확인하니, 책 위에 대충 얹어놓은 잉크병의 뚜껑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열린 잉크병에서 흘러나온 검은색 잉크가 교복 상의를 적시고 있었다.
맙소사. 요즘 진짜 넋을 놓고 다니는구나. 나는 책을 바닥에 내려놓고 잉크병의 뚜껑을 단단히 봉했다. 교복 니트는 이미 검게 잉크로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씻어내면 대충 지워질 것 같기도 했다. 아쿠아멘티를 쓸까? 나는 아직 아쿠아멘티를 쓸 때 나오는 물줄기의 양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었으므로, 자칫 옷 전체를 물로 적실 수 있었다. 얼룩 제거 마법을 외운 적이 있었던가. 그런 종류의 마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외워둔 것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근처 화장실에서 물로 씻어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2층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2층에는 제법 큰 화장실이 있었다.
2층 화장실은 거의 와보지 않았다. 3학년 때인가 한 번 들어와 봤었다. 뭔가 음침한 분위기가 돌기도 했거니와, 이쪽 층에서는 수업을 하지 않았으므로 굳이 이 화장실을 이용할 일은 없었다. 특유의 어두침침한 불빛과 습한 기운 때문에 여기를 찾는 학생들도 드물었다.
세면대 앞에서 나는 교복 니트를 벗었다. 다행히도 안의 셔츠까지 물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쉽게 지워지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얼룩 제거 마법이나 몇개 외워둘 걸 그랬다. 예전에 산 실용마법서에서 봤던 거 같기도 한데. 속으로 후회하며 수도꼭지를 틀었다. 수도꼭지 특유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센 물줄기가 쏟아졌다. 나는 양손으로 조끼를 살짝 쥐고 물을 묻히며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낑낑대다 보니, 어느 정도 티 나지 않게는 지워졌다. 여기에 건조 마법만 걸면 되겠지. 나는 무심코 수도꼭지를 다시 돌리다가 수도꼭지 옆에 장식으로 새겨진 뱀을 발견했다. 뭐지? 다른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확인해보니, 이 수도꼭지에만 뱀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옷을 빨다 말고 이를 유심히 살폈다.
수도꼭지의 측면에 양각된 뱀은 당장에라도 움직일 것 같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뱀의 눈은 에메랄드색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생물의 눈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화장실 수도꼭지의 장식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수도꼭지에 잠금 해제 마법을 걸어 보았다. 예상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이를 그에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했다. 여자 화장실이라니. 화장실 수도꼭지에 뱀이 있었다고? 리들 교수를 여자 화장실에까지 끌고 와야 하나. 뭐, 리들 교수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제 할 일만 하고 나갈 것 같긴 했다. 안에 여학생이 있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겠지.
보고 여부는 천천히 생각해보자. 나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얼른 화장실을 나왔다. 룬 문자 수업이 빨리 끝난 편이라 그런지 머글 연구 수업 교실을 바로 가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었다. 나는 아이작이 준 마법사 회중시계를 망토 주머니 속에서 꺼냈다. 확실히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나는 시계의 겉면을 살짝 문질렀다. 기존에 있었던 시침과 분침이 조용히 사라지고 새로운 시곗바늘이 나타났다. 빨간 바늘 하나와 그보다 조금 옅은 불그스름한 시곗바늘, 흰 바늘 두 개가 생겼다. 새빨간 바늘은 비밀의 방이 분명했고, 흰 바늘 두 개는 고대 룬 문자 해석 과제와 마법의 역사 과제인 것 같았다. 그런데 다른 하나는 뭐지? 내가 해야 하는 걸 잊은 게 있나? 과제 제출이라도 얼마 남지 않았나?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잊은 일이 있는지 몇 번을 확인했지만 내 기억에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없었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으로 나는 다시 뚜껑을 덮고 시계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호그와트 성을 나왔다.
호그와트 정원을 지나 북쪽 탑을 향하는 길에 멀리 서 있는 블랙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내 동선을 꿰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 북쪽 탑으로 향하는 길 근처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나를 위로해주려고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블랙, 안녕!”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것 같았다. 블랙은 은회색의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반질반질한 코끝이 보드라워 보여 나는 괜히 한 번 꾹 눌렀다. 그는 당황한 것처럼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귀여워. 나는 블랙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검은 털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내가 요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어.”
우리 자주 보자, 응? 나는 블랙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블랙에게 사소한 것까지 털어놓는 것도 즐거웠지만, 이렇게 그와 가만히 앉아 있는 순간도 너무 좋았다.
그의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으니 나를 괴롭혀왔던 많은 생각들이 회오리치듯 일었다 사그라졌다. 리들 교수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 비밀의 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한참을 침묵을 유지했다. 블랙은 나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조용히 옆에 서 있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마음이 쓰여 블랙을 내 쪽으로 당겼다.
“너라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다 이해해 주겠지?”
블랙이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만큼은 진실을 말해도 된다고, 북돋아 주는 것 같았다.
그라면 괜찮을 것이다. 신뢰감이 느껴지는 블랙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나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내가 혼자 안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더 가뿐해지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리들 교수의 정체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블랙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동물일 뿐이고, 그는 나와의 비밀을 영원히 간직해줄 것이다…….
입을 살짝 달싹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누구에게든 말할 수 없다. 당장에 마음이 편하자고 위험한 짓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들을지도 몰랐고, 나중에라도 리들 교수가 내 기억을 읽기라도 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컸다. 함부로 떠들었다는 이유로 나는 물론 블랙까지도 괴롭힐 수 있는 일이었다.
언제고 블랙이 내 곁을 떠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불안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시리우스처럼.
그의 은회색 눈동자를 바라보니 또 시리우스가 떠올라 나는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사실 나에게 당장 힘든 것은 리들 교수의 비밀을 혼자 견디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온전한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리들 교수의 비밀을 죽을 때까지 입 밖에 꺼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블랙, 나는 그가 걱정돼.”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속에 있던 말을 내뱉어 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당장 마주하고 싶지 않으면서, 얼른 만나서 그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다는 딜레마적인 감정이 내 속에 존재했다. 나는 머리를 한 번 뒤흔들었다. 이게 뭔지 혼자서 열심히 생각해봤자 나오는 결론은 없었다.
블랙에게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그의 은회색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고요함이 서려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평소보다 차분해 보였다.
블랙은, 너무나, 시리우스를 떠오르게 했다.
“조금 있음 수업이 시작하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수업에 들어가야겠지. 감정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하며 일부러 활기찬 척 블랙에게 인사하고 북쪽 탑으로 혼자 걸어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머글 교실 수업을 갔으나,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칠판에는 빌헬름 교수의 부재로 오늘 수업은 휴강이라고 게시되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나는 가만히 서서 그와 나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 * *
머글 연구 수업 시간 동안 나는 마법의 역사 과제를 끝내기로 했다. 연회장의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마법의 역사 관련 저서에 있는 글들을 양피지에 베껴 적었다. 1700년에 있던 용의 사육을 금지하는 법 제정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에 대한 과제였다. 심도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도 그렇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몰두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오늘 수업 일찍 끝났나 봐?”
나는 과제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리무스였다.
“네! 리무스는 이 시간에 수업이 없나요?”
“응. 앉아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장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으므로, 그는 자연스럽게 래번클로 테이블의 내 옆에 앉았다.
“시리우스와 같은 수업 듣는 거 아냐?”
“오늘 휴강했어요.”
리무스는 내가 하고 있는 과제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렇게 어려운 걸 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그는 4학년 2학기에 나오는 마법의 역사 과제를 쭉 읊으며,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제들의 경우 참고할 만한 책들도 이리저리 일러주었다. 나는 감동했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그가 말해주는 참고도서들을 양피지에 옮겨 적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리무스가 갑자기 시리우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시리우스랑 무슨 일 있어?”
“네?”
나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시리우스에게 뭔가를 들었던 것일까? 사실 무슨 일이 있다고 보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내가 리들 교수를 좋아한다고 말한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니까.
“요즘 걔가 평소와는 조금 달라서.”
“다르다뇨?”
“어떻게 말해야 하나.”
리무스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잠깐 침묵했다. 나는 조금 긴장한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뭔가 애가 차분해졌어.”
차분해졌다고? 시리우스 블랙이 차분해? 나는 근래 그가 나에게 보였던 태도를 떠올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뭔가 의욕을 잃은 것 같아. 예전만큼 활기차지 못하다는 거지.”
아. 나는 얼마 전에 래번클로 학생들이 연휴 내 그가 조금 변한 것 같다며 수군대고 있던 것을 기억했다. 래번클로의 몇몇 선배들은 대놓고 나에게 다가와 시리우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대체 그의 일을 내가 어떻게 안다고. 나는 시리우스와 내가 아무 사이도 아님을 해명하느라고 또 한참을 소모해야 했다. 아마 리무스가 묻는 것도 그런 뉘앙스인 것 같았다.
혹시 리들 교수에 대해 뭔가 알아내기라도 한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가 리무스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그랬는데요?”
“지난 연휴 때부터? 요즘 더 그래.”
뭐 짐작 가는 거 없니? 리무스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너랑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 줄 알았어.”
“저요?”
나는 조금 당황해서 되물었다.
“사이가 틀어지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그리고 뭐, 나랑 사이가 틀어졌다고…….”
시리우스가 거기에 반응할 리 없잖아요. 나는 뒷말을 삼키고 리무스에게 물었다.
“자세히 물어봤어요?”
“확실히 말해주지를 않네.”
그가 덧붙였다.
“본인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해.”
난 알 것 같은데 말이야. 알 것 같다면서 잘 모르겠다는 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리무스는 내 의문을 해결해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말해줘서 고마워. 과제 잘해. 이따 기회 되면 또 얘기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무스에게 인사했다. 그는 다시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하고 있던 과제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집중이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리무스 덕분에 정돈되어 있던 감정들이 다시 흐트러졌다. 나는 한참을 멍하게 빈 양피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1.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새벽 업로드 하는 거라 오타나 비문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발견하시면 중생구제의 마음으로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2. 여러분 저에게 팬아트가 왔습니다. D죽순이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내리셨어요. 태어나서 처음 받는 팬아트입니다. 저 완전 감동받았습니다. 멍멍이 블랙과 로웨나가 목도리 하나를 같이 메고 있는.. 너무 귀여운 그림이에요 T_T 본 순간 진짜 막 저 장면을 한 번 써야겠다몈ㅋㅋㅋㅋㅋㅋㅋ 흥분했어요. 뜰에 가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 다음화는 이틀 후인 29일 새벽에 올라옵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0시 정시 업데이트를 약속드리기는 조금 어렵지만..기다려주시는 빛과 소금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그 때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