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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15)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그나마 좀 나아졌다. 나는 연회장에서 첫 끼니를 때우고 방에 들어가서 그날 하루는 푹 쉬었다. 그러나 마음을 놓고 안정을 취하려고 하면, 왜인지 시리우스의 눈빛이 자꾸 맴돌았다. 그가 그렇게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신경이 쓰여서 견딜 수 없다. 나는 시리우스에게 잘못한 게 없는데, 마음 어딘가에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할 꺼림칙한 감정이 생겼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은 몸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호그와트 3층을 조금 돌았다. 괜히 2층으로 갔다가 갑옷 보관실에서 징계를 받고 있는 시리우스와 마주칠까 봐 불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들 교수의 연구실 또한 2층에 있었다. 그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날에까지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 온종일 호그와트만 돌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성과가 있지는 않았다. 3층 우측의 복도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도를 제외한다면 3층은 그렇게 둘러볼 만한 곳이 많지는 않았다. 출입 금지 구역까지 가서 살펴봐야 하는 건가. 리들 교수에게 질의할까 하다가, 그렇게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는 않아 관뒀다. 나중에 혹여 문제시된다면 금지된 장소라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 덤블도어 교수님이 고통스러운 죽음 운운하면서까지 출입을 엄금했는데 굳이 들어가야 할까 싶기도 했다.
호그와트를 돌면서도, 다음 징계가 있을 때 리들 교수가 분명 시리우스에 관해 물어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우스가 굳이 리들 교수의 연구실까지 나를 찾아온 경위를 알아내려고 하겠지. 필요하다면 그는 레질리먼시로 내 기억을 읽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틈틈이 시리우스에 대한 거짓 기억을 만들어 냈다. 그와의 대화를 미묘하게 수정해서, 마치 시리우스가 단지 나에 대한 온전한 걱정으로 그의 연구실을 찾아온 것처럼 느껴지도록. 내 수정된 기억 속에서 시리우스는 리들 교수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의 부분 부분을 꿰매어 개연성 있는 하나의 대화를 만들어냈다. 그래도 불안해서 자기 전에는 혼자서 몇 번씩 시연해가며 기억을 체화시켰다.
* * *
잔뜩 긴장한 채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청소를 시작할 때까지 리들 교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함인 것만 같아 빗자루질을 하는데도 괜히 초조했다. 나는 소파 근처를 무덤덤하게 쓸면서 온 신경을 리들 교수에게 집중했다. 그는 나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 그가 나에게 말을 걸까 전전긍긍했지만, 리들 교수는 내가 청소하는 내내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심지어 두 시간 동안 책상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시리우스가 그의 연구실을 찾아온 것이 나에게 캐물을 만큼 신경 쓰이는 일은 아니었던 걸까. 그가 청소가 거의 끝날 때까지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섣부른 예단이었음을 곧 알아차렸다. 징계를 마치고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나가려고 할 때쯤, 그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시리우스 블랙이.”
그가 갑자기 시리우스의 이름을 호명했을 때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빗자루를 떨어뜨릴 뻔했다.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나는 밤마다 몇 번이고 연습했던 가장된 기억을 다시 점검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지?”
“그 날 징계를 받으러 오기 전, 제가 그에게 교수님의 연구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었어요.”
나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니? 누가? 무엇을? 나는 그 질의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졌다. 시리우스가 리들 교수 본인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냐는 질문일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블랙은 교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리들 교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조금 뻐근한 듯 일어난 그 자리에서 그가 목을 살짝 풀었다. 목선이 드러나는 먹색의 니트티를 입고 있어서인지 곧게 뻗은 그의 목에 근육이 도드라졌다. 나는 입매를 굳히며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곧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피아노 줄을 당기는 것처럼 여린 긴장감이 팽팽히 돌았지만 나는 의연한 표정으로 그의 가슴께 근처에 시선을 두었다.
내 앞에 선 리들 교수는 불시에 레질리먼시를 시도했다. 나는 그에게 온전한 내 기억을 그대로 드러내는 척했다. 어떠한 방어행위의 조짐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읽고 있는 기억들이 혼란스레 머리를 스쳤다. 몇십 번이고 연습한 과정이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그 가정된 기억이 진짜 나의 기억인 양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는 금방 레질리먼시를 거두었다. 리들 교수의 눈이 나를 느릿하게 훑었다. 별 하나 없는 겨울밤마냥 어둡고 추운 눈길이었다. 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긴장의 기색을 숨기고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를 꽤 오랫동안 말없이 응시하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기억을 꺼내.”
순식간에 내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주먹을 꽉 쥔 손에서는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싸해졌다.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거부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했다. 리들 교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한 걸음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기만하고.”
리들 교수가 거칠게 내 턱을 잡고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들었다. 나는 억지로 그와 눈을 마주했다. 탁하고 어두운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라 직시하고 있었다.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그의 말 하나만으로 빙계 마법을 쓴 것처럼 몸이 얼었다. 벽난로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절로 소름이 돋았다. 리들 교수의 말로서 내가 한 행위의 무게감을 처절하리만치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철저한 위계관계를 깨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가 지팡이를 꺼냈다. 어떤 방식의 고통스러운 처벌이 가해질 것이라는 희미한 예감이 나를 스쳤다.
리들 교수가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크루시오.”
그의 지팡이에서 터지듯 붉은 섬광이 쏟아졌다.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연구실을 채웠다. 그러나 나는 내가 비명을 지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모든 신경계의 감각들이 다 사라지고 통각만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 깊은 곳으로부터 말초적인 고통이 진득하게 나를 찔렀다. 온몸의 내장이 뒤틀린 상태에서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온전한 고통 속에서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정신이 완전히 무너져 내릴 때쯤, 그가 나의 기억에 거칠게 침입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내 깊은 곳까지 들어와 의식의 단면을 헤집었다. 아무리 내가 방어한다고 해도, 그는 나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가르친 오클러먼시는 정신적으로 고문당하는 지경에 이른 상태에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작위로 침입한 그는 정확히 나와 시리우스가 함께한 기억을 찾아냈다. 나는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마치 내가 쥔 것을 빼앗기라도 하듯 강압적으로 나를 들춰냈다.
그가 내 기억을 읽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얻은 것인지, 그는 레질리먼시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동시에 거두었다. 그와 함께 고통이 멈추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지른 비명이 머리에 얼얼하게 울렸다.
저주에서 벗어난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만 있었다. 나를 괴롭히는 고통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리들 교수는 내가 숨을 가다듬을 때까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낮게 깔렸다. 그가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나는 맥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들 교수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시리우스 블랙이 뭔가 눈치챘군.”
그가 안광을 빛나며 섬뜩하게 말했다. 결국 그는 무엇인가 알아냈고, 그저 알아낸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맹렬한 위협을 느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받은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헤어나올 수 없는 극도의 공포가 내리눌렀다. 무조건적으로 그의 말을 부정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리들 교수는 나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시리우스를 처리하면 좋을지 골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공포에 질려 두서없이 말을 꺼냈다.
“그는, 그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내가 몸을 벌벌 떨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극단적인 결단을 내릴까 봐 너무 무서웠다.
“제발 교수님. 제발요…….”
나는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에게 애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리들 교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벌써 두 번째인 건 알고 있겠지.”
리들 교수는 더욱더 차게 나를 노려보았다. 아이작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 나는 이를 달달 떨면서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거예요.”
나는 무작정 그에게 매달렸다.
“그러니까 교수님, 시리우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숨을 헐떡여가며 내가 빌었다. 나는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무작정 말했다.
“아니면, 저에게 벌을 내려 주세요. 저를, 저에게 처벌을…….”
리들 교수의 표정이 점점 더 식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가 그를 더 화나게 했음이 분명했다. 나에 대한 반발감으로 오히려 시리우스를 해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나는 애원조차 하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른 입술 사이로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아직도 동정심에 기대는 나약한 짓을 하고 있군.”
나는 깨달았다. 그에게 아량과 이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 하더라도 그에게 가 닿지 않으며, 어떤 자비의 요청으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
“처분은 내가 한다.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그가 차갑게 말했다.
후들거리는 몸을 추스리며 리들 교수의 연구실을 나왔다. 긴 복도를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도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연구실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운 돌벽을 짚으며 겨우 계단을 내려왔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일찍 졌고, 호그와트에는 깊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 자박거리는 내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걸었다.
어느 정도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서 멀어지자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복도 창가에서 희미한 달빛이 바닥을 비추었다. 나는 창가 근처의 벽에 기대어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참았던 숨이 폐부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리들 교수가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시리우스를 고문하게 될지도 몰랐다. 혹은 그를 자신의 수하로 만들어 나처럼 괴롭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를 금지된 숲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다.
그를, 죽일 수도 있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누군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했던 그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나를 위하던 사람이, 결국은 나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죽음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기력하고 진저리가 났다.
그가 내일이라도 당장 시리우스를 살해한다면?
뜨거운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눈물은 물줄기가 되어 끊임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펐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혹여 소리를 내면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나는 벽에 기댄 채 웅크려 앉아 숨죽여 혼자 울었다.
Part 3 The End.
============================ 작품 후기 ============================
1. 저도 리들 교수가 무섭습니다. 믿으실진 몰라도 으앙 무서워ㅠㅠㅠㅠㅠㅠ 하면서 씁니다.
2. 드디어 Part 3가 끝났네요. 본편인 Part 4 첫 회차는 하루 쉬고 낼 모레인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는 밤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대신 내일은 토순이 새학기 시작 기념 스핀오프 외전 한 편이 업로드 됩니다. 누구 외전일까요? 맞추시는 분께 저의 애정을 드리겠습니다. 받기 싫어도 강제배송 합니다.
@yehe 관심 감사해용. 항상 몸둘바 모르겠네염:) 수요가 있다면 저야 당연히 개인지가 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오늘 회차을 한 번 읽어보니 어쩐지 선작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네여ㅋㅋ 여튼 완결은 늦어도 내년 1월 안에 납니다! 그때 생각해야죠 ^_^
@리리샤님, 따로 쪽지 드리겠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