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43화 (4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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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13)

블랙은 래번클로 기숙사 휴게실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호그와트 여기저기를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그였지만, 래번클로 기숙사만큼은 들어와 본 적 없었을 것이다. 래번클로는 적어도 대답할 수 있는 자에게 문을 열어주니까.

그는 원형 휴게실의 벽난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아치형 창문 근처로 다가갔다. 블랙의 시선이 창밖으로 꽂혔다. 래번클로 휴게실은 호그와트에서도 가장 높은 층에 있어서, 정원이나 퀴디치 경기장은 물론 금지된 숲까지 내려다보인다. 위에서 보는 호그와트의 전경이 블랙에게는 신기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 나는 그가 마음껏 휴게실을 구경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래번클로 기숙사의 하나하나를 구경하던 블랙이 한 번 빙 돌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기숙사 복도로 가는 입구 쪽에 서 있던 내가 그에게 물었다.

“구경 다 했어?”

블랙은 나를 올려다보며 귀를 쫑긋거렸다. 나는 그를 끌어 래번클로 기숙사의 원형 계단으로 향했다. 마침내 계단을 타고 올라가 기숙사 방 복도에 도달했다. 학생들이 없어 복도는 조용했다. 이윽고 기숙사 방문 앞에 도착한 내가 그를 기숙사 방으로 이끌었다.

“얼른 들어가자, 블랙.”

블랙은 기숙사 방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낯선 곳이라 그런 것 같았다. 몇 번 재촉했으나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뒤에 살짝 앉아 손으로 그를 밀었다.

“추워, 얼른.”

블랙은 계속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방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먼저 지팡이로 벽난로에 불부터 붙였다. 방은 나갔을 때 모습 그대로 어질러져 있었다. 침대에는 이불도 개지 않았고, 바닥에는 잠옷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였다. 아침에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갔었구나. 나는 옷가지를 대충 주워서 빨래통에 집어넣었다.

블랙은 다른 곳은 둘러보지도 않고 바닥에 깔린 흰색 러그에 얌전히 앉았다. 뭔가 경직된 것 같기도 하고, 긴장한 듯해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나에게만 온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그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입고 있던 망토와 스웨터를 벗어 옷장에 넣어두며, 내가 블랙에게 먼저 물었다.

“너 리무스가 목욕은 제때 시키니?”

리무스의 성격을 고려할 때 목욕을 시키지 않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털이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리무스가 블랙의 관리를 잘 해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블랙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한 번 쓸었다.

“같이 목욕할래?”

러그에 가만히 앉아 있던 그가 몸을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말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목욕이라는 말을 아나? 씻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화장실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는 개들도 간혹 있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싫어?”

블랙은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 내가 곤란한 요구를 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적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목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나를 피하면 피할수록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나는 그의 털을 조금 잡아당기면서 치근댔다.

“같이 하자, 응?”

블랙은 아예 러그에 엎드렸다. 명백한 거부의 의사였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 닿는 게 많이 싫은가 보지. 나는 조금 삐쳐서 말없이 샤워실로 걸어갔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따뜻한 물을 맞으니 정신이 멍했다. 평소보다 몸이 조금 뜨거웠다. 잔기침이 자꾸 나오는 걸 보니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들었다. 약간 어질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견딜 만한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털어냈다. 물기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는 가만히 둬도 알아서 마르겠지. 머리를 대충 말리고 헐렁한 박스티를 걸쳤다. 방에 블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조용해서 불안했다. 나는 그대로 방 쪽으로 다가갔다.

“블랙! 뭐해?”

나는 멀리서 그를 불렀다. 블랙은 여전히 얌전하게 러그에 앉아 있었다. 내 부름에 그가 나를 흘끗 돌아보았다가, 놀란 기색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또 왜 저렇게 모른 척이지? 뭔가 말은 못해도 불편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혼자 내버려둬서 삐쳤나?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놀아줄 테니까.”

벽난로를 켜 놨지만, 방 전체에 도는 차가운 기운은 여전했다. 티 한 장만 걸치고 있으니 조금 추운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옷장에서 두꺼운 잠옷을 꺼내서 갈아입었다. 아 참, 케이크가 있었지. 나는 미리 집요정에게 부탁해서 준비해두었던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블랙은 나를 여전히 쳐다보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내 방에 왔다고 부끄러워하는 거야?”

마치 내외라도 한다는 태도가 왠지 블랙답지 않아서 소리 내 웃었다. 나는 준비해온 케이크를 러그 위에 얹고 그의 반대편에 앉았다.

“오늘이 내 생일이야.”

블랙이 조금 놀란 기색으로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블랙이 내 말을 알아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나는 이를 가볍게 지나치고 케이크과 함께 들고 온 여러 가지 물건들을 주변에 늘여놓았다. 일파티용 소품들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던 블랙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내가 가져온 소품과 풍선들을 유심히 살폈다.

“집에서는 머글 식으로 파티를 하거든.”

나는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 생일은 항상 그해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꽤 성대하게 생일 파티를 하곤 했다. 풍선을 부는 것은 보통 두 동생의 역할이었고, 아빠는 주로 그 풍선들을 천장에 장식했다. 나는 동생들이 불어온 풍선에 매듭을 지어주곤 했었는데.

빵빵하게 불어 오른 풍선을 블랙에게 날렸더니, 그는 귀찮은 듯 머리로 풍선을 통 쳤다. 살짝 떠오른 풍선이 다시 블랙의 머리에 떨어졌다. 심드렁한 척, 관심 없는 척하면서 머리로는 계속 풍선을 톡톡 치는 모습이 귀여워 나는 낮게 웃음소리를 냈다.

풍선을 다 불고 준비해온 빨간색 끈으로 블랙의 머리에 리본을 묶었다. 까만 블랙이 빨간 리본을 달고 있는 게 생각보다 웃겨서 나는 혼자서 킥킥댔다. 블랙이 불만족스러운 투로 컹컹댔지만,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개가 짖는다고 해서 위협적으로 느껴질 리가 없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다가가 볼에 얼굴을 비볐다.

“아, 귀여워 죽겠어.”

블랙이 조금 놀란 듯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가 나를 피하든 말든 엉겨 붙었다. 마음 같아서는 안고 데구르르 구르고 싶기도 했다. 한참 그렇게 블랙과 투닥거리다가 다시 바로 앉았는데 살짝 오한이 돌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을 뒤졌다. 담요가 여기쯤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파란색 래번클로의 문양이 그려진 담요를 꺼내 잠옷 위에 꽁꽁 둘렀다.

“너도 두를래?”

블랙에게도 방이 조금 서늘할 것 같아 나는 그에게 담요를 걸쳐 주었다. 새까만 블랙이 병아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유치한 담요를 두른 것을 보니 나는 또 그를 안고 싶어졌다. 이제 포옹에 익숙해졌는지, 다소 굳은 것 같긴 했지만 내가 안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크게 거부하지 않았다.

풍선을 주변에 흐트러뜨려 놓고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호그스미드에서 산 마법초라 케이크에 꽂자마자 스스로 불을 붙으며 타올랐다. 지팡이를 휘둘러 방의 불을 껐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케이크의 촛불이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케이크 위의 불꽃을 지켜보았다.

“생일 축하해, 로웨나.”

나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고 어쩐지 부끄러워져 후, 하고 얼른 바람을 풀어 촛불을 꺼버렸다. 그와 동시에 마법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필리버스터박사의 습식 장치가 달린 빛나는 폭죽이었다.

공중에서 불꽃이 튀며 공중에 메시지가 새겨졌다. Happy Birthday to Rowena.

불꽃이 사라지자, 조용한 어둠이 방 안을 잠식했다. 생일파티라도 하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내가 혼자인 것이 더 두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괜히 기분이 울적해져서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라도 없었으면 오늘 정말 우울했을 거야.”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었다. 무릎을 들고 앉아 있는 그대로 손으로 다리를 감쌌다. 아니야, 오늘 같은 날에 우울해지면 안 돼.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가 이런 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있다는 부재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블랙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혀로 내 볼을 핥았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나를 위로하기 위함인 줄 알았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그는 몰래 케이크 겉면에 있는 생크림을 혓바닥에 묻혀 놓은 모양이었다. 끈적한 생크림이 내 볼에 잔뜩 묻었다.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언제 이런 장난을 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해보자는 거야?”

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방 안을 다시 환하게 만들고, 손가락 위에 생크림을 얹혀 블랙의 반질반질한 코끝에 묻혔다. 새까만 개가 코에 흰 생크림을 묻히고 있으니 그것도 나름 어울렸다. 카메라가 있으면 사진이라도 찍어두는 건데! 너무 아쉬웠다. 블랙도 질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혀를 내 반대쪽 볼에 가져다 대려고 했다. 나는 잽싸게 블랙을 피하고는 그를 약 올리듯 생글생글 웃었다. 그가 한 번 더 달려드는 것을 피하려다가 나는 그 자리에서 뒤로 살짝 넘어졌다. 기회라는 듯 블랙이 내 위로 올라탔다.

“꺅, 하지 마!”

나는 짧게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내 볼에 닿는 느낌이 간지러워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거의 방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다시피 했다.

나는 자정이 다 될 때까지 블랙과 놀았다. 내일이 되면 또 그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그렇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아서, 얼른 잠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서 세수를 시키고, 나도 대충 얼굴을 씻었다.

그와 신나게 놀 때는 몰랐는데, 긴장감이 풀리니 조금 어지러웠다.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엎드렸다.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나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려 블랙을 바라보았다.

“얼른 이리로 와.”

블랙은 또 딴청을 피우며 러그 위에 서 있었다.

“더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나 오늘은 조금 피곤해. 얼른 와. 내가 블랙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망설이다가도 내가 애원조로 말하면 결국 그는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블랙이 찬찬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몸에 조금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노곤한 느낌으로 블랙을 품에 안았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에게 얼굴을 묻은 채, 나는 아스라이 잠이 들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나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후드까지 뒤집어써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나는 눈만 보고도 누군지 알아차렸다. 도망치려 했지만, 그는 회중시계의 쇠사슬로 나를 옭아맸다.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싫어요, 교수님.”

슬리데린의 문양이 몸에 새겨졌다. 비밀의 방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래번클로에서 퇴출당하고 슬리데린에 배정되었다. 습하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는 아빠에게 호흡 불가 마법을 걸었다. 내가 몇 번이고 해제마법을 시도했으나 아빠는 계속 캑캑대고 있었다.  나는 리들 교수에게 매달렸다.

“제발 그러지 마요…….”

루카스와 미아가 빗자루로 꽁꽁 묶여서 둥둥 떠 있었다. 그는 손을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루카스와 미아를 책장에 처박았다. 거대한 천칭이 아이들 위에서 돌았다. 마치 교수대의 칼날처럼 금방이라도 떨어질 기세였다. 나는 겁에 질려서 그에게 빌었다.

“리들 교수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제발…….”

나는 반쯤 울먹였다. 눈물이 절로 흘렀다. 우리 가족만은 안 돼. 절대. 그러지 마.

누군가 나를 흔드는 것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로웨나, 꿈이야. 괜찮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쩐지 몸이 무거웠다. 색색거리는 신음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내 숨소리였다. 감기 기운이 점차 심해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블랙이 조금 커진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의 팔목을 잡았다. 온몸에 힘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무서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지금 당장에라도 나를 위협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미약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옆에 있어 줘…….”

“아무 일 없어. 괜찮아.”

식은땀이 났다. 다시 기절하듯 정신을 잃었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파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기가 올라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걷어냈다. 식은땀에 젖은 옷이 축축했다. 블랙이 나를 앉혔다. 나는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상체를 비틀거렸다. 내 잠옷을 끌어올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날 건드리지 마. 힘들어. 비몽사몽 간에 나는 웃옷을 벗었다. 조금 시원해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죽은 듯이 잤다.

이마에 차가운 것이 얹어졌다.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있었다. 머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쪽으로 바짝 붙었다. 체온이 닿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내 머리카락을 넘기는 큰 손을 더듬었다. 아빠가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살며시 눈을 떴다. 어둠과 적막이 깊게 깔린 가운데, 희미하게 시리우스가 보였다. 내가 제대로 정신이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왜 시리우스가 여기 있지?”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시리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건 네 꿈이거든.”

“아, 그렇구나…….”

의식이 흐려 무엇인가 깊게 생각할 수 없었다. 게슴츠레 눈을 떴다가 감았다. 그는 내 손을 잡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다시 천천히 내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편안했다.

“다정하네요, 시리우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웅얼거렸다.

“평소에도 이러면 좀 좋아.”

“평소에도 항상 그러거든? 니가 몰라줄 뿐이지.”

나는 그의 말에 조용히 웃었다. 꿈에서도 그는 참 그대로인 것 같았다. 까칠한 것까지. 시리우스가 있어 줘서 다행이었다. 리들 교수가 나타나도 나를 보호해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다시 졸렸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머리를 닦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 * *

나는 일어나자마자 블랙을 찾았다. 그가 곁에 있어야 안정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시야에 블랙을 두고 다시 누웠다. 입맛이 없어 아침도 걸렀다. 폼프리 부인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동까지 걸어갈 기운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덮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은 물론 점심도 먹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블랙이 묽은 오트밀 스프 접시를 건넸다. 하지만 지금 뭔가 먹으면 그대로 토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휘저으며 스프를 거절했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세 시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에 몸이 휘청이는 것 같았지만, 입술을 깨물고 바로 앉았다. 침대에 멍하게 있다가 겨우 일어나 씻고 왔다. 너무 피곤했다. 블랙은 내 주변을 맴돌며 걱정스러운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누우라는 듯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징계, 받으러 가야 해.”

나는 블랙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망토와 목도리까지 휘휘 둘렀다. 귀에서 미약한 열기가 오르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그래도 누워 있는 것보다는 조금 움직이면 나아지겠지. 나는 괜히 쾌활한 척 말했다.

“그래도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나는 따라오려는 블랙을 기어코 안심시키며 기숙사를 나왔다. 병동에 들려 해열제라도 먹고 징계를 받으러 가는 게 좋겠지. 천천히 걸어 1층 병동으로 향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폼프리 부인은 병동에 없었다. 휴가라도 가신 걸까. 나는 그대로 병동을 나와 리들 교수의 연구실로 향했다.

평소에도 그렇게 반가운 곳은 아닌데, 몸이 좋지 않으니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들어가기가 너무 싫어서 문 앞에서 계속 서성이다가 결국 노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제는 익숙해진 서늘한 차가움이 연구실에서 흘렀다. 리들 교수는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흘끗 바라보았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대충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걸레를 들고 책상을 닦기 시작했다. 조금 어지러웠지만 참을 만했다. 두 시간만 버티면 되니까. 손에 힘이 없어 기계적으로 대충 먼지를 훔쳐냈다. 먼지랄 것도 얼마 없었다.

여느 때처럼 정적이 낮게 깔렸다.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돌아보지 않았다. 책상을 닦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떤 것에든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눈이 절로 감겼으나, 애써 정신을 부여잡았다.

땀이 뚝 떨어졌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혹여나 책상에 흔적이 남을까 얼른 닦아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그때, 리들 교수가 내 팔목을 감싸 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내 바로 앞에 리들 교수가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가 내 이마를 짚었다. 서늘한 그의 손길에 몸이 움찔했다. 리들 교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이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지.”

어제의 악몽들이 내 기억을 스쳤다. 리들 교수가 특유의 까만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순간 겁에 질린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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