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40화 (40/115)

0040 / 0115 ----------------------------------------------

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10)

병동에서 폼프리 부인에게 진정 물약을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종류의 약물은 일회적 사용에 그쳐야 한다며, 여러 번 복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켰다. 리들 교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급하게 뛰던 심장이 잠잠해진 것을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연구실 앞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듯 나는 쉬이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진정 물약을 마셨기 때문에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했는데, 노크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용기가 샘솟는 마법약 같은 거라도 복용하고 올걸. 아니, 진정 물약만 먹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었다. 내가 너무 용기 넘치는 나머지 그에게 대들기라도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나는 한참을 문 앞에 서성이다 겨우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시야에 리들 교수가 들어왔다. 그는 평소보다 편한 옷차림이었다. 항상 교수 느낌이 나는 정복을 차려입고 있던 모습만 봐왔기 때문인지, 베이지색의 스웨터를 입고 있는 그가 조금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리들 교수는 팔짱을 낀 채로 벽난로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벽난로의 불길이 천천히 사그라지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까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 같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겠지.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담담하게 고개를 내리깔았다.

조용한 침묵 사이로 벽난로의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리들 교수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사고를 쳤더군.”

“……네.”

교수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거기다가 내가 받았던 징계가 리들 교수의 연구실 청소였으니. 평소라면 그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긴장했었겠지만, 마법약의 덕분인지 그렇게까지 떨리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긍정했다.

“어떻게 된 거지?”

“기숙사에서 스테이시에게 머글식 폭력을 행사했어요.”

리들 교수는 내 말에도 무덤덤해 보였다. 왜 그랬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 애가 아빠가 보내주신 드레스를 찢었거든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연구실 방 안에 가벼운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눈치만 봤다. 리들 교수는 여전히 벽난로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내던지듯 말했다.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나?”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때 스테이시 무리가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어쩐지 그 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다시금 열분이 이는 것 같았다. 다소 격양된 어조로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이 제게 했던 행동을 보면 확신할 수 있어요.”

“그래서, 네 심증이 전부라는 말이로군.”

“…….”

어조가 차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가 나에게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솟아올랐던 흥분이 가라앉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징계 수행 여부가 학적부에 게재되는 건 알고 있었겠지.”

반쯤 놀란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몰랐다. 마루더즈가 맨날 받는 징계였기 때문에 다소 가볍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만지면서 뒤로 살짝 젖혔다.

“결론적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거군.”

별로 길게 들을 필요도 없다는 말투였다. 리들 교수는 한심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진정 물약을 먹었는데도 또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학적부에 기록이 남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가 어쩐지 나에게 엄중히 처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나에게 호흡 불가 저주를 걸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또다시 그런 고통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잔뜩 경직된 채로 리들 교수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기다리고 있었다. 1분 1초가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가 천천히 나에게 명했다.

“매일 3시부터 5시까지, 격일로 연구실에 방문하여 징계를 수행하도록.”

다행히도, 그는 나에게 이미 결정된 징계 이외의 처벌을 내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일주일 만에 끝낼 수 있음에도 굳이 격일로 방문하라는 저 말의 의미는 연휴 내내 나를 감시하겠다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리들 교수는 팔짱을 풀고 내가 서 있는 책상 쪽으로 걸어왔다.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줄 알고 몸을 움찔했으나, 그는 책상 바로 앞에 있는 서가에 섰다. 책이라도 찾고 있는 것인지 그가 책장의 가장 위쪽부터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그는 서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나에게 물었다.

“비밀의 방을 알고 있나.”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나는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곱씹었다. 순간적으로 그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비밀의 방? 머리를 굴렸으나,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아, 호그와트 창립자인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떠나면서 호그와트에 만든 방이라고 들었어요.”

아무리 뭔가를 떠올리려 노력해봐도 이 이상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리들 교수가 읽고 있었던 「호그와트의 역사」라는 책에서 본 그 정도가 다였다. 아,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때 들었던 얘기도 있구나. 처음 입학했던 날 밤 휴게실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우리에게 래번클로 선배들이 비밀의 방에는 우리 같이 작은 애들은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다고 겁을 주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런 얘기까지 리들 교수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원하는 것을 찾은 듯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었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서 그가 무심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이번 연휴 동안 너는 비밀의 방을 찾을 것이다.”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너무 뜬금없었다. 비밀의 방이라니. 나는 그것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비밀의 방은 순수한 슬리데린의 계승자만이 열 수 있다고…….”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래번클로인 내가 왜 굳이 슬리데린이 만든 비밀의 방을 찾아야 하는지 의아해졌기 때문이다. 책장을 넘기던 그의 손길이 멈추었다.

“내가 너에게.”

그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비밀의 방을 열어달라고 말했던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에 숨어 있는 논지를 파악했던 까닭이다. 그는 왜 내가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노예에게 명령을 내릴 때 그 명령이 가지는 숨어 있는 의미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내 판단 따위는 불필요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절대복종임을,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리들 교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 방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죠?”

“슬리데린의 상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겠지.”

그는 지팡이를 꺼내 들고 읽고 있던 책을 한 번 툭 쳤다. 차르륵 소리를 내며 책장이 스스로 넘어가더니, 책의 낱장이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저절로 분리되었다. 낱장의 양피지들이 절로 내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엉겁결에 양피지 조각 몇십 장을 그대로 받았다. 결코 적은 양이라 볼 수 없는 양피지 더미에는 슬리데린의 상징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호그와트 내에서 이런 표식이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져봐.”

그가 지팡이를 거두었다. 리들 교수는 특유의 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명했다.

“의심스러운 곳은 바로 보고하도록.”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의 말에 수긍하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만든 비밀의 방.

나는 깃펜으로 한 줄 적어놓고 멍하게 글자만 바라보았다. 방어마법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도록 연습하라거나, 좋은 성적을 받으라거나 하는 그런 부류의 명령이 아니었다. 비밀의 방을 찾으라니. 실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나는 호그와트 창립자의 전설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래번클로로서 내 호기심은 대부분 안위를 보장할 수 있을 범위 내에서의 지적 호기심에 불과했다. 복잡하고 위험한 구석이 많은 호그와트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위험성이 뻔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뛰어들 만큼 그리핀도르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호그와트의 몇몇 장소는 한 번 들어가면 혼자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복잡한 미로였고, 금지된 복도와 같은 곳들은 접근하는 것 자체로도 목숨을 위협했다. 그 정도만으로도 호그와트에 대한 호기심이 수반하는 가시적 위험성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나는 대뜸 비밀의 방을 찾아내라는 리들 교수의 요구를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어떻게? 그에게는 결코 물을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매다가 사라졌다. 리들 교수는 적어도 자신의 명령에 한해서는 내가 의문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의 행동반경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늘도 그랬다. 잔뜩 긴장한 채 연구실을 찾아갔음에도, 별다른 처벌은 없었다. 심지어 리들 교수는 내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평소에 느껴지는 서늘한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적어도 어제와 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 파티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래서 더 두렵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나는 곧 리들 교수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고개를 숙여 그가 건네준 양피지를 건성건성 넘겼다. 양피지에는 뱀과 기숙사 문양 등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몇몇은 퀴디치 경기에서도 볼 법한 익숙한 문양이었으나, 영 처음 보는 그림도 있었다. 대부분은 뱀을 기조로 한 것들이었고, 몇 가지는 순수혈통의 마법사를 그린 것들 같기도 했다.

한참을 뚫어지게 그 그림들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무엇인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에 처박혀서 이렇게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도서관에 가서 뭔가 찾아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의문이 생길 때 으레 그랬듯 도서관에 오긴 했으나 대체 내가 뭘 뒤져야 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습관처럼 항상 앉는 열람실 자리에 앉았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얼마 없었다. 주변을 휘 둘러보는데 멀리 세베루스가 그의 고정석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지치지도 않는지, 학기 중과 같이 그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나는 세베루스가 슬리데린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는 데다가, 금지된 서가에 자주 다니곤 했다. 그에게서 어느 정도 비밀의 방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말을 걸어 볼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세베루스.”

나는 머뭇거리면서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릴리를 대할 때와 대조되는 관심 없어 뵈는 태도였다. 그간 내가 만나왔던 슬리데린들은 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아무리 릴리와 친하다고 해도 그 또한 슬리데린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아마 평소라면 절대 나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저어,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볼 수 있을까 해서요.”

“뭔데.”

다행히도 그는 나를 무시하거나 쳐다보지도 않는 등의 무례한 태도를 비치지는 않았다. 슬리데린 학생들이 머글 출신의 마법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의 반응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했다. 나는 그의 맞은편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혹시 비밀의 방에 대해 알고 계세요?”

“모를 리가.”

그는 책을 덮으면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비밀의 방에 대해 뭐 아시는 거 없나요?”

“궁금한 게 정확히 뭐지?”

뭐가 궁금한 거지? 가장 궁금한 건, 리들 교수는 나에게 실행 가능한 임무를 내린 것이냐는 의문이었다. 만약 비밀의 방이 그저 전설과 같은 것이라면 애초에 찾을 수 없는 거니까.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호그와트에 비밀의 방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살라자르 슬리데린이 만든 이후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다면, 나도 찾지 못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았다. 천 년 동안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걸 어찌 내가 찾겠어.

“18세기쯤 곤트 가의 후계자가 비밀의 방을 열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다소 심드렁해 보이는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듣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실제 열린 기록이 있단 말이죠…… 어디서 보신 건가요?”

“호그와트 기록실에서. 잘 기억이 나진 않는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그와트 기록실은 어느 때든 방문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의 대화가 끝나면 찾아봐야겠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탐색 마법으로 비밀의 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고작 탐색 마법으로 찾을 수 있을 정도의 것이라면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세베루스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도 궁금해져서요. 내가 조금 부끄러워져서 대답했다. 세베루스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너, 머글 출신이 아니었던가.”

그가 마치 지나가는 듯 나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내 출신을 확인하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세베루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의 방이 어떤 용도인지는 알고 묻는 거야?”

“용도요?”

그러고 보니 비밀의 방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리들 교수가 찾아보라고 했으니 거기에 무엇인가 엄청난 것이 있으리라고 추측했을 뿐이다. 세베루스가 딱딱하게 말했다.

“너 같은 머글 출신이나 순수 혈통이 아닌 마법사들을 제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이잖아.”

나는 그제야 호그와트의 역사에서 읽었던 부분을 기억해냈다. 몸이 살짝 굳었다. 그리핀도르와의 이견을 조율하지 못한 슬리데린이 호그와트를 떠나며 마법을 공부할만한 가치가 없는 학생들을 제거하기 위해 숨겨둔 방이라고 했었지. 여기서 말하는 가치 없는 학생이란 혈통이 보장되지 않는 마법사를 의미하는 거였구나.

“비밀의 방이 열리면 가장 먼저 제물이 되는 건 너 같은 애들이야.”

그는 사실이라도 적시하듯 무미건조한 투로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의 말에 나는 좀 더 혼란스러워졌다. 리들 교수는 그 방을 찾아내 나를 살해하기라도 할 것인가? 그러나 곧 나는 그러할 가능성 자체를 기각했다. 나를 죽이기 위해 비밀의 방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귀찮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그는 나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테니까. 분명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이겠지. 리들 교수의 저의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도, 동시에 비밀의 방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작동 원리가 어떤거지? 마법사들 중에서도 머글 출신을 호그와트에서 탐지해낸 다음 살해하는 방식인가?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길래 불순한 혈통만 골라내 없앨 수 있다는 것일까?

나는 그 후에도 세베루스에게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조금 귀찮은 기색을 드러내 보이면서도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겉모습만 보고 어둠의 마법에 심취해 있는 질 나쁜 마법사로 평가했었는데, 대화를 몇 번 나누다 보니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세베루스는 심지어 내가 터무니없는 질문을 던지더라도 제대로 대답해주었다. 나중에 교수 같은 걸 한다면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금방 그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제 대충 해야 할 것들이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세베루스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비밀의 방은 허황된 장소가 아니다. 일단 기록물 자료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다음, 호그와트의 내부를 파악할 수 있는 관련 서적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세베루스가 말했던 기록물 자료실의 자료는 간단했다. 1712년, 호그와트에서 배관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고르비누스 곤트라는 슬리데린 학생이 비밀의 방을 열었다는 정도였다. 그리하여 피해가 발생했는지, 진짜 머글 출신 마법사가 제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다. 비밀의 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리들 교수가 발급해준 접근 금지 구역의 허가증을 가지고 호그와트 설계도면을 찾기 시작했다. 거의 이틀을 접근 금지 구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몇 가지 호그와트의 도면을 찾아냈으나, 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 호그와트는 몇 번의 재건축을 통해 설립자들이 애초에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숙사나 교수실 같은 기본적인 시설을 제외하고는 교실의 위치조차도 바뀐 경우가 태반이었다. 호그와트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긴 했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불분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호그와트 전체를 아우르는 설계도면은 실제 있기나 한지 의문이었다. 나는 서쪽 탑의 도면이나, 호그와트 성 3, 4층의 도면 등 건물의 일부가 그려진 설계도만 간간이 찾아냈다.

이틀 동안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필요한 것은 여기에 없었다. 결국 나는, 직접 호그와트를 돌아다니며 비밀의 방을 찾아야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 작품 후기 ============================

1. 이제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네요. 트로피 보관실 장면에서 이미 추측하셨다시피 ‘로웨나 블루로즈’에서의 톰 리들은 원작보다 16년 정도 늦게 태어났습니다. 그는 호그와트 재학 중에 비밀의 방을 열지도 않았으며, 이렇다 할 큰 사고를 치지도 않았어요. 그러므로 원작과는 달리 톰 리들의 인격과 이름이 유지되고 있고, 교수직을 역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이상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너무 꽁꽁 싸맨다 싶겠지만 아직 저는 리들을 제 소설의 수수께끼로 남기고 싶군여.

2. 花鳥風月님이 코멘트란을 통해 “로웨나가 완전 개갞끼인 리들 교수에게 연애 감정 비슷한 거라도 느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답변을 드리기는 어려운 질문이네요. 완결이 나게 되면 후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여 그래도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 하시면 개인적으로 쪽지주세요^_^

3. 쓰다 보니 저는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네요. 말할 수 없는 자냐며. 걍 필명을 김리들로 바꿔야 하는 것인가ㅋ_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