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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9)
다음 날 아침부터 학생들은 부산했다. 곧 호그스미드역으로 향하는 마차가 떠나기 때문이다. 4학년 중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학교에 남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로웨나, 이번 연휴에 우리 집으로 초대하려고 했는데.”
아이작이 아쉬운 듯 말했다. 그는 종종 자신의 저택을 자랑하며 방학이나 연휴 동안 한번 놀러 오라고 제안하곤 했다. 나는 지금껏 별별 핑계를 들며 이를 거절해왔으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의 집이 우리집과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다. 포트키나 플루가루등을 이용하여 방문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런 방식의 순간이동이 조금 무서웠다. 아무래도 내가 호그와트에서 제일 먼저 읽은 책이 순간이동을 하다가 머리가 잘린 마법사의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 나는 다음 방학에는 꼭 본즈 가에 가겠다는 기약할 수 없는 말을 건네며 그를 보냈다.
아이작을 배웅하고 들어오는 길에 휴게실 앞에서 올리비아를 만났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필리다로부터 이야기 들었어, 로웨나.”
올리비아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스테이시와 싸운 날, 올리비아에게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기숙사를 나간 이후로 나는 그녀와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올리비아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너희 학년 애들 사이에서 별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 같더구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반장으로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 사과할게. 왜 말해주지 않았어?”
그녀는 상당히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도리어 죄책감이 일었다. 그녀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증명할 방법도 없는데 그들을 몰아세운 것은 나였고, 설령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잔뜩 흥분해 손부터 올라간 나를 저지했을 뿐이다.
“넌 서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반장일은 생각보다 많아. 나는 각 학년의 세부적인 사정까지 파악할 수 없어. 네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야.”
“아니에요, 올리비아. 서운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대답했다.
“제가 잘못한 게 맞는걸요. 애초에 아무런 증거도 없이 걔네들한테 싸움을 건건 저였고, 먼저 뺨부터 때렸던 것은 분명 옳지 않았어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어요. 나는 올리비아에게 말했다. 진짜 그랬다. 흥분해서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결단이었다. 그들이 우리 엄마의 드레스를 찢어 놓았다는 것 자체는 확신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잘못 택한 것은 맞았다. 흥분만 가라앉혔다면 충분히 사려 깊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 로웨나. 플리트윅 교수님께 네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씀드릴게.”
그래도 아마 어느 정도의 징계는 받아야 할 거야. 나는 그녀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징계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물론 그 당시야 그냥 모든 게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약간 섬뜩했다. 내가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리들 교수가 좋아할 리 없었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처벌하게 될지 몰랐다.
올리비아가 나를 배려하는 듯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혼자 삭히지 말고 말해줘, 로웨나. 우리 함께 얘기해서 해결하는 방법도 있잖아. 참고 있다간 엉뚱한 방향으로 터뜨릴 수밖에 없게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나는 새삼 그녀가 왜 반장인지, 왜 나보다 선배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도 겁도, 쓸데없는 자존심도 너무 많아 너무 방어적으로 행동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스테이시에게 그렇게 화를 낸 것도 그랬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처해야 할 일을, 순간의 분노에 차 그간 쌓아왔던 여러 가지 것들과 함께 터뜨린 것에 불과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내 성정이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평판일 뿐이었다. 나는 내가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스테이시에게 머글식 폭력을 휘두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한 후회는 생겼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올리비아는 함께 점심을 먹자고 권유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다시 원래의 공정하고 친절한 올리비아로 돌아왔다. 연회장으로 가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마루더즈가 칵테일에 술을 탄 것이 가장 큰 이벤트였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가 시리우스 블랙과 파트너가 된 것이 호그와트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이슈거리라고 확언했다. 그녀가 시리우스를 언급하자, 나는 다시금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크리스마스 다음이 연휴 기간이라 그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생각보다 학교에 남아 있는 상급생들이 많아서 놀랐다. 주로 7학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연회장을 한 번 둘러보며 올리비아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에서 제임스가 눈에 들어왔다. 제임스도 이번 연휴에 떠나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있는 시리우스를 발견한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시리우스가 왜 저기에 있지? 자세히 살펴보니 마루더즈 모두가 떠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5학년이긴 했어도 리무스를 제외하고는 딱히 학업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단체로 호그와트에 남아 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올리비아와 대화를 나눴다. 올리비아는 식사를 제법 느리게 하는 편이었다. 얼른 끝내고 시리우스를 피해 연회장을 나가고 싶었지만, 그녀는 느긋하게 베이컨을 집으며 6학년이 되니 변신술 수업이 따라잡지도 못할 만큼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시리우스가 나를 발견하지 않길 바라며 고개를 숙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다. 올리비아는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해야 할 일들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래번클로 기숙사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 반대편에서 시리우스가 기다리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아주 평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못 본 척 지나가려고 했다. 나에게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예의 능청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다가와 우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올리비아 선배님.”
그가 그렇게 단정하고 반듯하게 구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학교 선배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편은 아니었다.
“제가 로웨나와 긴히 나눌 대화가 있는데, 잠시 데려가도 될까요?”
시리우스는 눈꼬리가 선하게 내려가는 보기 드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그의 속내가 그대로 보였지만, 대다수의 여자들은 시리우스의 호의를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 올리비아는 나와 시리우스를 번갈아 보며 의미 모를 웃음을 지었다.
“물론.”
올리비아가 내 쪽으로 눈웃음을 치며, 잘 해보라는 듯 내 어깨를 손으로 툭 건드리고는 반대편 래번클로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갔다. 시리우스는 일부러 이런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나와 그를 엮으며 얄궂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그렇게 재밌나.
이윽고 올리비아가 떠나자, 복도에는 나와 시리우스 둘 만 남았다.
“왜 아는 척도 안 하고 그냥 가시나.”
그가 마치 방금 나를 처음 만난 것처럼 능글맞게 지적했다.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태도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시리우스의 눈을 피하며 대충 인사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조금 두려웠다. 그가 먼저 무언가 말하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았다.
나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 학교에 남아있을 예정인가 봐요.”
“이번 연휴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나는 혹여 ‘그 일’이 언급될까 봐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화를 이어나갔다.
“파티 때 일 친 것에 대한 징계는 없었어요?”
“안 그래도 오전에 맥고나걸 교수님을 보고 왔어. 청소거리를 한 무더기 주시더군.”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2층 갑옷실 청소를 내가 맡게 되었어. 연휴 기간 2주 내내.”
또 청소야? 매번 참신한 그들의 장난에 비해 그 처벌은 항상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청소할 마음가짐으로 마음껏 장난을 치라는 말과 다름없지 않을까.
“오, 힘내세요. 그래도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징계는 아니네요.”
마루더즈에게 벌 청소쯤이야. 모르긴 몰라도 수년간의 호그와트 청소 경력으로 비추어 볼 때, 그들은 머글보다도 더 머글식 청소에 익숙할 것 같았다. 내 대답에 시리우스가 피식 웃었다.
“난 그래도 나은 편이야. 제임스는 맥고나걸 교수님의 사무실을 청소해야 하거든.”
그가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시리우스의 감시자야 기껏해야 필치 씨 정도가 되겠지만, 제임스는 2주 내내 맥고나걸 교수님의 철두철미한 감시 아래에서 청소해야 할 테니까. 그건 이미 연휴가 아니었다. 제임스가 좀 측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시리우스의 말을 대충 흘러 들으며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눈치를 보았다. 어떤 말을 하며 떠나지? 급한 과제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과제가 있을 리 없었다. 아니면 바쁜 일? 연휴 기간에 호그와트에 머무는 내가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시리우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뭐 그건 그렇고, 우리 할 얘기가 있을 텐데.”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말이야.”
오, 맙소사. 이런 정면 돌파라니. 그가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꺼낼 줄 몰랐던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파티가 참, 재밌었죠. 제임스와 릴리가 결국 파트너가 되었고.”
또 뭐 재밌는 일이 없었나? 칵테일에 들어간 알콜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 창피한 기억을 드러내기 위한 전초전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기어코 사소한 에피소드를 줄줄 늘어놓으며 대화를 주도하려고 애썼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머리에 꽃을 달고 춤을 추기도 했었구요.”
그러나 시리우스는 나의 어쭙잖은 수작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허둥지둥하며 아무 얘기나 늘어놓는 나를 귀엽다는 듯이 한 번 바라보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런 거 말고, 연회장 작은 방에서……”
나는 그가 어떤 말을 꺼낼지 몰라 잔뜩 긴장한 채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나를 쳐다보며 나른하게 웃던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 둘 사이에 큰 사건이 있었잖아.”
큰 사건이라니!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들으면 뭔가 일이라도 터진 줄 알겠다. 그의 말에 담긴 중의성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그, 글쎄요. 그때의 일이 기억이 안 나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처였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고 했으니 영 이상한 말은 아니겠지. 나는 결코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성정이 되지는 못했으나, 괜히 태연함을 가장하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전혀 부끄러울 것 없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시리우스는 내 눈동자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흔들림을 금방 감지한 것 같았다.
“정말?”
그는 내가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이것을 일종의 심리전이나 게임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제 눈에 그대로 보이는 가장된 거짓말을 하는 것이 그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말 기억이 안 나?”
“네.”
나는 어떻게든 숨기려고 노력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도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냥 모르겠어요! 하고 순간 이동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순간 이동을 무서워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팔 한 짝을 내어주고서라도 기꺼이 할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가 좀 더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바람에 내 시야에 그의 가슴께가 들어왔다. 일순 어제 일이 생각나며 열이 올랐다. 그날 밤, 내가 먼저 그의 품에 안겼었다.
시리우스가 사뭇 진지하다는 척 반쯤 비난 조를 섞어 말했다.
“어제 그렇게 나를 유혹해 놓고서, 인제 와서 모른 척하겠다고?”
“유혹이라뇨!”
그게 무슨 유혹이에요! 나는 정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내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는 참았던 듯 웃음을 터뜨렸다. 빼도 박지 못하게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는 사실을 들켰다. 낭패감이 일었지만, 오히려 시리우스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블랙인 줄 알았어요.”
혹여나 내가 옳지 않은 방식으로 시리우스를 꾀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것 같았다. 이미 시리우스도 내가 착각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 어때. 사람이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를 달래듯이 시리우스가 대답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창피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괜히 실수로 술을 마셔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 절대. 그런 실수는 절대 없을 거다.
위로하는 척 이해의 말을 꺼내놓고서 시리우스는 씩 웃었다. 그리고 짧은 위안의 한마디가 무색하게도,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찌나 안아달라고 떼를 쓰던지.”
“아, 얘기 꺼내지 말라니까요!”
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왜 저렇게 사람이 얄미운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걸 알면 대충 눈치채고 모른 척하지. 시리우스는 내가 격한 반응을 보일 때마다 기분 좋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점점 내가 울상이 될수록 그는 즐거워 보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가 계속 장난을 이어갔다.
“나에게 긴장을 풀라고…….”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놔두면 어떤 말을 지껄일지 알 수 없었다. 시리우스는 충분히 내 손을 풀어낼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마치 어린애가 노는 장단에 맞춰주겠다는 기색이라 그가 더 얄미워졌다.
나는 손으로 시리우스의 입을 막은 채 그대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파티 계약 건에 관해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그를 쏘아보며 은근하게 협박했다. 시리우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항복의 표시로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를 막고 있던 내 손을 내렸다. 눈가에 아직 웃음기가 남아 있었으나, 그는 더 이상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을 것 같았다.
“블랙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예요?”
“언제 보고 싶은데?”
나는 잠시 침묵했다. 언제 보고 싶으냐고? 파티에 참석한 덕에 나는 아주 많은 사건 사고를 겪었다. 지금 시리우스가 이렇게 장난을 치는 것도 다 애꿎은 크리스마스 파티 때문이었다. 어쩐지 블랙을 한, 두 시간 정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2주간 제가 기숙사에서 데리고 있고 싶어요.”
“뭐?”
그가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눈에 띄게 당혹해 하며 되물었다. 당연히 쉽게 허할 것이라 예상하진 않았지만, 저 정도로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조금 의아했다.
“기숙사에 어차피 사람도 없어요. 룸메이트도 없고. 우리 층엔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나는 시리우스에게 매달리기라도 할 기세로 졸라대기 시작했다.
“제 방에서 키운다고 해도 아는 사람도 없을걸요. 거기다가 호그와트에서는 애완동물 한 마리 정도는 허용하고 있잖아요. 블랙도 저를 좋아하구요. 하루 종일 붙어있을 자신 있어요.”
나름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시리우스는 더욱더 당황하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의 귓불에 살짝 붉은 기운이 돌았다.
“그, 그건 리무스가 싫어할 것 같은데…….”
아, 그런가? 아무래도 개의 주인은 리무스인 것 같으니, 그에게까지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그래도 블랙을 낮에 몇 번 보는 것 정도로는 뭔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시리우스에게 떠보듯 물었다.
“그럼 일주일은요? 아님 하루나 이틀 정도라도.”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다…….”
시리우스는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곤란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약속은 지키셔야죠.”
나는 순간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속 볼 수 있게 해준다고 그랬잖아요.”
조금 서러워진 까닭에 나는 그에게 투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 참석 때문에 얼마나 많은 수난과 고초를 겪었는데, 고작 하루 동안 블랙과 함께 보내는 것도 허용되지 못한단 말인가. 그는 분명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블랙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약속했었다.
“알겠어, 알겠어.”
내가 울기라도 할 것 기세로 그에게 따져 묻자 시리우스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여전히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수긍한 것 같았다.
“잘 말해볼게. 하지만 확답은 줄 수 없어.”
“리무스는 블랙을 하루 정도 나에게 빌려준다고 해서 싫어하지는 않을 거예요.”
리무스는 블랙을 좋아했지만, 끼고 돌만큼은 아니었다. 가끔 블랙의 외박도 허용하던데, 내가 기숙사에서 고작 하루 정도 함께한다고 불쾌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리무스는 적어도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쯤은 내가 말해도 들어줄 만 한데.
“아니면 제가 직접 부탁해 볼게요.”
“아니! 괜찮아. 내가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해.”
시리우스는 유난스럽다 싶을 정도로 단언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는 내가 리무스와 블랙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기 개도 아닌데 웬 야단인가 싶었다.
블랙과 함께했던 그 밤은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다. 나는 또다시 그날 밤처럼 블랙이 필요하게 될지도 몰랐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고, 이번 연휴가 보통 때보다 더 고단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시리우스와 헤어질 때까지 단 한 번이라도 꼭 기숙사 방에서 재울 수 있도록 리무스에게 잘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 * *
올리비아가 미리 말해준 것처럼, 플리트윅 교수님이 나를 연구실로 불렀다. 그의 연구실은 7층에 있었다. 나는 래번클로 기숙사 입구에서 나와 계단을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 그의 연구실을 향했다.
플리트윅 교수님의 연구실은 이전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괴짜인 플리트윅 교수님답게 그는 항상 연구실 구석구석에 온갖 마법용품들을 쌓아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러한 기상천외한 물품들이 매번 다른 것들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그는 꽤 유쾌한 마법사로서 연구실에 학생들을 따로 불러 대화하는 것을 매우 즐겼다. 아직도 기억하는 게, 1학년 때 나와 아이작을 연구실에 초대하신 플리트윅 교수님이 딸기 컵케익을 내어준 적이 있었다. 단 걸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의상 한 입 먹으려고 손을 내밀려는 순간 갑자기 컵케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그저 신기한 것을 보는 정도의 반응이었으나 아직 마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자지러지는 듯한 나의 반응에 플리트윅 교수님은 마치 손녀딸을 보듯 껄껄 웃었다. 그것이 플리트윅 교수님께서 1학년들에게 곧잘 하는 장난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교수님은 나를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라, 그의 연구실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연구실을 방문한 나에게 교수님은 으레 그래 왔듯 자신의 책상 앞쪽 의자에 편하게 앉으라고 말했다. 나를 앉힌 플리트윅 교수님은 반대편의 높은 의자에 거의 기어오르듯 올라갔다. 마침내 의자에 앉은 교수님이 지팡이를 살짝 휘둘러 책상 위에 건포도 머핀을 소환했다. 갓 구운 것처럼 말랑해 보이는 머핀 냄새가 달콤하게 연구실을 채웠다.
“머핀 하나 들어보게나. 요즘은 마법을 이용한 요리에 취미가 생겼다네.”
제법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플리트윅 교수님이 말했다.
“내가 직접 구운 거야.”
플리트윅 교수님은 접시를 내 쪽으로 밀어내며 권했기 때문에 예의상이라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포크로 잘라 낸 머핀조각 한 입을 삼켰다. 과하지 않은 단맛이 혀에 맴돌았다. 이거, 생각보다 맛있구나.
“맛이 어떤가?”
“달콤하네요.”
내가 대답했다.
“교수직을 그만두시고 다이애건 앨리에 디저트 가게를 차리셔도 성공하실 것 같은데요.”
내 말에 플리트윅 교수님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플리트윅 교수님의 머핀은 생긴 건 그냥 보통의 머핀같았으나, 안에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약을 섞기라도 한 듯 한 입을 맛보니 더 먹고 싶은 묘한 감칠맛이 났다.
“이번 마법 시험에서 보여주었던 소환 마법은 인상 깊었다네.”
포크를 들어 머핀 조각을 삼키던 플리트윅 교수님이 말했다.
“네?”
“그렇게 금방 소환마법에 능숙해지는 학생들은 몇 없어.”
나는 플리트윅 교수님이 뜬금없이 소환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머뭇거리며 포크를 놓으려고 하자, 교수님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더 들어도 괜찮아.”
플리트윅 교수님이 권했다.
“블루로즈 양을 위해 만든 거니까, 사양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어쩐지 이 머핀을 다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의무를 다하듯 전투적으로 머핀을 먹는 나를 마치 할아버지처럼 흐뭇하게 바라보며 플리트윅 교수님이 말을 이었다.
“교수진 전체가 블루로즈 양 이야기뿐이야. 이번에 전 과목에서 상당히 우수한 결과를 냈다고 하더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달콤한 머핀 덕분인지 평소에는 예의상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렸던 칭찬도 더 기쁘게 들렸다.
“블루로즈 양.”
플리트윅 교수님이 조금 심각하게 물었다.
“애컬리 양에게 이야기 들었다네. 엄마의 유품이 방에서 찢어졌다고 했지?”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비아가 거기까지 이야기를 했구나.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파울리 양에게 머글식 폭력을 가한 건가?”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걔들이 내 드레스를 찢었으니까요.”
“흠, 그래.”
플리트윅 교수님이 말을 아꼈다. 분명, 교수님이라면 스테이시 무리들과도 이미 상담이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발뺌했을 것이 틀림없었고. 애들 장난 비슷한 것에 오러들이나 쓰는 베리타세룸을 먹여가며 진실을 밝히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애초에 뭔가 파헤쳐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플리트윅 교수님의 미적지근한 반응이 그렇게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나를 옹호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나는 4년 내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조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는 이 사건 하나만으로 나를 문제아로 낙인찍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블루로즈 양은 총명한 학생이니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드네.”
플리트윅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든 교칙을 위반했으니 징계는 받아야 하겠지.”
이해하나? 교수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차라리 징계를 받고 마음 편해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플리트윅 교수님은 비교적 수위가 높지 않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교수진에서는 일주일간 리들 교수의 연구실을 청소하는 정도로 징계를 결정했다네.”
“네?”
나는 크게 놀라며 교수님에게 되물었다.
“리, 리들 교수님 연구실이요?”
플리트윅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방 안에 있는 모든 등불이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의 연구실에 일주일 동안이나 들락날락해야 하다니. 거기서 리들 교수와 함께 있어야 한다니. 여태껏 징계를 받아본 적은 없었지만, 이건 진짜 최악의 징계였다.
============================ 작품 후기 ============================
1. 스테이시의 성이 파울리라는 건 처음 나오는 듯해요. 역시 대충 지어서 그런가..
2. 저는 전개를 드러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코멘트에 답변을 드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혹여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따로 @표시를 달거나 쪽지로 부탁드려요!^_^
3. 코멘트 중 askywalker님이 ‘화장은 마법으로 못 지우냐’는 질문을 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스토리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재밌는 질문이었어요ㅋ_ㅋ 화장을 지우는 마법이 있겠죠? 하지만 그 주문을 로웨나는 모릅니다. 한 번도 화장을 해본 적 없으니 화장을 지우는 주문을 알 리 없다는 게 함정. 설령 안다고 해도 능란하게 사용하지는 못하겠죠? 연습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래서 머글식으로 열심히 세수했습니다 :)
4. 한유주님 후원쿠폰 감사드립니다! (__)
5. 내일은 연재가 힘들 것 같습니다. 17일에서 18일로 넘어가는 밤에 다음 편이 나올 예정이에요. 그때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