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38화 (3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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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8)

날 선 긴장감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를 보니 반사작용이라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이 굳었다.

목덜미 바로 아래까지 짧은 깃이 세워진 외투를 입은 리들 교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서늘한 인상의 미남자였지만, 나는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차가운 어둠을 알고 있었다.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와 감정을 잠식했다. 그의 수려한 외모 가운데서도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만큼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저의 무저갱처럼 느껴졌다.

“아, 좋은 밤이에요 교수님.”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감추려 노력하며 내가 조용하게 대답했다. 손이 떨리는 것까지 숨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원의 깊은 곳까지 들어온 탓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들 교수가 무슨 짓을 하든 그를 자제시켜줄 사람도 없었다. 의식 깊은 곳에서부터 각인되어 있던 선명한 공포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를 지그시 한번 응시한 리들 교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파티는 즐기고 있나?”

그는 결단코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기꺼워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질문의 저의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네. 덕분에.”

리들 교수는 여전히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길이 조금 더 깊어졌다. 확언하건대 평소와는 달랐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마치 희뿌연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파란 장미 같군.”

무슨 속셈일까. 내 뒤로 다가온 그가 부드럽게 숄을 쥐더니 천천히 벗겨 냈다. 마치 그것이 상대방을 위한 예의라도 되는 것처럼, 그 동작은 우아하고 자연스러웠다. 리들 교수는 숄을 장미 덤불 위에 걸쳐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의도를 추측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나에게 어떤 굴욕감을 주고 싶은 건지.

그가 나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리들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서로 간의 숨결조차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가 내 왼쪽 어깨를 살짝 그러쥐더니, 마치 귀엣말을 하듯 고개를 숙여 천천히 귓가로 다가왔다. 순간 귓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에 나도 모르게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나는 그가 내 귀를 무는 줄 알았다.

다소 낮게 잠긴 목소리로, 리들 교수가 속삭였다.

“난 어쩐지 장미만 보면 꺾고 싶던데.”

그의 입술이 내 귀에 살짝 닿은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몸이 저릿했다. 리들 교수는 곧 귓가에서 멀어졌지만,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가 내 볼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볼을 쥐고 있던 손이 천천히 목덜미로 내려왔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목을 살짝 쓰다듬었다. 손가락은 곧 목을 지나 쇄골에 닿았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이 닿는 곳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느리게 쇄골을 타고 내려오던 손은 가슴 바로 위에서 멈췄다. 몸에 소름이 돋으며 심장이 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리들 교수는 거기에서 느리고 부드럽게 손을 떼어냈다. 그가 항상 목숨을 위협하긴 했어도 이렇게 나를 희롱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더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의 반응이었다. 내부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듯한 미열감이 느껴졌다. 무서워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리들 교수는 깊고 어두운, 새까만 눈동자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낮은 숨결을 따라 희미하게 알콜 냄새가 흘렀다가 금방 사라졌다. 잠시간의 짧은 침묵 후, 그가 나에게 속삭였다.

“내일 밤 연구실에 오는 것 잊지 말도록.”

귓가로 다가온 리들 교수에게서 알 수 없는 열기가 훅 올라왔다. 항상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에게 처음 느끼는 뜨거운 열기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 내 뒤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떠났음에도, 나는 마치 아직 그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약하게 떨고 있는 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긴장감을 풀기 위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리들 교수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나를 죽이겠다는 위협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 * *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장미 덩굴 사이를 빠져나왔다. 정원을 지나 다시 연회장 쪽으로 돌아갔다. 연회장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슬슬 파티가 파해지는 분위기였다. 다행히 리들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로웨나.”

아이작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안도감에, 순간 나는 그를 껴안기라도 할 뻔했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무슨 일 있었어?”

볼이 너무 빨개. 아이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양손을 들어 볼을 만졌다. 갑자기 리들 교수가 내 볼을 쓰다듬은 것이 생각났다. 잊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이작에게 말했다.

“아까 술을 마셔서 그런가 봐.”

“칵테일 많이 마신 거야?”

아이작이 나에게 다가와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이마에 손을 대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몸이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긴장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 자신이 더 놀랄 정도의 과한 반응이어서, 그에게 약간 미안해졌다. 아이작은 별달리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손을 내렸다. 괜히 변명했다가 리들 교수의 이야기까지 나올 것만 같아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숄은 어디 간 거야?”

“아.”

장미 정원에 두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나시사의 옷이라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나는 깜짝 놀라 아이작에게 야외 정원에서 찾아보겠다고 말하며 몸을 돌렸다. 다시 거기 갔다가 리들 교수와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그의 마지막 눈빛을 떠올리니 조금 두려워졌다. 그와 계속 있었다간 그대로 먹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장미가 있는 덩굴 위에 내 흰 숄이 보였다. 숄을 집어 올리다, 시선에 파란 장미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나를 장미 같다고 말했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또 얼굴이 붉어지는 것 같아 나는 황급히 숄을 둘렀다. 이 자리에서 얼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스테이시가 그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거는 것이 보였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그녀를 보자 극도로 저조해졌다. 평소 같으면 모른 척 지나가겠지만, 어제의 만행을 생각한다면 그녀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아이작. 나 졸려.”

“어?”

그는 뜬금없이 다가와서 졸리다고 말하는 내가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 팔짱을 끼며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응. 졸려. 우리 이제 들어가자.”

“아, 그럴까? 스테이시, 나 먼저 들어갈게.”

나는 괜히 그에게 찰싹 붙어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스테이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작 몰래 표독스럽게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대놓고 그녀를 비웃어주며 아이작을 끌었다.

밤이 깊어서 그런지 래번클로로 가는 기숙사 복도는 추웠다. 온도변환 마법이 걸려있는 연회장에 있다 나와서 그런가. 살짝 몸을 움츠리고 총총거리면서 계단을 오르는데, 아이작이 자신의 망토를 벗어주었다.

“고마워.”

보통 때라면 마법을 걸어 주었겠지. 지팡이가 없는 덕에 나는 그의 망토를 걸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온갖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아이작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친구였으면 조금이나마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래번클로 기숙사로 올라가면서 그가 먼저 물어왔다.

“너 쟤랑 싸웠어?”

누군지 특칭하지는 않았지만, 스테이시를 의미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내 행동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에 아이작도 희미하게 눈치챈 것 같았다.

“응,… 아니.”

정확히 싸운 건 아니지. 내가 일방적으로 당한 거지. 하지만 그 말은 삼켰다. 아직 아이작은 스테이시들이 나에게 한 짓을 모르고 있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그 사건이 래번클로에 자자하게 퍼졌겠지만, 파티 때문에 소문이 묻혔을지도 모른다. 언젠간 아이작도 알게 되긴 하겠지.

“어쨌든 장단 맞춰줘서 고마워.”

“4학년이나 돼서 싸우고 다니기는.”

그는 핀잔을 던졌으나 비난 조는 아니었다. 염려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우리는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휴게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나시사 블랙이 나를 꾸며주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아이작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견 수긍한 것 같았다. 아이작은 나시사와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으나 같은 순수혈통의 명문가 태생으로서 성장기 내내 그녀를 봐온 모양이었다. 나시사가 뼛속 깊은 순혈주의자이긴 하지만, 그녀의 경우 그것이 머글 출신에 대한 홀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혈통이 가지는 순수함과 고귀함을 굳이 머글 출신을 핍박하거나 무시하면서 증명하려는 타입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녀의 입장에서 나를 도와준 것은 일종의 자신의 혈통적 직위에 따른 아량 같은 거였을까. 내 말에 아이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나시사 블랙이 널 마녀로서 인정한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녀는 슬리데린 내에서도 우아하고 똑똑한 마녀들을 좋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이작은 내가 래번클로 중에서도 학업적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민달팽이 클럽에 초청될 정도로 슬러그혼 교수님이 나를 총애하니, 나시사 또한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라 단언했다.

아이작은 나시사가 곧 루시우스 말포이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가문 간의 혼약부터 시작해서 그 둘의 연애담까지 흥미로워서 나는 한참을 아이작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는 내가 약간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를 위해 일부러 늦게까지 휴게실에 남아 있어 주었다. 아이작에게 고마웠으나 굳이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가, 난롯불이 꺼져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헤어졌다.

나는 금방 방으로 돌아왔다. 기숙사 방문을 열자마자 술 냄새가 풍겼다. 안나와 데이지는 이미 침대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만취해 제대로 씻지도 않고 잠든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나시사가 걸어준 수정 마법을 풀고 대충 세수하기 시작했다. 꼼꼼히 화장한 탓인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 속눈썹을 떼는 게 제일 힘들었다. 얼마나 제대로 고정을 해 놨는지 눈꺼풀이 뜯기는 기분이었다. 화장이라는 건 두 번 할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우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언뜻 시리우스의 생각이 희미하게 올라왔다. 악. 나는 비명이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당겼다. 생각하지 말자. 다른 생각을 하자. 스테이시와, 레귤러스와, 아이작과, 리무스와, 제임스와, 릴리와의 대화가 천천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나를 내려다보던 리들 교수의 시선이 불현 듯 그 사이를 맴돌았다. 다시금 알 수 없는 열기와 함께 긴장감이 일었다. 묘하게 위험한 느낌이었다. 어떤 다른 방식으로의 괴롭힘에 대한 예고 같기도 했다. 다시 그를 볼 생각을 하니 갑갑해졌다.

리들 교수에 대한 생각으로 한참을 이불을 뒤척인 후에야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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