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37화 (3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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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7)

내 볼에 닿는 블랙의 손길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눈빛이 가지는 의미를 판별하려고 애썼다. 어떤 의도인 거지? 평소와 뭐가 다른 거지? 무엇인가 더 생각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딸딸한 의식은 점점 더 혼미해졌다. 지금 나는 무엇인가를 판단할 만큼 정신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듯했다.

“졸려…….”

무슨 상관이겠어. 나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블랙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품에 있으니 또 노곤해졌다. 오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피곤했다. 눈이 절로 감겼다.

“…여기서 잠들면 안 돼.”

반쯤 잠긴 목소리로 블랙이 나를 타일렀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사실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가 나를 깨울 요량으로 살짝 흔드는 것도 같았으나, 나에게는 요람의 흔들림처럼 편안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조금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진짜, 답이 없군.”

블랙의 목소리가 멀어지듯 귓가에 한 번 들렸다가 사라졌다.

목이 말라. 타는 듯한 갈증에 잠에서 깼다. 머릿속을 날카로운 침으로 꾹꾹 누르는 것 같이 지끈한 편두통이 느껴졌다. 눈을 뜨니 앞에 벽난로가 보였다. 뭐지? 내 기숙사 방이 아닌데? 허리춤을 더듬어 지팡이를 찾았으나, 드레스 자락만이 잡힐 뿐이었다. 이게 뭐지? 순간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깼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시리우스의 얼굴이 보였다. 현실 감각이 없어, 누운 채로 그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깼으면 일어나지그래. 다리 아파 죽겠거든.”

시리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그의 은회색 눈동자를 마주 본 순간, 나는 순식간에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냈다. 맙소사. 난로 가에 한참을 서 있었던 것 마냥 절로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내가 잠든 후에도 계속 내 옆에 있어준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내 몸 위에 걸쳐져 있던 시리우스의 정장 상의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린 것도 모자라, 그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들어 있었다니.

시리우스는 몸이 조금 뻐근한지 목을 한 번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반쯤 공황 상태로 그가 몸을 푸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깨가 뭔가 휑했다. 심지어 숄까지 던져둔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숄을 주워 어깨 위로 둘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시리우스에게 그렇게 붙어 올려다봤으면…… 아, 생각도 하기 싫었다.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 자 잠시만요.”

시리우스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이 두려워 황급히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행동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급하게 방문을 열었다. 내가 있던 곳은 대연회장의 교직원 테이블 뒤쪽에 위치한 작은 방이었다. 나는 시리우스가 따라 나올까 봐 일부러 문까지 닫아버렸다.

꽤 오래 잔 것 같은데, 아직도 파티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칵테일 테이블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붉어진 얼굴이 식혀지길 기다렸다. 세수라도 하고 와야 하나. 급한 갈증만 해소하고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목덜미는 물론 귓불까지 빨개진 나의 모습이 비쳐졌다. 도저히 시리우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필름이 끊겼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채웠다. 잊으려고 해도 다시 되살아나 나를 괴롭혀댔다.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그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그대로 다 기억났다. 왜 그랬지? 술을 마시게 되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건가? 나는 기분이 좋았고, 그가 블랙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와서도 나는 차마 대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해 현관 홀 쪽에서 머뭇거렸다. 열린 대연회장의 이중문 사이로 이미 방에서 나온 듯한 시리우스가 마루더즈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기숙사로 들어갈까? 하지만 그에게 인사라도 해주지 않으면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연회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연회장에 들어와 시리우스의 뒷모습을 본 순간, 나는 그에게 돌아가고자 했던 결심을 철회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아, 안 되겠어. 시리우스와 마주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말문이 막히며 창피한 감정이 올라왔다. 분명 한심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더 부끄러운 행동을 보일 것이다. 아무래도 오늘 그를 다시 만나는 것은 포기해야겠다. 나는 시리우스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조심스레 현관 복도 쪽으로 빠져나왔다.

열린 오크문 바깥으로 평소와는 다른 풍경의 정원이 보였다. 제임스가 말한 야외 정원이 여기였구나. 성 입구 쪽에서 시작되는 정원은 파티를 위해 일회적으로 조성한 것 같았다. 마법적으로 기온을 조정하는 것인지 한겨울인데도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원은 온전히 마법으로 만들어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나는 잠시 나를 괴롭혔던 시리우스의 기억도 잊어버린 채 멍하게 정원을 바라보았다. 분명 오늘 아침만 해도 평시의 정원이었는데, 계절을 가리지 않고 색색의 다양한 꽃밭이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꽃의 종류별로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계절에 피는 꽃들이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거지? 게다가 기온은 조금 따뜻하기까지 한 상온인데. 정원의 전경은 래번클로의 본능을 자극했다. 꽃들이 조성된 마법적 원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나는, 꽃밭 근처에 다가가 꽃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비슷한 계절에 피는 꽃끼리 한곳에 모아둔 것 같기는 했으나 보면 볼수록 의문은 더 커졌다. 나는 꽃을 자세히 살펴보며 어떤 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꽃을 소환한 걸까? 아니면 환상마법으로 허상을 만들어 놓은 건가? 혹은 변신술?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정원 끝에서 한 남자의 인영이 흐릿하게 보였다. 달빛이 희미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원 끝쪽에서부터 내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꽃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있었군.”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온 그는 한눈에 봐도 냉랭한 회색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레귤러스 블랙이었다. 그의 침잠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나에게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아 약간 불안해졌다. 정원에 사람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그가 알렉토 무리처럼 마법이라도 쓰게 되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것이다. 왜 지팡이 소지를 금지한 거야. 나는 애꿎은 교칙을 탓했다.

회색 망토를 뒤로 살짝 넘기며 레귤러스 블랙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말이 말처럼 들리지 않나 보지.”

그의 눈빛이 전과는 달라서 조금 놀랐다. 이전에는 그냥 싸늘한 정도였다면, 오늘은 확연한 노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위축되는 마음을 숨기며 당당히 그와 눈을 마주쳤다. 레귤러스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리우스 블랙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그런 말은 형에게 직접 하지그래?”

그가 나에게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리우스와 레귤러스 사이에는 단순한 형제 이상의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보통 동생이 형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을 관리하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시리우스와 내가 친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 형에게 나와 만나지 말라고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와서 난리인가 싶었다.

레귤러스는 내가 그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자 잡아먹기라도 할 듯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달리 감정적으로 변했다. 시리우스와 함께 파티에 참석한 것이 그의 심기를 거스른 것 같았다. 그는 나를 타파해야 할 적으로 간주한 듯했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레귤러스가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회색 눈에서 환영처럼 붉은 안광이 일었다.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주제에 맞는 선을 지켜, 잡종.”

그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나는 깨달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날카로운 적의로 보건대, 레귤러스는 알렉토보다 더 잔혹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알렉토 무리와 같은 유치한 장난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도 새길 기세였다. 그가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고 지레짐작했던 나는 그 평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로웨나! 몸 좀 괜찮니?”

그때 멀리서 릴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레귤러스는 힐끔 그쪽을 쳐다보고는, 자기가 할 얘기는 다 끝났다는 듯 그대로 뒤돌았다. 잠깐이라도 나와 얼굴을 마주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와의 대화 아닌 대화는 극히 짧았지만, 늪지대라도 한 번 빠졌다 나온 것처럼 찝찝하고 꺼림칙했다. 무엇보다 그의 경고가 단순히 말로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릴리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레귤러스는 보지 못한 듯, 그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너 아까 칵테일 많이 마시는 것 같던데.”

스네이프가 마치 릴리의 그림자처럼 뒤를 쫓았다. 나는 얌전하게 그 둘에게 인사했다. 릴리는 언제 나를 보고 있었던 걸까. 그녀가 나를 걱정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레귤러스 때문에 뒤집어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마루더즈들이 음료에 술을 탔지 뭐야.”

“아, 들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조금 취했던 것 같아요. 아까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가 방금 일어났거든요.”

“어쩐지 아직 멀쩡해 보인다 했어.”

내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교수님들이 이제 알게 되신 건가요?”

“덤블도어 교수님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셨던 것 같아.”

릴리가 뭔가 분한 듯 말했다.

“마루더즈 애들을 너무 감싸는 거 아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베루스가 냉소적으로 한마디 했다.

“크리스마스 때 알콜이 섞인 칵테일을 마시는 게 낭만적인 추억이라고 생각하나 보지.”

“덤블도어 교수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네요.”

사실 그렇게 낭만적이진 못한데. 악몽에 가깝지. 나는 세베루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리우스 생각이 나면서 또 부끄러운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마루더즈는 징계 받았어요?”

“아니. 지금 도망가고 없어. 맥고나걸 교수님이 또 학교를 뒤집어엎으실 생각이신 것 같아. 이번에는 아마 트로피 보관실 청소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시리우스가 제임스와 함께 도망갔으면 연회장에서 그를 피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그를 볼 일은 없을 테니 아마 내년 1월쯤 되면 시리우스도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겠지.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릴리에게 웃으며 물었다.

“제임스랑 춤은 어땠어요?”

“정말 못 추더라.”

릴리가 냉정하게 말했다.

“발을 밟아 버리려다 참았어.”

스네이프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저렇게 크게 웃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반쯤 입술을 깨물고 내뱉듯 중얼거리는 릴리의 말에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에게 다소 측은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는 백방 릴리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혼자만의 짝사랑으로만 끝나면 어쩌나.

“그나저나, 너 오늘 왜 이렇게 예쁜 거야?”

어쩐지 그녀에게 칭찬을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저렇게 생기있고 화려한 미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그녀가 예의상 해주는 칭찬에 가볍게 감사를 표했다. 릴리가 노래하듯 세베루스에게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역시 로웨나 블루로즈가 골든 스니치였지, 안 그래 세브?”

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릴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몰라? 너 오늘 래번클로의 현신이라고 난리도 아녔어. 그리핀도르 남자애들도 죄다 네 얘기만 하던걸.”

나는 릴리의 과장된 어투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래번클로의 현신이라니, 그게 뭐야. 아무래도 내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니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지긴 한 모양이었다. 릴리가 얄궂은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시리우스 블랙이 널 그렇게 좋아한다며?”

네? 나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고작 크리스마스 파티에 파트너로 한 번 참석한 것 가지고 그 정도로 소문이 부풀려진단 말인가? 어쩐지 레귤러스가 나에게 그렇게 분노한 것도 일견 이해가 갔다.

나는 두 손을 흔들며 그녀의 말을 극구 부정했다.

“아니에요, 릴리. 소문이 왜 그렇게 났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소문이야?”

그녀는 시리우스를 놀릴 거리라도 생겨서 기뻤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긴. 나도 요즘 제임스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곤란해 죽겠어.”

걘 지금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괴롭히고 있는 게 분명하거든. 릴리가 확언했다. 릴리의 경우는 제임스의 사심이 들어간 것이 확실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둘의 연애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세베루스가 무서웠다. 그는 제임스의 이야기만 나와도 미간을 찌푸렸는데, 내가 만약 제임스가 진짜 릴리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가는 나중에 뒤에서 저주 주문이라도 쏠 기세였다.

“아이작은 덤스트랭에서 잘 다녀왔니? 아까 봤는데 말을 못 걸었어.”

“네. 재밌게 지내고 온 모양이에요. 안 그래도 페르마 교수 수업을 들었다고 어찌나 자랑하던지.”

“아이작이 페르마 교수의 광팬이긴 하지.”

그녀도 알고 있었던가. 릴리는 민달팽이 클럽에서 아이작이 흥분한 채 페르마 교수의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심지어 아이작이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교환학생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땐 얼굴 볼 새도 없었다니까요.”

“나도 작년에 보바통으로 교환학생을 갔었거든. 그래서 아이작에게 여러 가지로 조언을 많이 해 줬지.”

“그래요?”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학년에서 교환학생으로 가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보통은 그것이 성적순으로 결정 나기 마련이었다. 릴리가 우등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년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실력자라는 것은 몰랐다. 이렇게 얼굴도 예쁜데 공부도 잘하다니, 거기다가 성격까지 좋았다! 나에게 그녀는 정말로 완벽 그 자체처럼 보였다.

나는 새삼 릴리를 동경하듯 쳐다보았다. 제임스가 왜 그녀에게 목을 매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대단해요. 릴리도 호그와트 들어오기 전에 마법 교육이라도 받은 건가요?”

나는 순수혈통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녀 또한 집안 대대로 마법을 교육하는 집안의 자제가 아닐까 생각하며 물었다.

“설마. 우리 부모님들은 두 분 다 머글이셔. 아버지는 머글 회사를 다니시고.”

나는 릴리가 머글 출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살짝 놀란 눈치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릴리 에반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무도 그녀가 머글이라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로 순수혈통의 마녀라도 해도 믿을 만큼 당당했다.

같은 머글 출신인데도 나와 왜 이렇게 상황이 다를까? 내가 정말 이상한 것일까? 그녀는 별문제 없이 학교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오히려 기숙사 학생들 전체를 주도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의 출신이 어쩌면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한 가장 큰 원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는 그 후에도 한참을 떠들다가 세베루스와 함께 연회장 홀로 들어갔다. 나더러 같이 들어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정원을 조금 더 구경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스테이시도, 알렉토도 심지어 레귤러스까지 나만 괴롭히는 것에는 확연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뭘 바꿔야 하는 거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누군가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정원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것이 어쩌면 주변 환경 탓이라기보다는 나의 잘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쯤 우울한 상태에서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정원을 헤맸다. 한참을 정신을 놓은 채로 걸어 다녔을까, 주변 둘러보니 나는 장미 덤불로만 가득 찬 정원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고, 짙은 장미 향이 정원을 채웠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일회적으로 만든 정원치고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나는 장미넝쿨에 달린 담청색의 푸른 장미를 괜히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서늘한 인기척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좋은 밤이죠, 블루로즈 양?”

익숙한 목소리였다. 얼굴을 굳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톰 리들 교수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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