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35화 (3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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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5)

나시사는 그 후에도 내 속눈썹을 가다듬고, 튀어나온 잔머리를 만져준 후 드레스의 모양을 정돈했다. 그럼에도 성이 차지 않는지 화장이 지워지지 않는 마법까지 건 후에야 나를 보내주었다.

나는 슬리데린 기숙사를 나와 래번클로 쪽으로 올라왔다. 복도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학생들의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나에게 뭔가 묻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시사가 붙여준 속눈썹이 떨어졌나? 립스틱의 색깔이 너무 강렬한가? 어깨와 가슴이 드러난 드레스가 보기 싫은 건 아닌가 싶어 나는 숄을 살짝 위로 올려 상체를 가렸다.

기숙사 휴게실을 지나가는 길에 안나와 마주쳤다. 절로 얼굴이 굳었다. 약간 나아졌던 기분이 다시 나빠질 것 같았으나, 다행히도 안나는 나에게 별다른 시비를 걸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말도 걸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통쾌함이 일었다. 모르긴 해도 나시사가 확실히 나를 변신시켜준 모양이었다. 나는 일부러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지나쳤다.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를 걷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로웨나!”

필리다였다. 그녀는 나를 끌어 복도 안쪽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너 스테이시랑 한 판 했다며?”

그녀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벌써 소문이 다 퍼진 것 같았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나는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 말을 얼버무렸다. 필리다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올리비아에게 걔들이 너 은근히 괴롭혀 왔다고 말했어. 아마 참작 좀 해 줄 거야.”

그녀는 한참을 스테이시 무리의 만행을 비난했다. 평소에는 잘 담지도 않는 욕까지 해대면서 필리다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 얄미운 애들에게 복수를 해줘야 한다며 나보다 더 흥분하는 탓에 괜히 나는 기분이 풀렸다. 그래도 래번클로 내에 내 편이 있긴 하구나. 크리스마스 파티 날 그녀의 기분만 상하는 건 아닌가 싶어 한편으로 미안해졌다.

나는 괜찮다고 필리다를 다독이며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를 유도했다. 우리의 화제는 곧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로 옮겨졌다. 필리다는 다이애나와 함께 파티 준비를 마친 모양이었다. 그녀는 파트너인 데이비스 선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휴게실에서 만나 함께 대연회장을 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너 오늘 정말 예쁘다.”

오늘 네 옆에 가면 안 되겠어. 비교당하겠는데? 필리다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쉽게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녀야말로 평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마법약을 사용한 것인지 필리다의 부스스했던 잿빛 단발이 푸르게 찰랑거렸다. 단정해 보이지만 등을 다 드러내는 검은 드레스 덕분에 그녀는 흡사 검은 백조 같았다.

곧 데이비스 선배가 와서 필리다를 에스코트했다. 나는 이렇게 드레스까지 차려입고 혼자 현관홀까지 찾아가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 그녀와 함께 가자고 요청하고 싶었지만, 둘 사이를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관뒀다. 시리우스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아직 남아있어서, 나는 필리다를 보내고 그동안 기숙사 방에 들어가 있기로 마음먹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다들 연회장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놓아둔 조각난 드레스를 보니 또 기분이 울적해졌다. 나는 조심스레 드레스를 정리했다. 아빠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고 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은 조각이 한 올이라도 떨어질까 조심하며 나는 드레스를 상자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들이 혹여 남은 드레스라도 건드릴까 봐 나는 박스에 잠금 마법까지 걸었다.

드레스를 정리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시리우스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이 조금 지나 있었다. 놀란 나는 서둘러 연회장의 현관 홀 쪽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는 멀리서 현관 홀 앞에 서 있는 시리우스를 발견했다. 그는 몸에 맞게 구김 없이 떨어지는 깔끔한 담흑색 정장에 짙은 남색의 셔츠를 받쳐 입었다. 셔츠 깃 밑으로는 그의 은회색 눈동자와 잘 어울리는 납빛의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차분한 복장도 시리우스 블랙 특유의 오만한 분위기와 반항기를 숨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키가 크고 잘생긴 시리우스가 정갈하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가지런히 정돈된 사람을 좋아한다.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옷만 깔끔하게 입으면 다 멋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흠 없이 완벽하게 정장을 갖추어 입은 그의 모습은, 외면적으로만 보자면 내 취향에 완벽히 부합했다.

나는 멀리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한쪽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약간 지루한 듯 두 눈을 깜빡이던 그가 내가 오는 기척을 알아챈 듯 이쪽으로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인사의 의미로 한 번 옅게 미소 지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리우스의 눈빛이 평소와는 달랐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멀리서도 그가 살짝 굳은 것이 느껴졌다.

“시리우스.”

내가 그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물었다.

“많이 이상해요?”

시리우스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 넋이 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곧 정신을 차린 듯 본래의 시리우스로 돌아온 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니. 역시 나시사에게 맡긴 보람이 있군.”

그는 나에게 한 번 돌아보라고 명령했다. 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시사에게 부탁하여 나를 도와준 것은 시리우스였으므로 순순히 그 자리에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럭저럭 봐줄 만하게 변했네.”

칭찬인지 아닌지 불명확했지만, 그의 표정으로 짐작하건대 좋은 쪽으로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반쯤 농담 삼아 말했다.

“원래 본판이 좋은 건데요.”

“그것도 그렇고.”

웬일로 부정하지 않는데? 시리우스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다 수긍할 기세였다. 이 기세를 따라 블랙과 있는 시간을 1주 더 늘려달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와의 거리를 좁혀 섰다. 평소보다 많이 가까이 있었음에도 시리우스의 태도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예전에 하루에 한 명씩 여자를 갈아 치울 정도로 그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여자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에 그렇게 거부감이 없는 것일까. 꽤 가까이 다가와 있으면서도 나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얼른 들어가자.”

나는 드레스가 심하게 끌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시리우스는 내 보폭을 맞춰줄 요량인 듯 조금 천천히 걸었다.

대연회장은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자, 안쪽에서 캐롤송이 흘러나왔다. 천장은 초록색과 빨간색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은색의 촛불 대에 올려진 초가 밝게 빛나며 천장의 허공에 둥둥 떠 있었고, 천장 하늘에는 양말, 종, 지팡이 등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여러 장식물들이 별과 함께 촘촘히 박혀 있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눈송이는 학생들 머리에까지 닿지 않고 허공에서 사라졌다.

대연회장에는 항상 있었던 기숙사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기숙사 테이블이 사라지니 이전보다 공간이 더 넓게 느껴졌다. 원래 교수석이 있었던 자리에는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큰 트리를 운반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거대했다. 멀리서 트리 장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나는 트리 꼭대기에 달린 별에 시선이 뺏겼다. 마치 진짜 별을 박아놓은 것처럼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와 시리우스가 연회장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입구 쪽의 의자에 놓여 있던 크리스마스 모자가 공중에 둥둥 뜨더니 우리 둘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크리스마스 모자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한 바퀴 돈 모자는 머리 위쪽으로 날아가더니 입을 벌리고는 소리쳤다.

“시리우스 블랙, 로웨나 블루로즈!”

대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였다. 이 모자가 연회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호명해 주는 것 같았다. 웅성거린다 싶었던 연회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해 있었다. 사람들이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어서 나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나와는 달리 시리우스는 자신을 향하는 관심이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다소간 장난기 어린 태도로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나 또한 가슴께를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짧은 침묵 후 낮게 박수 소리가 들렸지만, 태반의 사람들은 우리를 계속 바라보며 웅성이고 있었다.

연회장에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아, 우리가 늦게 도착한 편인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익숙한 얼굴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숙사를 불문하고 다수의 선배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나에게 쏟아지는 눈길이 조금 부담스러워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시리우스는 항상 이런 시선을 받는 거예요?”

내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 그렇긴 하지만 오늘 사람들이 이렇게 쳐다보는 것은 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시리우스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긴 했다. 감히 시리우스 블랙의 파트너가 된 로웨나 블루로즈가 놀라운 거겠지.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대쪽에 서 있던 나시사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언제 준비했는지 보랏빛의 세련된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더불어 눈가에 도는 어두운 자줏빛의 눈 화장이 어울리는 드레스였다. 게다가 평소와는 달리, 은빛에 가까운 그녀의 금발 머리를 틀어 올려서인지 새하얀 목덜미가 도드라졌다. 나시사는 평시에도 슬리데린의 여왕 취급을 받을 정도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더욱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 앞에 선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만면에 드러내며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어때, 내 실력이?”

“흠잡을 데 없습니다.”

시리우스가 씩 미소 지으며 답했다. 시리우스의 과장된 대답에 나시사가 고아하게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회심의 역작이야.”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어깨의 숄을 가다듬었다. 순수혈통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가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는 몰랐지만, 여하튼 그녀는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하는 나에게 나시사는 품위 있되 다소 차가워 보이는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돌아갔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시리우스 옆에 붙어있었다.

눈 둘 곳이 없어 고개를 살짝 돌리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리들 교수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트리 근처에서 스프라우트 교수와 함께 서 있었는데, 정장 위에 까만색에 가까운 어두운 회색의 차이나 카라 코트를 걸친 복장이었다. 넥타이는 물론이고 단추 하나도 달려 있지 않은 심플한 차림이었지만 그의 차가운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한 손에 레드 와인 잔을 든 리들 교수는 짙고 어두운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보통 때 그가 나를 쳐다보는, 서늘하고 차가운, 혹은 가장된 다정함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약간 두려움이 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못 본 듯 무심히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리들 교수가 여전히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덤블도어 교수님이 앞서 나왔다. 그의 등장과 함께 캐롤송이 멈췄다.

“호그와트의 모든 아름다운 마법사와 마녀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었군요!”

덤블도어 교수님이 유쾌하게 외쳤다.

“딱 하나만 추가하면 완벽한 파티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기분을 돋울 마법의 음료 말입니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허리 높이 정도의 칵테일 테이블이 곳곳에 생겨나며 색색으로 늘어진 칵테일이 진열되었다. 민달팽이 클럽에서 먹었던 무알코올 칵테일인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옆에 생긴 칵테일 바에서 투명한 초록빛을 띠는 칵테일을 쥐었다.

“첫 춤은, 파트너와 함께하도록 합시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잔을 들며 즐겁게 소리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의 말을 시작으로 느린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춤을 추는 것인지 몰랐던 나는 조금 당황해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단정한 자세로 나에게 춤을 추기 위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의 인사 방법을 엉성하게 따라 하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저, 춤추는 방법 잘 모르는데.”

이런 파티에 와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시리우스는 내가 보기에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예의를 갖추며 내 허리에 자신의 손을 댔다. 그의 손이 허리에 닿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이 굳었다. 내가 긴장한 티가 역력했는지, 그는 피식 웃으며 허리에서 약간 손을 떼었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떨었나.

“긴장 풀어, 래번클로.”

그가 느릿한 박자로 다리를 엇갈리며 스텝을 밟았다. 나는 다소 급하게 움직이며 그의 움직임을 따랐다. 혹여 실수로 그의 발을 밟기라도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허리에 힘을 빼고, 보폭을 좁게.”

그가 넓은 원을 그리며 내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나는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원을 형성하며 따라 돌았다. 내가 제대로 돌 수 있도록 손을 살짝 잡아주며 시리우스가 낮게 웃었다.

“그래도 눈치는 빠르네.”

“제가 좀 학습능력이 뛰어나요.”

그의 연속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의 동작을 눈에 새기며 내가 대답했다. 무곡 자체가 느릿한 박자였고, 춤 동작과 리듬이 반복적이었다. 패턴이 단순했기 때문에 그를 따라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가 일부러 내가 따라 할 수 있도록 단순한 동작을 되풀이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결코 화려하다고 볼 수 없는 춤이었지만, 나를 주도하는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는 배려가 느껴졌다.

느렸던 무곡이 조금 빨라졌으나 시리우스는 느긋하게 내가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궤적을 따라 돌며 발꿈치를 살짝 들어 올리고 내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길게 이어질 것 같았던 곡은 금세 끝났다. 그는 춤을 마무리하는 인사 동작과 맞물려 경쾌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와 약간 떨어져 섰다. 다행히도 춤을 추고 나니 이전보다는 나를 향한 관심이 줄어든 듯싶었다. 마음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건너편에 제임스와 릴리를 발견했다. 릴리는 옅은 분홍기가 도는 화이트 톤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석류석 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한 떨기 붉은 백합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듯했다. 제임스는 릴리와 두 번째 춤을 추고 있었었는데, 그가 춤을 추는지 아니면 허공을 떠다니는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본인은 애써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가 릴리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둘을 바라보던 내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릴리가 결국 제임스와 파트너가 됐네요.”

“프롱스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시리우스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회유, 사정, 애원, 협박 뭐, 안 한 게 없었어.”

“그래서 결국 어떻게 승낙하게 된 거예요?”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푸른색 칵테일을 들어 올리며 내가 물었다.

“제임스가 릴리와 파트너가 되지 않으면 학기 내내 휴게실에 똥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선언했거든.”

“오, 맙소사. 제임스답네요.”

그리핀도르 반장인 릴리가 그런 말을 듣고 수락하지 않을 리 없었다. 나는 결국 그녀를 굴복시킨 것이 기숙사를 구실로 삼은 협박이라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리핀도르의 여학생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 여자애의 성이 프레웨트였던가.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시리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시리우스, 함께 춤추지 않을래?”

파티에서 여자의 춤 신청을 거절하는 것은 큰 결례였기 때문에, 시리우스는 조금 난감해 하면서도 그녀와 함께 플로어 쪽으로 걸어갔다. 인기도 많아. 칵테일을 한 잔 마시면서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와 춤을 추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은 넘쳤으므로 아마 앞으로 한참은 시리우스와 얘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칵테일 테이블 앞에 서서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몇 남자 선배들의 시선이 나에게 와 닿았지만, 직접 관심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서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로웨나.”

나는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작이었다. 그는 유서 깊은 가문의 자제답게 고전적이면서 격식 있는 연미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흰색 나비넥타이가 달린 말끔한 셔츠와 턱시도, 그에 어울리는 조끼까지 어우러져 기품이 넘쳐 보였다. 그 위에 검푸른 빛을 띠는 군청색 정장 마법사 망토까지 둘렀는데, 그 위에서 차분하게 찰랑대는 그의 은백색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더 우아하게 느껴졌다.

“오늘 드레스가 너랑 잘 어울리네.”

그의 따뜻한 청색 벽안에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이작은 나의 달라진 모습에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꾸미든 그렇지 않든 내 본 모습을 봐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의 목덜미의 나비넥타이를 살짝 정돈해주며 싱긋 웃었다.

“고마워, 너도. 크리스마스 파티에 완벽히 어울리는 복장인데?”

“진짜 완벽함은 숨어 있지.”

아이작은 정갈하게 차려입은 턱시도의 팔목 부분을 걷어 올렸다. 흰 셔츠의 소매 부분에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커프스가 드러났다. 그의 진중한 정장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양이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씩 웃으며 칵테일 테이블 위에 있는 잔을 하나 집어 들었다.

“첫 춤은 어땠어?”

그와 칵테일 잔을 맞부딪히며 내가 물었다.

“뭐, 첫 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제인과는 자주 춤을 췄으니까.”

“아, 그래? 친한가 봐?”

“가문의 파티가 있을 때마다 봐왔거든.”

부모님들끼리 서로 아는 사이니까. 아이작이 덧붙였다. 아보트 가와 본즈 가 사이에 정략결혼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러나 그에 대해서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필요하면 말해주겠지. 나는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가문 파티 같은 거, 마법사 사회에서는 자주 열리나 봐.”

“응. 규모가 있다 싶은 가문들은 1년에 몇 번씩 열려. 나도 부모님을 따라 자주 다녔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칵테일의 레몬 향이 혀에 닿으며 알싸한 기운이 몸을 채웠다. 마법사들은 파티를 위한 칵테일에 기분이 좋아지는 묘약을 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칵테일도 그런 종류의 것인지도 몰랐다. 분위기가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은 잠시 침묵했다.

“나랑 춤출래?”

아이작이 먼저 물어왔다.

“나 오늘 처음 춤춰보는 거 알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칵테일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약간 흐트러진 드레스를 정돈하고 그를 바라보며 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발 밟아도 책임 못 진다, 나?”

그는 정중한 태도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언제든지 감사히 밟혀 드리죠, 레이디 로웨나.”

그의 완벽한 예의범절에 대비되는 익살스러운 한 마디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우아하게 인사하며 나는 아이작의 손을 잡았다.

============================ 작품 후기 ============================

1. 드레스 묘사를 하다 보니 애들이 호그와트 다니는 게 얼마나 다행인줄 몰라요 얘두리 평소엔 교복만 입고 다녀서 내가 복장 묘사가 이렇게 어려운건 줄 몰랐규나..^_^!

2. 최근에 새로 선작 하시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정주행 하시고 나서 코멘 달아주시는 새로운 분들도 많이 보이구요. 새로 합류하신 분들, 계속 함께하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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