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32화 (3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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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3 - (2)

다음 날 아침 내 방으로 큰 박스가 배달되었다. 호그와트에 입학한 이후로 이렇게 큰 소포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놀랐다. 안에 무거운 물건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방문 앞에 놓인 박스를 가볍게 들고 방 안에 들어왔다. 발신인을 확인해 보았더니, 아빠가 보낸 것이었다. 아빠가 이런 큰 물건을 보낼 일이 있나?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아침 수업이 있었음에도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포장을 뜯었다. 상자를 여니, 드레스와 함께 짧은 편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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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와 처음 춤을 췄을 때 입었던 드레스란다.

나는 이 드레스를 입은 너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지.

지금은 너에게 잘 맞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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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보내준 드레스는 화사한 초록색의 이브닝드레스였다. 고전적이긴 했지만, 기품이 넘치는 디자인이었다. 슬리브는 단정했고, 둥글게 파여 있는 넥 라인을 따라 과하지 않은 연녹색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부드럽게 모인 허리 부분 아래의 스커트 부분은 주름이 풍성했는데, 짙은 색상의 러플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감탄을 터뜨렸다. 아빠가 엄마에게 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단박에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시험이 끝나자마자 필리다나 아이작에게 부탁해서 호그스미드로 나가 드레스를 새로 살까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아빠는 엄마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가 엄마를 떠올리며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아빠가 종종 엄마의 물건들이 쌓여 있는 2층 다락방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내려오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다락방에 있으면서도 아빠는 나에게 엄마의 유품을 보여준 적도 없었다. 아빠가 엄마의 물건을 나에게 전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혹여 드레스가 망가질까 조심하며 옷걸이에 깔끔하게 걸어 옷장에 넣어두었다. 옷장을 닫은 나는 반쯤 흥분해서 내일 시험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빠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드레스를 보내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입게 되면 꼭 마법사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낸다는 말까지 적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드레스를 입어보고 싶었지만, 편지를 부치고 아침 수업에 들어가려면 그럴 시간까지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아빠에게 쓴 편지를 들고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휴게실을 지나가는데 필리다와 마주쳤다. 기분이 매우 좋아진 나는 그녀에게 아침에 받았던 드레스를 자랑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다고 하니 아빠가 드레스를 보내줬어!”

“너, 파티 참석해?”

필리다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래번클로 휴게실에 있었던 안나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구나. 래번클로에서는 랭포드 선배와 아이작밖에 모르지 싶었다. 나는 괜히 이 이야기를 꺼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즉흥적으로 떠들어댄 것이 후회되었다.

“응. 뭐, 어쩌다 보니. 드레스가 없어서 고민했는데 아빠가 엄마의 드레스를 보내주셨지 뭐야.”

나는 필리다가 내 파트너가 누구인지 묻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필리다는 내 말에 적당히 응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엿듣지 않도록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의 계획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척 래번클로 기숙사를 나왔다. 둘만 있는 복도까지 도착하자 그녀는 한참 참았다는 듯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그래서, 누구랑 가는 거야? 랭포드 선배?”

“뭐?”

내가 눈을 깜빡이면서 필리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생글거리며 말했다.

“루카스 랭포드 선배가 너한테 파트너 신청하지 않았어?”

“그건 또 어디서 들은 거야?”

“그건 어디서 들을 필요도 없어. 래번클로에서 유명하잖아?”

정말? 내가 그녀에게 거듭 되물었다. 그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필리다는 나에게 눈치가 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그건 눈치의 문제가 아냐.”

나는 당혹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랭포드 선배는 그런 기미를 전혀 주지 않았단 말이야.”

나 또한 그럼 래번클로의 가십 중 하나였던 건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이 랭포드 선배와 나를 가지고 떠들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그녀는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을 흘러 들으며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그럼 누구야? 누구랑 같이 가는 거야?”

“그리핀도르의 블랙.”

나는 그의 이름을 칭하기가 조금 부끄러워 둘러 말했다.

“시리우스 블랙?”

그녀는 진짜 놀란 것 같았다. 그녀가 몇 번이고 나에게 물었다.

“너, 너, 친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였어? 그런 사이?”

“아냐.”

나는 그녀의 과한 반응이 부담스러웠다. 내가 시리우스와 함께 파티를 가는 것이, 나와 알고 지냈던 필리다에게까지도 이렇게 놀라운 일일 줄은 몰랐다. 필리다가 이 정도라면 파티 당일은 난리가 나겠다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늦게서야 후회가 되었다. 시리우스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가 호그와트 학생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쉽게 시리우스의 파트너 신청을 승낙한 거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갈무리하며 필리다에게 둘러대었다.

“별로 그런 사이는 아니고, 시리우스가 내가 편하니까 그냥 신청한 것뿐이야. 귀찮은 걸 싫어하거든.”

“정말 그래?”

필리다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정말 편하려면 그리핀도르에 함께 가자고 할 만한 여자들이 엄청 많을걸. 굳이 래번클로의 후배에게 파트너 신청을 하지는 않는다구.”

“놀리지 마, 필리다.”

그녀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못 박았다. 필리다는 이 놀라운 스캔들을 가장 먼저 듣게 된 사람이 본인이냐며 재미있어했다. 마치 곧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뉴스를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시리우스와 내가 파티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파티에 참석하기도 전에 시선을 받기는 싫었다. 필리다는 소문을 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지만, 나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다가 자꾸 시리우스가 나에게 관심이 있느니 뭐니 그런 식으로 말하니 어쩐지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대화 이후 나는 연회장에 있을 때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을 종종 쳐다보았다. 시리우스가 정말 나에게 마음이 있다면, 나와 한 공간에 있을 때 나를 의식하지 않을까? 나를 향하는 시선이 잦다면 그건 관심이 있다는 의사의 표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내가 있든 말든 항상 마루더즈들과 떠들기에 바빴다. 몇 번 그를 쳐다봐도, 시리우스는 내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간간이 그리핀도르의 후배 여학생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보였다. 시리우스의 한 마디에 그리핀도르 4학년 학생들이 꺄르르하고 웃는 소리가 래번클로 테이블까지 들릴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필리다가 시리우스의 마음을 과잉 해석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나를 파트너로 삼은 이유는 역시 편하고 만만해서 임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 * *

당장 내일이 중간시험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도서관은 밤늦게까지 사람이 많았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집중해 약초학 공부를 하고 있다가, 필리다가 이번에 약초학에서는 마법적 외상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약초 위주로 문제가 나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추가적으로 책을 더 찾아봐야 하나?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서가 쪽으로 걸어갔다.

약초학에 관련된 책들은 내가 앉아있던 열람 테이블 쪽에서 조금 떨어진 서가에 있었다. 다들 시험공부를 하느라 그런지 서가 쪽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약초학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을 위에서부터 훑기 시작했다. 이 칸이 물리적 타격에 사용하는 약초에 대한 부분이니까, 아마 다음 칸에 마법적 타격에 사용하는 약초에 대한 책들이 꽂혀 있을 거야. 그렇게 책장을 바라보고 몸을 움직이다가, 서가 가운데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내가 책장 쪽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던 탓에 부딪힌 것 같았다. 정중히 사과하고 고개를 든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 앞에는 리들 교수가 서 있었다. 도서관에서, 특히 이렇게 좁은 서가 사이에서 그와 마주칠 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는 잘하고 있나.”

검은 망토를 두른 그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리들 교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책장 쪽에 바짝 붙었지만, 제법 좁은 서가였기 때문에 그와는 근접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긴장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내가 얌전히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감시를 해왔으면 알 텐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겉으로는 그에게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피를 보충하는 마법의 약의 주재료는 뭐지?”

“그래폰 뿔을 빻은 가루와 더그보그의 지느러미입니다. 그래폰 뿔이 없을 경우 에럼펜트의 뿔을 대신 사용하기도 하구요.”

나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리들 교수는 자신이 맡지 않은 과목의 교과과정까지도 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심지어 피를 보충하는 마법약이 이번 중간고사의 시험 범위인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머릿속을 뒤지며 내가 혹여 틀린 대답을 한 건 아닌지 확인했다. 그가 이어서 물었다.

“맨드레이크 의식 회복약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읊어봐.”

“냄비에 머트랩의 종양과 유니콘의 털을 넣고, 반시계방향으로 한번, 시계방향으로 세 번 순서로 초록빛의 연기가 피어날 때까지 저어줍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음 부분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학기 초 실습시간에 넣었던 게 뭐였더라? 아! 살라맨더의 피였다.

“그동안 살라맨더의 피를 7분 정도 가열해 정제하고, 으깬 월장석을 3번에 걸쳐 넣어줍니다. 불을 세기를 매우 강렬하게 하여 펄펄 끓어 넘치도록 한 후 맨드레이크 잎맥을 넣은 다음…….”

그 후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을 훑으며 젓는 방향이 시계 방향인지 그 반대 방향인지 검토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자, 리들 교수가 대신 대답했다.

“4분간 반시계방향으로 젓고, 불을 낮춰 푸른색의 연기가 날 때까지 상온에 두는 것이지.”

이게 학년 수석의 저력인가.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는 학생도 아닌데 뭐 저런 것까지 기억하는 거지? 뇌에다 새기기라도 하나?

“해독제 제조 방법은 완벽하게 숙지하도록. 오러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니까.”

오러가 되려면 어떤 것을 준비하는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드러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애써 불만스러운 기색을 숨기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외에도 천문학이나 어둠의 마법 방어술 등 내가 약하다 싶은 과목들에 대해서 이리저리 묻기 시작했다. 몇몇은 단번에 대답했지만, 몇몇은 사실상 시험에 출제도 되지 않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내가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리들 교수의 표정은 더욱 싸늘해졌다. 대체 그의 만족할만한 수준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 내가 한참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확실했다. 실습에 대한 부분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이론에 관해서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바실리스크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나는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내리깐 채 바닥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리들 교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쥐었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

“요즘 블랙과 어울려 다니면서 긴장감이 풀린 모양인데.”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주제넘게 시리우스와 다닌다고 비꼬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와 어울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경고 같기도 했다.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좋을 거야.”

실렌시오. 그가 나에게 침묵 마법을 걸었다. 내 숨소리조차 소거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주먹만 꽉 쥔 채 리들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두려움이 일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난 체벌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아. 하지만 필요하다면 망설이지 않지.”

프로히비티오 플라투스. 그가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며, 숨이 막혀왔다.

마치 리들 교수가 내 위에 올라타 손으로 나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어떤 마법인지 몰라도 기도를 막히게 만드는 종류의 저주임은 확실했다. 질식의 고통이 나를 압박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격하게 몸부림을 치고 싶었지만, 그가 한 손으로 나의 양 팔목을 쥐고 있는 덕에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마법을 전혀 쓰지 않은 악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깊은 심해의 한가운데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목구멍으로는 산소 대신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착각이 일었다.

바로 건너편 열람실에 많은 호그와트 학생들이 있었지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도서관을 일종의 안전지대라고 여겼다. 리들 교수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를 어찌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에게 안전한 곳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지배했다. 그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었다. 점차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제 이것이 고통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간헐적으로 사고가 마비되는 것 같기도 했다…….

“피니트.”

그가 마법을 해제했다.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목소리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는 내 팔목을 잡고 있었던 손을 떼어냈다. 나는 몸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참았던 숨을 내뱉어냈다. 서가 내에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순간 리들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내 입가를 막았다. 놀란 나는 절로 격해지는 호흡을 절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겁에 질린 나머지 숨소리마저도 미약하게 떨렸다.

그는 여전히 서늘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에게는 악몽 같았던 일련의 순간들이, 그에게는 일말의 가책도 없는 일상의 한 단면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을 재개하도록 하지.”

리들 교수가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 이윽고 내가 고르게 숨을 내쉬기 시작하자, 그는 입가에서 손을 뗐다. 마지막으로 나와 눈을 한 번 마주친 그는 인사도 없이 서가 사이로 사라지듯 떠났다.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열람실 쪽으로 걸어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온전한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리들 교수가 다시 나에게 다가와 호흡불가 마법을 걸 것 같았다. 그는 언제 어디서라도 나타나 나를 속박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지팡이를 꺼낼 여유조차 없었다. 리들 교수는 아마 원한다면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것은, 그의 배려도 자비심도 아니었다. 단지 아직 나를 죽일 필요성이 없었을 뿐이다. 그는 싸한 눈빛에서부터 내가 그에게 ‘사용가치’의 이상도 이하로도 평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죽음의 위협을 느낀 순간의 무게는 더 컸다.

자리에 앉았으나 손이 덜덜 떨려서 깃펜을 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작이 눈치챌까 봐 나는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다행히도 그는 책에 집중한 나머지 옆에 내가 앉은 것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양손을 부여잡고 진정하려고 애썼다. 그는 나에게 경고했다. 나는, 그러고 싶든 아니든, 그의 경고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포감에 질린 채로 책을 씹어 먹기라도 할 듯 외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1. 호흡불가 저주는 원작에 없어요. 주문인 프로히비티오 플라투스는 금지하다/숨쉬기의 라틴어 조합입니다. 또한 이번 편에 등장하는 마법약들은 원작에 있으나 재료나 제조법은 제가 다 임의로 지어낸 것들이여요.

2. 조금 늦게 말씀드린다 싶은데, 필리다 스포어는 원작에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해리가 학교 다닐 때 호그와트 약초학 교과서인 <1000가지 마법 약초와 곰팡이>의 저자 이름이에요... 우리 필리다가 썼다고 믿고 있습니다..☆

3. 랭포드는 이전에 로웨나에게 꼬리친 적 있어요. 몇화였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꼬리침이었음.

4. 독자님들 항상 코멘트도 추천도 듬뿍듬뿍 주셔서 감사해요^_^! 그리구 삼팔상만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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