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30화 (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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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14)

도서관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다가 복도에서 래번클로 7학년의 엘리자베스 선배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반가워서 큰 소리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엘리자베스!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네, 로웨나.”

그녀는 아이작과 내가 1학년일 때부터 우리를 아꼈다. 먼저 다가와 학교생활에 문제는 없는지 물어봐 주었고, 과제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도 잘 응대해주곤 했다. 엘리자베스가 7학년이 되고부터는 그녀도 여러 가지로 바쁘다 보니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아이작이 덤스트랭으로 떠난 이후 나도 연회장을 잘 가지 않았으니 더욱이 그랬다.

“요즘 N.E.W.T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요?”

“최악이야.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 피곤했던 적은 없어.”

나는 그녀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래번클로 휴게실 방향으로 걸었다. 그녀는 마법부를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N.E.W.T. 성적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모양이었다. 중간시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먼저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에디가 이소벨에게 공개적으로 파트너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거 알아?”

요즘 학생들은 모이기만 하면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였다. 나는 기숙사 휴게실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으니 학교에서 어떤 이야기가 돌고 있고, 어떤 일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요? 처음 들어요. 전 도서관에 쭉 있었거든요.”

“명장면이었어…… 래번클로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릴 거야.”

엘리자베스가 말하기를, 6학년의 이든 선배가 장난을 친다고 에디에게 용기를 돋우는 마법약을 호박 쥬스로 속이고 먹인 모양이었다. 에디는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이소벨 선배에게 파트너 신청을 했으나, 이소벨은 에디가 자신에게 파트너를 신청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들고 있던 질식가스를 떨어뜨렸고, 질식가스 때문에 기숙사에 있었던 에디를 비롯한 래번클로 몇몇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한다. 이소벨은 미안한 마음에 병동에 있는 에디를 찾아가다가 슬리데린 7학년 로한 선배에게 파트너 신청을 받아 그대로 승낙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에디 너무 불쌍해. 아까 병동에서 돌아오는 걸 봤는데 너무 축 늘어져 있더라.”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다이애나 선배가 에디 선배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파트너 걱정은 안 해도 될걸요. 나는 필리다에게 들은 이야기를 읊고 싶었지만 참았다. 엘리자베스는 깔깔거리며 말을 이었다.

“진짜 재밌었던 건 오늘 대연회장에서의 제임스 포터였지.”

“포터가 왜요?”

“학생용 부엉이를 동원해 릴리 에반스에게 파트너가 되어 달라는 이벤트를 거창하게 했거든.”

나는 깜짝 놀랐다. 제임스가 릴리라니?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단 말이야? 제임스의 장난에 릴리가 화를 내는 것은 대연회장에서 항상 보아왔지만, 제임스가 그녀를 좋아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잔소리만 한다고 조금 귀찮아했던 것 같긴 한데. 역시 사람 마음이란 모르는 일이다.

엘리자베스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 장면을 묘사했다. 제임스는 학생용 부엉이들을 조련시켜 연회장 전체에 걸쳐 긴 현수막을 펼치도록 한 모양이었다. 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릴리에게 파트너를 신청하고 싶다는 그런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었다. 부엉이들은 종이 가루를 날리며 날아다녔고, 공중에서는 폭죽까지 터졌다. 파트너 신청을 무슨 프로포즈인 것마냥 했다는 것이다.

나는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릴리의 얼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부끄럽고 화가 났겠지. 승낙의 여부를 묻는 제임스에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기절주문을 쏘았다. 덕분에 제임스는 파트너를 신청하고 답례로 저주 주문을 맞은 첫 번째 남자가 되었다. 교칙을 절대 어기지 않을 것 같은 릴리가 연회장에서 저주마법을 썼을 정도면 어지간히 화난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지금 에반스는 그리핀도르에서 여왕님 취급을 받고 있어.”

제임스가 릴리의 저주 한방에 기절한 것을 보고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킥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그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우리 같은 래번클로야 제임스가 그저 가끔 튀어나오는 재난일지 몰라도, 그리핀도르에서는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재앙에 가까웠다. 제임스를 한 방에 처리한 릴리의 저주 주문이 통쾌했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와 크리스마스 파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래번클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청동 독수리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약간 성질 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독수리 상 앞에는 학년을 불문하고 많은 래번클로 학생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있었다. 그 뒤쪽으로 스밀리언 교수의 초상화가 씩씩거리는 것이 보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기숙사 입구 앞에 도착한 우리에게 청동 독수리가 말했다.

“오직 현명한 마법사들만이 진실만을 믿고 말하며, 그렇지 못한 마법사들은 거짓만을 믿고 말하지.”

청동 독수리가 이렇게 장황하게 퀴즈를 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선배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슬리데린은 언젠가 후플푸프가 그들 셋 모두가 진실만 말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리고 그리핀도르는 후플푸프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고 있지.”

청동 독수리가 엄숙하게 물었다.

“현명하고 공정한 래번클로로서, 셋 중에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해 봐.”

나는 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서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어제 삼십 분이 넘게 생각한 끝에 나는 결국 문제를 풀어냈다. 그 사이에 여섯 명의 학생들이 왔고, 논쟁은 더 치열해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법, 철학, 역사, 심지어 천문학이나 약초학까지 동원되었으나, 결국 답은 논리학에 있었다. 잠시 사그라들었던 독수리 여왕이라는 별명이 다시 래번클로를 돌았다. 1학년들이 나를 마치 래번클로의 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망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탓에 부담스러워 한동안 휴게실을 가지도 못했다.

학과 수업을 마치고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요한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레귤러스가 이쪽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짧게나마 나는 그에게 시선을 두었다. 블랙가의 자제답게 걸음걸이에조차도 정제된 기품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용무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금방 다시 요한과의 대화에 열중했다. 그 사이 레귤러스가 내 근처까지 다가왔다.

“로웨나 블루로즈.”

나와 레귤러스는 수업을 같이 들을 때조차 아는 척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자,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요한은 놀란 눈치였다. 주변의 다른 학생들마저도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무표정하게 용건을 말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같이 마법약 교실로 오라시는데.”

“아, 그래?”

나는 두 눈을 깜빡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도 다른 학생들은 금방 레귤러스에게 관심을 잃은 듯했다. 나는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나와 레귤러스는 마법약 교실로 가는 동안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마법약 교실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나는 그와 함께 내려가는 계단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마법약 교실에 도착하니, 이제 2학년 수업이 마친 것 같았다. 우리는 문가 근처에 서서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학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마지막 학생이 나가자 레귤러스가 먼저 교실에 들어갔고, 나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교수님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 블랙 군, 블루로즈 양. 금방 왔구먼.”

나와 레귤러스가 고개를 숙여 살짝 인사했다. 우리 둘을 반기며 슬러그혼 교수님은 지팡이를 한번 휘둘렀다. 학생들이 실습하던 냄비들이 덜커덩거리면서 스스로 찬장에 쌓였고, 각종 약재가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가 교실을 정리할 때까지 우리는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 정리를 대충 끝낸 슬러그혼 교수님이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다음 달 있을 민달팽이 클럽에 참석할 수 있나 해서 말이야.”

그의 용무는 민달팽이 클럽에의 출결확인 정도였던 듯싶었다. 그는 이번 모임에 준비한 몇 가지 이벤트를 열거하며, 여느 때보다 성대하고 흥미로운 모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달팽이 클럽의 주축인 6학년 선배들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의 참석 의사를 확정적으로 듣고 싶어 했다. 레귤러스는 별일 없다는 듯이 당연히 참석할 거라고 대답했고, 나도 참여의 의사를 밝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자라도 공부를 더 해야 할 시기에 슬러그혼 교수님이 부르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이야기를 금방 끝내고, 교수님은 바쁜 일이 있는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나가버렸다. 둘만 남은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도 돌아가 봐야 겠다고 생각한 순간, 레귤러스가 내 쪽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형에게 접근하는 것은 삼갔으면 좋겠는데.”

얘는 또 왜 이런데. 나는 고개를 돌려 레귤러스를 응시했다. 포마드로 머리를 단정하게 올리고 교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그는 시리우스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닮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퀴디치 시합 때 시리우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임이 분명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었을 때는 모른 척 지나가던 그가 이렇게 제 필요에 따라 명령이라도 하듯 말하는 것이 고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지지 않고 대꾸했다.

“시리우스의 오빠라도 되시나 봐?”

마치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남학생을 경계하는 오빠와 같은 뉘앙스라 내가 비꼬며 말했다. 그는 내가 이렇게 대답할 줄 몰랐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나도 같이 당당하게 시선을 마주 보았다. 안 그래도 슬리데린 여자들이 열심히 나를 괴롭혔는데, 너까지 그런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사실 레귤러스는 나에게 해를 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여자인 내게 마법이라도 쓸까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괜히 교칙을 위반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알렉토에게서 보이는 예측 불가능한 저돌성과 같은 성향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레귤러스가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출신도 불분명한 종자가 내 가족에게 빌붙는 걸 용납할 수 없을 뿐이야.”

“미안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난 시리우스에게 빌붙은 적 없어.”

그는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이 얄미운 머글 출신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마법이라도 한 번 쏘아보라지. 나는 요즘 리들 교수의 교습으로 인해 방어술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그가 지팡이를 드는 것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봤자 밤마다 나를 향해 겨눠지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지팡이보다는 낫지 않겠나 싶었다.

나는 레귤러스를 약 올릴 요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너희 형이 나한테 집적대는 거야. 싫다는데 어찌나 쫓아다니던지.”

귀찮아 죽겠어. 나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그가 들으라는 듯 혼잣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레귤러스는 알렉토 무리들처럼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는 지팡이를 들지도 않았다. 레귤러스가 너무 얌전히 있어서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때, 문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블루로즈 말이 맞아.”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시리우스가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 온 거지? 그가 이 타이밍에 나타날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했다. 시리우스는 인사도 없이 내 쪽으로 다가와 레귤러스를 마주 보며 말했다.

“내가 얘 쫓아다니는 거야.”

레귤러스는 꽤 흥분한 것 같았다. 나에게 차분히 경고할 때와는 약간 달랐다. 그는 시리우스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댔다.

“형이 이런 잡… 머글 부모를 가진 시답잖은 여자와 가당키나 해?”

“말조심해, 레그.”

“머글 출신이랑 시시덕거린다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겠다는 거야?”

시리우스의 표정이 굳었다. 둘 사이에 날카로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듯 한걸음 떨어져 있었다. 이거, 집안 문제에 내가 개입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레귤러스는 나를 흘끗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내 귀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리저리 떠들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이따 다시 얘기해.”

그는 휙 돌아 망토를 펄럭이며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시리우스는 동생을 잡지 않았다. 레귤러스가 떠난 후에도 나는 조용히 그의 눈치만 살폈다.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시리우스는 낮게 한숨을 쉬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 우리 집이 좀 그래.”

“아뇨, 뭐.”

나는 짧게 괜찮다는 뉘앙스로 대답했다. 시리우스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었다. 단지 레귤러스가 쓸데없이 나에게 와서 화풀이한 것일 뿐. 대체 나에게 시리우스와 어울리지 말라는 얘기를 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시리우스랑 뭘 어찌 잘 될 일도 없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시늉을 보였다. 화가 나서 떠나버린 레귤러스와는 다르게 시리우스는 전혀 감정적 변화가 없어 보였다. 레귤러스만 일방적으로 분노한 것 같기도 하고. 시리우스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리저리 추측하는 사이 그가 내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시리우스가 나른하게 웃었다. 마치 흥미로운 장난 거리라도 생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누가 누구한테 집적댄다고?”

“하하, 그걸 들으셨나 봐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리려고 했지만, 내가 서투르게 무마한다고 시리우스가 거기에 속아 넘어갈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짓궂게 미소 지으며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정말 집적대는 게 뭔지 보여줘?”

나는 약간 놀라 벽 쪽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

거의 등이 벽에 붙다시피 뒤로 물러섰으나 시리우스는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나는 당황했다. 그의 체취가 뭔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리우스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지자 익숙한 체취 같은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삼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쉽게 긴장해서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이대로 물러서지 않으면 시리우스가 더 다가올 것만 같아 나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잘못했어요.”

그가 크게 웃으며 나에게서 살짝 물러섰다. 아무래도 그는 나를 궁지에 몰아놓고 내가 당황해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뭔가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리우스와 일정 거리를 두면서도, 나 자신이 마치 천적을 앞에 두고 보호영역을 확보해두는 동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그는 이제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올 마음은 없는 듯했다.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가냐?”

“어디 가든 다 그 얘기네요. 안 가요.”

나는 고개를 도리질 치며 대답했다.

“파트너 신청받은 거 없어?”

“있을 리가.”

아직 4학년 중에서는 파트너 신청을 받은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파트너 신청은 다소 이른 감이 있기는 했다. 여하튼 지금 래번클로 선배들은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미녀들을 노리고 있으므로 나에게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그가 마치 같이 점심이라도 한 끼 하자는 투로 한마디 던졌다.

“그럼 나랑 크리스마스 파티 같이 가자.”

나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내가 레귤러스에게 헛소리를 했으니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공개적으로 벌이라도 받으란 말인가? 나는 혼란스러워져서 되물었다.

“저요? 제가 파티를 가라 구요?”

“어. 너.”

나는 대체 시리우스 블랙이 또 무슨 꿍꿍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누구랑?”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리우스 블랙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당신이랑?”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요?”

내 물음에 그는 약간 충격받은 것 같았다. 그가 파티를 가자고 제안하면 내가 단번에 승낙할 거라 기대한 듯했다. 거기다가 심지어 시리우스는 딱히 나와 가야 할 이유조차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나와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뉘앙스라서, 내가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같이 갈 사람 있어?”

“미안하지만 시리우스, 저 4학년이에요. 전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다구요.”

나는 그에게 벌써 그걸 잊었느냐고 퉁명스레 말했다.

“그건 알고 있어. 그래서 같이 갈 사람이 있느냐 물은 거잖아.”

“없긴 하지만,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럼 나랑 같이 가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경험해 봐. 뭐가 문제야?”

당신이 문제인데요.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참았다.

“왜 하필 전데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데, 적당한 파트너가 없으니 너라도 데려가야지.”

거기다가 준비해 둔 것도 있고.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칠 장난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아 그러니까 왜 저냐구요.”

“넌 귀찮게 굴지 않을 것 같거든.”

그의 이유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전 가기 싫어요.”

가면 또 분명히 톰 리들 교수가 있을 게 분명했다. 사실 9할은 그가 보기 싫어서 가지 않는 거였다. 괜히 희희낙락 놀다가 한 소리 들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떤 상황이든 그와는 상종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왜 싫다는 거야?”

“그런 파티 별로 안 좋아해요.”

나는 9할의 이유보다는 1할의 이유를 들었다. 그것도 거짓말은 아니었으니까. 파티를 가려면 파티용 드레스도 준비해야 하고, 여러 가지 치장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럴 여유도 없고 귀찮았다. 래번클로 여자애들의 시선도 신경 쓰였다. 슬리데린 여자애들 또한 지금 잠시 소강상태이긴 했지만, 시리우스와 파티에 참석하면 흥분해서 어떤 패악질을 벌일지 몰랐다.

시리우스는 나의 단호한 대답에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뭔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상대를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가 금방 나를 포기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그가 말을 꺼냈다.

“블, 아 리무스의 개 말이야.”

“블랙?”

“보고 싶어 하지 않았어?”

나는 갑자기 왜 블랙의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기색을 만면에 드러냈다. 블랙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리무스랑 친해지겠다는 것을 막은 것은 시리우스였다.

“너 연휴 때 학교에 남아 있겠다며? 크리스마스 파티에 같이 가주면, 리무스에게 부탁해서 크리스마스 연휴 2주 동안 블랙을 계속 볼 수 있게 해줄게.”

“정말요?”

나는 되물었다.

“2주일 동안? 계속?”

그건 고려할 만했다.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특히 그 2주간 블랙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리들 교수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괴롭힐지 몰랐다. 블랙이 있으면 분명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왜 나와 함께 파티를 가는 것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리우스가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의 허락을 기다리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아서, 순간 시리우스가 귀여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 귀엽다고? 시리우스 블랙이? 나는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조금 당황했다.

어찌 됐건 블랙과 2주간 볼 수 있다는 제안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그래요.”

리들 교수야 피하면 되는 거고, 크리스마스 파티와 같은 큰 행사에서 나를 건드릴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수업 시간처럼 아주 평온하고 다정스레 굴겠지. 스테이시나 알렉토 같은 애들도 뭐, 그때쯤 아이작이 돌아오는데 그래도 날 괴롭힐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에 비해서 2주간 블랙을 볼 수 있다는 편익은 매우 컸다. 시리우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나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계약 성립한 거다?”

“약속한 것이나 잘 지켜요. 크리스마스 연휴 2주간, 블랙을 빠짐없이 보는 거예요.”

“너냐 약속 지켜. 딴 사람 파트너 신청받지 말고.”

나에게 누가 파트너 신청을 한다고. 나는 그 후에도 시리우스에게 몇 번 더 우리의 계약 조건을 상기시키며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받았다.

* * *

다음 날 일찍부터 잠이 깼다. 밤새 눈이 오는 것 같더라니, 그새 눈이 더 쌓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창밖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제 집중력을 다 써버린 것이 분명했다. 머릿속으로 기본적인 사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쯤 했으면 중간시험에서 수석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부터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할까 싶은 마음이 일었다.

찬바람을 쐬면 상쾌한 기분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옷을 챙겨 입으며 호그와트를 한 바퀴 돌기로 결심했다.

성 밖으로 나오자,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주변이 고즈넉했다. 새로 쌓인 눈을 밟으며 서쪽 탑을 지나 정문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원래는 여기까지 오지는 않는데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멀리 나가게 된다. 날개 달린 멧돼지 동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뒤쪽인 학교 밖에서 마차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스트랄이 이끄는 마차인 것 같았다. 이 시간에 누가 호그와트에 방문한 거지?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차는 호그와트 정문 앞에 섰고, 문이 열리며 안에서 옷을 두껍게 껴입은 남자가 내렸다. 어딘가 익숙한 인영인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가 아이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깜짝 놀라 그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는 짐을 꺼내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작!”

내가 그를 불렀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가 나를 응시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난 탓에,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어쩐지 나에게 말하지도 않고 온 것이 야속해 그에게 대뜸 물었다.

“내일모레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 들켜버렸네.”

눈매를 휘며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놀라게 해 주려고 조금 일찍 왔는데.”

아이작이 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불어 오르는 바람에 그의 백금발이 휘날렸다. 그의 머리카락에 닿은 햇볕이 따스하게 반짝였다. 나는 새삼 아이작이 예전과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안 본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 키도 좀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평소보다 더 아이작을 올려다봐야 했다.

“잘 지냈어?”

“어, 잘 지냈지.”

사실은 최악이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능청맞게 대꾸했다. 마치 아이작 없이도 씩씩하게 잘살고 있었다는 듯. 그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기엔 내가 너무 자존심이 강했다.

“나 없이 잘 지냈다니 뭔가 서운하네.”

그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마법약이 갑자기 폭발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고?”

“아니, 슬러그혼 교수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어. 네가 없으니까 나한테만 칭찬을 집중 투하했단 말이야.”

내가 괜히 그에게 불만을 표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아이작이 사라지자 관심 둘 상대가 나밖에 없는 것인지 수업시간에는 내 마법약에 대해서만 시종일관 이야기했다. 나는 아이작에게 그간 슬러그혼 교수님의 과도한 관심이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그가 없는 동안 완벽한 마법약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오랜만에 나를 봐서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말대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조잘거리는 나의 머리를 몇 번 슥슥 쓰다듬었다. 나는 말을 하다 말고 그의 손을 떼어내며 투덜거렸다.

“머리 만지지 마. 헝클어져.”

“로웨나, 너 조금 작아진 것 같다?”

“네가 큰 거야.”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푸른 눈동자는 오후의 호수처럼 따사로워 보였다. 눈을 마주치자, 우리는 미리 짠 것이라도 한 것마냥 웃음이 터졌다. 그가 없는 동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무언가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작이 돌아왔다. 나는 어쩐지 이제 다시 예전과 같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Part 2 The End.

============================ 작품 후기 ============================

1.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로웨나?ㅋ_ㅋ..

처음부터 팟2의 컨셉는 ‘굴려라 로웨나!’였어요.

저는 괴혼 하는 기분으로 로웨나를 데굴데구르르ㅡ 굴렸습니다.

코멘트에 거의 ‘로웨나 불쌍해요 ㅠㅠ 힘내ㅠㅠㅠㅠ’ 밖에 없어서

음.. 기분이 미묘했어요ㅎㅎ

팟3의 컨셉는 ‘굴려라 로웨나!2’가 될 예정입니다.

로웨나 화이팅!

2.

묘루님께서 외전 얘기를 물어봐 주셔서 답변 드립니다.

외전은 언젠가 써야지 하고 생각은 있지만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스토리 진행 하느라 미뤄질지도 모르구용 ㅠㅠ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직 기승전결의 ‘승’부분을 쓰는 중이라....

시리우스의 상태에 힌트를 조금 드리자면,

아직 본인의 마음을 제대로 잘 모른다는 쪽에 가깝겠네요!

3.

제가 잠깐 국외로 나갈 일이 생겨서,

아마 담 편 업데이트는 2주 후인 10월 14일쯤이 될 것 같습니다.

쭉 일일연재를 해왔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실망하실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많이 늦어져서 죄송해요 T_T

아마 그때부터 다시 일일연재 재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4.

여기까지 함께 달려오면서 꾸준히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시는

저에겐 빛이자 소금과 같은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에요!)

+5.

청동 독수리 문제에 대한 답변은 후기 하단에 있습니다.

저는 천성 후플푸프라 쿨하게 기숙사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노숙하겠지만

혹여 스스로 풀고 싶은 래번클로분이 계실까봐...

결론적으로 정답은 ‘세 마법사 중에 진실을 말하는 자는 없다’입니다.

“슬리데린은 후플푸프가 언젠가 그들 셋 모두가 진실만 말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리고 그리핀도르는 후플푸프가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고 있지.”

i) 만약 후플푸프가 진실을 말한다면, 그리핀도르는 무조건 진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후플푸프의 말에 따라 셋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해야 하므로 슬리데린은 무조건 거짓말쟁이인데, 슬리데린이 거짓말쟁이면 첫 번째 문장에 모순이 생기므로, 후플푸프가 진실을 말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슬리데린이 거짓도 진실도 확정할 수 없는 모순된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후플푸프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ii) 결국 후플푸프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확정되고, 그리핀도르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슬리데린이 진실을 말하냐가 문제인데, 슬리데린이 진실을 말한다면 첫 번째 문장 때문에 후플푸프가 거짓을 말한다는 것에서 모순이 생기므로 슬리데린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 청동독수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 거짓말쟁이고 래번클로가 유일한 진리다!’입니다.

이 퀴즈는 09년 행정고시 기출문제를 응용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처음 봤을 때 당혹감이 생각나네요. 관심 있으시면 구글에서 ‘행시 앨리스’로 검색하시면 내가 제정신인지 출제자가 제정신인지 싶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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