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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11)
“진심으로 묻는 거야, 로웨나 블루로즈.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나는 그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리우스 때문에 내 일상이 망가졌다고 화를 내며 그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리고는 별로 의미도 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내가 한 잘못들을 무시해왔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시리우스는 먼저 다가왔다.
그는 강했다. 치열한 정글과 같은 이 호그와트에서, 그는 단언하건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임이 분명했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숨으려고 해봤자 그의 타겟이 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는 인정했다. 이미 그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그의 진심을 무시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나는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시리우스는 갑작스러운 나의 사과에 어리둥절해진 표정이었다.
“뭐가?”
“시리우스가 싫은 건 아녜요.”
내가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본인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그런 솔직한 의사의 표현 앞에 나는 도저히 거짓말로 방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부끄럽다 하더라도, 나 또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차분하게 알렉토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들이 무슨 이유로 나를 괴롭히고,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왔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왜 피하려고 했는지.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조금 시간이 걸렸고, 제법 긴 이야기였지만 시리우스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들을 비난하지도, 나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마치 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는 듯 그는 조용히 내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래번클로 내에서도 저를 싫어하는 애들이 많아요. 사실 아이작이 있었을 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었어요.”
나는 지금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말하며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마음을 먹었어도, 막상 다 이야기하고 나니 조금은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내가 덧붙였다.
“당신한테 왜 이런 얘길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요.”
“아니, 잘했어.”
시리우스가 딱딱하게 대답했지만, 그는 역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다 들어주었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꽁꽁 감춰놓았던 비밀을 털어놓으니, 그 비밀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부끄러운 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야, 로웨나 레빗.”
“함부로 제 성을 바꿔 부르지 마요, 시리우스 브라운.”
그의 이름을 바꿔 불렀다가 스스로 웃음이 터졌다. 브라운이라니. 그의 이름에 블랙 대신 브라운을 넣는 것만으로 시리우스가 전처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서 웃고 있는 나를 그는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크게 웃고 나서야, 나는 그저 내가 웃을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치부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드러낸 것만으로, 그 앞에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 만큼 시리우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는 사실도. 시리우스 또한 그걸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웃음이 그치길 기다려주었다. 나는 웃음기를 지우지 못하며 말했다.
“아, 너무 웃어서 눈물 나요, 브라운 선배.”
“좀 닦아.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울기까지 하면…….”
그는 심술궂게 비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게 장난이 아니라 진심같이 느껴져서 나는 순간, 내가 그렇게 못생겼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앞으로의 인생이 좀 갑갑해지긴 하긴 하지만, 그래도 못생긴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쪽도 잘생긴 건 아니거든요.”
방어적으로 한마디 뱉었다가 후회했다. 시리우스 블랙이 잘생기지 않았다면 대체 어떤 사람을 잘생겼다고 칭할 수 있을까? 이건 거의 자폭 수준이었다.
“웃기시네. 난 인생 살면서 잘생겼다는 말을 인사치레로 듣는 사람이야.”
“취향 나름이니까요. 안타깝게도 제 기준엔 잘생긴 편이 아니시네요.”
“본인의 취향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셔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좋고 싫음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서.”
다소 충격받은 듯한 그의 표정이 나에게 묘한 승리감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성격이 더럽다든가 성실하지 못하다는 등의 비난은 딱히 신경 쓸 일이 아닌 모양이지만, 그의 얼굴에 대해 직설적으로 폄하한 사람은 인생 살면서 얼마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어느 누가 감히 시리우스 블랙에게 잘생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나.
나는 생글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기숙사 들어가요. 곧 통금시간이니까.”
“니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우리의 대화가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타부타 말이 없었던 그가 갑작스레 한마디 던졌다. 나는 대답 없이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네 잘못도 아닌데 왜 니가 피해? 그러니까 너를 더 만만하게 보는 거야.”
그의 말도 맞았다. 오히려 내가 약하게 나가니, 그들이 나를 쉽게 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머글 출신 마법사가 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그와트 내에서도 몇 명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나처럼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래번클로 하면 역시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자긍심이지. 당당해져, 로웨나 래번클로.”
그리핀도르인 그의 말에 나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내가 후플푸프에게 성실함을 논하는 것 같은 그런 뉘앙스라고 해야 하나.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가 전혀 래번클로스럽지 못했네요…….”
“필요하면 시리우스 블랙에게 지원군을 요청해. 쓸 만한 병력이니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늦었어요. 얼른 기숙사로 들어가요.”
시리우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빨리 꺼지란 말이지? 조금 서운해지려는데.”
“장난치지 말고, 얼른.”
나는 그를 그리핀도르 쪽으로 밀었다. 그는 ‘네네, 얼른 사라져드리죠.’라고 말하며 중세 마법사들이나 보여줄 법한 과도한 예법으로 인사했다. 그의 연극적인 태도에 나는 장난기가 일어, 치마 끝을 살짝 들어 귀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 답례를 보냈다. 시리우스는 나를 보며 한 번 크게 웃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음속에서 무겁게 나를 짓누르던 무엇인가가 사라진 것 같았다. 알게 모르게 시리우스와의 일이 마음이 짐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래번클로 기숙사로 신나게 걸어가다가 만난 회색여인에게도 인사했을 정도였다─평소라면 무섭다는 이유로 우울한 그녀에게 말조차 걸지 않았다─ 오늘따라 청동 독수리 상의 철학적인 문제도 쉽게 풀어냈다. 어쩐지 앞으로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우리의 머글 연구 수업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마법의 역사도 지루해 죽겠는데.”
시리우스는 빌헬름 교수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투덜거렸다.
“우리가 머글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나?”
요즘 머글의 역사 챕터로 넘어간 후로부터 그는 눈에 띄게 지루해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빌헬름 교수는 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이해할 수 없게 설명하는 것에 능했다. 오늘 그가 소재로 삼았던 세계 2차 대전이나 인간의 달 착륙 같은 건 마법사들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머글의 삶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배워야죠.”
나는 책을 챙기며 정설적인 대답을 해 주었다. 그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역사 챕터를 건성건성 넘기며 불만을 토로했다.
“머글들이 치고박고 싸운 건 또 왜 배워야 하는 거야. 루이 14세? 얜 또 누구야?”
“머글 중에 시리우스 같은 사람이 있어요.”
“그 거 분명 칭찬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걸로 들린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세요, 어떤 머글인지.”
내가 그에게 놀리듯 한마디 던졌다. 내 말에 시리우스는 반쯤 책상에 엎드려서 머글의 역사 챕터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생각보다 읽는 속도가 빨라서 놀랐다. 한참을 건성건성 읽으며 책장을 넘기던 시리우스는, 갑자기 책을 덮으며 한 마디 던졌다.
“요즘 내가 너에게 너무 잘해준 것 같군.”
벌써 다 읽은 건가. 나는 책을 챙기고 일어나며 여차하면 도망갈 요량으로 그의 눈치를 보았다.
“태양왕 시리우스 블랙이 어떤지 좀 보여줘?”
나는 지팡이를 들려고 하는 그의 손을 저지하며 그에게 냉큼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한번 장난기가 동하면 교칙이고 뭐고 어떤 마법을 부려 나를 골탕먹일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사전 차단을 하는 게 낫지. 다행히 시리우스는 사색이 된 나의 표정에 만족한 듯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이제 머글 수업을 마치고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연회장에 향했다. 알렉토든 슬리데린이든,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시리우스는 내가 자신의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한 것은 아닌지 약간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였으나, 곧 내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자 오히려 의아해하며 물었다.
“슬리데린 여자애들 욕한다며? 나랑 같이 가도 괜찮나?”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주제넘다고 욕먹는다면, 진짜 주제 넘어보고 욕 들어 먹는 게 낫죠.”
시리우스는 내 말에 당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팔짱이라도 끼려다가 참은 줄 알아요.”
시리우스 블랙과 팔짱을 끼고 연회장에 들어가다니.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는 트로피 같은 남자임은 틀림없었다. 그를 끼고 연회장에 들어가면 슬리데린이고 래번클로고 모든 여자들이 질시의 눈빛을 보내겠지. 알렉토 캐로우는 그 자리에서 분노해 저주마법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나는 리들 교수에게 방어마법을 철저하게 교육받고 있었으므로, 설령 그녀가 그렇게 마법을 난사한다고 해도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의식도 못 한 채 망상에 젖었다가 고개를 휘저었다. 너무 생각이 멀리 간 것 같았다. 시리우스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쯤은 화해한 기념으로 허락해줄 수 있어.”
“됐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싫어요.”
나는 일부러 그에게서 한 발짝 떨어지며 대답했다. 순간의 기쁨을 위해 3년은 남은 내 호그와트 생활을 희생할 수는 없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 시리우스와 팔짱이라도 끼고 연회장을 간다면 당장에야 승리감에 도취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후에는 학교 어디를 가던 나에게 던져질 저주마법에 전전긍긍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만큼 걱정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감히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에게 보호받고 있다. 어느 누가 나를 감히 건드릴 수 있겠나? 나는 리들 교수가 싫었지만, 그의 보호가 달콤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나를 일종의 전력으로 키우고 있었다. 내 활용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투자하고 있는데, 자신의 투자처에 문제가 생기길 바랄 리가 없었다. 나는 알았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한, 그는 단순히 살려두는 정도를 넘어 확실히 나를 보호할 것임을.
시리우스와 함께 대연회장에 들어가다가 세 명의 마루더즈 무리와 마주쳤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고 시리우스와 조금 떨어졌다. 그러나 제임스가 먼저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레빗양! 시리우스랑 다시 화해한 거야?”
제임스는 언제나 그랬듯 유쾌해 보였다. 나는 어쩐지 그와 싸웠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 도리질 쳤다.
“화해는 무슨. 저 시리우스랑 별로 안 친해요.”
“아 그럼 우리 시리 왕자님의 일방적인…….”
제임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리우스가 뒤에서 한쪽 팔로 제임스의 목을 감아 그의 말을 막았다. 갑자기 뒤에서 입이 막힌 제임스는 캑캑대며 시리우스를 떼어내려고 버둥댔다. 나는 깜짝 놀라 시리우스를 말렸다.
“왜 그래요! 제임스가 숨을 못 쉬잖아요!”
“래번클로 양이 그만하라고 하는데, 시리우스?”
리무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짓궂게 말했다. 반쯤 장난이었던지, 시리우스가 금방 제임스에게서 떨어지며 제임스에게 한 마디 던졌다.
“헛소리 작작해, 프롱스.”
숨이 막힌 지 두어 번 콜록거린 제임스는 목을 살짝 만지며 장난스럽게 지팡이를 들었다.
“패드풋, 한 판 해보겠다는 것인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제임스는 즐거워 보였다. 그는 지팡이를 마치 검처럼 휘두르며 시리우스에게 겨눴다. 시리우스는 씨익 웃으며 그에 응대했다.
“좋아. 그러면 「괴짜 마법사를 위한 정신 나간 마법」 3장 어때?”
제임스는 마치 잠시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 책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곧 지팡이를 바로 쥐며 대답했다.
“물론 어떤 마법이라도 자신 있지.”
둘의 지팡이가 서로를 향했다. 연회장 내에서 사람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리무스와 피터는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둘의 대치를 관전하고 있었다. 나라도 말릴 요량으로 나서려는 순간, 제임스와 시리우스가 서로에게 주문을 쏘았다.
“레포르모 아나스!”
“레포르모 풀리케누스!”
분명 주문을 맞았는데, 둘 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리무스와 피터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어리둥절해서 그 둘을 쳐다보는데, 제임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꽥─ 꽤괘괙 깨꽥?”
뭐? 처음에 나는 어디서 오리가 들어온 줄 알았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동물은 없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임스를 바라보았다. 피터가 숨이 넘어가라 웃기 시작했다. 함께 웃음이 터진 리무스는 숨을 참아가며 겨우 한마디 했다.
“프, 푸핫! 프롱스, 진짜 어울려!”
이쯤 돼서야 나는 그것이 마법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리우스가 제임스에게 오리 목소리를 내는 마법을 건 것 같았다. 마법을 성공한 시리우스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삐약!”
나는 그 자리에서 웃음이 빵 터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리우스가 병아리 울음소리라니! 본인도 당황한 듯했다. 피터와 리무스는 이미 바닥에 쓰러졌고, 제임스 또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꽥꽥거렸다. 처음엔 시리우스 때문에 터진 웃음이 제임스의 오리 울음소리 때문에 더 격해졌다.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싶으면 시리우스가 볼멘 목소리로 삐약삐약 해대는 바람에 다시 웃어댔다.
정말인지 그렇게 많이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동물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 결국 나는 그들에게 침묵 마법을 시전했다. 두 사람에게 묵언을 강제하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둘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무스와 피터가 낄낄대면서 한마디씩 했다.
“난 패드풋에게 한 표 던지겠어.”
“난 프롱스. 병아리 울음소리가 진짜 최고였지.”
일대일인데? 네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리무스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전투의 승자는 래번클로 양이 선택해야 할 것 같은데.”
“누가 더 웃겼어?
나는 빙긋 웃고는 대답했다.
“당연히 삐약거리는 시리우스였죠.”
말을 못하는 제임스가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리무스가 중재하듯 지팡이를 들었다.
“승부가 결정 났군.”
피니트 인칸타템, 하고 말하며 리무스가 두 사람의 마법을 풀었다. 시리우스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일 듯한 기세로 나에게 다가와 투덜거렸다.
“야, 넌 같이 수업을 들었던 정이 있지……”
“저는 공정한 래번클로니까요.”
당당한 척 한마디 했더니 제임스가 낄낄거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레빗양. 보는 눈이 있어.”
둘이서 무슨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제임스의 스스럼없는 태도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거 칭찬의 의미인가? 시리우스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내 머리 위에 있는 제임스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이건 편파적이야. 아기 오리 제임스 포터, 이게 어떻게 안 웃길 수 있어?”
“맞아요. 단지 아기 병아리 시리우스 블랙이 최고로 웃겼을 뿐이에요.”
나는 말 하다가 또 웃음이 터졌다. 그들과 헤어져 래번클로 쪽 테이블에 가면서도 자꾸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자제하기 어려워 혼자서 킥킥대는 웃음소리를 냈다. 안나가 마치 눈빛으로 나를 살해할 것처럼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루더즈와 잘 지내는 내가 굉장히 얄미운 모양이었다.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 해주고 필리다의 옆에 앉았다. 열심히 나를 노려보라지.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그 여자애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렇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들을 철저히 무시한 채 필리다와 디저트로 나온 당밀 타르트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식사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