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26화 (2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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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10)

리들 교수는 나를 7층으로 불렀다. 평소와 다른 장소라서 조금 의외였다. 나는 호그와트 성 7층까지 올라온 적이 거의 없었다. 신입생이었을 때 호기심에 올라갔던 것이 유일했다. 7층은 매우 혼란스럽고 미로 같아서 함부로 올라갔다간 길을 잃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리들 교수가 말한 대로 계단 앞에서 서서 얌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덟 시가 되었을까,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묵직하고도 차분한 걸음의 주인이 리들 교수임을 확신했다. 이윽고 계단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7층까지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숨소리 하나 변함이 없었다. 계단을 올라온 리들 교수는 특유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쳐 복도 쪽으로 향했다.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지. 나는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복도 끝에는 거대한 벽걸이 양탄자가 걸려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양탄자 위에 그려진 것이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트롤을 길들여 무용을 가르치려는 건가? 내가 그 양탄자를 보며 화가의 의도를 고민하고 있는 사이, 리들 교수는 맞은편에 있는 텅 빈 벽 앞을 걸었다. 나는 양탄자에서 시선을 떼고 리들 교수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벽에서 갑자기 문이 생겼다. 아무런 장식 없이 손잡이만 있는 원목으로 된 문이었다.

그는 문손잡이를 잡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리들 교수를 따라갔다. 문이 작아 필시 작은 방일 것이라 기대했는데, 안쪽은 생각보다 공간이 넓고 트여있는 방이었다. 벽에는 마법약 교실을 밝히는 횃불과 똑같이 생긴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구석에는 나무로 만든 책꽂이와 수납장이 있었고 그 옆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내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리들 교수는 그쪽을 한 번 쳐다보더니 놓여있는 1인용 가죽 소파 쪽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소파는 그의 지팡이 움직임을 따라 리들 교수의 쪽으로 밀려왔다. 그는 지팡이를 갈무리하고는 자기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리들 교수는 조금 피곤한 듯해 보였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목을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검은 머리카락이 소파 뒤쪽으로 살짝 쓸려 내려갔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약간 떨어진 앞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잠시 후, 리들 교수가 길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지팡이를 들어라. 방어마법부터 연습하도록 하지.”

“네?”

뭘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 그는 내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눈을 감은 그대로 무장해제 주문을 외웠다.

“엑스펠리아르무스.”

내 지팡이는 힘없이 그의 손으로 날아갔다. 마법을 펼치기도 전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내 지팡이를 다시 받아왔다.

나는 무장해제 마법이 들지 않도록 지팡이를 꽉 쥐고, 그가 지팡이를 들기도 전에 방어마법을 외웠다.

“프로테고!”

“엑스펠리아르무스.”

내 지팡이가 그를 향해 날아가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무슨 연습이란 말인가. 괜한 모욕감만 일었다. 다시금 앉아있는 리들 교수에게 다가가 지팡이를 받아왔다.

“넌 지팡이를 악력으로 쥐는군.”

거의 쳐다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리들 교수는 목이 뻐근한지 고개를 들어 두어 번 돌리면서 말했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머글스럽게 굴지 마라. 지팡이는 마력으로 쥐는 것이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나에게 꽂혔다.

“아무리 세게 쥐려고 해도 무장해제 마법 앞에서는 통하지 않아.”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력으로 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스스로 깨닫도록 해.”

엑스펠리아르무스. 그의 무장해제 마법에 힘없이 지팡이를 놓았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나를 괴롭히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력으로 쥐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반쯤 울 것 같은 기분으로 프로테고를 시전했다. 그렇지만 번번이 리들 교수의 무장해제 주문 앞에 내 방어막은 허물어질 뿐이었다. 그나마 방어마법의 시전 속도가 조금 빨라진 정도였는데, 대체 그가 기대하는 지팡이를 제대로 쥐는 방법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멍청할 정도로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리들 교수의 인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변함없이 지팡이를 빼앗기고 있는데도, 별다른 말없이 계속 무장해제 마법을 걸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한마디 던졌다.

“마법을 시전할 때 지팡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져.”

그 순간, 나는 희미하게나마 리들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마법을 오랫동안 시전하다 보면 지팡이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건 보통 연속적으로 마법을 오래 사용한 후 느껴지는 종류의 감이었다. 그는 마법을 사용할 때 그 감을 잘 개발하도록 수련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다시금 쥐었다. 마치 내 몸에서 떨어질 것 같이 세게 쥐던 이전과는 달리, 지팡이가 내 몸의 일부이며,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카시아 나무에 유니콘의 털, 13인치.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에서 내가 처음 이 지팡이를 만났을 때 느꼈던 일체감을 다시금 새겼다.

“프로테고!”

“엑스펠리아르무스.”

확실히 달랐다. 나는 명백하게 느꼈다. 방어마법이 유지되는 시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여전히 지팡이를 빼앗겼지만, 나는 방어마법의 유지시간이 아주 조금이나마 늘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 그와 있으면서 처음으로 든 성취감이었다. 흥분해서 내가 소리쳤다.

“방금 제 방어마법 보셨죠?!”

고작 이런 것에 기뻐하는 내가 한심했던 모양이었다. 그의 싸한 표정에도 나는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이건 나에게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지팡이와 하나가 된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법의 사용이 좀 더 수월해지다니. 아무도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니, 분명 이론적으로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전을 통해 직접 몸소 체험하는 것은 달랐다.

나는 절대 지팡이를 빼앗기지 않을 기세로 방어마법을 시전했다. 열심히 연습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들 교수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지.”

약간 아쉽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조금만 더 하면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타고난 능력과 실력 차 때문에 분명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연습만 열심히 하면 그에게서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리들 교수는 내가 아쉬워하든 말든 그대로 나를 지나쳐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방에서 나오자, 벽에서 다시 방문이 사라졌다. 호그와트에는 신기한 장소가 많다고 들었는데, 방금 사라진 방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았다. 말없이 앞장서는 리들 교수를 따라 나는 천천히 계단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만 조용히 복도를 울렸다.

둘 사이에 침묵이 익숙해질 때쯤, 갑자기 리들 교수가 나에게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요즘 따돌림이라도 당하고 있나?”

그가 할 법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리들 교수는 지독히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설령 학교에서 집단 폭행을 당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모른 척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그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역시 본즈가 떠나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껏 학교생활을 문제없이 해온 것은 아이작 덕분이라는 말투였다. 이유 모를 분노가 일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이쯤 되니 나는 그것이 화만 내야 할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슬리데린의 악질적인 공격도, 래번클로 내에서 흐르는 미묘한 기류도 사실 아이작이 떠난 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필리다와 꽤 친해졌지만, 그것은 내가 따돌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했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리들 교수가 한마디 던졌다.

“나약하기 짝이 없군. 너를 구해줄 기사님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전…….”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리들 교수는 내가 마치 탑 위에 갇힌 공주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동적으로 굴고 있다고 비꼬는 것이다. 그가 나를 감시한다는 것은 반쯤은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싫었지만 그는 나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사교성도 없어 내 편을 많이 만들지도 못했다. 심지어 머글 출신이기까지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 뒤를 봐줄 만한 마법사도 없었다. 대체 내가 뭘 믿을 수 있단 말이지?

나는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한 반발감이 생겼다. 마치 온전히 나의 수동적인 부작위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이 본질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탑 위의 공주님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느냔 말인가. 무기도 갖추지 못한 채 죽음을 각오하고 마왕에게 덤벼들어야 하나? 아니면 탑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애초에 탑 위의 공주님은 갇혀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녀에게 만용을 부리길 요구하는 게 정말 합당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아예 의지가 있을 수 없었다. 승패가 뻔 한 게임에 누가 나설 수 있단 말이야.

“머글 출신 주제에 그렇게 약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는 한심한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가 버렸다. 마치 자기가 나를 처리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도태될 것이라는 어투였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 혼자 복도에 남겨진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 * *

전날 천문학 수업이 늦게 끝나서, 목요일은 하루 종일 피곤했다. 심지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도 있었다. 나는 남아있는 집중력을 짜내다시피 해서 수업을 들었다. 정해진 학과 과정을 마치고 나서 저녁에는 마법 공부를 더 해야 했다. 나는 먹는 것인지 입에 집어넣는 것인지 모를 식사를 빠르게 마쳤다.

도서관을 갈 요량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알렉토 캐로우 무리와 마주쳤다. 플로버웜이라도 밟은 기분이었다. 못 본 척 지나가려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막아섰다.

“우리 아는 사이 아니야? 왜 인사도 안 해?”

“…안녕하세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품에 있는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이 슬리데린 무리들은 비겁하게도 평소에는 마치 상종 못 할 사람이라도 되는 듯 비웃으며 지나가다가, 내가 혼자 있는 기회만 생기면 악질적인 장난을 치곤 했다. 그들도 여러 명의 학생들이 한 명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비겁하고 졸렬해 보이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이렇게 구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요즘 좀 살만한가 봐?”

그녀들 중 하나가 나에게 비꼬듯 한마디를 던졌다. 살만하다니.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장담하건대 요즘은 내 인생의 가장 최악의 시기였다. 하루하루를 꿋꿋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도 스스로가 기특할 정도였다.

“그러게. 당당히 호그와트에 다니고 있는 거 보면.”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학교 못 다녀.”

머글인데 머글과 살아야지, 왜 마법사 세계에 끼어들어? 나는 그들의 턱없는 비난에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던졌다.

“요즘은 시리우스 블랙과 어울리지도 않는데요.”

알렉토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너 우리가 네가 블랙과 어울린다는 거 하나만으로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줄 알았니?”

“너무 순진하고 귀엽네!”

뭐 어쩌라는 거야. 이것들이 진짜 사람을 물로 보나. 열이 받기 시작했다. 모든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머릿속에서 팽팽히 당겨져 있던 무엇인가가 툭 하고 끊기는 기분이었다.

“참으로 슬리데린답네요.”

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시종일관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던 내가 입을 여니, 슬리데린들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명예를 중히 여기는 척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렇게 여럿이 한 사람을 괴롭히기나 하고.”

“뭐?”

이 잡종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중 하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것이 당신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수혈통의 긍지인가요?”

슬리데린의 여학생들 무리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알렉토는 내가 맹랑하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뒤쪽에 있던 여자 중 하나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지팡이를 쥐는 것을 눈치를 채고 바로 방어마법을 외웠다.

“퍼넌쿨루스!”

“프로테고!”

다행히 방어마법은 제대로 시전된 것 같았다. 얇은 방어막이 내 주변으로 덧씌워졌다. 하마터면 보기 흉한 종기를 얼굴에 다닥다닥 붙인 채 병동에 갈 뻔했다. 어제 그렇게 리들 교수와 방어마법만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주문을 외운 슬리데린 여자 선배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때 계단 위에서 저주마법을 시도했던 그 선배였다. 그렇게 마법 실력이 뛰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의 시도가 다 무산되었으니. 나는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순간 나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나 지워버렸다. 지금과 같은 진흙탕 싸움에서 나답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었다.

방어마법이 풀리자마자, 알렉토가 지팡이를 들어 재빨리 주문을 외쳤다.

“로코모토르 위블리!”

꽤 빠른 움직임이었다. 지팡이에서 노란빛이 튀어나와 나에게 명중했다. 다리가 흐물흐물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엉성하게 넘어지는 자세를 보고 슬리데린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중 한 명이 무장해제 마법을 나에게 걸었다. 지팡이가 힘없이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지팡이를 뺏긴 것은 두 번째였다. 모욕감에 열이 올라왔다.

“비참한 잡종의 말로구나.”

“넌 지팡이가 없으면 머글과 다를 바가 뭐니?”

알렉토의 말에 모두가 한꺼번에 웃었다. 알렉토는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지팡이를 조준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그때, 갑자기 계단 위쪽에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알렉토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하늘로 붕 뜨더니 위쪽으로 날아갔다. 꺄르르 웃던 무리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계단 위쪽을 향했다.

“복도에서 공격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교칙 위반 아닌가.”

시리우스 블랙이었다. 그는 무표정하게 캐로우를 내려다보았다. 알렉토는 갑작스러운 시리우스의 등장에 당황한 것 같았다. 슬리데린 여자애들 모두 시리우스와 알렉토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말했다.

“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블랙.”

“그쪽 블루로즈와 할 얘기가 있는데, 네가 방해하고 있어서.”

그는 캐로우의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대답했다.

“용무가 끝났으면 꺼져줬으면 하는데.”

알렉토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시리우스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시리우스가 있는 계단 위로 올라간 그녀는 반쯤 씩씩거리며 그의 손에 들려있는 본인의 지팡이를 낚아챘다. 시리우스는 별말 없이 순순히 그녀의 지팡이를 내어주었다. 알렉토는 지팡이를 받고는 그대로 복도 쪽으로 사라졌다. 슬리데린 여학생들도 그녀를 뒤쫓았다.

그들의 발소리가 잦아들고, 우리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나에게 걸려있는 엿가락 다리 저주 주문을 풀어주며, 시리우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 로웨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모른 척 해본 적 없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가 한걸음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엿가락 다리 저주 마법의 후유증으로 혼자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나는 시리우스의 도움으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저절로 굳었다. 이건 누가 봐도 내가 슬리데린 무리에 괴롭힘당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들켰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와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기가 창피했다. 나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시리우스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도망가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는 그가 이 상황이 어찌 된 것인지, 왜 알렉토 캐로우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 물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꺼낸 말은 예상과는 달랐다.

“넌 왜 내가 싫냐?”

왜 싫냐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싫은 이유는 많았지만, 그건 진짜 그가 싫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짧은 침묵 후, 내가 말을 꺼냈다.

“그냥 싫어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싫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슬리데린 무리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보인 것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데, 그가 와서 이상한 질문을 해대니까 짜증이 났다.

시리우스가 천천히 대답했다.

“내가 좋거든.”

시리우스의 은회색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확인 사살하듯 한 번 더 강조했다.

“내가 너랑 있는 게 좋다고.”

“뭐라구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시리우스가 대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다.

“내가 좋다구요?”

“이봐, 착각이 좀 심한데. 내가 너랑 있는 게 좋다는 거랑, 널 좋아한다는 건 의미가 좀 다르지 않나?”

뭐가 다른 거야? 나는 그가 나에게 말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난 너와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

그의 익숙한 은회색 눈동자가 끌어당기듯 나의 시선을 잡았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가 어쩐지 부끄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내가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조는 온건했다. 평소 시리우스와 다르게 너무 차분해서 이질감이 느낄 정도였다.

“너랑 있는 것도 좋고, 대화하는 것도 즐거워. 그래서 네가 왜 나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끊어내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진심으로 묻는 거야, 로웨나 블루로즈.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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