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23화 (2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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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7)

아이작에게 편지가 왔다. 그는 친절하게도 그의 부엉이 셰벗을 보냈다. 아마도 받자마자 얼른 답장을 하라는 거겠지. 돌돌 말린 양피지는 덤스트랭의 고급스러운 직인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직인을 뜯어내고, 편지를 펼쳤다. 양피지 사이에 있던 아이작의 사진이 한 장 테이블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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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Rowena E. Bluerose

잘 지내고 있어? 오늘은 덤스트랭에서 수업을 받은 지 3일째 되는 날이야. 여긴 북유럽이라 너무 추워. 여벌 망토를 세 개 챙겨갔는데, 이건 여벌이 아니야. 하루 종일 세 개의 망토를 두르고 다녀야 해.

나는 도착하자마자 페르마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갔어. 그와 연구실에서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경외감을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나는 그와 그 자리에서 거의 3시간을 얘기한 것 같아.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페르마 교수의 연구 논문과 저서가 너무 많았거든. 게다가 그는 기꺼이 사진을 찍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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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작과 페르마 교수가 있었다. 이건 진짜 동경하는 록스타라도 만난 팬의 모습이잖아. 아이작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진만 봐도 내가 엄마라도 되는 양 얼굴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그는 그 후에도 한참을 페르마 교수 이야기로 양피지를 채웠다. 나는 띄엄띄엄 그의 편지를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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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 교수님께 호그와트에서 교편을 잡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덤블도어 교수님과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었어. 계속 그를 설득할 예정이야. 솔직히 플리트윅 교수님이 좋긴 하지만, 마법 수업을 교수 두 사람이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여기의 수업이 흥미롭긴 하지만, 역시 네가 없으니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어. 가끔 로웨나 네가 마법의 역사 시간에 졸 때 깨우거나, 마법의 약 시간에 애쉬와인더의 알을 깨지 않도록 주의를 시키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야.

내가 셰벗을 보내는 이유를 알겠지? 꼭 그에게 너의 편지를 물려주길 바라. 그는 닭고기를 좋아하니 혹시 식사시간에 닭고기가 나오면 조금 챙겨주길. 답장 기다릴게.

Isaac E. B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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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 없는 삭막한 학교생활에서 아이작의 편지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와 함께했던 학교생활이 그리웠다. 아이작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리들 교수에게 항상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알렉토 무리의 타겟이 되었다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싫어하는 블랙 이야기를 편지에 쓸 수도 없었다. 나는 털어놓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도 정작 쓸 것은 없는 딜레마에 봉착했다.

한참을 깃펜을 들고 고민하다가, 필리다에 대해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생각보다 좋은 아이이며, 요즘 꽤 친해졌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쓰다 보니 마법 시간에 배운 새로운 주문에 대해서도 생각이 났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좋은 이야기만 골라 두서없이 적어 내렸다. 그리고는 덤스트랭의 학생들은 어떤지, 수업은 재밌는지 물으며 편지를 끝냈다. 그리고는 추신으로, 눈물 젖은 베갯잇은 어디에 있느냐고, 답장을 쓰지 않으려다가 참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양피지를 깔끔히 말아서 끈으로 봉했다. 호그와트 직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접시에 있는 닭고기 조각을 몇 개 집어 셰벗에게 먹여주었다. 셰벗은 아이작의 성품을 무척이나 닮았다. 심지어 이 부엉이는 먹이조차 고상하게 먹었다. 나는 부엉이가 닭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그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셰벗은 배가 불러서 기분이 좋은 것인지, 부리로 잽싸게 양피지를 낚아채고는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셰벗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있던 시리우스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마치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가 갑자기 말이라도 걸면 어떻게 하지? 알렉토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마루더즈와 장난을 치고 있는 틈을 타 몰래 대연회장을 빠져나왔다.

* * *

나는 이제 밤마다 진행되는 리들 교수의 교습에 익숙해졌다. 여전히 그가 무섭긴 했으나 그는 근시일 내에 나에게 위협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관찰할 여유마저도 생겼다.

연구실에 찾아갈 때마다 그는 호그와트의 교수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온전히 교수직만을 역임하는 평범한 마법사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그가 처리하고 있는 것들─교수계획표, 학생마법능력개발평가서 등등─을 바라보면서, 생각보다 교수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리들 교수는 여느 때와 같이 나를 세워두고 자신의 업무를 계속했다. 아예 처음부터 늦게 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 물어가며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서로 간에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것이 더 나았으니까. 양피지에 깃펜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천칭이 도는 소리만 조용히 방을 채우고 있었다. 어쩐지 숨 쉬는 기척조차 시끄럽게 들리는 것 같아 나는 가만히 숨죽여 서 있었다. 이윽고 리들 교수는 깃펜을 놓고 양피지를 봉했다. 하던 일을 다 마쳤는지 그가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하도록 하지.”

그는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있는 ‘리들 교수’의 기억은 건드렸다.

나는 미리 정해져 있던 리들 교수에 대한 기억을 가장했다. 다정하고, 친절하며, 능력 있는 교수의 기억으로. 그는 가볍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로 옮겨갔다. 나는 그에 대한 공포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예언자 일보,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살인마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가 마치 진실인 양 내 기억의 외면에 떠올랐다. 사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나의 오클러먼시 능력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었다. 리들 교수는 이제 나의 오클러먼시에 대해 흠을 잡지 않았다. 그가 ‘리들 교수’ 혹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에 대한 기억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내가 그의 정체를 숨길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 같았다.

“이제 꽤 능숙하게 하는군.”

리들 교수의 저 서늘한 표정에는 절대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이는 것으로 칭찬인지 확신할 수 없는 그의 한 마디에 대해 답례했다. 확실히 몇 번 기절했던 첫 주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지긴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제 나는 그의 강압적인 교습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능숙한 레질리먼서들은 직접적인 기억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간접적 기억을 통해서도 흔적을 찾아내곤 하지.”

그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 그의 연구실, 저주 마법, 파셸 통크 등 여러 가지 관련된 기억을 건드리면서 이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몇 번 기억을 공격하고는 금방 교습을 끝냈다. 지팡이를 거둬들이면서 그가 한 마디 던졌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테니 혼자 연습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스스로 수련하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끝내려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져서, 오늘 들어가서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교정 산책이나 좀 해볼까. 밤늦게까지 알렉토 무리들이 돌아다니진 않을 테니까. 한참 딴생각을 하는 사이, 그가 지나가듯 한 마디 던졌다.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 호그와트에 남아있도록.”

뭐? 그의 한 마디는 내 기분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내가 잠시나마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나는 그의 말에 순간 욱해서 되물었다.

“새해를 호그와트에서 보내라구요?”

말을 내뱉고 나는 후회했다. 너무 당돌하고 공격적인 말이었다. 그가 좀 편해졌다 싶은 생각에 내심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편해졌다니, 말이 되나. 어떻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앞에서 마음 편히 서 있을 수 있나.

그는 평소와 다른 나의 반항적 어조에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나는 급격히 긴장한 채 그의 눈치를 보았다.

“불만 있나?”

“없습니다…….”

사실 불만으로 가득했지만 나는 굳은 표정으로 이를 삼켰다. 우리 아빠랑 동생들이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대체 호그와트에서 2주 남짓 하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무엇을 하라고? 학교에 아무도 없을 텐데, 회색여인과 캐롤송에 맞춰 춤이라도 춰야 하냔 말이야? 그는 심지어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한 번 숙여 인사하고는 리들 교수의 연구실을 나왔다. 도무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 * *

요즘은 블랙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알렉토 캐로우 무리의 장난질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머글 연구 수업을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갑자기 엿가락 다리 저주가 날아왔다. 때맞춰 방어마법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을 것이다. 머리라도 찧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등골이 서늘했다.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주문이 날아온 계단 위쪽을 바라보았더니, 알렉토가 끌고 왔던 슬리데린 여학생 중 하나 서 있었다. 그녀는 맞추지 못해서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흥, 하고 비웃음을 날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쯤 되니 그들에게 내가 순수혈통과 어울리느냐 아니냐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애초부터 그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리우스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공동 과제를 준 빌헬름 교수님이 미웠다.

머글 연구 교실에 도착하자 시리우스가 먼저 와 앉아 있었다. 이 기분에서 그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나는 대충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도 빌헬름 교수님이 곧바로 교실로 들어왔다. 그는 나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했지만, 교수님 바로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걸 만큼 만용을 부리지는 않았다. 우리가 앞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운 것인지 몰랐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볍게 인사하고는 교실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시리우스가 내 팔목을 잡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 좀 해.”

“무, 무슨 얘기요?”

나는 깜짝 놀라 대꾸했다. 시리우스는 그대로 나를 당겨 자기 앞에 세웠다. 조금 거리가 가까운 것 같아 나는 뒤로 약간 물러났다.

“너 요즘 왜 나를 자꾸 피하냐.”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시선을 돌리며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피하는 거 아닌데요.”

“피하는 게 뭐가 아냐.”

학생들이 나가면서 나와 시리우스를 흘끗흘끗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몇몇 학생들은 흥미롭다는 듯 빤히 우리를 주시하기도 했다. 기분이 상했다. 로웨나 블루로즈가 시리우스 블랙에게 꼬리를 치느니 뭐니 하는 소문이 돌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갑갑해졌다. 시리우스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나는 내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피하는 거 아니니까, 용건 있으면 말하세요.”

“용건이 그건데. 왜 피하냐는 거.”

그는 집요하게 물었다.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싫다는데 왜 이렇게까지 물어보지? 아이작이 그리워졌다. 그는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그는 적어도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지켜주는 애였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밀쳐내고 말없이 교실을 나갔다. 뒤에서 시리우스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게서 멀어질 요량으로 걸음을 서둘렀지만, 그는 금방 나를 따라잡았다. 충분히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지만, 일부로 일정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그가 그렇게 따라오니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침내 인적이 드문 복도 끝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몸을 돌려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싫다는데 왜 자꾸 그러세요?”

“뭐?”

그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람이 싫다고 눈치 주면 알아서 좀 떨어져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시리우스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말이 그에게 조금 충격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는 심지어 대답조차 못 하고 서 있었다. 그가 그렇게 멍청히 서 있는 것을 보니 더 화가 났다.

“솔직히 우리, 과제 때문에 이야기 몇 번 한 사이 아니에요? 대화 조금 나눴다고 왜 이렇게 친한 척하는 건데요?”

나는 화를 폭발시키듯 그에게 내던졌다. 시리우스의 귀가 뜨거운 것에 데인 듯 빨개졌다. 내 말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틀림없었다. 조금 통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왜 친하지도 않은 나에게 그렇게 집요하게 구느냔 말이야.

시리우스의 대답이 없었으므로 우리 둘 사이에는 긴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나는 그와 마주하고 있는 이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그때, 시리우스가 던지듯 물었다.

“내가 싫어서 날 피했던 거야?”

그는 차분하게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치솟아 오르던 열분이 그의 눈을 본 순간 사그라졌다. 블랙과 같은 그의 은회색 눈동자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진한 결여감이 비쳐졌다. 내 말에 상처받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다. 갑자기 죄책감이 일었지만, 사과하기에는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대답했다.

“네. 그러니 앞으로는 아는 척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시리우스를 지나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혹여 그가 나를 쫓아올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심지어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와 가까이 있을수록 내 죄책감이 더 배가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비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이. 슬리데린의 행동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것은 스스로의 이중적 잣대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내 화풀이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그저 그가 만만해서 화를 낸 것에 불과했다. 정작 화를 내야 하는 리들 교수에게는, 알렉토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시리우스에게 화를 풀다니. 그가 잘못한 것이라곤 나에게 조금 친절하게 대한 것 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우울할 때 언제나 그랬듯, 블랙이 나타나 주길 바랐다. 점심까지 걸러가며 교내를 뒤졌다. 그러나 블랙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의 마음은 물 속 깊은 곳에 가라앉는 것처럼 더욱 침전되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저녁까지 거르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잠이 제대로 올 리 없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렴풋이 잠이 들었을까, 꿈에 블랙이 나왔다. 그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였다. 나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나는 그 애를 매정하게 집 밖으로 쫓아냈다. 블랙은 떠나지 못하고 집 앞에서 밤낮으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울면서 잠이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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