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21화 (21/115)

0021 / 0115 ----------------------------------------------

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5)

토요일 아침 아이작이 덤스트랭으로 가는 길을 전송했다. 고작 한 달 떨어져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 있는 덤스트랭에서 입을 겨울옷은 잘 챙겼는지, 혹여 잊은 교과서는 없는지 꼼꼼하게 물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 나보다 훨씬 철저한 그가 중요한 것들을 확인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덤스트랭도 호그와트처럼 교가를 마음대로 부를까?”

“거기 교장은 덤블도어 교수님처럼 개방적인 성격은 아니래.”

그가 나에게 설명했다. 아마 교가가 있어도 음과 가사가 다 정해져 있을 거야. 나는 아이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그와트성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으나 아직 호그스미드 역으로 떠나는 마차가 도착하지는 않았다. 바깥으로 나오니 날씨가 훨씬 더 추워진 것 같았다. 래번클로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대충 목을 휘감은 아이작의 목도리를 제대로 여며주었다. 덤스트랭의 추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마차를 기다렸다.

그가 곧 떠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아무래도 그가 없는 호그와트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지는 않고 내가 말했다.

“나 없다고 밤에 울지 마.”

“밤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울어달라는 의미지?”

나는 그의 대답에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아이작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첫 편지는 꼭 눈물에 젖은 베갯잇을 동봉하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답장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반 장난식으로 덧붙이며. 그는 셰벗을 통해 받을 수 있을 테니 답장이나 제 때 잘 보내달라며 내 농담에 동조해주었다.

그동안 마차가 호그와트에 도착했다. 짐 가방을 마차 뒤에 집어넣는 것을 같이 도와주었다. 대부분의 짐을 다 보내서인지, 그렇게 가방이 많지는 않았다.

아이작이 내 두 손을 잡고 말했다.

“로웨나, 무슨 일이 있으면 꼭 편지 보내야 해. 알겠어?”

그의 심려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는 조금 감동했다. 아이작은 호그와트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알겠어. 편지 자주 할게.”

그리고 나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며 말을 덧붙였다.

“덤스트랭 애들한테 지면 안돼. 호그와트 학년 수석의 저력을 보여줘.”

“그래. 걔들한테는 내가 호그와트에서 가장 열등생이라고 말해야겠다.”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며 아이작과 하이파이브했다.

“한 달 뒤에 보자!”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아이작이 타자마자, 세스트랄이 이끄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세스트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마차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구르던 마차는 곧 빠르게 호그와트를 벗어났다.

아이작이 떠났다. 나는 마차가 떠나고도 한참을 서 있다가, 공허한 기분으로 호그와트 성으로 향했다.

* * *

아이작이 없으니 나의 아침은 좀 더 허전해졌다. 일상의 어느 한 부분이 사라진 것 같았다.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지만, 식사시간이 이전처럼 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아이작 다음으로 친했던 요한이나 데이지 같은 애들과 근근이 대화를 나눴다. 지금까지 호그와트에서 아이작 없이 생활해 본 적이 없으니 그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화요일에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약초학 수업을 들어갔다. 거의 아이작과 같이 조를 이루곤 했는데, 이번 수업 시간에는 혼자 실습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스프라우트 교수는 혼자 남은 나에게 필리다를 붙여주었다. 그녀의 조 구성원이 세 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의 지시에 그녀는 별말 없이 내 옆에 와서 섰다. 솔직히 그녀와 그렇게 대화를 많이 나눠본 적은 없었다. 4년 동안 같은 기숙사에서 부딪혀왔으므로 대화를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한 편이라 볼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금 머쓱해져 교수님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했다.

“이번 시간에는 튀어오르는 구근(Bouncing Bulbs)을 붙잡는 실습을 하겠어요.”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이름 모를 잡초 같은 것의 잎 부분을 잡고 잡아당기니, 흙 속에서 뿌리가 튀어나왔다. 그 반동이 너무 쎄 스프라우트 교수의 몸 전체가 휘청였다.

“이렇게 구근이 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몸통 부위를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몇 가지 기술적인 부분을 간단히 설명하고는 직접 실습을 시켰다. 하지만 첫 시도 때 으레 그렇듯, 대부분의 학생들이 날쌔게 튀어 오르는 구근의 반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손을 놓쳤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잡초들이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구근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출입문을 봉쇄해놓았으므로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쯤 되자 나는 잡초의 잎에 손을 대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내가 먼저 할까?”

다행히도, 필리다는 손을 걷어붙이며 물었다. 굳이 내가 허하지 않아도 먼저 할 기세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녀는 마법을 써서 옆에 있는 컵에 물을 담더니, 잡초에 물을 뿌렸다. 그리고는 잡초 앞에 서서 양손으로 잎을 잡았다. 그녀가 잡아당기자, 구근이 튀어 오르는 정도가 다른 아이들의 것에 비해 덜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물을 왜 뿌렸어?”

“구근은 식물이잖아. 물을 매우 좋아하거든.”

아주 당연한 이유였지만,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것이라 나는 약간 감탄했다. 역시 약초광이라고 불릴 만 하구나.

“그렇구나. 난 그런 거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독수리 여왕님도 모르는 게 있구나.”

“언제 때 별명이야.”

나는 얼굴을 붉히면서 한마디 했다. 필리다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능숙하게 구근을 간지럽혔다. 튀어 오를 듯 발작하던 구근이 필리다의 손길에 몸을 비비 꼬았다. 그녀 손에 있으니 마치 순한 양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나는 새삼 감탄하며 필리다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했다. 하지만 필리다처럼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구근의 한 쪽 잎을 겨우 잡아 내리누르며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해?”

“식물도 동물과 같아. 애정 어린 손길은 느껴.”

사실 나는 필리다가 약초에 대한 수집증적인 기질이 있는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무엇인가 남들과는 다른 열정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와 아이작 둘 다 교과서적인 성격이라, 교수가 가르쳐주고 책에 나오는 대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필리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구근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햇볕을 쬐어 보기도 했다. 식물의 뿌리 부분이라 햇빛을 싫어한 것은 당연했는데, 병적으로 튀어 오르는 구근의 잎을 잡아당기느라 꽤 고생했다. 어찌 됐든 그녀 덕분에 약초학 수업이 더 재밌어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약초학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법 수업까지 가는 길을 함께했다. 그녀는 생각보다 나와 말이 잘 통했다. 외향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디 나서서 먼저 이야기를 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필리다는 재치 있게 이야기하는 것에 능했다. 무심한 표정의 그녀가 포모나 스프라우트 교수님 특유의 호들갑스러운 말투를 따라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웃음이 터져 자리에 주저앉았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안나나 스테이시 같은 무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나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필리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타인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그녀 자신이 나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 약초에 대한 광적인 사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녀 또한 보통의 사람은 아니었다. 본인의 개성을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리다의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다르다는 것은 단지 사실일 뿐, 거기에서 옳다 그르다의 가치가 도출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 * *

요즘 계속 리들 교수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를 향한 호그와트 학생들의 여론과 시선은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슬리데린 여학생 몇 명이 내 뒤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동선이 겹쳤을 뿐 나는 저들이 나에게 뭔가 용건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동관의 뒤편에 있는 정원까지 걸어왔는데도 여전히 그들이 내 뒤를 쫓자, 고의적으로 나를 따라 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그녀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대여섯 명의 무리에서 내가 아는 사람은 알렉토 캐로우 밖에 없었다. 알렉토는 붉은 머리카락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녀였다. 하지만 눈썹이 짙고 주름져 있었기 때문에 사납다는 인상을 먼저 받았다. 내 쪽으로 다가오던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한 번 웃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 던졌다.

“안녕, 잡종.”

나는 순간 몸이 굳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저 말의 의미와 무게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반가워. 나 알지?”

그녀를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순수혈통 캐로우 가의 장녀로서, 장남인 슬리데린 6학년 아마커스 캐로우의 여동생이었다. 나보다는 한 학년 위인 슬리데린 5학년이었다. 여자치고 키가 큰 그녀는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요즘 좀 유명하더라?”

그녀의 뒤에 있던 다섯 명가량의 여학생들의 무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가 웃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나에게 던지듯 말을 내뱉었다.

“걔 순수혈통 남자들이랑만 어울리기로 소문이 났잖아.”

퍽 대단한 가문 출신인가 봐, 다른 하나가 비꼬듯 던졌다. 블루로즈? 들어본 적 있니? 아니, 그런 성을 가진 마법사가 있기나 해? 그들은 내가 들으라는 듯 낄낄거리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모든 것이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이거였구나. 내가 감히 순수혈통과 어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애초에 반항할 생각 자체를 접었다. 저쪽은 다수고 나는 하나였다. 여러모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을 기분 좋게 하거나 기분 나쁘게 할 것임이 분명했다. 둘 다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본즈를 끼고 시시덕거리면 됐지 블랙까지 건드려?

리들 교수 앞에서도 알랑거린다던데? 무리 중 한 명이 말했다.

“역시 머글 출신이라 주제 넘치는 욕심이 많아.”

다른 하나가 비웃음을 담은 채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모욕적인 언사가 쏟아졌다. 입을 다물고 있던 알렉토가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나는 뒤로 약간 물러섰다. 이에 개의치 않고 좀 더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니가 멀쩡히 살아있는 건 여기가 호그와트이기 때문인 건 알고 있겠지?”

그것은 명백한 협박이었다. 최근의 머글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나는 지팡이를 세게 쥐었다. 그들의 괴롭힘은 말에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저들이 갑자기 나를 공격이라도 한다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지팡이밖에 없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그때, 무리 뒤편의 여자가 마법을 시전했다. 갑자기 내 지팡이가 위로 솟구쳤다. 지팡이를 꽉 쥐고 있었던 나는 솟아오르는 반동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그들은 넘어진 내 모습을 보고 숨이 넘어가라 깔깔거렸다.

내 지팡이를 손에 쥔 슬리데린 무리 중 하나는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정원 바깥쪽으로 지팡이를 던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넘어지며 치마가 들린 것 같아 신경 쓰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캐로우가 내 발목을 밟았다. 나는 낮게 비명을 지르며 다시 주저앉았다.

“나 이럴 때 쓸 만한 재미있는 게 있어.”

여자들 중 하나가 소환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옆에 검은 공이 소환되었다. 아니, 공이라기보다는 물풍선에 가까운 것 같았다. 거의 성인 얼굴 크기의 물풍선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지팡이를 휘둘러 풍선을 내 위에 띄웠다. 발을 밟혀있던 나는 어디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지팡이를 겨눈 채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에서 쏟아진 빛에 맞아 풍선이 터지며,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내 얼굴에 그대로 쏟아졌다. 검은 마법사 잉크였다.

“이제 좀 어울리는 것 같네.”

잉크에 가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귀에서는 슬리데린 여자 무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비볐다. 하지만 손에도 잉크가 묻어 쉽사리 닦이지 않는 것 같았다.

“네 주제를 알고 나대지 마, 알겠어?”

겨우 시야를 확보하자, 알렉토는 나를 밟고 있던 발을 뗐다. 그녀가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발을 터는 것이 보였다. 알렉토는 비웃음을 담아 나를 흘끗 바라보고는, 그대로 내 뒤쪽으로 지나갔다.

“지가 무슨 로웨나 래번클로야, 잡종 주제에.”

무리 여자애들이 한마디씩 하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중심으로 검은 잉크가 퍼져 있었다. 마치 내가 악의 축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슬리데린이 건드린 것치고 이 정도에서 끝낸 것은 다행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나에게 심대한 해를 끼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단지 나를 향한 경고일 뿐이었다. 더 이상 눈에 띄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검은 잉크를 뚝뚝 떨어뜨리며 나는 내 지팡이가 떨어졌다고 추정되는 정원 바깥쪽으로 걸어갔다. 지팡이는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다행히도 부서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가벼운 마법 몇 개를 먼저 시전해보고, 작동 상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내 머리 위쪽으로 지팡이 끝을 향하게 한 채 주문을 외웠다.

“아쿠아멘티.”

지팡이 끝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몇 번 그렇게 물을 뿌리고 나니 다소 나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마법사 잉크의 점성이 강해서인지 몇 번 시전을 해도 여전히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망토와 마이, 조끼와 넥타이까지 그 자리에서 다 벗어버렸다. 입고 있던 흰 셔츠 위에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까맣게 젖은 망토를 두르고 검은 잉크를 흘리면서 기숙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망토에 묻어있는 잉크를 짜내며 생각했다. 아이작이 떠나고 나서야 그들이 나를 건드린 것은 명백히 의도된 것이었다. 나는 슬리데린 무리의 기회주의적 면모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쩌면 그들은 아이작이 덤스트랭으로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정원 멀리서 무엇인가 다가오는 것이 시야에 잡혔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곧 그 형체가 블랙임을 알아차렸다.

그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낮게 짖었다. 블랙은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놀란 기색이었다. 아마도 근처를 방황하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다가오는 블랙의 은회색 눈망울에 나에 대한 심려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는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안녕, 블랙.”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블랙과 눈을 마주쳤다. 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걱정스러워 하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이제 우리가 완전히 친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블랙이 평소보다 좀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에게는 까만 잉크가 묻은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조심스레 다가온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혀로 내 볼을 살짝 핥았다.

“마법사 잉크는 몸에 좋지 않아. 먹으면 안 돼.”

내가 블랙의 얼굴을 밀어내며 도리질했다. 분명 내 말을 알아들었을 텐데도, 블랙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볼을 계속 핥았다. 그의 혀에 까만 잉크가 묻어나는 것이 보였다. 잉크를 닦아주려는 것 같았다. 다정한 그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 오늘 너랑 많이 닮았지?”

나에게 다가와 어떻게든 잉크를 닦아 주려는 블랙을 애써 막으며 등을 쓰다듬었다. 웬일인지 그는 내가 등을 쓰다듬는데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편한 자세에서 그의 등을 만질 수 있도록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바짝 붙은 블랙에게는 신기하게도, 동물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체취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었다.

블랙은 내가 기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자신을 쓰다듬으라는 듯 아예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가 내 기분을 알아주고 배려하는 것 같았다. 결을 따라 부드럽게 블랙의 등을 쓸며 내가 말했다.

“난 말이야, 예언자 일보에 머글 마법사 살인 사건이 수없이 실리고, 반머글차별법이니 뭐니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호그와트에 있는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난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온전히 아이작의 가문 덕분이었다. 그의 존재가 알게 모르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어. 이건 그냥 내가 받을 차별의 서두에 불과하다는 걸. 애들 장난 정도의 유치한 것에 지나지 않잖아. 적어도 머글 출신이라고 살해당하진 않았으니까.”

예언자 일보에서 봤던 한 머글 마법사의 투서가 생각났다. 머글 출신에게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사회에 분노하면서 그는 마법세계를 떠나버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그와트는 안전한 축에 속했다. 내가 사회에 나갔을 때 받게 될 굴욕감에 비해서는, 이 정도는 약과였다. 나는 이보다 더 심하고 잔인한 차별을 받을 수도, 멸시를 받을 수도 있다.

“난 이런 유치한 장난에 쉽게 굴복하지 않아. 절대로.”

나는 블랙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말에 가까웠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몇 번이고 각오를 되새겼다.

============================ 작품 후기 ============================

선작과 추천수 급증ㅇ0ㅇ!! 전 깜짝 놀랐습니다..

왜지? 했는데 패러디 분야 투데이 베스트 순위에 올랐군요.

선작 유지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글 쓸 의욕이 샘솟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