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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4)
“이미 두 달이 넘게 배워왔으므로, 여러분은 이제 아씨오와 디풀소가 모두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마법 수업에서는 학기가 시작되고 거의 두 달간 소환마법과 추방마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실습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본적인 시전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두 마법은 기교가 상당히 필요한 종류의 것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소환하거나, 멀지 않은 곳으로 추방하기는 쉬웠으나 물건의 크기에 따라, 혹은 위치에 따라 조금씩 컨트롤이 필요했다. 가령 유리컵 같은 경우는 장애물을 피해서 소환 혹은 추방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리컵을 도중에 떨어뜨리거나, 부딪치거나 하면서 깨뜨리곤 했다.
플리트윅 교수님이 특유의 꽥꽥거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실습은 이 정도로 된 것 같으니, 오늘은 마법 이론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지요."
그가 마법 책 134페이지를 펼치라고 말했다. 마법의 종류에 관한 챕터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마법에는 암송마법, 무언마법, 의지마법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암송은 지팡이와 함께 주문을 외우면 발현되는 마법을 뜻하고, 무언마법은 지팡이만 휘두르면 발현되는 마법, 그리고 의지마법은 주문도 지팡이도 없이 의지만으로 발현되는 마법입니다. 발현하려는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같은 마법이 암송마법이 되기도, 무언마법이 되기도 하지요.
보통 성인 마법사들은 익숙하고 자주 사용하는 마법의 경우는 무언으로도 시전 할 수 있습니다.”
플리트윅 교수님은 공중부양 마법을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보여주었다. 열 권 정도의 책이 한 번에 공중에 띄워졌다. 내가 알기로 일반적인 성인 마법사들은 문을 닫는다던가, 불을 끄는 등 몸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단순한 행위의 경우 주문 없이 지팡이만 휘둘러도 쉽게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책 열 권을 한 번에 띄우는 것은 기본적인 마법이라고 보기는 힘들어 보였다. 나는 새삼 플리트윅 교수님에게 감탄했다.
“하지만 일반 마법사에게 의지마법은 보통 마법사의 신체에 심각한 위악이 가는 위급한 상황일 때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죠. 아주 소수의 마법사들만이 본인의 자유의지로 의지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플리트윅 교수는 그 자리에서 공중부양 마법을 보였다. 그는 지팡이를 휘두르지 않고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깃펜을 띄웠다. 그건 마법이라기보다는 초능력 같은 느낌이었다. 그가 의지마법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깃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시리우스도 지팡이 없이 성냥개비 크기의 불을 소환했지. 그 또한 선택받은 소수의 마법사겠구나.
“여러분 중 몇몇은 익숙한 마법을 지팡이만으로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을 겁니다. 무언마법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체득되기도 하고, 연습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요.”
흘끗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기초적인 마법의 경우 주문을 외우는 것 없이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시전하는 단계였다. 그에게는 이런 수업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플리트윅 교수님은 무언마법과 의지마법의 사례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있기 전의 중간평가 때 관련된 문제를 낼 생각인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지도 못하는 의지 마법 같은 걸 왜 배우고 있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끝까지 수업을 들었다.
마법 수업을 마치고 아이작과 나는 의지마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회장을 나왔다. 지팡이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의지 마법은 타고난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에 관해 래번클로 특유의 논쟁이 붙었다.
“의지 마법은 타고나는 거야. 노력으로 어떻게 이룩할 수 없다구.”
나는 타고난 것이라는 쪽의 편을 들었다. 나름 노력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내 입장에서는 노력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마법적인 능력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플리트윅 교수님 케이스 같은 경우도 있어. 그의 능력은 후천적이야.”
아이작의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플리트윅 교수님은 처음부터 뛰어난 마법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마법을 쓸 수 없는 고블린의 피가 섞여 있으므로 선천적 마법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그와트 재학시절 그는 아침 도깨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일 새벽에 일어나 호그와트 정원에서 마법을 연습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이작은 그의 마법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갈고 닦은 노력의 일환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의 노력은 범인이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나는 플리트윅 교수님이 일종의 노력이라는 재능을 타고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의지마법 논쟁은 결국 답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흐지부지되었다.
플리트윅 교수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점심 식사가 차려졌다. 오트밀을 뜨며 아이작이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잘 모르겠는데.”
아이작이 조금 주저하는 것이 보였다.
“플리트윅 교수님, 니플러 같지 않아? 난 교수님 볼 때마다 책을 파서 들어갈 것 같아.”
나는 아이작의 말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크게 웃었다. 너무 적절한 비유였기 때문이다. 니플러는 주둥이가 긴 도깨비의 애완동물로 땅을 파는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었다. 엊그제 있었던 고대 룬 문자 수업 시간에 삽화로 나왔었는데, 그 삽화에서 니플러는 짧은 팔과 짧은 다리로 두리번거렸다. 생각해보니 그 모습이 마법 실습 시간에 학생들 각각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빼 드는 플리트윅 교수님의 몸짓과 똑같았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살짝 맺힌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리들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순간 숨이라도 멎는 줄 알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교사 테이블에서, 정확히 나를. 너무 놀란 나머지 의식하지 못한 채 딸꾹질이 나왔다.
아이작이 리들 교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웃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은 내가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애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딸꾹질 탓을 했다.
“가, 갑자기 딸꾹질이… 딸꾹! 너무 웃어서 그런가 봐…….”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플리트윅 교수님의 말버릇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곧 화제는 래번클로 기숙사 학생들의 말버릇에 대한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옮겨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리들 교수에게 온 관심이 쏠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리들 교수는 금방 식사를 끝내고 맥고나걸 교수와 연회장을 나갔다. 그의 동선을 주시하면서도, 나는 태연한 척 아이작과 대화를 계속했다. 그가 연회장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쉽사리 긴장감을 풀 수 없었다. 어디선가 리들 교수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 *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는 온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리들 교수가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로 두려움이 일었다. 저주의 시범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첫 수업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 리들 교수에게서 어둠의 마법을 많이 사용해 본 사람 특유의 능숙함을 느꼈었다. 그게 단순히 내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니. 그는 아마 저 지팡이로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겠지.
그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일을 저질러 왔을지는 상상조차 할 없었다─ 나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게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바로 지워버렸다. 혹여 밤에 있을 오클러먼시 수업에서 이러한 기억을 읽히면 리들 교수가 어떤 처벌을 내릴지 몰랐다.
사실 리들 교수는 내가 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든, 분노감을 느끼든, 그의 행위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내 생각 따위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내가 리들 교수에게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한다. 내 성격상 이길 가능성도 없는 상대에게 덤벼드는 무모한 짓을 할 리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정신이 나가 그에게 덤벼든다 해도 상대가 안 될 것임은 자명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은 조금 일찍 끝났다. 저녁 식사시간은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지금 연회장에 가봤자 시끄러울 것이 뻔했으므로, 나와 아이작은 복습을 하고 갈 요량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빠져나가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아이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내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되물었다.
“리들 교수랑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무슨 일이라니. 아무 일도 없어.”
나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책에 시선을 돌렸다. 보통은 이러한 태도를 보이면 아이작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그는 내가 읽던 책을 빼앗아 덮어버렸다.
“솔직히 말해. 리들 교수가 너한테 무슨 해코지라도 했어? 약점을 잡거나?”
아이작이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분명 뭔가를 눈치채고 알아낼 준비를 한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나마 눈을 마주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아니, 첫 교수직이잖아. 일이 바쁘셔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으신가 봐.”
“왜? 굳이 래번클로인 너를 불러내는 거야? 슬리데린에도 학생 많잖아?”
“그, 글쎄. 내가 제일 편했나 보지.”
이렇게 어수룩하고 설득력 없게 대답하는 건 나답지 않은데.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 그럴듯한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아이작이 리들 교수와 나의 관계에 관해서 묻는 것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냐. 단순한 사제지간의 느낌은 아냐. 너, 알아? 리들 교수가 부를 때마다 손이 떨리는 거? 넌 교수님이 널 부른다고 덜덜 떠는 애는 아니지. 오히려 항상 지목당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잖아.”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은 내 속내를 생각보다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실 나는 모든 수업에 대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해왔으므로 교수님이 무엇인가 질문을 할 때마다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굳이 손을 들어 잘난 척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항상 고개를 들어 교수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목해 달라는 강한 의지를 내비추곤 했다. 아이작이 이미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졌다.
그렇지만 리들 교수님이 부를 때마다 손이 떨렸다는 사실은 나도 인지하지 못했다. 수업 시간이든, 수업 외 시간이든 그가 내 시야에 보이면 나는 목숨을 위협받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아이작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로웨나.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당장 이번 주 토요일부터 나는 한 달 동안 호그와트를 떠나 있어야 한단 말야.”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너 혼자 두고 걱정돼서 어떻게 가냐.”
걱정된다니.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염려가 적나라하게 비쳤다. 말투가 약간 애원 조에 가까웠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약해지는 건 당연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기대고 싶었다. 입만 열어도 새끼 병아리처럼 진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충동을 억지로 참아내며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솔직히 말해서 리들 교수와 무슨 일이 있는 건 맞아. 내가 말하지 못하는 건, 이게 리들 교수님의 신상과 관련된 것이라 누군가에게 함부로 발설하기 좀 그래서 그래. 교수님이 부를 때마다 놀라는 것도, 혹여 내가 교수님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
말을 내뱉어 내고도 스스로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아이작에게는 내 변명이 그렇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여전히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네가 염려할 만한 일은 아냐. 교수님이 나에게 뭔가 해코지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아.”
……아직은. 뒷말은 삼키며 나는 아이작에게 내 특유의 선량한 눈빛을 비추었다. 교수님들이 좋아하는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절로 가는 눈빛을. 그는 내 말을 전부 믿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더 이상 캐낼 수 없다고 느꼈는지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으휴, 로웨나 블루로즈. 내가 너 혼자 호그와트에 두고 가려니까 안심이 안 된다.”
“너 없이도 안심하게 잘 있거든.”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톡 쏘아댔다. 책을 챙기고 일어나며 그는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분명 마법의 약 시간에 월장석 가루 대신 티터디 용액을 넣을 테지. 천문학 시간에는 목성 대신 화성을 보면서 네 번째 행성을 찾을 수 없다고 투덜댈 테고.”
“야, 그건 실수잖아.”
이를 꽉 깨물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뭐 저런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사실 내가 사소한 실수를 할 때마다 옆에서 아이작이 고쳐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 이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리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덤스트랭은 마법의 역사 교과과정이 호그와트랑 다르다고 했으니, 한 달 동안 필기 잘해. 토시 하나라도 빠져 있으면 덤스트랭에서 호울러를 날려버릴 거야.”
“걱정 마. 빈스 교수님의 기침 소리 하나까지도 적어놓을 거니까.”
유령 교수인 빈스 교수님이 기침을 할 리가 없었다. 그는 내 머리를 한번 쥐어박더니 재미없다고 한마디 했다. 내가 무엇인가를 숨긴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지만 아이작은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그에게 고마웠다.
그는 저녁을 먹기 전 덤블도어 교수님과 면담이 있었기 때문에 교실 앞문 쪽으로 먼저 나갔다. 대연회장에 가기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교실에 남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글자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하기는 했지만, 사실 요즘은 모든 것이 걱정 투성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한번 흔들었다. 기숙사라도 가 있어야겠어. 이 시간에는 룸메이트들이 없겠지. 나는 책을 챙겨 뒷문으로 나왔다.
“가장 친한 친구인 모양이군요, 블루로즈 양.”
나오자마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몸을 굳혔다. 팔짱을 낀 채로 리들 교수가 문가에 기대어 서 있었다. 내 머리 깊은 곳까지 모든 것을 읽은 리들 교수가 아이작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먼저 말을 걸 때면 언제나 그렇듯, 나는 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면서도 태연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다 듣고 계셨어요?”
“물론. 애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게 내 업무 중 하나니까.”
자연스럽게 다시 반말을 쓰며 리들 교수가 대답했다. 그가 내 일상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숨이 콱 막혀왔다. 그때, 그의 강한 레질리먼시가 기억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그의 레질리먼시를 방어하며 나는 수업 시간에 들었던 저주 마법 몇 가지를 떠올렸다. 위장용 기억이었지만 지금 같이 분노가 차 있는 상태에서는 사실 저주에 대한 기억이 더 명료하게 일었다.
리들 교수는 제법이라는 표정이었다. 금방 레질리먼시를 거두고 그는 검은 눈동자로 나를 직시했다.
“네 친한 친구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길 원한다면 엉뚱한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보셨잖아요.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글쎄. 그다지 만족스러운 대화는 아니었는데.”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죄송해요,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그는 내버려 두세요, 제발.”
나는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말했다. 덜컥 그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작을 살해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리들 교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지금 기분이 저조한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그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정에의 호소가 효력이 없다는 걸 알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빈정거리는 웃음이 담긴 말투였다. 나는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기분이 나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쁜 기분을 풀 상대가 나임은 확실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지켜보면서 무엇인가 나를 가지고 놀만 한 거리를 찾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장난감이 필요했던 거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삼키며 나는 억지웃음을 보였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할게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납득하도록 하지.”
그는 팔짱을 풀고 지팡이를 휘둘러 교실 문을 닫았다. 타닥거리면서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들렸으나 쳐다보지는 않았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내리깐 채 그의 구두 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종하는 태도였지만, 눈을 마주치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버릴 것 같았기에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럼 블루로즈 양, 오늘도 수고했습니다. 내일 교수실에 들리는 것, 잊지 않도록 하세요.”
“네, 교수님.”
나는 고개를 숙이고 기숙사 쪽을 향했다. 멀리 후플푸프 학생이 복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가 이 정도로 끝난 것은 저 학생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온몸이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특히 두통이 가장 심했다. 레질리먼시를 방어하기 위한 오클러먼시를 쓴 후에 있는 후유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내가 그자의 수하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편도 아니었고, 죽음을 먹는 자들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어둠의 마법을 쓰든, 어떤 악랄한 일을 저지르든 나에게 피해만 없다면 나는 그 한심하고 유치한 전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마치 ‘그 자’의 충실한 부하라도 된듯 한 이 기분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분노를 표하려던 마음이, 처음 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알았던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나는 너무 무서웠다. 그가 나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오클러먼시를 밤새도록 공부하지 않았던가.
나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비참해 울컥 토기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분노가 흘러나간 공간을 우울이 가득 채웠다.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마음 놓고 울 만한 공간도 없었다.
내 편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라도 할까. 아니, 만들어서도 안 된다. 어떤 누구에게 리들 교수의 비밀을 고백할 것인가? 말을 꺼내는 순간 그에게 무참히 살해당할 것임을 알면서.
============================ 작품 후기 ============================
1.
코멘트들에 답변을 다 해드리고 싶은데
앞으로의 스토리 진행을 위해 열심히 자제하고 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도 아니고,
저 혼자 모든 걸 감추고 있는 게 이렇게 갑갑할 줄이야.. 스포하고 싶어....
특히 코멘트를 자주 해주시는 분들껜 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제가 즉각 답변 드리지 못해도 서운해 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고 있어요!
저도 독자인지라,
추천 하고 코멘트 하고 가는게 나름 손이 가는 일 이라는걸 알고있습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코멘트 달아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려요:)
2.
오타 및 비문 교정 과정을 거치다가 아이작의 푸른 눈동자가 오랜만에 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롤로그에 묘사 했었듯 아이작은 전형적인 금발벽안입니다.
제가 인물의 외향에 대한 세부적인 설정을 해놓지는 않았거든요.
기껏해야 머리색, 눈동자 색, 키, 몸매, 피부색, 전반적인 분위기, 정도?
그나마도 설정해놓고 소설 속에 제대로 묘사되지 않은 이유가 뭐지? 하고 생각해봤는데 지금 후기 쓰다가 깨달았어요.
전지적 작가가 아니라 로웨나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라서 그렇구나..
블랙과 리들은 막 잘생겼다고 묘사되는데 아이작의 외모에 대한 칭찬은 그리 없는 건 로웨나의 시선이라서 그런 겁니다.
아이작도 귀공자같이 생겼습니다... 아껴주세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