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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3)
오클러먼시를 배우니 시리우스나 아이작같은 순수 혈통 가문에서 자란 이들에게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 어릴 때 이런 걸 배웠단 말이야? 새삼 대단하네. 레질리먼시에 어느 정도의 정신 소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클러먼시는 한동안 사고 자체가 퇴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과도하게 정신력을 소진시켰다. 내 마음을 읽히는 것에도 심적인 부담이 큰데,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그보다 더했다. 첫날 내가 괜히 푹 잠든 것이 아니었다. 난 단지 긴장이 풀려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피곤해서였구나.
4일쯤 되자 나는 하루종일 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월요일 밤에는 기숙사에 들어오자마자 잠깐 침대에 엎드렸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나는 일어나고 나서야 내가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맛도 없어서 아침을 걸렀다. 더 식욕을 떨어지게 하는 것은 오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수업부터는 실습이 있었다.
나에게 가장 자신 없는 수업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수업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순발력이라든가 위기대처능력인데, 둘 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면 잽싸게 해결하기보다는 공황에 빠지는 타입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수업을 이유로 리들 교수를 한 번 더 본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아이작에게 반쯤 끌려가다시피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에 도착했다.
수업 시간이 되자마자 리들 교수가 교실에 들어왔다. 그는 카라가 목까지 올까지 올라오는 재킷 위에 검은 망토까지 둘러서, 진짜 ‘그 자’처럼 보였다. 한 달쯤 전의 나였다면, 아마 저 차림도 너무 멋있다며 동경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겠지.
리들 교수는 차분히 걸어 올라가 연단에 서서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출석을 부르지 않았다. 가끔 지목하여 시키는 것을 보면 이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이름은 다 외운 것 같았다.
“저번 시간에 고지했다시피, 오늘은 방어 주문에 대한 실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모두 일어나 교실 뒤편으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휘둘러 책상을 모두 옆쪽으로 치웠다. 아무래도 이 공간을 그대로 실습용으로 사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는 기숙사끼리 임의로 짝을 지었다. 나는 요한과 짝이 되었다.
“공격은 왼편에 있는 학생이 먼저 하도록 하죠. 어떤 마법을 사용하든 허용합니다만, 아무래도 실습이니만큼 상대방에게 심대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 정도의 선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지팡이를 쥔 채 긴장감 넘치는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내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마법사 결투라도 할 기세야.”
“모든 연습은 실전처럼 하는 거니까.”
“만약 이게 진짜 실전이라면, …릭투셈프라!”
그는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간지럽히기 주문을 시전했다. 미처 방어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정면에서 그대로 마법을 맞았다. 나는 지팡이를 떨어뜨리며 풀썩 주저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다시 쥘 정신도 없었다. 없는 정신력까지 소모해서 웃는 것을 멈추려 노력했지만, 사실 웃기를 멈추는 것은커녕 손을 뻗어 지팡이를 잡는 척조차 할 수 없었다.
사용한 마법의 종류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학생들도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 번에 방어마법에 성공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가한 마법을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요한이 해제주문을 사용해 마법을 무효화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주문효력이 다 할 때까지 웃어댔을 것이다. 거진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진이 빠져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요한을 흘겨보는 척했다.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실전처럼 하라며.”
“이건 ‘실전처럼’이 아니라 그냥 실전이었어. 나도 가만히 있진 않겠어.”
괜히 전의에 불타 나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밌는 공격마법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다가 「멍텅구리들을 위한 장난마법 모음집」이었나, 저자의 이름이 무슨 위즐리 어쩌고였던 조금 오래된 고서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장난질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꽤 오래된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난 마법이 잔뜩 실려 있어서 그 옛날 사람들도 장난치는 건 좋아했나 보네, 라고 생각하면서 훑어보았었다. 뜻밖에 흥미로운 주문들이 있어서 몇 개 외워두긴 했었는데 이제 써먹는구나.
두 번째 공격을 알리는 소리에 맞춰 내가 소리쳤다.
“인테 소누러스!”
요한이 방어주문을 채 다 외기도 전에 내 지팡이에서 나온 빛이 그에게 닿았다. 그러나 그뿐, 그의 신체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요한은 팔다리가 길어지거나, 머리카락색이 변하거나, 입에서 민달팽이가 나오거나, 뭐 그런 결과를 기대했던 것 같았다. 마법을 맞았음에도 별 변화가 없자 그가 갸우뚱했다.
“모야 뵬고 옵댜냐… 읭?”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간지럼 마법이 걸렸을 때보다 더 격하게 웃은 것 같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아기의 것 마냥 귀엽게 변해 있었다. 혀도 짧은 발음이라, 그의 얼굴과 매우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웃겼다. 마치 외국인이 어설프게 영어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보다 더 어색했지만. 그는 목덜미를 쥐며 다시 말하려고 시도했다.
“아, 아─ 내 목됴리가 왱 구랴?”
“내가 알겠어? 목됴리 정말 귀엽네?”
나는 얼른 마법을 풀어달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놀려댔다. 발음 자체가 부정확했기 때문에 해제 마법의 시연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어설픈 발음으로 해제주문을 외우려고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더 크게 웃었다.
“피니트 인칸타템.”
갑자기 내 뒤에서 주문을 외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요한에게 걸려있던 마법이 풀렸다.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았다. 리들 교수였다. 요한은 고맙다는 표정으로 내 뒤에서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요한이 굳은 나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한 것은 다행이었다. 그는 리들 교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마움을 표하며 말했다.
“리들 교수님, 실제 어둠의 마법이 저에게 쏘였을 때 방어가 가능하긴 할까요?”
“무방비한 상태에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과과정의 목표이지요. 처음 도전으로 바로 성공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리들 교수는 나의 바로 뒤에 서서 요한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조언할 뿐이었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이렇게 웃고 떠들 입장은 아니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에 서 있기만 했는데 금방이라도 나에게 저주 주문을 걸 것 같아서 나는 그의 말을 경청하기 위함인 척 몸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공격과 동시에 방어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지금 수준에서는 다소 힘든 듯하니, 먼저 방어마법 시전 실습을 충분히 한 다음 그 시차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블루로즈 양, 한 번 시범을 보여주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프로테고!”
“익스펠리아르무스.”
내가 먼저 방어 마법을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장해제를 걸자 내 지팡이는 그대로 그에게 날아갔다. 이건 시전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마법실력의 차이였다. 마법사로서의 능력 차가 현저했기 때문에 내 방어마법이 아무런 효력이 없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깨닫게 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그에게서 멋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들 교수의 의도를 이해했으므로, 나는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리들 교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그대로 나에게 지팡이를 건네며 말했다.
“지금 이대로도 학생 수준으로서는 상당히 우수한 편입니다. 좀 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기만 하면 문제가 없겠군요.”
요한이 그의 호평에 손뼉 치는 흉내를 냈다.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지팡이를 받았다.
“교수님, 필리다가 방어 마법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다행히도 안나가 그를 불렀다. 그녀는 리들 교수를 열렬히 동경하는 지지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특히 실습수업 중에는 교수를 시도 때도 없이 호출하곤 했다. 그는 곧 안나와 필리다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전에는 그녀의 저런 집요한 모습을 보면 ‘리들 교수가 다소 귀찮겠구나.’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약간 무섭다.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긴 했으나, 모든 사람들을 기꺼이 반기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보통 일반인의 성격적 문제일 경우에는 그냥,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일 때에는 조금 다르다. 나는 안나가 저렇게 귀찮게 굴다가 언젠가 리들 교수의 수하에게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그의 완벽에 가까운 성격을 고려해 본다면 고작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것 같지는 않지만.
요한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엄청나게 많은 마녀들이 좋다고 따라다니겠지?”
“누구? 리들 교수를?”
“어. 잘 생겼잖아. 능력도 있고. 거기다가 뭔가 분위기가 사람을 홀려.”
요한은 한참 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의 실체를 알고 있는 나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뿐이었다. 절대 그를 좋아하는 ‘척’이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요한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리들 교수의 칭찬에 동조했다.
* * *
그 날 저녁, 리들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갔을 때 그는 오전 수업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내 기억을 더듬어가며 나의 오클러먼시 실력의 향상을 도왔다. 이쯤 되니 나에 대한 투자가치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억지로 자제했다. 그가 나의 기억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한, 이런 것들에 대해 깊게 생각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내가 방어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 그의 말대로, 외면적 기억의 구성만 확실하게 해 놓는다면 오클러먼시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레질리먼시를 쓸 수 있는 술자가 잘 없어서 오클러먼시를 배울 기회가 없는 것뿐이지, 오클러먼시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닌 듯했다.
교습을 마치고 래번클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청동 독수리가 어려운 문제를 냈다. 제법 철학적인 질문이라, 30분 동안 골똘히 생각해야 했다. 다행히도 7학년의 이소벨 선배가 아는 문제였다. 이전에 한 번 물어본 적 있는 종류인 것 같았다. 나는 덕분에 기숙사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오니, 휴게실에서 아이작과 래번클로 6학년 에디 히긴스 선배가 마법사 체스를 두고 있었다. 아이작은 내가 들어온 것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의 옆에 상자 더미가 몇 개 쌓여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가 물었다.
“덤스트랭에 보낼 물건이야?”
“옷가지랑 책은 미리 보내놓으려고. 들고 가기 불편하잖아.”
나는 에디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나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다음 수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체스판을 살짝 훑기만 했는데도 아이작의 승세가 보였다. 비교적 여유로운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도서관 다녀왔어.”
리들 교수와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싫어서 나는 둘러대었다. 그 순간 에디가 고심하다가 나이트에 손을 댔다. 나이트가 꽥꽥거리며 불만을 토해냈다.
“나를 움직일 땐 심사숙고해줄 수 없겠냐?”
저 상황에서 나이트를 움직여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체스판을 바라보다가, 에디 선배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에디 선배, 거기 말고 퀸을 C3에 옮겨요. 아이작이 룩만 움직여도 킹이 위험해진다구.”
“오, 역시 독수리 여왕님. 고마워.”
대체 저 별명은 언제까지 쫓아다닐 것인가. 에디가 퀸을 쥐어 C3으로 옮기자 그가 옮기려던 나이트는 껄껄 웃으며 에디를 칭찬했다. 아이작이 투덜거렸다.
“이건 공정하지 못해.”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야.”
내가 방긋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아이작은 곧바로 룩을 옮겨 흑의 비숍을 삼켰다. 꽤 공격적인 전략이었다. 승부욕이 일어, 나는 에디와 합심해 체스를 두었다. 분투했으나 결국 아이작이 이겼다. 나는 애초부터 불리한 게임이었다며 그에게 한 번 더 체스를 둘 것을 권했다. 우리는 밤늦게까지 휴게실에 앉아 마법사 체스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