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7화 (1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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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2 - (1)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잖아. 그렇지 않나?”

한 톤 낮아진 목소리가 뱀처럼 귓가를 쓸었다. 소름이 끼쳤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존대를 쓰는 리들 교수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연구실에서 보았던 그의 차가운 눈매가 떠올랐다.

“교, 교수님… 무슨 말, 말씀인지…….”

“난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성이고 뭐고,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살려달라는 말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살려달라고 말하면 그는 오히려 죽여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다정하고 잘생긴 얼굴이 파충류의 것인 마냥 차갑고 징그러워 보였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이, 일주일 전쯤, 연구실에서…….”

그는 모든 것을 읽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내 머릿속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내 기억력을 삭제하는 마법을 걸어버렸으면 했다. 그렇지만 그 마법은 후에 기억을 조작했다는 흔적이 남을 수 있었다. 리들 교수와 같은 완벽주의자가 그러한 흔적이 남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리들 교수는 내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생각을 하자마자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평소의 그 부드러운 미소와 대비되는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제법 영특한 래번클로군. 그럼 너도,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걸 알 거야.”

“아, 아니에요, 교, 교수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제, 제가 죽으면 오히려 더 수상할 거에요, 저, 저는 머글출신이기 때문에…….”

“난 너를 살해하지 않을 거다.”

리들 교수는 무심한 어조로 내뱉었다.

“사소한 사고가 난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지팡이 없이 외출해서 낙사했다던가, 검은 호수에 빠진 것도 좋겠군. 호기심에 가득 찬 래번클로 여학생이 금지된 숲에 혼자 들어갔다가 변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 이 상황에서 연민에의 호소는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정작 죽음이 코앞의 현실이 되자 이상하리만치 이성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교수님. 저 같은 평범한 애가 갑자기 죽는다면 분명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수상하게 여기실 게 분명해요. 호그와트에서 사람 하나가 죽는다면 그게 타살이든 사고사이든 예언자 일보에서도 크게 터뜨릴 거구요.”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해서 지껄였다.

“요즘 예언자 일보에서는 머글 마법사가 죽기만 해도 난리잖아요. 전 게다가 호그와트 학생에, 머글 출신 마법사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을걸요. 그러면 언론의 관심이 호그와트에 쏠릴 거고, 교수님께서 무슨 일을 계획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에 지장……”

그를 한 번 살피고, 나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아니, 교수님 같은 분이 한낱 예언자 일보의 기사 나부랭이에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그래도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나는 그의 무언을 긍정의 뜻으로 제멋대로 해석하고는, 나를 살려둘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래번클로에요. 스스로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교수님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리가 없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도 그건 충분히 증명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그렇게 내 말을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다 잡은 먹이의 마지막 저항을 여유롭게 관찰하는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죽음이 확정된 상태에서, 사냥감의 필사적인 몸짓이 자신의 흥미라도 돋운다는 표정으로. 그렇지만 나는 그가 그런 태도로 나오면 나올수록 희망 고문이라도 받는 것처럼 더 격렬하게 발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제 마음을 읽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그건 오클러먼시를 배움으로써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원하신다면 깨뜨릴 수 없는 맹세를 해도 좋아요.”

당돌하게 외치고 나는 그의 눈치를 봤다. 안다, 나도 이 말이 터무니없게 들린다는 것을. 죽음을 위협받는 순간에 오클러먼시를 배우겠다는 대안을 제시하다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의 말이 그를 자극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굳이 널 지금 없앨 필요는 없지.”

쓸모가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긍정적으로 들리는 리들 교수의 말에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꾹 참고, 다시금 믿음과 신뢰가 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는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좋아, 2주 안에 오클러먼시를 배우도록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리들 교수가 나를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은 도의적인 이유도, 나의 언변술 때문도 아닌 것 같았다. 그 보다, 그의 머릿속에 나의 어떤 활용가치에 대한 다른 방식의 생각이 정립된 것 같았다. 그가 천천히 덧붙였다.

“너는 똑똑하니 허튼짓을 저지를 거라 생각하진 않아.”

그가 말하는 허튼짓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는 단번에 파악했다. 그리고 그에게 목숨을 담보 잡혀 있는 한, 다른 생각을 할 만큼 내가 그리핀도르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제넘은 잔꾀를 부린다면, 네 주변의 어린 머글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레질리먼시가 어느 정도로 머릿속을 읽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나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그가 말하는 머글들은 우리 가족을 뜻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어떤 말이 상대방의 공포심을 자극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몇 마디 말만으로 충분히 알아차렸다.

* * *

리들 교수는 금요일 밤 연구실에 찾아오라고 명령했다. 그 날부터 나는 저녁만 되면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도서관에 있는 오클러먼시에 관한 책이란 책은 다 꺼내서 미친 듯이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같은 기간에 아이작도 덤스트랭에 보낼 CV(Curriculum Vitae)를 작성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만약 그가 옆에 있었다면, 대체 왜 이런 것들을 공부하느냐고 집요하게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테니까.

오클러먼시는 보통 레질리먼시가 능숙한 마법사에게 도제식 훈련을 받는 방식으로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았다. 오클러먼시에 관한 어떤 책을 읽어봐도, 레질리먼시가 들어왔을 때 모든 생각을 집중하여 방어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내용밖에 없었다. 책을 아무리 뒤져봐야 별달리 나오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금요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목요일 오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눈을 마주친 리들 교수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내 쪽을 보고 차갑게 웃었다. 예전에는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그 웃음이 지금은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기 전에 보내는 냉소처럼 두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마저도 그의 레질리먼시로 읽힐까 봐 무서워 나는 계속해서 다른 생각을 해야 했다. 이 초조함은 금요일이 되어 절정에 달했다. 금요일에는 아침 식사도 거르고 책만 뒤지고 있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머글 연구 시간에도 나는 오클러먼시에 대한 책을 계속 파고 있었다. 이해도 되지 않는 구절을 몇십 번이고 읽으면서 나는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스스로가 제어하려고 노력했다. 수업이 끝나자, 시리우스는 내 책상에 쌓인 책들을 들춰보았다.

“이게 뭐야, 「모든 정신 공격에 대한 방어법」?”

그는 그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요즘 정신계 마법에 관심이 생겨서요.”

시리우스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나는 무심하게 책만 보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오클러먼시 할 줄 알아요?”

“어.”

나는 책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레질리먼시도 할 줄 아는 거에요?”

“아니, 오클리먼시만. 블랙 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오클리먼시 교육을 시켜.”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오클러먼시에 대해 탐독하면서 그 부분도 읽은 것 같다. 명문가에서는 인지 능력이 발달할 시기에 오클러먼시 교육을 필수적으로 시킨다고. 역시 순혈의 명문가는 뭔가 다르구나. 이럴 때마다 계급적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요?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레질리먼시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오클러먼시를 가르칠 수 있다는 거 몰라?”

그 또한 책에서 나오는 말이다. 나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책에 박았다.

“갑자기 웬 오클리먼시야? 누가 니 생각이라도 읽냐?”

“네.”

“든 게 없는데 뭐가 읽히기나 하나.”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쩐지 욱해서 소리쳤다.

“든 게 없다뇨! 뇌세포 하나하나가 지식으로 충만한데.”

“글쎄. 정작 쓸 만한 건 있는지 모르겠네.”

그 생각에는 일정 부문 동의했으므로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슨 죽음을 먹는 자나 오러도 아니고, 마법부의 주요 인사도 아닌데 레질리먼시를 하는 고위 마법사가 굳이 내 머릿속을 읽을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실상 호그와트 학생중에 레질리먼시를 구사할 정도의 능력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레질리먼시는 오클러먼시와 다르게 굉장히 상급의 마법이었다. 마법부의 오러쯤 되면 미숙하게나마 사용할 줄 알게 되고, 소수의 상급 오러만이 능숙하게 구현한다고 들었다.

그걸 알고 있으므로 시리우스는 내 대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이를 나만의 지적 욕구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머리를 쥐어짜며 중얼거렸다.

“머릿속에 두 개의 공간을 만들고 생각을 분리하래요. 대체 무슨 말이야 이게.”

“외부용과 내부용 생각의 공간을 구분하라는 거지. 그래서 레질리먼시를 시도하는 사람이 네가 가장한 외부용 생각을 읽도록 만드는 거야. 마치 기분이 드러나는 것을 인위적인 표정으로 감추는 것처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나도 책을 챙겨 함께 일어났다. 점심을 그다지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으므로 아이작이 연회장에서 기다릴지도 몰랐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말이야 쉽죠…….”

“누가 널 읽는 것 같냐?”

나는 굳이 대답은 하지 않고, 부정의 의미로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리우스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흘러가듯 말했다.

“넌 좀 단순해 보여서 굳이 레질리먼시를 쓰지 않아도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소릴…….”

그의 도발을 상대해 주려다가 참았다. 그는 이렇게 내가 흥분해서 덤벼드는 것을 즐기니까.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말이 나오진 않을 거예요.”

“존경하는 시리우스 블랙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사모와 애정의 마음?”

“아뇨, 시리우스 블랙에 대한 분노와 적의요. 아무래도 레질리먼시에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네요.”

시리우스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듯 낄낄 웃어댔다. 복도 끝쪽에서 슬리데린 5학년인 알렉토 캐로우와 그녀의 무리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내가 블랙과 친한 것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계속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들을 지나쳤다. 지금 나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로부터 죽음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슬리데린 여학생 무리의 시기와 질투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평소 같으면 적당히 블랙과 떨어지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머릿 속에 두 개의 공간을 만들고, 생각을 분리한다. 나는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생각을 분리하려고 애썼다. 마음 같아선 그냥 머리를 두 개로 나눠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심히도 시간은 갔고, 마침내 금요일 저녁이 되었을 때 나는 반쯤은 내 목숨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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