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5화 (1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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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14)

“아이작, 넌 블랙을 왜 싫어하는 거야?”

내 물음에도 그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그가 기분 나쁜 상황에서 내가 괜한 질문을 던진 것 같았다. 그냥 아이작의 기분을 맞춰줬어야 했는데. 그에게 사과를 하려는 순간, 아이작이 한 마디 던졌다.

“난 말야, 권리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해.”

뜬금없는 아이작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리우스를 왜 싫어하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치고는 너무 철학적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이 어떤 지위에서 권리와 혜택을 누려왔다면, 그 만큼 그에게 책임이 있고 감내해야 하는 것이 있는 거야.”

지금껏 살면서 나에게 무엇인가를 책임져야 할만큼의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그 만큼 혜택을 누린 적도 없었다. 나는 그가 하고자하는 말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이작은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딱히 이해 여부를 되묻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한 가문의 가주로서 얻은 지위로 인한 혜택이 있다면, 그 만큼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거야.”

나에게 아이작은 좋은 혈통과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운 좋은 마법사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언급하는 가주로서의 책임감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 이면의 문제인 것 같았다. 아이작은 본즈가의 후계자로서의 무게감과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십처럼 순수혈통의 가계를 입에 담곤 했다. 블랙이 어쩌니, 말포이 가의 누가 어쩌니, 마법사들은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겨했다. 실상 명문가의 자제는 일종의 공인과도 같아서,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법세계에 영향력이 있었다. 게다가 순수혈통 명문가들은 실제적으로 마법세계 곳곳에서 강한 결정권자이기도 했다. 당장 본즈가만 해도, 아멜리아 본즈는 사람들이 차기 장관 감으로 생각하지 않던가.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시리우스 블랙은 너무 쉽게 가문을 버렸어. 자유라는 명목 아래 자신의 책임을 져버렸지. 졸업을 하면 가문에서 이름을 지울 기세라고 하더군.”

나는 소문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므로 정확히 시리우스의 사정은 알지 못했다. 나에게 그는 그저 블랙가의 불량한 가주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본즈가(家) 내외부에서 시리우스 블랙의 행실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시리우스가 가문을 가볍게 여기고 그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았다.

“가주로서의 일도, 가문간의 책무도, 가문에 관련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그게 무책임한 거 아니면 뭐겠어? 명문가 자제로서 누릴 건 다 누리고 그렇게 도망가는 건 비겁해.”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순수혈통으로 태어났을 때의 무게감? 좋은 가문의 직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하는 정도의 상상은 했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책임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작이 보여주는 시리우스에 대한 반감이 어떠한 연유에 기인한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편협하게 시리우스를 재단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아이작의 말도 어느 정도 옳게 느껴졌기 때문에, 사실상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시리우스 블랙을 겪은 것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책임감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한 번 승낙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편인 것 같았다. 오늘 발표만 해도, 온전히 그의 타고난 능력 덕분만은 아니다. 시리우스가 여러 가지 모형을 준비해 발표를 완벽하게 해낸 것도 과제에 대한 그의 책임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리우스를 옹호하는 것이 아이작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에는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나는 굳이 이성을 통하지 않아도 알았다. 아이작의 마음에 제대로 공감하지도 못한 채 내가 말했다.

“맞아. 네가 싫어하는 것도 십분 이해가 돼. 좀 별로이긴 하지, 블랙이.”

내가 생각해도 진실성이 결여된 것 같은 대답이었으므로 나는 아이작의 눈치를 보았다. 애초에 내가 그것을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이작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도, 희미하게 웃는 아이작을 얼굴에서 시리우스를 조금 부러워하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가문을 등지고 나온 시리우스에게 그가 부러움을 표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본즈 가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고, 본즈 가의 예비 가주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의 표정을 잘못 읽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곧 그 생각을 지웠다.

사실 아이작이 꺼낸 말은 내가 조언을 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는 그에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종류의 고민이었으니까. 나는 호박 푸딩 접시를 당겨 그의 앞에 놓았다.

“아이작, 미안해. 이제 블랙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을게. 자, 호박 푸딩 먹고 얼른 기분 풀어.”

“그런 건 아냐.”

“아냐, 이해한다니까. 나도 솔직히 시리우스 블랙이 좋아서 그와 있는 것은 아니었어. 말했잖아, 과제 때문이라고. 이제 과제도 끝났으니 그와 어울릴 일은 없을 거야.”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제를 함께 시작하기 전만큼 머쓱한 사이는 아닐지라도, 그렇게 친하게 지나진 않을 것이라고. 아이작은 스프를 먹다 말고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한 숨을 내쉬었다.

“괜히 말한 것 같아. 방금 나 다른 친구랑은 놀지 말라고 칭얼거리는 것 같았지?”

“어, 조금. 괜찮아. 나 방금 전까지 아이작 본즈가 아니라 호그와트 병설 유치원생이랑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너에게 망각 마법이라도 걸고 싶은 기분이야.”

나는 아이작이 스프 접시에 코를 박으려 하는 것을 막았다. 속내를 터놓고 부끄러워하는 그가 귀여워보였지만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장난 몇 번을 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절대 각자의 공유할 수 없겠구나. 일순 나는 그와 조금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고민이랍시고 털어놓은 것이 나에게는 이질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우리 둘이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해 본 적은 없었지만, 그와 내가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나는 다시 한 번 절감했다.

* * *

금요일 마지막 수업인 마법의 역사 수업이 끝나서야 나는 다시 리들 교수에 대해 생각이 났다. 아이작이고 시리우스고 내 머리를 휘저어 놓고 가는 바람에, 나는 리들 교수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렇게 무섭다고 덜덜 떨어놓고 금방 잊어버리는 나의 무심함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마법의 역사 수업 도중에 아이작이 오늘 저녁에 할로윈 데이 파티가 있다고 귓속말 해 주었다. 며칠 전부터 기숙사 전체가 할로윈 분장을 준비하느라고 들떠 보이더니, 그게 오늘이었다.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기숙사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방에서 미적댔다. 거기서 리들 교수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할로윈 파티에는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나는 작년에 입었던 마녀 복장을 꺼냈다. 올해 키가 좀 크긴 해도 어떻게든 입을 순 있을 것 같았다. 치마가 다소 짧아졌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마녀 모자에 빗자루까지 들고 기숙사를 나왔다. 안나와 데이지는 먼저 연회장에 간 것 같았다. 하긴, 지금 시간도 연회장에 가기에는 약간 늦은 감이 있었다.

연회장은 이미 학생들로 북적였다. 천장에는 촛불이 들어있는 수천 개의 호박이 달려 있었다. 보통 때에는 별빛으로 빛나는 마법 하늘이었던 천장이, 오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먹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가끔 천둥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법 천장 아래로 불타는 것 같은 주홍빛 리본들이 호박을 장식했다. 살아있는 박쥐들이 천장을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입구 쪽에서 하늘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매년 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장관이었다.

래번클로 테이블 쪽으로 향하려는데, 입구에서 릴리와 마주쳤다.

“로웨나, 해피 할로윈!”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녀는 발이 없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릴리, 발이 없어요!”

“어? 이건 유령 분장인데.”

릴리가 다리를 들자, 발이 생기며 투박한 모양의 장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으면 발만 사라지는 투명장화인 것 같았다. 나는 다소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완벽한 유령이네요, 릴리.”

그녀는 심지어 얼굴도 창백하게 화장해 유령같은 느낌을 더했다. 릴리는 나의 말에 생긋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조금 잡아당겼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꺅! 리, 릴리… 뭐예요?”

“Trick or treat! 오늘도 귀엽구나, 로웨나. 눈알이 튀어나오는 장난감이야.”

그녀는 눈알을 그대로 빼서 다치지 않은 내 오른손에 쥐어주었다. 생긴 것도 사실적으로 보이는 눈알은 끈적하고 물기어린 감촉마저도 진짜 눈알 같아서, 나는 얼른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녀는 마치 바퀴벌레라도 받은 듯 놀란 나를 보며 깔깔거리고 웃더니 그녀의 친구와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갔다.

작년보다도 복장이 더 기상천외해진 것 같았다. 맨티고어와 트롤, 유니콘의 분장을 한 아이들을 지나쳐 래번클로 테이블로 향했다. 아직 아이작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를 기다리며 주변을 바라보다 시리우스를 발견했다. 머리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복장이 너무 무난해서 의아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몸을 살짝 돌린 순간, 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흰 셔츠를 입은 시리우스의 복부에 마치 포를 맞은 듯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주변에는 피처럼 보이는 빨간색 잉크까지도 묻어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의 옆에 있는 피터 패티그루가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것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 분장의 원리가 뭔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제임스 포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제임스는, 맙소사.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는 머리가 없었다! 제임스는 자신의 머리를 투명한 통에 넣어서 양 손에 들고 테이블을 누볐다. 그건 지금까지 내가 봤던 할로윈 복장 중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요한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거미 분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 바지를 입고 허리 부근에 몇 개의 다리를 달아놓으니, 진짜 거미 같았다. 하지만 제임스를 본 충격이 너무 커서 그의 복장이 그렇게 놀랍게 느껴지지 않았다.

요한이 말했다.

“투명모자를 사용한 것 같아.”

“응, 분명해. 투명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통 안에 움직이는 얼굴 모형을 집어넣었어. 맞지?”

그렇게 대답하며 요한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요한이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 말이었다. 학생 대부분이 제임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대화를 할 때에도 제법 그럴듯하게 통 속의 머리의 시선을 상대방과 맞춰 마치 진짜 자신의 머리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곧 아이작이 도착했다. 그는 드라큘라 백작의 차림이었다. 긴 송곳니에 머리카락까지 까맣게 염색한 모습이었다. 목 위쪽까지 덮은 긴 카라가 달린 검은 망토까지 두르니 제법 그럴듯했다.

“바티 크라우치 봤어?”

아이작이 테이블에 오자마자 손으로 슬리데린의 크라우치 쪽을 가리켰다. 바티 크라우치는 마치 피부 자체에 투명마법이 걸려, 피부 속이 비치는 것 같은 차림이었다. 근육과 혈관이 섬세해 보이긴 했지만, 내가 먼저 느꼈던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리핀도를 테이블 쪽으로 고갯짓 했다.

“이번 해의 MVP는 제임스 포터라고 장담해.”

그는 고개를 돌려 제임스를 바라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에 앉으니 바로 식사가 차려졌다. 할로윈 만찬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음식들의 데코레이션이 평소와 달랐다. 구운 닭고기는 입을 벌린 호박 안에 있었고, 베이컨 피자에는 해골 모양의 감자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소시지에는 케찹이 마치 피처럼 뿌려져 있었다.

“음식은 작년보다 더 나은 것 같아.”

“응, 작년은 너무 현실적이었어.”

손가락 모양으로 구운 쿠키를 생각하며 내가 몸서리쳤다. 손톱 부분에는 아몬드 까지 박혀 있어서 멀리서 보면 진짜 손가락을 잘라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떨어져 아예 쿠키를 테이블에서 치워버렸었다.

한참을 아이작과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석 쪽을 보니, 아직 교수님들은 연회장에 도착하지 않은 듯 했다. 아예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거미줄 형태로 데코레이션 되어 있는 셰퍼드 파이 한 조각을 잘랐다. 나는 한 조각 더 잘라 아이작에게도 건네주었다.

호박이 래번클로 테이블에 날아온 건 그 순간이었다.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스테이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처음에 누가 테이블 쪽으로 호박을 던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뭐야?”

“호, 호박이 날아오고 있어!”

연회장 천장을 장식하던 호박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아래로 날아왔다. 한, 두 개의 호박을 시작으로 천장에 있던 수백 개의 호박이 연회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연회장 천장의 호박이 유성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멀린 분장을 한 후플푸프 1학년 남학생이 날아오는 호박에 맞고 그대로 기절했다. 완전히 마르고 딱딱한 호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를 기절 시킬 정도로 단단한 것 같았다. 호박은 마치 학생들을 맞추는 것이 목적인 것 같이 끊임없이 날아다니면서 위협했다. 나는 내 쪽으로 날아오는 호박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리브로 헥스!”

마법을 맞은 호박이 큰 소리를 내며 터졌다.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마법에 능숙하지 못한 1학년 학생들이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일부는 기숙사 테이블 아래에 숨은 것 같았다. 마법을 쓸 수 없다면 그게 현명했다. 몇몇 학생들은 지팡이를 휘둘러가며 호박을 터뜨렸지만, 그들이 제거하기엔 호박이 너무 많았다.

이런 재난의 원흉은 하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날아다니는 호박 사이로, 제임스가 시리우스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신나게 하이파이브 하는 것이 보였다. 릴리가 자기 쪽으로 오는 호박을 터뜨리며 그들에게 고래 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다.

“너네는 할로윈 만큼은 좀 자제하면 안 되겠니?!”

“할로윈이니까 더욱 자제할 수 없는 거야!”

제임스의 머리가 투명 통 안에서 릴리에게 소리쳤다. 그걸 쳐다보고 있다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호박을 맞을 뻔 했다. 황급히 지팡이를 휘두르고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능숙하게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호박을 터뜨렸다. 호박은 많고, 그것을 터뜨릴 만큼 숙련된 마법사는 별로 없는 듯 했다.

“누가 더 많이 터뜨리나 해 볼까?”

라카르눔 인플라모레, 하고 외치며 내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지팡이에서 푸른 불꽃이 나와 내 쪽으로 날아오던 호박에 맞았다. 호박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조금 튀었다. 나의 말이 그의 호승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수동적으로 서서 다가오는 것만 대충 쓰러뜨리던 아이작이 지팡이를 고쳐 쥐었다.

“좋아.”

나는 아이작과 래번클로 테이블에 올라가 신나게 마법을 쓰며 날아다니는 호박을 깨뜨리고 다녔다. 옷에 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겁에 질려 달아나는 퍼프스캔 복장의 2학년 래번클로 학생의 뒤를 쫓는 호박을 박살내기도 했다. 변신술 마법을 써 날아오는 호박을 호박젤리로 변신시켜버렸다. 가벼워진 무게 때문에 추진력을 잃은 호박이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했다.

“제법 창의적인 방법인데?”

아이작이 그걸 보더니 주문을 외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는 호박을 사과 씨 만큼 작게 만들어버렸다. 그때부터 아이작은 호박을 터뜨리는 대신, 이런 저런 방식으로 변신시키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호박이 강낭콩, 깃펜, 양말 등 작고 가벼운 물건으로 변했다.

반면 나는 변신술 보다는 호박을 터뜨리는 것이 더 좋았다. 그간 리들 교수에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호박에게 다 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호박 하나를 터뜨릴 때마다 자신감이 샘솟았다. 어쩐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 앞에서도 호기롭게 마법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호박이 그 자의 현신이라도 되는 듯 끊임없이 주문을 쏘아 터뜨렸다. 마루더즈들이 고마워질 정도였다.

연회장이 반쯤 난장판이 되었을 때, 현관 홀 쪽의 큰 문이 열렸다.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그 쪽을 바라보았다. 리들 교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연회장 쪽으로 들어왔다. 그가 지팡이를 들자 더럭 겁부터 났다. 마치 어둠의 마법을 써서 여기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살해할 것만 같았다. 솟아오르던 자신감이 다시 수그러들었다.

“피니트 인칸타템.”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자, 날아다니던 호박들이 갑자기 멈추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호박에 맞은 일부 학생들이 고통을 호소하긴 했지만, 호박에 걸린 마법은 풀린 것 같았다. 나는 혹여 그가 나를 발견할까 두려워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웠다.

뒤이어 맥고나걸 교수님이 들어왔다.

“제임스 포터! 시리우스 블랙!”

교수님은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그들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루더즈 패거리들은 이미 연회장을 떠난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그들은 없었다. 교수님들은 각 기숙사의 반장들에게 상황을 정리할 것을 명한 뒤 황급히 연회장을 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살펴보니, 옷 전부에 호박물이 들었다. 그건 아이작도 마찬가지였다. 반 쯤 흐트러진 그의 머리카락 위에 호박씨가 엉겨 붙어 있었다. 내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한 동안 호박주스는 입에도 못 댈 것 같아.”

“나도. 호박 냄새만 나도 기절할 듯 싶네.”

그는 소매 부분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머리 위에 있는 호박씨를 손으로 털어주었다. 손에 끈적하게 호박물이 묻어났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어댔다.

* * *

“당연히 징계 받았지.”

“뭔데요?”

“2주간 트로피 보관실 청소.”

솔직히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약한 처벌이긴 했다. 나는 천문학 책을 가방에서 꺼내며 생각했다. 할로윈 다음날 도서관에서 만난 시리우스는 나에게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맥고나걸 교수님은 기어이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뒤져 주범 네 사람을 찾아냈다. 그 날 맥고나걸 교수님의 교수실에서 양피지 10인치 분량의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칙 위반에 트로피를 닦는 정도의 처벌이면 장난 한 번 칠 만한데. 그거야 청소 마법을 사용하면 금방 끝나는 거니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시리우스가 덧붙였다.

“지팡이 없이.”

“…힘내요.”

나는 트로피 보관실에 있던 어마어마하게 많은 트로피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절대 교칙을 위반하진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한 거예요?”

“집요정들을 구슬렸지.”

“집요정?”

호그와트에 집요정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집요정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연회장에 호박등을 다는 건 집요정이 하는 일이거든. 호박등을 다는 걸 도와주는 척 하면서 몰래 마법 좀 걸어 놓은 거야.”

그는 나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점심시간이니 연회장이나 가자는 의미인 것 같았다.

“저 공부마저 해야해요. 먼저 가세요.”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차라리 점심을 조금 늦게 먹는 게 낫지, 지금 연회장을 갔다가 리들 교수와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그래? 하더니 별 말 없이 먼저 도서관을 나갔다. 나는 그 후에도 한참을 도서관에 앉아 천문학 공부를 했다.

============================ 작품 후기 ============================

개인적으로 신나게 쓴 에피소드입니다. 자기 머리를 들고 날아다니는 호박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젬스를 상상하면서요. 로웨나랑 아이작이 호박을 팡팡 터뜨릴 땐 애니팡이라도 하는 기분이었어요ㅎㅎㅎ

다음 편은 오는 새벽 1시 반쯤 올라올 예정입니다 :) 아마 분량 조절을 못한 관계로 짧을 듯 해요.

코멘트는 잘 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리코멘트 해드리고 싶지만, 글쓴이 입장에서 이건 이런 의도로 썼다 이런 식의 부가적인 설명이 혹여 읽는데 방해가 될까봐 자제하고 있어요.

그래도 @표시를 한 코멘트에 대해서는 답변을 드리도록 할게요.

언제나 코멘트, 선작, 추천 감사드립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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