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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13)
순간 몸이 굳었지만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분명 감점 좀 됐겠네.”
“내가 병결이라고 말씀드렸어. 폼프리 부인에게 인증서 받아서 다음 수업에 제출하면 된대.”
아이작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어 물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너의 리들 교수가 니가 없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고, 들어오자마자 물어봤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내가 방방 뛰며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리들 교수가 나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고 두렵기만 했다. 나는 훈제관자를 포크로 뒤적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 이제 리들 교수님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뭐? 그렇게 금방?”
어떻게 그렇게 금방 감정이 변해? 하는 표정으로 아이작이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게. 지금 보니 별로인 것 같아. 멋있는지 잘 모르겠어.”
“그 교수랑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별로야.”
그는 뭔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꿔버리니 그럴 만도 했다. 하긴, 무슨 팬클럽이라도 창단할 듯 유난을 떨어댔었으니.
리들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더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몇 입 먹지 못하고 포크를 놓았다. 아이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
“어? 조금. 티 많이 나?”
“아까 병동에서 너무 잘 자길래. 곤히 자서 깨우질 못하겠더라. 너 요즘 좀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아이작이 병동에 왔었나? 생각해보니 병동 침대 근처에 교과서가 놓여 있었다. 내 것이니 아무 생각 없이 챙겼는데, 아이작이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크림 스프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대답했다.
“요즘 악몽을 많이 꿔.”
“무슨 악몽?”
리들 교수님이 나에게 아바다 케다브라를 쏘는 꿈.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항상 달라. 바실리스크가 쫓아오는 꿈같은 거.”
“바실리스크?”
“응, 큰 바실리스크. 항상 먹히면서 꿈에서 깨지.”
“저주 아냐?”
아이작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저주?”
“같은 악몽이 거듭 계속되는 건 저주 때문일 수 있어. 어둠의 마법 중에서, 그런 부류의 마법도 있다고 들었거든.”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왜 이런 꿈을 계속 꾸는지 알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리들 교수에게 신경이 쏠려 있는데 그의 꿈을 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그런 저주를 걸 만한 고위 마법사가 주변에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냥 요즘 피곤해서 그래. 금방 괜찮아지겠지.”
그러면서도, 아이작에게 괜한 걱정거리를 던져줬다 싶어서 일부러 입맛이 돈다는 듯 씩씩하게 식사를 했다. 곧 화제는 다음 주에 있을 퀴디치로 넘어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 * *
그간 나는 리들 교수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에 당일 머글 연구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오늘 발표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여느 때와 같이 시리우스가 자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평소의 시리우스 블랙은 넥타이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망토는 어깨에 대충 걸치고, 셔츠 단추는 몇 개 푼 상태에서 책만 덜렁덜렁 가져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올렸고, 무엇보다 교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었다. 그가 교복 셔츠를 제대로 채우고, 거기에다가 넥타이까지 제자리에 맨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시죠?”
“장난치지 마.”
그가 중얼거렸다.
“이미 많이 놀림 받았어. 도서관 붙박이 유령 같다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그렇게 깔끔한 시리우스 블랙의 모습이 평소보다 더 나아 보였다. 지금의 그는 아이작 못지않은 모범생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평소의 그가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반항적인 탕아라면, 지금은 저택에서 방금 나온 귀공자 같았다. 뒷자리의 후플푸프 여학생 두 명이 벌써 그의 모습을 가지고 귓속말 하는 것이 보였다. 세상은 불공평하구나.
하지만 나는 그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적당히 대답했다.
“그래요. 빈스 교수님처럼 칠판으로 들어오는 줄 알았네요.”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그는 나를 쓱 훑어보며 대답했다. 나야말로 항상 모범의 정석인 차림새를 항상 하고 있었으므로 시리우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꾸를 하려는데 곧 빌헬름 교수님이 들어왔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에게 뭐 어떠냐는 눈빛을 흘렸다.
빌헬름 교수는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학생이 얼마 없었으므로 출석은 금방 끝났다. 그는 그대로 출석부를 집어넣고는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오늘 발표는 블랙 군과 블루로즈 양이죠?”
내가 먼저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발표를 시작하라는 빌헬름 교수의 지시와 함께, 시리우스는 그가 가지고 들어온 검은 가방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를 주시하는 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블랙 가의 차기 가주가 머글 연구 수업을 듣는다는 것도 사실 재미있는 가십이긴 하다. 이를 두고 대연회장에서 학생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시리우스 블랙이 심지어 머글에 관한 발표까지.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 했다.
“오늘 머글들의 운송수단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게 된 시리우스 블랙이라고 합니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박수 소리와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듯 낮은 웅성거림이 지나갔다. 하지만 정작 시리우스는 그런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머글에게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운송수단이 많지만, 머글들이 말하는 과학적 기술력이 가장 정교하게 드러나는 것은 역시 ‘비행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검은 가방을 열었다. 안에서 작은 비행기 모형이 나왔다. 저런 걸 어디서 구했지? 성인 남성의 팔뚝 길이 정도의 비행기가 가방에서 나와 그의 주변을 활공했다. 머글 장난감에 마법을 걸어 놓은 것 같았다.
“비행기는 머글들의 장거리 운송수단으로써, 보통 100에서 200명 정도의 머글들이 단체로 탑승하여 옮겨집니다.”
가방에서 그는 호그와트 천문탑 모형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시리우스의 주변을 돌던 비행기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천문탑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무게는 약 44만 파운드 정도로, 천문탑의 무게에 필적한다고 할 수 있죠.”
시리우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단상 위에 서 있던 천문탑이 살짝 들렸다. 비행기 옆으로 천문탑이 둥둥 떠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놀라움을 표하는 것이 느껴졌다. 머글 들의 기술이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아예 몰랐던 학생들도 많아 보였다. 시리우스는 머글 들의 비행기술에 대해 부가적으로 덧붙인 후, 제트기나 헬리콥터 같은 다른 비행수단을 좀 더 설명했다.
놀라웠던 것은, 그가 그 모든 것의 모형을 다 준비해왔다는 것이다. 시리우스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시청각을 잘 활용했다. 학생들은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그의 발표를 보고 있었다.
그는 육상에서의 운송수단을 설명할 때에도 모형을 사용했다. 사람의 걷는 속도와 자전거의 속도, 자동차의 속도를 단상 위에서 직접 보여주며 비교까지 했다. 그는 그 모든 운송수단이 어떨 때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 작동의 기본적인 원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두서없이 설명한 것을 깔끔하게 정리한 덕에, 좀 더 알기 쉬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저건 그냥 천부적인 발표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발표에 대한 태도도 흠 잡을 데 없었다. 앞에서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었고 시종일관 부드러운 태도와 명확한 목소리로 발표를 진행했다.
빌헬름 교수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운송수단에 관한 한 교수보다도 그가 더 매끄럽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거의 발표를 끝내갈 때쯤 되자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단상 주변을 날아다니거나, 달리거나, 굴러다니던 운송수단을 다시 검은 가방으로 들여보냈다. 모형들은 일렬로 서서 스스로 가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의 크기에 비해 들어가는 양이 많은 것을 보니 마법가방인 것 같았다.
“로웨나 래번…… 아니, 블루로즈 양과 제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시리우스가 발표를 마치고는 학생들에게 인사했다. 학생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그는 나를 길게 한 번 주시하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뒤쪽에서 발표를 보고 있던 빌헬름 교수는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마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잘했습니다. 완벽해요. 블랙 군, 블루로즈 양, 정말 잘했네. 준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티가 나.”
그는 그 후 한참을 우리의 발표에 대해 호평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교수의 강의를 한 귀로 흘러 들으며,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시리우스를 몰래 바라보았다. 솔직히 그가 달라 보였다. 이 정도로 잘할 줄이야. 노는 걸 좋아하는 부잣집 아들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때, 갑자기 시리우스가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왜 쳐다봐? 갑자기 내가 눈을 못 뗄 만큼 잘생겨 보이나?”
그 또한 자신의 발표에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양피지에 적어 내려갔다.
─ 생긴 건 잘 모르겠고, 제법 하시네요.
─ 칭찬이 짜네. 제법 정도가 아닐 텐데. 압도적으로 잘했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긴 했으나 그가 저렇게 거만 떠는 걸 보니 어쩐지 얄밉기도 했다. 나는 깃펜을 들고 한마디 더 했다.
─ 누가 보면 혼자 다 한 줄 알겠어요.
─ 솔직히 완성도를 보면 내 지분이 월등하게 많지 않나?
─ 모형은 다 어디서 산 거에요?
─ 저번 주에 호그스미드에서. 몇 개는 제임스가 구해줬지.
호그스미드에서 저런 것도 파는구나. 나는 깃펜 끝을 턱에 괴고 생각했다. 여하튼 모형으로 실제의 움직임을 재현한 것은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빠져들어서 그의 발표를 보지 않았던가. 비행기를 가장 처음에 언급한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의 발표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나는 빌헬름 교수의 남은 수업을 설렁설렁 들었다. 챕터 자체가 운송수단에 관한 내용이었으므로 수업 내용은 시리우스가 설명한 것에 조금 더 덧붙이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몰랐던 것들만 교과서에 대충 적어 놨다.
수업을 마치고 그는 자연스럽게 내 책을 대신 들었다. 그가 나의 책을 들고 가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어서 책을 뺏으려 시도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쳤으므로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발표 하나 끝내니까 진짜 성취감이 드네요.”
“넌 뭐 발표 한 마디 했냐.”
“수업 질문에 대신 대답했잖아요.”
수업 중 학생이 던졌던 자동차에 대한 질문에 대답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내가 득의양양하게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 발표가 다 누구 덕분이었는데. 나는 내가 직접 준비했던 부분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 발표의 호평이 온전히 시리우스의 능력 덕분은 아님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하든 말든, 그는 별로 영양가 없는 딴죽을 걸어 댔다. 그의 말에 열을 올리며 따박 따박 몇 번 대꾸를 하고나자, 나는 그가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제가 열 받는 게 재밌죠, 지금?”
“응. 안 지려고 덤비는 게 꽤 재밌어. 볼만해.”
그는 낄낄거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우리가 이럴 정도로 친했나? 잠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우리는 연회장 앞 현관 홀에 도착했다. 아이작이 연회장 입구 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다.
“블랙 선배님.”
아이작은 다가오면서 묘하게 나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나는 그가 시리우스를 견제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리우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와 아이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로웨나는 저와 오늘 점심을 함께하기로 되어 있어서, 이만 래번클로 테이블로 데려가야할 것 같습니다.”
“여자 친구 안 뺏어가니까 걱정 마시죠, 본즈 후배님.”
시리우스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이 상황이 조금 재밌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작의 손목을 잡고 힘을 주며 그를 진정시켰다.
“여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엿가락다리 저주를 퍼부을 거예요.”
내가 지팡이를 들고 위협하듯 말했으나 시리우스는 긴장한 척이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양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러다가 너랑 마법사 결투라도 해야 할 기세인데?”
그는 진정하라는 듯 내 어깨를 툭툭 치고 먼저 대연회장에 들어갔다. 시리우스가 장난을 걸고 갔지만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시리우스 블랙에게 농담이란 일상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화를 낸 것도, 아이작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는데, 아이작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사실 그는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질투를 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시리우스와 친하게 지내는 것만큼은 싫어한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장담컨대 그는 누군가에게 감정적인 이유의 적의를 가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시리우스 블랙 정도의 인사는, 인맥을 중요시하는 아이작의 입장으로서는 적대감을 함부로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리우스를 싫어하는 것에는 분명 무엇인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에게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아무래도 지금 직설적으로 말을 꺼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주저하다가 내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