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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12)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꿈에서 리들 교수가 뱀의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파셸 마우스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래번클로의 보관을 찾아오라는 명령이었다.
비교적 충직한 죽음을 먹는 자였던 나는 래번클로 휴게실을 샅샅이 뒤졌다. 보관은 요한이 쓰고 있었다. 나는 토끼로 변해서 그의 머리에 있는 보관을 빼앗아 도망갔다. 그는 따라오지 않았다.
래번클로의 보관은 어느새 그리핀도르의 칼로 변해 있었다. 그때 제임스가 복부에 꽂았던 장난감 칼의 모양 그대로였다. 대연회장의 끝에 예언자 일보에서 보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칼을 바쳤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단번에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리들 교수의 지팡이었다. 그는 지팡이를 나에게 휘두르며 외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그와 함께 나는 눈을 떴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지만, 어제 일어난 일 만큼은 꿈이 아니었다.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갑갑한 마음에 이불을 걷어냈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누워 있어도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욕실로 향했다.
왜 나는 그때 애니마구스로 변신하는 마법약을 마셨을까? 왜 내가 갔던 곳이 리들 교수의 연구실이었을까? 왜 그때 그는 죽음을 먹는 자들과 교신하고 있었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리가 너무 복잡했으나, 샤워를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명확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기를 닦으면서도 나는 어제 봤던 장면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재생했다.
그러고 보면 톰 리들 교수는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어둠의 마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정신계 마법이 특히 빼어났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언변, 능력을 한 꺼풀 벗겨내니 왜 내가 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아니지.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그런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면, 아무도 그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태로 아침에 아이작을 만나면 무슨 일이 있냐고 캐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침을 먹지 않으면 왜 먹지 않았느냐고 닦달할 것 또한 뻔했기 때문에 나는 일찍 일어난 김에 식사를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래, 기운이 없어도 식사는 해야지. 아침은 먹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리들 교수가 아침 식사를 꽤 일찍 하는 편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나는 이전과 같이 연회장 입구 바로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블루로즈 양, 또 아침에 보는군요.”
그가 먼저 말을 걸었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뱀이 쉭쉭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순간 몸이 굳으며, 사고가 정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 안,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를 덜덜 떨고 있는 나를 톰 리들 교수는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늘 몸이 좋지 않은가요? 창백해 보이는군요.”
“가,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괜히 콜록, 콜록 소리를 내면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리들 교수는 다행히도, 몸 관리 잘하라는 한마디를 하고 교직원용 테이블로 향했다. 스프라우트 교수와 같이 식사할 생각인 것 같았다.
아침 내내 아무 말이 없었더니 아이작이 슬슬 내 눈치를 봤다. 그가 나의 기분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침울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기분으로 마법 수업에 가서 실습을 하다가는 뭔가 하나 폭발이라도 할 것 같았다. 아프다고 둘러대고 병동에 가 있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수업에 불참할 수는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진짜 몸이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들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게 얼마나 심했는지, 마법약 시간에 뱀의 눈알을 넣으면서 내 왼쪽 손까지 같이 집어넣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를 주시하고 있던 아이작이 옆에서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더 큰 일로 번졌을 수도 있었다. 손이 덴 나는 병동에 가야했다. 덕분에 그다음 수업인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듣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폼프리 부인은 치료하는 내내 아프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치료를 받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꽤 심한 화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심한 화상도 어둠의 마법이나 극심한 마법적 타격이 아닌 웬만한 물리적 화상은 금방 치료되기 때문이다.
왼손에 붕대를 칭칭 감으며 폼프리 부인은 많이 놀랐을 테니 조금 쉬다 가라며 병동 침실을 하나 내주었다. 평소 같았더라면 바로 수업에 들어갔을 테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리들 교수의 실체를 알고 난 후로 계속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 계속 피곤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병동 침대에 누웠다.
잠깐 누웠는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일어나 보니 점심시간은 물론 고대 룬 문자 수업시간도 끝난 시간이었다. 이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다니. 아무래도 여기는 안전한 곳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만 들어가지 않으려 했는데, 룬 문자 수업까지 빼먹었다. 더 누워있다간 머글 연구 수업까지도 늦을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늦었다. 여기서는 좀 거리가 있으니까. 나는 급하게 일어나 책을 챙겨 머글 연구 교실로 향했다.
* * *
아니나 다를까, 교실에 도착하자 이미 머글 연구 수업 중이었다. 눈에 띄지 않게 들어가고 싶었지만, 교실 문이 앞쪽에만 있었다. 살금살금 문을 여니, 학생들의 시선이 다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교수님께 묵례하며 자리로 갔다. 시리우스는 이미 와서 앉아 있었다.
착석하자마자 책을 펴고 수업에 경청하는 척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머글들은 자신들의 불편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것을 발달시켰습니다. 이른바 ‘이성’이라 불리는 합리적 사고가 과학의 태동이지요. 특히나 머글들은 열역학, 동력학 등을 바탕으로 한 ‘기계’라 불리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고안함으로써…….”
집중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머글과 과학 챕터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이번 주가 발표다. 시리우스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더니 발표 날이 언제인지도 잊고 있었다. 당장 그 사람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발표를 걱정하다니.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는데, 시리우스는 뜻밖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먼저 물어보았다.
“래번클로, 너 손이 왜 그래?”
“마법약 시간에 다쳤어요. 별거 아니에요. 폼프리 부인이 금방 낫는대요.”
아, 내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구나. 생각보다 이게 눈에 띄는 모양이었다. 그는 여자애가 칠칠맞지 못하게, 라고 말하며 타박을 주었다. 내가 먼저 물었다.
“발표 준비는 다 됐어요? 이번 주 금요일이죠?”
“어. 완벽할 테니 놀라지나 마.”
“물론이죠. 제가 완벽하게 준비해줬으니까요.”
그가 허세를 부렸지만,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는 준비 기간에도 발표 내용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고, 발표 내용도 정리가 잘 되어 있었으니.
“수업 시간에 손이나 다칠 정도로 덜떨어진 애가 무슨 완벽이야.”
그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책상 위에 있는 내 책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약, 어둠의 마법 방어술, 룬 문자, 머글 연구 책까지 모두. 나는 순간 당황해서 말했다.
“내 책이에요!”
그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누가 보면 훔쳐가는 줄 알겠네.”
들어주려는 거잖아. 그는 자기 책을 포함해 양손으로 책을 들며 말했다. 책을 들어준다고? 누가? 시리우스 블랙이?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만면에 드러내며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전혀 신뢰가 안 가는데요. 가지고 가다가 태우는 거 아니에요?”
“흐음, 괜찮은 장난인 것 같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책을 태울 것 같아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책을 빼앗으려 했다. 시리우스는내가 닿지 못하게 한 손으로 책을 높이 들어올렸다. 낄낄 웃으며 그가 말했다.
“연회장까지만 들어줄게.”
“괜찮으니 얼른 내놔요. 수상해.”
“뭐가 수상하냐? 사람에 대한 믿음을 좀 가져봐.”
“먼저 제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행동하셨어야죠.”
그와 투닥거리며 걸어가다가 현관 홀 근처에서 아이작을 만났다.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작 쪽으로 다가가면서, 시리우스는 나와 이야기를 하다말고 내 쪽으로 귓속말했다.
“니 남자친구가 날 매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엄청 째려본다?”
“저도 당신을 싫어하……”
시리우스가 공중에 불을 띄웠다. 책을 태우려는 그의 몸짓에 나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지는 않구요, 존경하는 선배입니다.”
“당연하지.”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공중의 불을 없앴다. 지팡이 없이도 불을 소환할 수 있다니……. 비록 성냥개비 정도 크기의 불이었으나 저 정도면 거의 상급 성인 마법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나는 시리우스의 진정한 실력이 궁금해졌다.
우리가 근처에 다가가자 아이작은 예의를 갖췄지만 다소 싸늘하게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리우스 블랙 선배님.”
“본즈가의 후계자님, 오랜만인데. 자, 바톤 터치.”
그는 내 책들을 다 아이작에게 넘겼다. 아이작이 반응을 보일수록 시리우스는 더 장난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자중하길 바랐다. 다행히도 시리우스는 인사만 하고 연회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서 사라지라는 무언의 신호를 시리우스에게 보내고 있었던 아이작은 그가 떠나자마자 내 손부터 확인했다.
“손은 좀 괜찮아?”
“어. 한 일, 이주만 감고 있으면 된대.”
앞으로 일주일간 세수도 머리도 감지 못하고 나와도 이해해줄 수 있지? 나는 농담조로 웃었다. 아이작은 오히려 그게 대수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테이블에 앉았더니 접시에 크림스프와 훈제관자, 야채피클 샐러드가 나타났다. 아이작이 호박주스를 마시고는 가지고 있던 양피지를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수업 필기.”
양피지를 펴 보니, 내가 수업을 듣다가 나온 마법약 수업과 어둠의 마법 방어술, 그리고 고대 룬 문자의 수업 내용이 깔끔하게 필기 되어 있었다. 아이작이 수업 내용을 그대로 필사한 것처럼 이렇게 상세하게 필기했다니. 그는 보통 수업 자체를 집중해서 듣는 편이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필기를 잘 하지 않았다. 나는 괜히 고마워서, 감동받았다는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며 그를 칭찬했다.
“고마워. 역시 호그와트에서 제일 잘생기고, 똑똑하고, 다정한 사람은 아이작 본즈라고 생각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 안 해도 돼. 덤스트랭 가면 나도 너한테 내가 듣지 못한 수업은 필기 좀 해놓으라고 시킬 테니까.”
“뭐? 그럼 방금 한 말 취소.”
그는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리들 교수님이 너 찾더라. 출석 부르기도 전에 나더러 어디 갔냐고 묻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