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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11)
아이작이 덤블도어 교수님으로부터 호출받았기 때문에, 나는 금요일 오후 시간을 도서관에서 혼자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공부하며 보냈다. 이론 위주의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이제 2주 후 정도부터는 실습이 중심이 될 것 같았다. 요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습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는 실전에 매우 약한 타입이었다. 이론은 잘 이해하면서 정작 시켜놨더니 하나도 못하면 리들 교수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가를 걷는데 저 앞에서 리들 교수님이 서 있는 게 보여서 깜짝 놀랐다. 나는 멀리서 그의 뒷모습만 봐도 교수님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혹여 방해될까 발걸음을 조심하며, 서가 옆쪽을 통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서가 앞에 서서 고개만 살짝 숙인 채 책을 바라보고 있는 리들 교수가 너무 조각상 같아서 잠깐 넋을 잃을 뻔했다. 흰 피부와 대비되는 까만 머리카락과, 이마에서부터 이어지는 매끄러운 콧날까지.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를 불렀다.
“리들 교수님!”
교수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숙인 덕에 평소와 다르게 머리가 다소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의 까만 눈동자와 눈을 마주치자 그런 것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그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블루로즈 양이군요. 금요일인데도 도서관에 온 건가요?”
“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어쩐지 그를 불러 방해한 이유를 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용건이 있는 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많이 바쁘신가요? 질문이 있어요.”
“블루로즈 양이라면 어떤 질문이든 환영이죠.”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나는 정중하게 예의를 표했다.
“조금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르겠는데, 어둠의 마법을 왜 금지하는 건가요?”
언젠가 개인적으로 물어보려던 궁금증이었다. 너무 원론적이어서 수업시간에 묻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리들 교수님과 조금이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에 막 던진 질문에 가깝긴 했지만.
“다들 그냥 영혼을 갉아먹으니까 금지된다고 말하는데, 조금 의문이 생겨서요. 사실 위해를 가하는 몇 가지 저주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위험한 것도 없잖아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책에서도 찾기 힘들어서요, 하고 내가 덧붙였다. 사실 그랬다. 다들 어둠의 마법이 위험하다고 말을 하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당연하다는 듯 어둠의 마법은 금지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몇 가지 저주를 제외하면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주는 마법은 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어둠의 마법을 허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위험한 저주의 사용에만 제재를 가하면 해결될 문제니까.
“어둠의 마법이 금지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읽던 책을 서가에 꽂으며 말했다. ‘호그와트의 역사’라는 책이었다. 호그와트의 역사라니, 읽고 있는 소재가 다소 의외라 의문이 생겼으나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묻지는 않았다. 리들 교수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첫째, 시전되었을 때 받는 사람의 타격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블루로즈 양도 잘 알 겁니다. 어둠의 마법에 피해를 당하게 되면 치료사들도 쉽게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일반 마법사들이 어둠의 마법을 오남용 하게 되면 마법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비가역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죠.”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더 큽니다. 시전자의 입장에서, 어둠의 마법은 강력한 만큼 큰 대가를 요구하니까요.”
그는 한 템포 말을 쉬더니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쉽게 말하자면, 어둠의 마법은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블루로즈 양이 매우 부자라면,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요. 써도 써도 아직 남아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블루로즈 양이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계속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음…… 파산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그런데도 계속 그만큼의 돈을 쓰고 싶다면요? 처음엔 그린고트에서 빌리다가, 나중에는 몸을 팔고, 마침내 장기까지도 팔게 되겠죠. 사실상 어둠의 마법이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한 번 어둠의 마법에 발을 디디게 되면 책임질 수 없는 범위까지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람의 그릇 이상으로 사용하게 되면 정신은 물론 육체까지도 무너뜨리게 됩니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어둠의 마법이 너무나 강력하므로 한 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마법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결국 운용 자체에서 오는 위험성이 일반 마법사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애초에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기엔 너무 대가가 크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다수 대중적 마법사들에게 금기시하는 관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제가 부자라면, 즉 어둠의 마법을 시전할 만한 충분한 그릇이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요?”
리들 교수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에 무엇인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읽을 수는 없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불분명한 의문의 기미를 지우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돈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듯, 어둠의 마법을 제한 없이 쓸 수 있는 마법사를 찾기는 매우 힘들지요.”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어쩐지,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하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를테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 같이요?”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그 사람’ 얘기를 꺼낸 것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리들 교수님에게 조금 불편한 소재였나? 나는 불안해져서 그의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잠깐의 침묵 후에 리들 교수님이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는 지금까지 어둠의 마법을 이용한 수많은 저주를 시전했음에도 영혼이나 육체가 붕괴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릇 자체가 큰 마법사라고는 볼 수 있겠네요.”
어쩐지 ‘그 사람’이 능력 있는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해달라고 말한 것 같아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음, 그냥,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공부하면서도 왜 우리가 어둠의 마법을 배우는 대신 그 방어술을 배우는 것인지 궁금했었거든요…….”
“좋은 학습 자세입니다. 사실 대다수 학생들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공부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둠의 마법’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니까요.”
그의 목소리에서 나를 향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 전보다 거리가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리들 교수님은 그 외에도 어둠의 마법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에는 서가에서 이야기 하다가, 나중에는 도서관 테이블에 앉아 거의 일대일 강의 수준으로 나를 가르쳤다. 그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외에도 어둠의 마법 자체에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리들 교수가 말하는 것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잔뜩 긴장한 채 리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들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선에서 다시 설명하자, 그가 흡족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그날 밤이 되자 머리가 지끈하게 저려왔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가 나를 꽤 좋게 평가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비행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하루 종일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 * *
15인치짜리 작문과제를 받았다. 일요일이었으나, 나에게는 호그스미드고 뭐고 없었다. 이건 진짜 틀어박혀서 계속 글만 써야하는 과제였다. 괜히 깃펜을 탓하며 신경질적으로 양피지에 줄을 쫙쫙 그었다. 나는 작문 과제가 너무 싫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내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썼던 말을 다시 반복하며 쓰다가, 양피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불현듯 단것이 먹고 싶었다. 저번 주에 종코의 장난감 가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초콜릿 몇 개를 샀던 것 같은데.
나는 초콜릿을 찾기 위해 서랍을 뒤지다가, 그때 함께 충동적으로 구매한 물건을 발견했다. 애니마구스 마법약이었다. 일종의 폴리쥬스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5분 동안 애니마구스로 변신할 수 있게 하는 종코의 신제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정신이 없어서 서랍에만 처박아 놓고 있었다. 나는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초록빛이 도는 마법약이 병에 담긴 채 포장되어 있었다. 나는 깃펜을 던져두고, 함께 동봉된 주의사항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마법약과 혼합사용 금지, 월 2회 이상 복용 금지, 히드라의 뿌리, 그래폰 가죽에 알러지 반응이 있을 경우 사용 금지 등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주의사항이었다.
이를 대충 읽어 내리고 나는 마법약이 담긴 병을 꺼냈다. 래번클로의 호기심이, 이건 분명 재밌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사용해봐야지. 과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머리를 식혀야겠다. 변신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웠으므로 호그와트 성 뒤쪽 공터에 가서 혼자 변신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애니마구스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다니. 숙제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나는 기대감으로 벅차올랐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바깥에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창밖으로 누군가가 쳐다볼까 봐 나는 건물에 바싹 붙었다. 내 애니마구스가 설마 용처럼 커다란 동물일 리는 없겠지. 생각해보니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애니마구스는 대왕오징어였다는데, 나도 용일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무서워져 벽에서 다시 살짝 떨어졌다. 내가 용으로 변신하다가 호그와트 성을 부숴버리면 안되니까.
호기심 반, 기대감 반으로 마법약을 한 번에 마셨다. 목구멍 속으로 꿀꺽 넘어간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지? 하고 의문이 든 순간,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꼈다. 손바닥에서 흰빛이 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났다. 애니마구스는 위험한 변신마법 중 하나였다. 몸을 일부분만 변신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약을 먹은 것 같았다. 고위 마법 중 하나인 애니마구스가 고작 마법약 하나 먹는다고 가능하겠나 싶었다. 이건 아무래도 사기인 것 같았다. 종코의 가게에서 판다고 해서 뭐든 다 신뢰해서는 안됐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빛을 내던 손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지팡이도 들고나오지 않은 나는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몸의 일부가 사라지는 감각은 선연했다. 기린이나 코끼리 같이 몸집이 큰 동물로 변신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순식간에 몸집이 줄어들었고, 분명 작았던 잔디가 훨씬 크게 보였다.
고개를 숙여 몸을 살펴보았다. 흰 털과 짧은 꼬리, 조막만 한 손과 발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만져보니, 뾰족한 귀가 느껴졌다. 굳이 내 모습을 스스로 확인하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토끼로 변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작은 아기 토끼로.
왜 하필 토끼일까! 블랙 같은 동물을 생각하며 마법약을 구매했기 때문에 나는 다소간 실망스러웠다. 5학년이 되면 애니마구스를 배울 마음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몇 년을 수련해서 결국 변한 게 토끼면 그 시간이 매우 아까울 것 같다.
아냐, 그래도 동물로 변한 게 어디야. 나는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애썼다. 토끼의 눈으로 보는 세상도 나름 신선하잖아?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저 멀리서 뭔가 다가오는 것 같은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생물의 형체를 확인했다. 아직 토끼의 시야가 불편해서 확실히 보기가 힘들었으나, 곧 나는 그 형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필치의 고양이,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는 생각 자체를 멈춘 채 미친 듯이 반대쪽으로 달렸다. 살금살금 다가오던 노리스 부인은 내가 달리자 잽싸게 간격을 좁혀왔다. 반대쪽에는 호그와트 성이 있었고, 다행히도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들어갈 만한 구멍은 있었다. 노리스 부인에게 꼬리가 잡히기 직전, 나는 구멍으로 쏙 들어왔다. 바깥쪽에서 노리스 부인이 신경질적으로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구멍을 타고 들어오니 호그와트의 복도였다. 혹여나 노리스 부인이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올까 봐 두려워졌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타고 급히 올라갔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한 층을 올라갔더니 필치 씨가 복도 끝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숨소리를 죽이며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울 것 같았다. 애니마구스가 풀리길 5분 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보다 더 큰 생물과 마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 중 건물 내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생각났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옆에 난 작은 구멍으로 몸을 숨겼다. 그 구멍을 따라 나왔더니 뻥 뚫린 연구실의 천장이었다. 놀랍게도 아래쪽에 리들 교수님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이 건물의 2층에는 리들 교수님의 연구실이 있었다. 몸집이 작은 애니마구스라면 이런 점이 좋구나. 나는 천장의 기둥 쪽에 몸을 숨긴 채 리들 교수님을 훔쳐봤다.
그의 연구실은 한눈에 봐도 깔끔했다. 어둠의 마법에 관한 서적이 한쪽 벽면에 빼곡히 꽂혀 있었고, 초상화 몇 점이 벽에 걸려있었지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천장까지 높게 올라간 책장 반대편에는 네모난 책상이 있었다. 책상 오른쪽에는 천체 모형과 천칭이 올려져 있었고, 몇 가지 종류의 깃펜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교수님들의 연구실에 한 번씩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어떤 교수님의 방보다 정갈하게 느껴졌다.
리들 교수는 가만히 서서 반대편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히 타고 있던 벽난로는 곧 강한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회오리치던 불꽃 아래에 검은 인영이 드리웠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 지시하신 사항에 대한 보고 올립니다. 그레이백이 목표에 거의 접근했습니다.
“그 일이 끝나면 호그스미드로 호출한다고 전해. 애버리 쪽은 어떤가?”
─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연락이 오기로 했는데, 아직 응답이 없습니다.
리들 교수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 같았다. 그 인영은 겁먹은 표정으로 리들 교수를 바라보고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 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애버리 가로 직접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차갑게 말했다.
“오늘 밤에 가보도록 해.”
─ 하지만 오늘 밤에는 크레이브의…….
“애버리 쪽이 더 급하다는 걸 몇 번 더 말해야 이해하나?”
그의 표정은 평소의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이 하나 죽었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것 같은 싸늘한 눈빛이었다.
─ 알겠습니다, 로드 볼드모트.
인영은 죽음을 먹는 자의 표식을 선명하게 허공에 띄웠다. 리들 교수가 손을 한 번 휘두르자 불꽃은 파삭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꺼졌다. 나는 내가 방금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 불꽃 속에서 사라진 사람이 리들 교수님을 뭐라고 불렀나? 로드 볼드모트라고?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불꽃이 꺼지자마자, 석상 아래 뱀이 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그를 바라보던 리들 교수는 쉭쉭 거리는 목소리로 뱀에게 뭔가 말을 건넸다. 뱀은 그 소리를 알아들은 것 같았다. 똬리를 튼 뱀은 마치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리들 교수는 뭔가 짜증이 난 것 같았다. 그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쓸며 부드럽게 움직이던 뱀이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꼿꼿하게 몸을 세웠다. 그러더니 마치 몸이 불타는 것마냥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뱀의 비명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저 뱀이 내는 소리는 확실히 비명 소리였다. 리들 교수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차갑게 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갑자기 변신이라도 하면 그가 눈치챌 것 같았다. 몸을 덜덜 떨며 겨우 들어온 구멍으로 나왔다. 구멍에서 나오자마자 몸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기색이라, 나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문 복도 안쪽으로 향했다. 몸이 다시 커지고, 낮았던 시야가 높아졌다.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처럼 급하게 기숙사로 들어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급한 심박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휴게실을 지나오면서 요한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 느꼈지만, 그것에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내 방을 찾았다. 다행히도 룸메이트는 없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숨을 들이켰다. 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오한이 일어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 그런지 심장이 뇌에서 뛰는 것 같았다. 내 심장박동 소리에 더 놀라 몸을 움츠렸다. 혹여 이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톰 리들 교수님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라니!
나는 방금 보았던 장면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사실을 확인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분명했다. 분명히 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파셸 통크를 사용하고 있었고,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을 띄웠다. 한 번 더 생각할 때마다 기억은 희미해지기는커녕 더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동시에 예언자 일보에 실렸던 머글 마법사 살인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의 공포심을 부추겼다.
덤블도어 교수님께 가야겠어. 가서, 내가 봤던 것들을 그대로 말씀드려야지.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이 정말 모르고 계실까? 그 또한 리들 교수와 한패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정상이라면 그에게 교수직을 줬을까? 지금 교장이 진짜 덤블도어가 아니라 폴리주스를 마신 죽음을 먹는 자라면?
아니면 예언자 일보에 익명으로 제보하자. 그런데 그렇게 했다가 혹시, 리들 교수가 나를 추적하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속 공포로 점철된 바다 한가운데 표표하게 래번클로의 이성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 자동으로 작동한 래번클로 프로세스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현명한 대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른 척하자.
여기서 무엇을 계획하고 있든 그의 정체를 아는 머글 출신 마녀 하나를 처리하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호그와트 학생에 불과하다면? 굳이 그가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애를 건드려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을까?
그래, 모른 척하자. 나에게 그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아니야. 그저 톰 리들 교수님일 뿐이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호그와트 학생일 뿐이고. 난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