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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9)
나는 비교적 일찍 잠드는 편이었기 때문에 밤 열두 시에 천문학 수업이 있는 날에는 휴게실에서 잠을 견디곤 했다. 열한 시쯤 나와서 졸고 있으면 아이작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가는 식이었다. 기숙사 방 안에 있다가 깜빡 잠들어 버리면 천문학 수업을 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룸메이트가 깨워줄 수도 있겠지만, 데이지나 안나나 그런 것을 부탁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늘도 휴게실에서 반쯤 졸고 있으니, 아이작이 내려와 나를 깨웠다. 나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아이작을 따라 천문탑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은 만월의 밤이었다.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달이 너무 신비로워 보였다. 졸린 기운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하늘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달이 너무 예쁘다.”
그렇지만 아이작은 딱히 달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달이나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에 심취되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이작은 만월의 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보름이 어떠한 주기로 오며, 왜 달의 모양이 변화하는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는 내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교수의 지시에 따라 토성의 고리를 열심히 그렸다.
나는 망원경을 통해 토성의 위성을 그리면서도 틈틈이 달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크고 밝게 느껴졌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는 호그와트에 입학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마법사라는 것이 존재하고, 마법 학교에 들어간다는 그 사실 자체가 나한테는 현실 세계에서 비현실 세계로 넘어가는 묘한 기분을 들게 했으니까. 호그와트로 입학식 날이 그것을 극명하게 느꼈던 날이었다.
토성의 고리와 위성까지 그린 후 제출하고 나서야 수업이 끝났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평소에 나는 새벽 한 시를 넘기 시작하면 정신이 반쯤 휘발된 상태였다. 그래서 보통은 천문학 시간이 끝나면 고울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기숙사에 들어갔으나, 오늘은 어쩐지 정신이 쌩쌩했다. 오히려 좀 더 바깥에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이작, 산책 좀 하고 가지 않을래?”
“이 밤에 무슨 산책이야.”
그렇게 투덜거려도 아이작은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그의 손을 끌고 산책로로 향했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천문탑에서 래번클로 기숙사로 가는 가장 빠른 직선거리가 아니라, 약간 서쪽으로 돌아가는 길로 가는 것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오 분 정도 늦게 도착할 따름이었다. 쏟아 내리는 달빛과, 차가운 공기가 너무 기분 좋아서 심지어 나는 노래까지 부르면서 지나갔다.
간주 부분을 흥얼거리기 시작했을 때, 금지된 숲 쪽에서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이라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금지된 숲에서 뭔가 움직이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한 번 그쪽을 바라보았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아이작이 불쑥 나에게 물으며 서쪽 숲을 바라보았다. 잘못 본 건가? 무엇인가 인영처럼 보이던 것이 사라지고, 금지된 숲은 평소처럼 무거운 침묵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내가 착각한 것 같다고 아이작에게 말하고는, 천천히 기숙사 방향으로 걸어갔다.
* * *
나는 마법약 수업에 딱히 흥미를 느끼는 편은 아니었다. 정해진 양의 재료를 정해진 시간 내에 얼마나 정확하게 집어넣느냐가 마법약의 성공 여부의 관건이 되는 문제였다. 그러므로 마법약의 완성도는 그 제조자가 얼마나 꼼꼼하고 섬세하냐에 달려 있었다. 나는 특히 그런 부분에 있어 그다지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재미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마법약에서 굳이 재미있는 부분을 꼽자면, 재료의 효과와 상성의 조합에 따라 미묘한 차이에도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정도였지만, 그것 때문에 마법약에 대한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 마법약 수업은 아이작 의존성이 매우 심했다. 그는 가끔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의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리는 나를 세심하게 살펴주니까.
슬러그혼 교수님과도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해왔고, 또 지금까지 만들었던 마법약의 완성도가 높긴 했지만 그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함이지, 마법약 수업에 애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게다가 슬러그혼 교수님은 학생들의 본연의 실력 외에도 집안이나 인맥, 배경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러한 배경만을 고려하여 성적을 편파적으로 주지는 않았지만, 배경이 가점으로 많이 작용하기는 했다. 그래서 나는 보통의 수업보다는 더 많은 노력을 마법약에 투자해야 했다. 그래도 겨우 마법약 부문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의 성적을 따라갈까 말까 할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마법약 수업을 마치고 나를 부른 슬러그혼 교수님이 갑자기 민달팽이 클럽 초대장을 건네주었을 때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블루로즈 양, 이번 주 토요일 밤 민달팽이 클럽 모임이 있는데 참석해줄 수 있나?”
나는 그의 초대장을 받아들면서 눈만 깜빡였다. 순간, 아이작에게 주려는 걸 나한테 잘못 전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저어, 교수님. 저를 초대하시는 게 맞나요?”
그는 쭈뼛거리며 묻는 나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칭찬하긴 했어도 머글 출신의 마녀인 나를 좋게 평가하진 않으리라고─잘해봤자 노력하는 학생 정도─ 생각했었던 나에게, 그의 친근한 웃음은 많이 의외였다.
“블루로즈 양 같이 우수한 학생이 아니면 누구를 우리 클럽에 초대할 수 있겠나? 겸손한 태도가 더 마음에 드는군. 본즈 군과 친하지? 둘이 같이 오면 좋겠네.”
그는 그 후로 아이작이 민달팽이 클럽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별 흥미가 없었음에도 적당히 맞장구쳤다. 그는 나의 반응에 더 흡족한 표정이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참석을 독려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민달팽이 클럽은 슬러그혼 교수가 호그와트 내에서 장래가 촉망한 인재를 선별해 정기적으로 가지는 모임이었다. 물론 마법사가 지녀야 할 자질뿐만 아니라 인맥, 집안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고려되긴 했지만, 오히려 학생 자체의 능력보다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에 사실 보잘것없는 머글 출신인 나에게 초대장이 왔다는 것에 더 자부심이 생겼다. 나는 순수하게 능력으로 인정받은 거니까.
교실을 나왔더니 아이작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슬러그혼 교수님이 민달팽이 클럽에 초대하셨어.”
그가 별로 놀랍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학년에선 다섯 번째 멤버구나.”
“교수님이 널 무척이나 좋아하시더라.”
“난 제법 성실하게 활동하거든.”
그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정치적인 구석이 있었다. 성격 자체는 외향적인 편이 아니었으나 주변 환경이나 가문 등의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아이작의 주변에는 사람은 많았으나, 정작 그는 주변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꺼리는 편이었다. 약간 피곤해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아이작이 꾸준히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민달팽이 클럽의 가치를 증명했다. 학업 외의 부가적인 활동을 강제하지 않는 호그와트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 내의 사람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기숙사라는 것은 머글 학교에서의 한 반과 같아서, 굳이 접점이 없는 한 다른 기숙사 학생들과 친해질 일이 없다. 그럼에도 민달팽이 클럽에서 연을 맺은 학생들끼리는 소속된 기숙사에 관계없이 나중에 졸업한 후에도 계속 인연을 유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뭘 입고 참석하는 거야?”
“교복 입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사복도 입고. 딱히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어.”
약간 긴장해서 이것저것 묻던 나에게 아이작은 민달팽이 클럽의 모임이 사실상 서로의 근황 묻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안심시켜주었다. 슬러그혼 교수님을 주축으로 그냥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된다고. 그렇지만 나는 불안했다. 민달팽이 클럽의 주요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모두가 평소에 말도 건넬 수 없는 선배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준비해서 가야 할 것 같았다.
* * *
“블랙! 나 민달팽이 클럽에 초대받았다!”
서쪽 탑 근처에서 블랙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오늘 어쩐지 그와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예상이 정말 맞았다. 아이작 앞에서와는 달리 나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방방 뛰며 말했다.
“난 집안도, 배경도, 뭣도 없는데 그냥 초대받았어! 얼른 축하해줘!”
나는 민달팽이 클럽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의 모임인지 조금 과장해서 블랙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이 블랙은 별로 반응이 없었다. 오늘은 다소 한심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블랙은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듯 자리에 앉아서 무신경한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를 거야.”
나는 블랙에게 다가가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교수님이 날 인정한 거라구. 호그와트의 교수님이. 내가 우수한 마녀라고. 나는 인정받았단 말이야.”
나는 몇 번이고 그것을 강조하면서, 내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마녀로서의 나는 이런 식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내 자존감을 회복하나 봐. 머글 출신이라는 게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극복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너무 행복해.”
나는 아이작 앞에서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들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었다. 내 안의 미묘한 경쟁의식과, 콤플렉스와, 우월감이 묘하게 뒤섞인 그런 심리 상태를 마치 일기라도 쓰듯 그에게 뱉어내고 있었다.
“블랙, 너도 순수혈통의 개지?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모를 거야. 어떻게 출신 성분으로서 느끼는 열등감을 네가 이해할 수 있겠어?”
나는 괜히 그를 도발하듯 말하며, 순수혈통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그에게 다 전했다. 아이작에게 품어왔던 열등감과 순수혈통들에게 가지는 적대적 반감까지도. 블랙은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말하는 것들을 열심히 듣는 것 같았다. 듣는 척이라도 열심히 해주는 블랙이 너무 예뻐 보였다.
할 말 못할 말까지 다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무척 좋았다. 블랙에게 근황 보고까지 끝내고 그와 헤어졌다. 나의 행운의 상징인 블랙까지 만났으니, 이번 주말에 있을 민달팽이 클럽에서 긴장감 없이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
* * *
이번 주에는 퀴디치 경기가 있었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경기였다. 별로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아이작이 억지로 나를 끌고 갔다. 그의 지론은 그랬다. 내가 퀴디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직 경기를 자주 접해보지 않아서이며, 계속 퀴디치 경기를 구경하며 이에 익숙해지면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거다.
반박할 거리야 무한했지만, 나와 퀴디치의 재미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아이작의 마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11월 중순쯤 덤스트랭으로 떠나야 했으므로, 아이작은 래번클로와 후플푸프의 경기까지는 볼 수 있겠지만, 그다음 있을 래번클로와 그리핀도르의 경기는 볼 수 없었다. 경기장을 향하는 내내 아이작은 그게 아쉽다는 말뿐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평범하게 기숙사 넥타이만 매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요란하게 응원복장을 갖춰 입었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은 더욱이 심했다. 그리핀도르는 아예 기숙사 깃발에 크기 변형 마법을 걸어놓은 것 같았다. 무슨 교실 크기만 한 깃발들이 응원석 뒤편에 꽂혀 있었다. 항상 정갈한 초록색의 마법사 정복을 갖추고 수업을 진행하시는 맥고나걸 교수님도 오늘만큼은 진홍색과 노란색으로 복장을 통일했다. 4학년쯤 되면 교수님의 퀴디치 사랑이야 익숙해지지만, 1학년들에게는 충격인 것 같았다. 대다수의 1학년 학생들은 맥고나걸 교수님을 가리키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맥고나걸 교수님과 열정적인 퀴디치 응원은 사실 조금 연관관계가 없어 보이긴 한다. 나도 처음 봤을 땐 정말 놀랐었으니까.
슬리데린 학생들은 거진 대부분 ‘그리핀도르를 타도하라!(Defeat the Gryffindor!)’라는 문구가 형광 초록으로 반짝이는 배지를 교복 위에 달고 있었다.
“확실히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경기가 재밌긴 하지.”
나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앙숙인 두 기숙사의 경기는 응원도 치열했지만, 경기 자체도 격정적이었다. 내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는 다른 기숙사 경기에 비해 파울도 엄청 많지 않아?”
“호그와트의 기숙사 대전 퀴디치 역사상 가장 많은 파울을 기록한 것이 156번인가 그런데, 그게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경기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저 두 기숙사라면 그 정도의 기록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잡담을 하는 사이 경기 준비가 거의 완료된 것 같았다. 선수들이 빗자루를 탈 준비를 하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플리트윅 교수님이 경기장 중심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경기장 중앙에는 직경이 1.5피트(0.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심판인 플리트윅 교수님이 중앙의 원으로 들어서자, 열네 명의 선수들이 빗자루를 탄 채로 교수를 빙 둘러싸고 섰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교수님은 네 개의 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호각소리와 함께 골든 스니치가 허공으로 날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 바닥 공중에 떠 있던 학생들이 수선하게 각자의 위치로 날아갔다. 응원석에서는 높은 환호성이 울렸다. 래번클로 응원석에 앉아 있었음에도 경기가 시작되었다는 흥분감이 물결처럼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퀴디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들뜰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중으로 고개를 돌려 선수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핀도르 선수 중에 여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다. 비교적 가까이서 회전하듯 하늘 쪽으로 올라가는 그 여학생을 바라보며 내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저 여자는 누구야?”
“제인 아보트. 5학년 추격꾼이야. 그리핀도르의 유망한 차기 주장이지.”
그녀는 늘씬하면서도 날쌔 보였다. 질끈 묶어 올린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경기장을 누비면서도 몰이꾼과 파수꾼들에게 끊임없이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동경심을 자극하는 여성상에 가까웠다. 당당하고,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표명할 수 있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눈이 꽂혔다. 강한 리더십을 갖춘 여성이라니, 정말 멋있었다. 저런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보니 절로 그리핀도르 선수들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리핀도르 선수들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임스 포터였다. 이름 난 추격꾼답게 그는 날래게 선회하며 퀘이플을 몰았다. 여학생들이 그를 동경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장난질을 칠 때와는 다르게 운동선수다운 진지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다소 흐트러진 머리카락조차도 그의 비행능력을 입증하는 듯 매력적으로 보였다. 제임스에 대한 칭찬을 꺼내면 아이작이 투덜댈까 봐, 하고 싶은 말들은 그대로 삼켰다.
확실히 그리핀도르는 추격꾼들이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 같았다. 연이은 득점으로 금방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는 점수 격차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슬리데린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수색꾼인 레귤러스 블랙밖에 없었다. 경기장에서 날아다니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확인하며 나는 레귤러스를 찾아냈다. 래번클로 응원석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골든 스니치를 수색하고 있었다.
레귤러스는 아이작과는 다른 의미로 순수혈통의 표본이다. 마치 정통성을 인정받은 황태자처럼 그는 슬리데린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시리우스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반항아의 이미지일망정, 시리우스는 그리핀도르를 지배한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항상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카락이 흐트러져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는 그의 표정이 시리우스를 닮았다. 역시 형제이긴 하구나.
그러는 동안 제임스가 골을 하나 더 넣었다.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점수 차가 더 벌어졌다. 그 순간, 후플푸프 응원석 위쪽에서 날고 있던 그리핀도르의 추격꾼이 급하강하기 시작했다. 응원석이 술렁였다. 그가 골든 스니치를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곁에 있던 슬리데린쪽의 몰이꾼이 그의 뒤를 바짝 붙어 따라갔다. 거의 닿았다고 생각했을 때 옆에 있던 요한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건 명백히 블러징이야!”
나는 아이작에게 물었다.
“블러징이 뭐야?”
“빗자루 꼬리 잡아서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거.”
“반칙이야?”
“응.”
플리트윅 교수님은 그 장면을 못 본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 응원석에서 학생들의 분노에 찬 고함이 터졌다. 그러는 사이 그리핀도르 수색꾼은 골든 스니치를 놓쳤다.
아이작에게 반쯤 끌려나온 것이긴 했지만, 그의 말대로 경기에 익숙해지니 절로 몰입됐다. 무엇보다도 수색꾼들이 서로를 탐색하며 득점을 하는 것이 재밌었다. 몰이꾼이 중간중간 블러저로 상대방을 공격하며 경기에 긴장감을 주기도 했다. 지루할 때쯤 되면 기숙사의 수색꾼들이 경쟁적으로 골든 스니치를 추격하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거진 슬리데린과 그리핀도르의 점수 차가 140점에 달할 무렵, 래번클로 응원석 근처에서 돌고 있던 레귤러스가 빠르게 활강하며 날아갔다. 그 뒤를 그리핀도르 수색꾼이 바짝 쫓았다. 골든 스니치가 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내가 더 긴장이 될 지경이었다. 스니치는 절대 잡히지 않겠다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선회했다. 동시에, 레귤러스의 손이 골든 스니치에 닿았다.
슬리데린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놀랄 정도로 큰 함성이었다. 레귤러스는 빗자루를 탄 채로 골든 스니치를 잡은 손을 쭉 뻗어 하늘로 향했다. 응원석에서 레귤러스 블랙을 부르는 소리가 울렸다. 슬리데린 응원석으로 날아간 그가 그 위를 한 번 돌자, 응원석에서는 마치 귀환한 전쟁영웅이라도 맞이하기라도 하는 듯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결국 슬리데린이 이겼군.”
아이작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레귤러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퀴디치 선수들이 멋있긴 하구나.”
“넌 진짜 몰라. 유명한 프로 퀴디치 선수들은 다이애건 앨리에서 돌아다니지도 못한다고. 쫓아다니는 인파들이 너무 많아서.”
선수들이 경기장 바닥으로 하강해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와 동시에 경기가 끝났다. 학생들이 한둘 씩 경기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아이작도 출구 쪽을 향했다. 인파들이 한꺼번에 출구 쪽으로 몰리면서 기숙사의 학생들이 서로 섞였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플리트윅 교수님이 보지 못해 파울로 인정되지 못한 블러징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것이 경기를 중단시킬 정도의 파울이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슬리데린의 파수꾼이 그리핀도르 수색꾼의 빗자루를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골든 스니치를 충분히 잡았을 순간이었다. 아이작과 나는 경기의 중요한 순간들을 되짚으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 작품 후기 ============================
아… 선작과 추천이 100이 넘었어요ㅇ0ㅇ
제가 잘못 봤나 했어요. 예상치 못하게 200% 보너스가 지급된 급여통장을 보는 기분이 이런걸까요..
코멘트들은 다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스토리 진행상 피드백을 못 드리는게 아쉽네요ㅠ
오늘 열두시 반 쯤 다음 편이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