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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8)
하필 리들 교수님의 재학시절을 살펴볼 때 마주치다니. 그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나는 이 상황에 조금 부끄러워져서 리들 교수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리들 교수님.”
“블루로즈 양. 여기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아… 호그와트 부엉이를 이용하러 왔다가 지나가는 길에 구경 왔어요.”
교수님은 여기 웬일이세요? 라고 묻고 싶었으나, 어쩐지 그의 행동반경을 캐묻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대신 나는 내가 보고 있던 것들에 대한 변명을 시작했다.
“교수님 이름이 있어서 신기해서 봤어요. 매해 학년 수석에 반장, 회장까지 하셨더라구요. 대단하세요……”
내가 스토커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약간 걱정했지만 교수님은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어서 나는 안심했다.
“매 해는 아니죠.”
그는 4학년 수석이었던 에밀리 셀윈이라는 이름을 가리켰다. 나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말했다.
“모든 수석을 도맡아 하는 건 너무 삭막하죠. 일곱 번 중 한 번 정도는 도의상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수석 자리를 넘겨줄 필요도 있어요, 교수님.”
그는 이미 내가 아이작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장난기 섞인 말투에 그는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블루로즈 양도 이번 해에는 본즈 군 대신 수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셀윈도 4학년이 되었을 때 저를 앞질렀으니까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셀윈과 블루로즈 양이 꽤 비슷한 구석이 있군요. 같은 래번클로에… 그 학생도 블루로즈 양처럼 모범생이었거든요.”
교수님께 나의 이미지는 역시 모범생이었구나. 일견 기분이 좋으면서도 조금 그랬다. 교수에게 모범생은 분명 긍정적인 이미지겠지만, 다소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내가 모범생인 건 괜찮은데 전형적인 사람이라는 건 별로야. 나는 괜히 교수님과 대화를 더 하고 싶어서 물었다.
“그분은 지금 어떤 일을 하세요? 마법부에 계신가요?”
“글쎄요.”
리들 교수님은 그 이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매해 졸업생이 몇인데, 자기 기숙사도 아닌 동급생이 뭐 하고 지내는지 어떻게 알겠냐 싶기도 했다.
어쩐지 대화가 끊길 것 같아 나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제에 대한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그는 나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하게 대답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금방 기숙사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많이 늦은 시간이군요. 래번클로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주도록 하죠.”
“아, 괜찮은데…… 교수님, 호그와트성은 안전한 곳이에요.”
뭔가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교수님이 기숙사까지 데려다준다니!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밤의 호그와트는 그렇게 안전한 곳이라 할 수는 없죠.”
우리는 트로피 보관실을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리들 교수님과 단둘이 걷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심장 박동이 절로 빨라지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호그와트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전설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하는 얘기는 흥미로웠지만, 교수님과 둘이 복도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얘긴들 몰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부끄러워서 눈조차 마주칠 수 없었던 나는 그의 망토 깃 자락만 보면서 걸었다. 고맙게도 그는 다소 느린 내 보폭을 맞춰주는 것 같았다.
“블루로즈 양, 여기가 래번클로 기숙사 근처 아닌가요?”
넋을 놓고 걸어간 나머지, 래번클로 기숙사를 그대로 지나쳤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정하게도 교수님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모른 척 넘어가고는, 잘 자라고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한번 푹 숙이고 기숙사 입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혹시 나를 쳐다보고 있을까 봐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청동 독수리 상은 밤늦게 다니지 말라고 한 번 타박을 내고는 이전에 한 번 낸 적이 있는 퀴즈를 물었다.
기숙사 안에 들어와서도 나는 쉬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휴게실에 멍청하게 앉아서 익은 볼을 식혀야 했다. 고작 복도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긴장하다니, 나는 확실히 리들 교수님을 동경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리들 교수님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잠이 들었다.
* * *
월요일은 오후에 수업이 없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나는 혼자 나가서 변신술 연습을 하기로 했다. 기숙사에서 변신술 연습을 하다가 커튼에 불이 붙을 뻔한 경험 이후로 나는 변신술은 보통 호수 근처에서 연습했다. 아무래도 실외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실내에서 하는 것보다는 위험요소가 적으니까. 나는 변신술 책을 잔뜩 껴안고 호그와트 옆 검은 호수로 향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서인지 호수는 물결 없이 잔잔했다. 깊이를 짐작케 하듯 짙푸른 어둠이 호수에 깔려 있었다. 새삼 그 풍경에 시선을 빼앗겨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블랙이 호수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야, 블랙.”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가 꽤 가까워졌음에도 블랙은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개, 짖지도 않고 생각보다 얌전한 애일지도 몰라.
“뭐 하고 있었어? 호숫가에 산책이라도 하고 있었니?”
말을 거는 척하며 털을 쓰다듬으려고 했으나, 눈치가 빠른 블랙은 재빨리 내 손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딱히 멀리 도망가는 기색은 없는 걸 보니, 다행히도 이제는 날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개가 서 있는 잔디 바로 옆에 앉아서 공부하기 위해 들고 온 변신술 책을 펼쳤다. 그리고는 블랙이 이해하든 말든 나 혼자 지껄이기 시작했다.
“난 공부하러 왔어. 4학년부터는 생물을 다른 생물로 변신시키는 마법을 배우거든. 처음은 개미같이 작은 곤충을 좀 더 큰 곤충으로 변신시켜. 3배 정도 크게. 생물은 무생물보다 더 섬세한 제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이 과정을 성공하는 데에도 거의 2주가 걸렸지.
이렇게 크게 변신을 시킨 다음 단계는 색깔을 변하게 만드는 거야. 맥고나걸 교수님은 시험 때 가장 화려한 색으로 변신시키는 학생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신다는 얘길 들었어. 로모포스!”
나는 흩날리는 초록빛 잔디를 형광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아직 움직이는 생물을 대상으로 연습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면 4학년 치고는 만족스러운 수준인 것 같다.
“변신술을 할 때는 특히 색깔의 균일도를 맞추는 게 중요해. 정밀하게 컨트롤하지 않으면 얼룩덜룩하게 변하거든.”
잔디를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고 나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블랙에게 말했다.
“아직 동물에게 시험해 본 적은 없는데, 어때? 블랙? 지긋지긋한 검은 털 말고 형광 핑크의 새로운 털도 바꾸는 건?”
내가 장난스럽게 지팡이를 겨누자, 놀랍게도 검은 개는 진짜 위협이라도 당하는 듯 멍! 하고 짖고는 나에게서 떨어졌다. 지팡이를 겨누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을 보니 이 개는 마법사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 확실했다. 개 목걸이 같은 것을 달지도 않고 이렇게 개를 방임해 키우다니, 굉장히 자유로운 영혼의 마법사인가 봐.
나는 지팡이를 치우고 블랙에게 말했다.
“농담이야. 놀라지 마, 블랙. 다신 안 그럴게. 이쪽으로 와줘, 응?”
그는 계속 크르릉하고 낮게 울며 나에게서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오지 않으려 했다. 이럴 때 나에게 종코의 장난감가게에 있는 빛이 나는 공이나 움직이는 뼈다귀 같은 신기한 물건이라도 있다면 저 개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 텐데. 다음 번에 호그스미드 외출 기회가 생기면 꼭 구입하겠노라 마음을 먹으며 블랙을 달랬지만 그는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좋아, 그럼 니가 내킬 때 와도 괜찮아. 너 제법 도도하구나. 래번클로 기숙사 앞에 걸려있는 케플러 경 초상화 같아. 그는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지. 그와 대화할 수 있는 건 오직 래번클로 학년 수석 밖에 없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 다니는 내내 한 번도 케플러 경과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 우리 학년에서 대화할 수 있는 마법사는 아이작이 유일해. 어쩜 다행일지도 몰라. 그와 말이 통하는 것도 아이작밖에 없는 것 같거든. 얼마 전에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었는데, 타원 궤도의 공전이 뭐 어쩌고저쩌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한숨을 쉬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이작은 좋은 친구지. 그렇지만 가끔 그에 비해 내가 너무 모자란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내가 애써서 한 발자국 나가면 그는 두 발자국 앞서 나가 있거든. 내가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있는 건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해. 근데 그는 모든 걸 매우 쉽게 이뤄내지. 사실 이제는 그에게 경쟁심이라는 게 생기지도 않아. 걔는 내 앞에 있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가끔은…….”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지. 편한 마음에 친구 대하듯 생각 없이 지껄이다가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블랙의 눈빛이, 마치 내 말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 속내를 털어낸 듯한 부끄럼이 일어,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중간에 멈췄다. 블랙은 꼬리를 살랑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너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이렇게 나쁜 기운만 주면 네 주인이 싫어하겠지. 앞으론 좋은 얘기만 해야겠다.”
그게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후로도 혼자 변신술 연습을 하면서 블랙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 * *
퀴디치의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숙사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약간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연회장만 가면, 빗자루를 탄 작은 모형 장난감이 날아다녔다. 휴게실에서는 퀴디치 선수 이야기뿐이었다. 이번엔 어디가 어디를 몇 점 차로 이길 것이니 하는 제법 설득력 있는 예측도 나돌았다. 데이지의 말로는 점술 시간에 퀴디치 결과를 점쳐 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휴게실은 대부분 래번클로 2학년들이 차지했다. 단체로 응원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래번클로 학생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지만, 유독 이번 2학년들은 단결이 잘 됐다. 아무래도 질데로이 록허트 때문인 것 같았다. 무엇이든 잘한다고 소문이 난 그가 퀴디치 운동선수가 아니라는 점은 좀 의아했지만. 여하튼 그를 주축으로 응원연습을 한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작 역시 들뜬 것이 보였다. 그는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이번에 새로 뽑힌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고려하며 각 팀의 전력과 경기진행방향을 이리저리 가늠해보곤 했다. 그는 깃펜을 들고 뭔가를 그려가며, 가장 먼저 있을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경기의 득실을 따져보고 있었다.
“그리핀도르는 슬리데린이랑 붙었을 땐 질 가능성이 농후해. 제임스 포터가 추격꾼으로써 능력이 비상하긴 하지만, 슬리데린 주장인 엠마 배너티 또한 만만찮은 파수꾼이니까. 거기다가 레귤러스 블랙까지. 작년에 슬리데린이 이긴 이유도 레귤러스 블랙이 우리와 50점 차로 벌어졌을 타이밍에 골든 스니치를 잡아서였잖아. 블랙이 경기에 대한 감각이 좀 있는 것 같아.”
그가 쥔 깃펜은 그리는 그림을 움직이게 만드는 종류인 것 같았다. 그가 동그라미 비슷하게 그려놓은 레귤러스 블랙이 양피지 위에서 골든 스니치를 쥐었다. 솔직히 그의 말보다 그 깃펜이 더 신기해서 나는 그에게서 깃펜을 빼앗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갑자기 루카스 랭포드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그는 6학년의 래번클로 퀴디치 팀 에이스 추격꾼이었다.
“제인이 졸업하는 바람에 이번에 그리핀도르에 새 수색꾼을 뽑았다는 이야기 들었지? 걔도 꽤 잘한대.”
“그래도 2학년인걸요.”
“수색꾼 능력은 타고난 거야.”
그는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주제에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처들리 캐논의 그로건이나, 맥파이즈의 스팀슨을 봐. 그들은 어릴 때부터 그냥 타고난 수색꾼이었다구.”
그는 그 외에도 몇 명의 유명한 수색꾼의 이름을 들며 그들의 타고난 재능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내가 연습할 때 봤다니까. 활공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민첩해. 레귤러스 블랙과 붙여놔도 전혀 손색이 없어.”
“그래요?”
랭포드 선배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로웨나는 어떻게 생각해?”
“그, 글쎄요. 전 퀴디치에 별 관심이 없어서…….”
괜히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퀴디치에 관심이 없는 몇 없는 호그와트 학생 중 하나였다. 첫 번째로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것 자체에 그렇게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둘째로는, 그냥 공이 움직이는 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는 머글 경기와는 달리 퀴디치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공간감각능력이 떨어지는 나에게 공이 위아래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신만 사납게 할 뿐이었다. 그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며 퀴디치를 관람하는 다른 애들이 신기할 정도다. 아무래도 마법사 가정에서 자라면 어릴 때부터 퀴디치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니가 아직 잘 몰라서 그래! 엄청 재밌어. 이번 경기엔 구경 올 거지?”
“하하, 네에.”
사실 반쯤은 빠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퀴디치 응원은 의무가 아니었다. 의무가 아니더라도 불참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지만. 7학년들도 N.E.W.T를 준비하는 가운데 퀴디치 응원은 꼭 참석했으니까.
그는 응원은 꼭 와야 한다며 거듭 당부하고는 수업이 있어 자리를 떠났다. 아이작은 랭포드에게 들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 경기의 승패를 점쳐보고 있었다. 나는 저녁에 있을 천문학 수업을 예습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