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 / 0115 ----------------------------------------------
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7)
오전의 약초학 수업과 머글 연구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는 시리우스와 함께 대연회장에 왔다. 머글 연구 수업이 30분 정도 일찍 마쳐서 그런지 연회장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점심 먹기 직전까지 대연회장에서 목차 정리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이것만 끝내면 같이 하는 분량은 더 이상 없었다. 내가 목차에 따라 발표 스크립트를 짜서 넘기고, 그는 발표만 하면 되니까. 점심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얼른 해치워야지. 시리우스 블랙과 함께 있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연회장에 들어오자마자 시리우스는 당연하다는 듯 앞장서서 나를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데려가려 했다. 나는 뒤에서 그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아뇨,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요.”
나는 망토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를 래번클로 쪽으로 끌고 왔다.
“야, 난 연회장 서쪽엔 발도 디뎌 본 적 없어.”
“저 덕분에 개척한 걸 영광으로 알아요.”
억지로 그를 래번클로 테이블 반대편 의자에 앉히고 발표 순서를 적어 내렸다. 이미 자료 리뷰와 보고서 작성까지 끝낸 상태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기숙사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것이 조금 머쓱해 보였다. 진짜 낯부끄러워야 할 유치한 장난은 다 치고 다니면서 이 정도에 창피한 척이야. 나는 목차를 쓴 양피지를 시리우스 쪽으로 밀어 보여주었다.
“이 순서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아니, 비행기를 이 앞에 먼저 얘기할 거야.”
그는 내 깃펜을 뺏더니, 비행기의 순서를 좀 더 앞쪽으로 재배치했다.
“천문탑 무게의 비행기 같은 건 앞쪽에서 강조해야 발표에 흥미를 느끼지.”
무신경한 성격상 이런 것까지 고려할 줄 몰랐던 나는 내심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5년동안 호그와트의 마루더즈의 일원으로써 그는 퍼포먼스의 달인이었다. 나는 좋아요, 하고 바뀐 순서로 다시 목차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때 불쑥, 진홍색 줄무늬가 있는 넥타이가 시야에 잡혔다.
“너,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뭐하냐?”
제임스 포터였다. 시리우스와는 달리, 그는 마치 자기 기숙사 테이블이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시리우스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반대편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아, 너 로웨나 래번클로지?”
“로웨나 블루로즈에요.”
래번클로 선배들이 가끔 장난스럽게 나를 로웨나 래번클로라 부르긴 했으나, 타 기숙사 사람들이 나를 래번클로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르는 것은 좀 그랬다. 그래서 타 기숙사의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면 꼭 바르게 정정해주곤 했다. 그러나 제임스는 내가 하는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프린스 블랙, 프린세스 래번클로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저리 꺼져. 공부하는 거 안보이냐.”
시리우스는 거칠다 싶은 말투로 한마디 던지고는 등으로 엉겨 붙는 제임스 포터를 밀어냈다. 제임스는 다소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넥타이로 자신의 입을 가리더니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저와 한방을 쓰셨으면서, 이런 식으로 홀대하는 법이 있으십니까? 소녀, 죽으면 죽었지 프린스 블랙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나는 그의 격정적인 반응에 다소 놀랐다. 마루더즈는 이렇게 노는구나. 아이작과 항상 수업에 관련된 담백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였던 나에게 이런 식의 친구 사이는 신선했다. 징징거리던 제임스는 그 자리에서 ‘그리핀도르의 칼’의 모조품인 것처럼 보이는 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자신의 복부에 칼을 찔렀다.
깜짝 놀란 나는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제임스의 배에는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욱,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정신을 잃은 것처럼 눈을 감았다. 제임스가 옆에서 무슨 짓을 하든 쳐다보지 않고 과제에만 몰두하던 시리우스가 내 비명에 놀라 제임스 포터를 바라보았다.
“브, 블랙 선배! 포, 폼프리 부인을…….”
“폼프리 부인은 무슨.”
그는 다소 한심하게 제임스를 보더니 그의 배에 꽂혀있는 칼을 빼냈다. 콸콸 흘러나오던 피가 갑자기 멎었고, 그는 감았던 눈을 반짝 뜨고는 시리우스를 안았다.
“소녀, 왕자님께서 절 구해주실 줄 알았사옵니다. 역시 왕자님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대에게 관심이 없소. 그러니 이제 좀 정신 차리고 꺼져주지 않겠나?”
시리우스는 중세에서나 쓸 법한 제임스 포터의 희곡적인 말투를 따라 하며 들고 있던 칼을 테이블에 꽂았다. 칼을 꽂은 자리에서 붉은 피, 아니 피처럼 보이는 붉은 색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장난감이구나. 두 사람이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 나는 테이블에 꽂혀 있던 칼을 빼냈다. 날카로워 보이는 칼날은 말랑한 재질이었고, 압박을 받을 때마다 끝이 사라져 진짜 칼이 꽂힌 것처럼 착각하도록 마법적으로 장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것에든 찔리면 피처럼 보이는 빨간 색소를 내뿜게 되어 있고.
그래, 장난감인 것이 당연하지. 진짜 제임스 포터가 배에 칼을 꽂을 리가 없잖아. 폼프리 부인을 부르며 당황했던 조금 전이 떠올라 얼굴에 열이 올랐다. 제임스는 내가 들으라는 듯 시리우스에게 말했다.
“래번클로양 진짜 귀엽다. 아까 벌떡 일어나는 거 봤어? 흰 토끼가 팔짝 뛰는 것 같더라.”
“아, 아 전… 진짜 칼인 줄 알고…….”
심호흡을 하며 붉어진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오길 빌었다. 하지만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더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나를 계속해서 놀려대더니, 나를 로웨나 래번클로 대신 로웨나 레빗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토끼를 주제로 노래라도 만들 기세였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여 그러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낄낄거리던 그는 연회장 테이블에 있는 생크림 케이크에 주문을 외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생크림 케이크가 흰 토끼 인형으로 바뀌었다.
“자, 널 닮은 토끼, 선물.”
그는 그 인형을 냉큼 나에게 안겨주었다. 뭐지? 하는 순간 시리우스가 나에게서 인형을 빼앗았다. 벌떡 일어난 제임스는 나에게 생긋 웃으며 ‘레빗양, 다음에 봐!’하고 인사하고 그리핀도르 테이블 쪽으로 도망가 버렸다. 시리우스는 놓칠 수 없다는 듯 도망가는 제임스를 향해 인형을 던지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인형은 다시 케이크로 바뀌며 아슬아슬하게 그의 등을 스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변신 주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들에게 감탄했다. 특히 시리우스는 변신 마법으로 모양을 바꾼 물건을 주문을 외지 않고도 원래 모양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는 케이크가 자기에게 닿지 않았다는 것을 약 올리듯 혓바닥을 씰룩 내밀었다. 그의 도발에 시리우스는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가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시리우스 잠깐만요!”
나는 다시 그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이거 다 하고 가셔야죠.”
나는 쥐고 있던 깃펜의 끝으로 목차를 적은 양피지를 툭툭 두드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내민 양피지를 바라보던 그가 퉁명스레 한마디 던졌다.
“아까 제임스한텐 얼굴까지 붉히면서 상냥하게 대하더니.”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죠.”
그래도 제임스는 말이라도 예쁘게 하잖아요. 나는 마지막으로 정리한 양피지를 내밀며 중얼거렸다. 시리우스는 그걸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눈썹 한쪽을 치켜세웠다.
“프린세스 래번클로? 나도 그렇게 마음에 없는 말 해줘?”
“됐고, 끝났으니 얼른 가세요.”
해야 할 일이 마무리 지어졌으므로, 나는 시리우스에게 양피지를 쥐여주고 그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계속 장난질을 하면서 앉아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리우스와 기숙사 테이블에 같이 앉아 친밀한 사이인 양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곧 학생들이 올 시간이었다.
내가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 해도 미동조차 않고 앉아있던 시리우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그의 옆에 서 있었던 나는 살짝 놀랐다. 시리우스는 평소보다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와, 은회색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로웨나 공주님, 오늘 진짜 예쁘네.”
무슨 헛소리냐고 성질을 내려고 했는데, 시리우스가 눈을 마주치면서 그렇게 말하니 얼굴이 붉어졌다. 그와 눈을 오래 마주 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진짜 어딘가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거야말로 장난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도, 순간이나마 내가 그의 잘생긴 외모를 의식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너, 얼굴이…….”
그는 내 볼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 웃음이 터진 것 같았다. 그렇게 크게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심지어 건너편 후플푸프 학생들이 고개까지 돌려가며 쳐다볼 정도였다. 나는 붉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에 시리우스의 뒤로 숨어서 그의 등을 밀었다.
“얼른 가라구요!”
“푸핫, 웃겨 미치겠다…… 너 진짜 놀려먹는 재미가 있네.”
그는 끝까지 낄낄거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래번클로 테이블을 떠났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는 와중에도 시리우스는 계속 나와 눈을 마주치며 비웃어댔다. 그게 상당히 신경 쓰여 나는 아예 그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반대편의 아이작 옆에 앉아버렸다. 왜 자리를 옮기느냐는 그의 물음에 ‘블랙 얼굴이 보기 싫어서’라는 이유를 대자, 아이작은 매우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 후에도 몇 번 시리우스와 마주쳤다. 수업시간이든, 복도에서든, 한동안 그는 내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까지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어쩐지 성질이 나서 시리우스를 만날 때마다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내가 그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하자, 시리우스는 얼굴 보고 좀 웃었다고 삐졌느냐며 놀려댔다.
내가 검은색 머리만 봐도 몸서리를 치며 도망 다니는 걸 보고, 아이작이 시리우스에게 한마디 할 요량으로 나서려고 하는 바람에 그를 뜯어말리느라고 또 한바탕 고생했다. 나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도 원하진 않았지만, 그가 그렇게 나서게 되면 아이작이 내 남자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건 싫었다.
* * *
오후 수업까지 다 마치고 아무도 없는 기숙사에서 나는 아침에 받은 아빠로부터의 편지를 뜯었다. 수업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못 읽은 편지였다.
────────────
로웨나에게,
벌써 학교 들어간 지 한 달이 넘었구나. 학교생활은 재밌는지 모르겠다.
루카스랑 미아는 요즘 매일 싸워대. 어제는 2층에서 루카스가 너무 울어대서 올라가 봤더니, 미아가 밀었대. 미아더러 왜 밀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루카스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아무렇게나 읽고 내버려뒀다는 거야. 그럴 때는 말로 풀어야지 왜 밀쳐냈느냐고 꾸중했지. 그러니까 미아가 더 크게 울어대는 거 있지. 나중에는 무슨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둘 다 더 크게 울려고 해서 걔들 달래느라 고생했단다. 내일이나 시간 되면 병원이라도 가 봐야 할 것 같아. 둘 다 목이 쉬었어.
────────────
그나마 내가 있을 땐 엄마처럼 두 사람의 중재를 담당하곤 했는데, 아빠는 쌍둥이 동생 둘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을 항상 어려워하셨다. 내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실 호그와트를 그만두고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머글 학교에 다니는 것 또한 고려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라리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난 후 런던에 있는 마법부에서 출퇴근을 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머글 학교를 다니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전에 머글 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력에 대한 제어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멍하게 앉아 있으면 연필이 춤을 춘다든가, 교과서가 스스로 종이접기를 하는 등의 마법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아직도 선명한 기억이 있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개학식을 하던 때였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머글 남자애가 나더러 이름처럼 우울해 보인다(blue)며 계속 놀려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내가 그 남자애에게 소리를 질렀더니, 그 애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그 아이는 결국 하늘로 날아가 버렸고, 학교 입학식이었던 그 날에는 머글 목격자가 상당히 많았다. 보통은 내가 그렇게 사고를 치면 마법사고 복구반이나 망각 본부에서 직원 두, 세 명이 투입되는 정도였는데, 그 날은 마법 사고와 재난부의 부서원 거의 전체가 와서 상황을 복구하느라 꽤 고생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는 생각으로 의기소침해진 나를 마법부 직원 한 사람이 달래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하도 일을 자주 치는 바람에 얼굴이 익숙한 마녀였다. 그녀는, 마법사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은 마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는지를 체화시킬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대해 처음 들은 것도 그때였다. 그녀는 결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 마녀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나중에 마법부에 가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빠의 편지를 마저 읽었다.
────────────
아빠는 요즘 마법사들의 흔적을 찾는 것에 재미를 느끼곤 해. 어제도 퇴근하면서 네가 말해준 마법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공중전화부스를 발견했어. 매일 다니던 길인데 거기에 공중전화부스가 있다는 건 어제 처음 알았단다. 마법사들은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마법부로 가는 길이 공중전화부스라는 것이 흥미롭더구나.
4학년 과정이 재밌다니 다행이야. 새로 온 교수님이 그렇게 좋으니? 네가 교수님에 대해 그렇게 길게 쓴 건 처음 봤단다.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면 꼭 들려주렴.
────────────
아마도 내가 리들 교수님과 아침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한 날 편지를 썼던 것 같다. 그 날은 아이작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리들 교수님 이야기만 해댔기 때문에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했다.
깃펜을 들어 답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루카스와 미아를 달래는 방법에 대해 양피지 한 장에 달할 정도로 길게 적고, 간단한 나의 안부를 전했다. 주로 내가 수업 도중에 교수님들께 칭찬을 받았다거나, 과제에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머글 세계에서 나는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문제아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빠는 내가 이 세계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내 편지만 보면 즐거워하곤 했다. 아빠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 그래도 아이작이 이번에 교환학생을 간다는 얘기는 써야겠다.
머글들은 쉽게 지나치는 프리메이슨 스트리트의 구조버스 정거장을 찾아보라는 말로 편지를 마무리하고, 호그와트성 3층에 있는 부엉이장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는 부엉이가 내 것 하나밖에 없어서 학기 중에는 보통 호그와트 학생용 부엉이를 사용한다. 내가 부엉이를 학교로 가져와 버리면 집에서 편지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호그와트에 전화가 없는 것이 그렇게 불평이었지만 나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화기가 있었다면 아빠는 매일 밤 전화해서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호그와트 부엉이장에 도착하자 나는 부엉이장에 있는 부엉이들을 둘러보았다. 제일 빠르고 똑똑해 보이는 애를 골라야겠다는 생각에 한참을 부엉이를 고른다고 시간을 보냈다. 결국 선택한 것은 갈색 깃털이 드문드문 나 있는 흰 부엉이였다. 부리에 편지를 무는 모습이 제법 영특해 보였다. 편지를 문 부엉이가 푸드덕거리면서 성 밖으로 날아가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부엉이장을 나갔다.
기숙사에 돌아가는 길에 3층에서 트로피 보관실을 발견했다. 그래, 여기에 트로피 보관실이 있었지. 몇 번 지나갈 일은 있었지만 트로피 보관실은 항상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다. 시간도 많은데 조금 구경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충동적으로 트로피 보관실에 들어갔다.
트로피 보관실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꽤 넓었다. 햇빛이 드는 창문을 제외한 벽면 전체에 트로피와 상장이 진열되어 있었고, 보관실의 중간마다 있는 큰 기둥을 트로피들이 둘러싸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트로피는 약 300여 년 전 트리위저드 경기에서의 우승 트로피였다. 황금빛 컵을 큰 용이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크기가 내 키를 훨씬 넘었다.
보관실을 한 바퀴 돌고, 나는 제일 최근 트로피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일 윗줄에는 우승 기숙사의 트로피가 연도순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황금색의 기숙사 우승 트로피는 그해에 우승한 기숙사 색의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재작년은 그리핀도르였고, 작년은 슬리데린이었다. 래번클로를 확인해봤더니, 10여 년 전에 우승한 이후로 한 번도 우승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쪽 벽면에는 상장도 걸려 있었다. 상장이라기보다는, 그해의 성적 우수자와 각 학년 기숙사 반장, 학생회장의 목록이었다. 작년이고 재작년이고 우리 학년 수석은 무조건 아이작이었다. 난 영원히 호그와트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걔랑 같은 학년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뭔가 손해를 본 기분이었다.
그 이전의 목록을 살펴봤더니, 예언자 일보에서도 제법 볼 법한 이름들이 보였다. 베스트셀러인 「뱀파이어와 함께 한 나의 인생」의 작가 엘드레드 워플이 호그와트 출신이구나. 그는 5학년 때 후플푸프의 5학년 반장이었다. 흥미가 인 나는 혹시 아는 이름이 있을까 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이름을 살폈다. 그러다 1959년쯤, 리들 교수님의 이름을 상장에서 발견했다.
교수님도 그 시대의 아이작과 비슷한 존재인 것 같았다. 교수님은 7학년인 1959년부터 그 이전의 모든 학년 수석을 맡았다. 아, 4학년 땐 아니구나. 4학년 때에는 래번클로 학생이 수석이었다. 그를 이긴 유일한 학생이 래번클로 출신이라는 것이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
조금 자세히 연혁을 읽고 있는 도중에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늦은 저녁 시간인데 누가 여길 다니나? 피브스인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는 리들 교수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