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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5)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식사를 얼른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충 씻고 바로 대연회장을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연회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텅 빈 연회장은 처음이었다.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리들 교수님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보일 요량으로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일부러 총기 어린 눈빛을 내비쳤다. 리들 교수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블루로즈 양. 일찍 일어났군요.”
“어제 조금 일찍 잠들어서요. 교수님은 항상 이 시간에 식사하시나 봐요.”
“보통은 그렇죠. 식사 같이하면 불편한가요?”
교수님이 아침 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할 줄이야. 나는 그의 권유가 끝나기도 전에 아뇨, 같이 먹고 싶어요! 하고 냉큼 대답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리들 교수님과 식사라니, 한 주를 이렇게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기분 좋게 테이블에 앉긴 했는데, 내 앞에 리들 교수님을 보니 뭔가 스프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나는 혹여 리들 교수님의 기분을 망칠까 조심하면서 묻는 말에만 착실하게 대답했다. 다행히도 교수님은 나를 아주 모범적인 학생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심지어 내가 지금까지 제출한 과제를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리들 교수님은 그 과제들이 다른 학생의 것에 비해 어떤 부분이 특히 우수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었다.
나는 스프를 뜨는 둥 마는 둥 그의 얼굴만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리들 교수님에게는 벨라의 피가 섞였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식사를 함께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나를 홀릴 수가 있나 싶다.
“블루로즈 양은 다른 학생들보다 전체를 보는 통찰력이 있는 것 같더군요. 장래에 어떤 일을 할지 혹시 생각한 것이 있나요?”
“마법부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는 그 이상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막연하게 마법부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거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마법부에 있기엔 좀 아까운 인재인 것 같은데.”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는 교수님의 극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리들 교수님은 그 이상 길게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는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작이 내 옆에 앉았다. 그는 살짝 넋이 빠져 있는 나를 보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작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나, 리들 교수님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
* * *
아이작은 아침부터 시작해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내내 리들 교수님에 대한 찬양론만 펼치는 나에게 진저리를 치며 그만 좀 하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순간 화가 나서, 너도 그렇게 다르진 않다며, 아이작 때문에 페르마의 전기를 줄줄 외울 정도라고 반박했다. 투닥거림은 점심을 먹고 대연회장을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의 잔소리를 들으며 대연회장을 나가는 길에 시리우스 블랙과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모른 척하며 지나가려는데, 그가 먼저 나를 불렀다.
“로웨나 블루로즈.”
“네?”
나는 나를 부르는 것이 시리우스가 아니라 그의 초상화라도 되는 줄 알았다. 우리는 한 달여 간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연회장에서는커녕 교실에서조차 아는 척하지 않는 사이였다. 놀란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아이작도, 시리우스의 옆에 있던 제임스 포터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 저녁 시간 되나? 머글 연구 과제 내일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며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놀란 내가 그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시리우스는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뇨… 내일 괜찮아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데? 갑자기 머글 연구 성적을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그러나 다행히도 시리우스는 나와 오래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그럼 머글 연구 수업 마치고 보자.”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쌩하게 대연회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제임스 포터가 따라가며 뭐야? 쟤 누구야? 하고 묻는 것이 여기까지 들렸다.
아이작이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시리우스 블랙과 아는 사이였어?”
“어… 머글 연구 수업을 같이 듣거든.”
교수님이 합동 과제를 내주셔서. 이렇게 말하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머글 연구의 빌헬름 교수는 기괴한 방식의 과제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친해지지는 마. 시리우스 블랙은 별로 질이 좋지 않아.”
그가 누군가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 좀 놀랐다. 그가 마루더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친해지지 말라고 얘기할 정도라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머글 연구 교실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리에 앉긴 했는데, 갑자기 불안해졌다. 시리우스가 오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고민하고 있는데 앞문으로 시리우스가 들어왔다.
정면에서 눈이 마주친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설프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는 대답 없이 자리에 앉았다.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이 좀 무안해지려 하는데, 그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무슨 인사야. 한 달 동안 서로 아는 척도 안 했는데.”
“하하, 그러게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때 빌헬름 교수님이 교실에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그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빌헬름 교수님은 머글들의 여가에 관한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운동 얘기로 빠졌다. 퀴디치같은 비행을 할 수 없는 머글들이 땅 위에서 하는 운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머글인 척하면서 실제 축구단에 들어가서 축구 게임을 한 경험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지만, 그는 말을 재밌게 하는 편은 아니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시리우스는 여느 때와 같이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오늘 마치고 보자는 거 아니었나? 깜짝 놀란 나는 급히 책을 챙겨 그를 따라 나갔다. 말없이 나간 그는 교실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준비했나?”
“책 몇 권 찾은 게 다예요.”
나는 빌헬름 교수의 논문에서 찾아낸 몇 가지 참고도서 목록을 내밀었다. 그는 내가 한 것들을 슥 훑어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혼자서도 잘하는 거 같은데.”
“네?”
나는 그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는 것이 두려워 황급히 그를 설득했다.
“아니에요, 저 진짜 못해요. 자료 찾는 거야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발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걸요.”
“너, 발표 잘하지 않냐?”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묻는 말에 대답하는 거랑 발표는 다르죠.”
그건 그냥 묻는 것에만 충실히 답하면 되는 거고, 발표는 나가서 설명하는 거잖아요. 시리우스 블랙은 그 둘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냥 대답이 좀 길어지는 게 발표 아니야? 라며 오히려 되물었다. 그렇게 대꾸하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적당한 책을 찾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았으므로, 우리는 대연회장에서 샌드위치 몇 개를 챙겨서 바로 도서관에 갔다. 둘 다 저녁을 먹으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빨리 끝내길 원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와 나는 우선 참고자료를 충분히 모으기로 했다. 내가 찾아놓은 참고도서 리스트에는 아직 살펴보지 않은 책들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리스트에 있는 책을 반으로 나누어 각자 책을 찾기 시작했다. 머글 관련 도서는 한 서가에 거의 다 몰려있어서 책을 찾는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서가 바로 옆에 책상이 하나 있었으므로, 그 책상으로 찾은 책들을 옮겼다. 시리우스는 한 권씩 다 빼서 손으로 이동시키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지팡이를 한 번 휘둘렀다. 찾아 놨던 책들이 서가에서 튀어나오더니 일렬로 둥둥 떠서 책상 위로 옮겨졌다. 많은 책들 중 원하는 책만 움직이게 할 정도로 기교가 좋지 못했던 나는 어쩐지 열등감이 밀려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는 블랙 가에서 어릴 때부터 마법교육을 받아왔을테니 나보다 능숙한 것은 당연했다.
머글 서가는 도서관의 구석에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 편도 아니었다. 우리는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한 권씩 확인해가며 필요한 자료를 찾았다. 머글 세계에 더 친숙한 사람은 나였으므로, 그에게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 여러 가지 탈것에 관해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시리우스는 특히 머글의 교통 신호 체계를 난해하게 여겼다. 앞에 사람이 건너려고 하면 멈추면 되지 왜 노란불이 필요하냐, 횡단보도라는 것은 왜 있느냐, 왜 굳이 좌회전과 우회전을 따로 나눠서 하느냐 기타 등등. 그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이상한 질문만 해댔다.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것이었지만, 시리우스는 자동차의 매커니즘을 구조버스쯤으로 이해한 것 같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횡단보도가 있다는 것이나, 차들이 빨간 불에 멈춘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머글 세계에 나가서 자동차를 한 번 타보길 권장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시리우스는 여기에 비행마법을 걸어 날 수 있게 만들면 쓸모 있을 것 같다며 오토바이를 탄 머글의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머글들의 항공수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을 때, 시리우스는 거의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비행기의 길이가 호그와트 성만 하고, 무게는 서쪽 천문탑만큼 무겁다고 설명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는 내가 허풍을 치는 것이라며 전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나는 머글 비행기가 실린 책을 직접 찾아와 그에게 읽어주었다.
“여기 봐요, 여기. 머글들의 비행기는 44만 파운드(200톤)에 달한다고 나와 있잖아요, 맞죠? 제 말이. 천문탑도 아마 44만 파운드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마법도 없이 그렇게 무거운 걸 띄운다고?”
그는 44파운드가 잘못 적힌 게 아니냐며 몇 번이고 다시 그 부분을 읽었다.
“아무리 덤블도어 교수님이라도 천문탑을 띄우지 못해! 멀린도 그건 불가능할걸!”
둘이서 한참을 투닥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도서관 사서 핀스 선생님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너무 시끄러웠나? 우리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주의를 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 폐관시간이에요. 이제 정리하도록 해요.”
이렇게까지 시간이 간 줄 몰랐기 때문에 그도 나도 깜짝 놀랐다. 시계를 보니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필요한 책만 몇 권 골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취침시간인데, 이러다가 감점을 당할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빌려온 책을 쥐여주고, 내일 마저 얘기하자며 기숙사로 달려왔다. 다행히도 오늘 청동 독수리상의 퀴즈는 그렇게 어려운 편이 아니었고, 나는 금방 기숙사에 들어왔다.
휴게실에 들어가니 입구 쪽 소파에서 아이작과 스테이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작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스테이시는 깔깔 웃으며 그의 등을 살짝 치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 불편해 그냥 모른 척 들어갈까 했는데 아이작이 나를 먼저 발견했다.
“로웨나!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아, 말했잖아. 머글 연구 과제 때문에.”
나는 어색하게 둘에게 인사했다. 블랙과 같이 있었다고 하면 스테이시가 또 래번클로 전체에 소문을 낼 것 같아서 그냥 그렇게 얼버무렸다.
“늦게까지 과제 하는구나. 역시 래번클로의 모범생이야!”
스테이시는 평소와 다름없이 밝게 웃으며 나를 칭찬했다. 도서관 서가 뒤에서 들려오던 적의 어린 그녀의 목소리가 겹쳐서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작과 단둘이 얘길 하고 싶었지만, 스테이시는 자리를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일 대화를 나누지 뭐, 방에 들어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두 사람에게 잘 쉬라고 말하고 기숙사 방 쪽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갈 거야, 로웨나?”
“응,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럼 나도 들어갈래.”
아이작은 휴게실 테이블 위에 늘여놓은 양피지를 모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스테이시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럼 나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서 있다간 여자 기숙사까지 스테이시와 같이 갈 것 같아서 나는 얼른 인사하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