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5화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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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4)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서는 앞자리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고대 룬 문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달려온다 하더라도 누군가 이미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고대 룬 문자 수업을 수강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공강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미리 잡아놓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만큼은 다른 수업과 다르게 네, 다섯 번째 줄 자리에 앉곤 했다. 심지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시간에는 기숙사 별로 자리가 나뉘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상관없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열과 성을 다해서 수업에 집중했다.

과제든 실습이든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번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좋은 성적을 받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특히 여학생들은 5인치 분량의 과제를 20, 30인치씩 해서 리들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용이 많은 것 보다는 과제의 질에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지난번 어둠의 마법 오용에 따른 부작용을 서술하라는 과제에서, 영혼의 분열 같은 식상한 내용이 아니라 육체의 파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적어서 제출했더니, 그가 수업 중에 나를 지목해서 칭찬했다. 수업 도중에도 리들 교수는 나와 지속해서 눈을 마주쳤고, 덕분에 나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 수업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

아이작은 그 이후로 번번이 나를 놀렸다. 내가 다소 풀어지거나 노곤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저기 리들 교수님 있어, 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정신을 바짝 자리고 자세를 바로 하곤 했는데, 아이작은 갑자기 정자세로 돌변하는 나를 그렇게 재밌어했다. 물론 다섯 번 중 네 번은 아이작의 장난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교수님이 근처에 있을 때도 있었으므로, 나는 매번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 * *

시리우스 블랙과 근 한 달이 넘게 옆자리에 앉았음에도 우리는 서로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빌헬름 교수님이 새 과제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별로 반갑지 않게도 그는 학생들에게 직접 발표를 시키는 머글식 수업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교수님은 그저 같이 앉는다는 이유로 나와 시리우스를 짝지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는 ‘머글의 운송수단’이었다.

한 번도 이런 식의 팀 과제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새로운 과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 블랙은 나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과제 따위 모르겠다는 듯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따라 나갈까 하다가 관뒀다. 아직 준비 기간은 많이 남았고, 지금 당장 머리를 맞댄다 하더라도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도서관에서 정보를 좀 더 찾아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다음 수업 시간에도 시리우스는 과제에 대한 이야기는커녕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가려는 그를 내가 먼저 복도에서 붙잡았다.

“과제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요.”

나는 한 치의 사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의사를 표하며 본론부터 드러냈다. 시리우스는 망토를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별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말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과제는 머글의 운송수단이에요. 도서관에서 조금 찾아봤는데, 탈 것과 날 것으로 구분해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10분 분량 정도로 발표하면 되니까……”

“미안한데.”

그가 나의 말을 중간에 멈추었다. 온건한 어조이긴 했지만 다소 공격적이었다. 그는 그대로 이어 말했다.

“이미 혼자 모든 걸 다 준비해 놨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건가?”

“네?”

이렇게 적의 어린 말을 듣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 이 사람이 뭐라는 거지? 왜 이렇게 말에 가시가 담겨 있어? 나는 이것이 나를 향한 적대감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의 착각인 것인지 명확하게 판별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8인치(약 20센치)는 더 큰 듯한 시리우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분명하게 말했다.

“본인이 이미 다 결정했으니, 내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너무 당황해서 나는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가 확연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니,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심지어 내가 말을 이어가는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어깨에 대충 걸친 망토를 벗으며 건성으로 말을 던졌다.

“어차피 혼자 잘할 거잖아? 알아서 해. 난 과제 내용에 별 불만 없을 테니까.”

그렇게 시리우스는 자기가 할 말만 툭 던지고 가버렸다. 너무 당황해서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도 못 하고 어버버거리면서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내가 잘못한 포인트를 알 수 없었다. 사실 모든 대화 내용을 종합해서 보면 그는 그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왜? 그가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한 달 동안 같은 수업을 듣긴 했지만, 우리가 서로를 알 만큼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서로 모르는 척했던 것도 결코 나만의 일방적인 침묵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는 내가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짜증스러워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그를 화나게 할 만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저지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우리는 머글 연구 수업 외에는 접점이 없는 사이였다.

머리를 쥐어짰지만 결국 아무런 답도 낼 수 없었다. 내 금요일이 이렇게 망쳐지다니. 오후에는 마법의 역사 수업이 있는데 수업에 집중 하나도 못할 것 같다.

* * *

일요일에는 호그스미드로 외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연휴 전에 있는 중간시험도 가깝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4학년이 학교에 붙어있을 이유는 없었다. 휴게실에 보이는 사람들도 N.E.W.T를 준비하는 7학년 선배나 외출이 금지된 1, 2학년 학생들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퀴디치 연습을 구경 갔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기숙사는 조용했다.

기숙사 책상에 앉아 약초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다가 살짝 졸았다. 이렇게 졸다가는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버릴 것 같았다. 낮에 자 버리면 밤에 잠이 오지 않게 되고, 그러면 그다음 주의 수면주기가 다 흐트러졌다. 그건 싫었다. 잠을 깰 겸 산책이나 할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책을 덮고 바람을 조금 쐬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9월 말이라 그런지 날씨는 조금 쌀쌀해져 있었다. 체크무늬 스커트에 얇은 스타킹을 신고 베이지색의 얇은 라운드 티를 입었다. 그 위에 편한 카디건과 망토 하나를 들었다. 옷을 갈아입다 보니 잠이 깼지만 그래도 조금 걷는 게 좋겠지.

왠지 혼자 산책하는 게 싫어 휴게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아이작이라도 있으면 데려가려 했는데 그는 보이지 않았다. 기숙사에 있기만 하다면 불러낼 수 있지만 참았다. 평일 내내 서로가 붙어 있는데 주말까지 그를 끌고 다니기에는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쉬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

호그와트 주변을 산책할 때면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검은 개 블랙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시리우스 블랙도 블랙이구나. 계속 그 개를 블랙이라 부르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름이 시리우스의 성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에게 블랙이라는 가문은 그저 고유명사였고, 내가 그 개를 블랙이라고 불렀던 건 정말 까매서 그랬던 거였으니까 그럴 법도 했다. 처음에 개의 이름 붙일 땐 그렇게 만족스러웠는데, 그것이 시리우스 블랙과 같은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다. 괜히 블랙이라고 붙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없구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검은 개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요즘 들어 그렇게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산책로를 따라 호수 쪽으로 걸었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지자 그래도 바람이 그렇게 심하게 불진 않았다. 그때, 호수 근처에서 익숙한 형체를 발견했다. 블랙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블랙! 하고 나는 그 개의 이름을 불렀다. 블랙은 여느 때와 같이 나를 보자마자 반대편으로 도망갈 것 같았다. 다급해진 내가 개를 향해 소리쳤다.

“가지마! 나 외롭단 말야.”

왜 갑자기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도망가버리려고 하던 검은 개는 내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멈칫하더니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나와 블랙의 눈이 마주쳤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블랙은 눈동자가 너무 예뻤다. 은회색 구슬을 박아놓은 것 같이. 개의 얼굴을 평가하긴 힘들겠지만 확실히 잘생긴 개라는 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행히도 블랙은 어디 도망갈 것 같진 않았다. 거의 한 달 만에 블랙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는 근래 내가 이룩한 소소한 학업적 성취보다 훨씬 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블랙은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으려 했으나, 나는 그 정도에도 충분히 만족했다. 나는 그 개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선배 중에서도 블랙이 있어. 너와 같은 블랙이야. 사실 그 이름은 니가 까맣고 귀여워서 충동적으로 지은 건데, 지금 조금 후회하고 있어. 그 블랙을 연상하게 하거든.”

내가 착각하는 건가? 그 개가 약간 인상을 찌푸리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블랙은 평소처럼 멀리 도망가지 않고 근처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좀 닮은 것 같긴 해, 너랑. 특히 눈동자가 닮았어.”

말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 개의 눈동자와 시리우스 블랙의 눈동자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은회색의 눈동자인데, 시리우스 블랙을 닮았다니. 나는 입술을 깨물고 심술궂게 말했다.

“물론 심성은 너와 다르겠지. 그는 ‘블랙’이니까. 나 같은 머글 출신과는 말도 안 섞는 순수혈통. …열 받아.”

얘기를 하다 보니 화나네. 나는 개가 옆에 있든 말든 혼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뭐, 성적 따윈 아무래도 좋겠지. 호그와트에서 꼴등을 해도 그가 가진 가문이 있잖아.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한다고 한 들 그의 가문에 비하겠어? 그렇지만 말이야, 나 같은 머글 출신이 마법 세계에 정착 좀 해보겠다고 이렇게 기를 쓰고 공부를 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걸 어떻게 나 혼자 다 하란 말이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머글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게 일종의 원죄 아니겠어. 거기다가 머리도 나쁜데 래번클로에 들어온 죄. 가끔 다 때려치우고 그냥 머글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머글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숨어 살면 좀 편하지 않을까. 그럼 이렇게 나의 출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겠지.”

신기하게도 블랙이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으나, 그는 분명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있었다.

“아, 진짜 머글 연구. 발표도 처음 해보는 건데 어떻게 해. 나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야.”

머리가 복잡해져서 근처 잔디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크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라 그런지 호수는 잔잔했다. 조용히 호수를 바라보다가 뒤로 풀썩 누웠다. 구름이 햇빛을 가렸기 때문에 그렇게 눈부시지는 않았다. 손을 이마에 얹으며 나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 의욕도 없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와서 뭘 할 수 있겠어. 밤을 새워서라도 혼자 하는 게 더 낫지. 약초학 시간에 재료를 좀 훔쳐서 각성제라도 만들어야겠어.”

생각 없이 말한 건데, 굉장히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각성제는 5학년 때부터 만들 수 있긴 하지만 도서관에서 찾아보면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재료를 먼저 알아보고 생각해봐야지. 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도서관에 찾아갈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검은 개는 내 쪽을 바라보며 주변을 돌고 있었다.

“이제는 도망가지 않을 거지? 난 니가 마음에 든단 말야. 앞으로도 자주 아는 척하자, 응?”

검은 개 블랙은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 작품 후기 ============================

추천/선작 감사드립니다. 예휜님이 코멘트를 네개나 달아주셔서 엄청 황송해하면서 봤어요. 조아라에서 소설 보면서 작가님들이 코멘트 선작 추천 받으면 엄청 기뻐하시던데, 그 이유를 몸소 체험하고 있어요.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ㅎㅎ

예휜님이 질문한 사항에 대해서는 답변 드리도록 할게요.

1. 로웨나는 톰 리들이 볼드모트라는 걸 어떻게 알지?

이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중에 나올 부분이니 대답은 드리지 않을게요.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 빙의/환생적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2. 아이작 본즈?

원작에 따르면 원래 아멜리아 본즈의 남동생 부부(에드가 본즈 내외)와 그 아이들은 볼드모트에 의해 1981년 살해됩니다. 여기서 에드가 본즈 내외의 아들이 아이작입니다. 그래서 아멜리아 본즈가 아이작의 고모이구요.

여기서 나오는 주인공을 비롯한 래번클로 학생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입니다. 사실 조앤롤링의 설정 상 친세대의 래번클로 학생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모두 지어냈어요. 순수혈통 집안이나 성 정도는 원작을 참고했지만 인물들은 다 가상입니다.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후플푸프 출신의 등장인물들의 경우는 태어난 해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어도 다 원작에 기반했습니다. 배경이 1975년이기 때문에 마루더즈들은 5학년, 로웨나와 아이작은 4학년이구요.

원작 설정과 제가 인위적으로 집어넣은 설정들이 섞여 있어서, 추후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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