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4화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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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3)

머글 연구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양피지 한 장과 3학년 마법약 교과서를 들고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과제라니. 다이애나 선배가 4학년부터는 O.W.L을 대비해서 과제 양이 폭발적으로 많아진다고 했었다. 미뤄놓다가는 과제에 치일 것 같아서 그냥 오늘 끝내기로 했다. 아이작이 올 때까지 이것만 하고 있어야지.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어서 대연회장에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나는 래번클로 테이블 구석에 앉아서 마법약 교과서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말이 과제지, 거의 3학년 수업 전체를 리뷰하는 보고서 수준이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우선 간단한 것부터 정리해야겠다. 3학년 들어가 처음 배웠던 게 몸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법약이던가? 그 재료가, 내 기억엔 거머리 즙이랑, 쥐의 지라, 죽은 애벌레, 무화과나무 씨앗이었나?

“아냐, 이거 오그라든 무화과 나뭇가지야.”

고개를 들자, 아이작이 내 양피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 그래 맞아. 작년 수업시간에도 내가 무화과나무 씨앗을 챙겨서 다시 가져왔던 것 같은데.”

“그랬지. 결국 완성된 마법약을 보고 슬러그혼 교수님이 극찬하셨지만.”

나는 양피지 조각을 말아서 마법의 약 교과서 책과 함께 테이블 옆쪽으로 밀었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의 접시에 음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쪽으로 양송이 차우더 스프를 끌어당기며 지나가듯 그에게 말했다.

“그래도 네가 그때 지적하지 않았으면 난 그대로 무화과 나무 씨앗을 넣었을 거야.”

“안나처럼?”

“응, 안나처럼.”

나는 제대로 재료를 챙겼으나, 안나는 무화과 나뭇가지 대신 씨앗을 그대로 집어넣었다. 그때 안나가 완성한 몸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법약은 지독한 냄새가 났다. 만들던 안나는 냄새를 맡고 바로 기절했고 학생들은 냄새를 피해 다 교실을 옮기는 소동을 벌였었다. 대피하면서도 사람을 기절까지 시키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지 토론이 분분했었지.

그 당시를 생각하면서 웃고 있다가 누군가의 눈길을 느꼈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더니,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시리우스 블랙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은회색의 깊은 눈동자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고는 생각했다. 뭐지? 왜 시리우스 블랙이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 그는 내가 호그와트 학생이라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아이작의 말에 건성건성 대답하면서 나는 다시 시리우스 블랙 쪽으로 살짝 시선을 두었다. 방금 눈이 마주친 것은 내 착각이었다는 듯 그는 제임스 포터와 뭔가를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가 그의 새로운 표적이라도 된 것은 아닐까 순간 걱정이 되었으니까.

“마루더즈랑 무슨 일 있어?”

아이작은 내 시선이 닿는 곳을 비교적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어쩐지 찔려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냥 눈이 마주친 것 같아서. 그냥 내 착각이었나 봐.”

“그래?”

“그건 그렇고, 산술점 수업의 새 교수님은 어때?”

난 일부러 말을 돌리며 별로 흥미도 없는 질문을 했다. 다행히도 아이작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크게 새로운 건 모르겠어. 듣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던데.”

그렇게 말하던 아이작이 나를 흘끔 보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 음식을 깨작거리던 내 앞에 매쉬 포테이토 접시를 밀어주었다. 고마워, 라고 대답하며 내가 말했다.

“머글 연구 수업을 듣던 애들이 다 그쪽으로 갔나 봐. 하긴, 적당한 시간대가 머글 연구 아니면 산술점밖에 없으니.”

“많이 빠졌어?”

“어. 빌헬름 교수님이 사람이 얼마 없으니 그룹 스터디를 해도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 폐강 안 된 게 어디야.”

흐음, 하고 미간을 찌푸린 아이작이 물었다.

“너도 산술점으로 옮기는 게 어때?”

“괜찮아. 나 수학 못하는 거 알잖아.”

머글 연구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선택과목이긴 했으나, 산술점, 점성술, 신비한 동물 돌보기라는 나머지 세 과목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도 머글 연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작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그는 나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책정할 수 없는 위험요소 정도의 근거를 두고 내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방학 때마다 머글 가정으로 돌아가므로 마법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머글 연구 수업을 듣는 것이 그 자체로나마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 줄어든 것을 보고 희미하게나마 느꼈다. 예언자 일보에 연일 실리는 머글 살해 사건이나 머글 출신 마법사에 대한 위해 사건들도 무섭긴 했지만 나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직 어린 호그와트 학생에 불과한 나를 무슨 실리가 있다고 살해하겠나 싶기도 했다.

나는 쓸데없는 잡생각을 떨치고 그에게 마법약 과제를 하자고 권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제도 기한이 그렇게 많이 남진 않았으니, 얼른 마법약부터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4학년 학기 첫날인데 이렇게 과제만 하고 지나가겠구나,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지만 이걸 미루고 있으면 괜히 마음만 더 불편하겠지. 나는 그와 머리를 맞대고 작년 마법약 수업에 배웠던 것들을 리뷰하기 시작했다.

* * *

두 번째 머글 연구 시간은 금요일이었다. 약초학 수업이 다소 늦게 끝나서 급하게 교실에 도착했지만,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제일 앞쪽에 자리를 잡고 교과서를 읽고 있으니 곧 머글 연구 담당의 빌헬름 위그워디 교수님이 들어왔다. 그는 교실을 휙 둘러보더니 한마디 했다.

“얼마 없는데 학생들은 왜 그렇게 떨어져 앉아 있나? 다들 좀 가까이 앉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는 뒤에 앉은 학생 하나하나를 지적하며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일어나 앞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빌헬름 교수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까진 없었다. 학생 몇 명이 자리를 옮긴 후에 교실 전체를 둘러보던 교수님이 시선을 한 곳에 고정했다.

“블랙 군, 거긴 너무 뒷자리야. 여기 블루로즈 양 옆에 앉도록 해.”

그는 비어있는 내 옆자리를 탁탁 치면서 말했다. 블랙이라고 했을 때 생각난 것은 레귤러스 블랙이었다. 우리 학년의 블랙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골수 순수혈통주의자라 알고 있는 그가 이 수업을 듣는다니,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의 지적에 블랙이 말없이 걸어와 내 옆에 앉았다. 내 옆에 앉은 그의 손에 쥐어진 풀어진 넥타이의 색깔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진홍색, 그리핀도르의 색깔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 옆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시리우스 블랙이었다. 5학년인 그가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지?

“이번 학기는 이렇게 지정석으로 앉도록 하지. 저번 시간에 진도 어디까지 나갔었나?”

곧 빌헬름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소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에 앉은 시리우스 블랙이 매우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머글과 과학 챕터를 펴 놓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머글과 문화를 배우고 있었는데도.

분명 스테이시나 안나 같은 애들이라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요란을 떨겠지. 그 애들은 시리우스 블랙이 잘생겼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그가 약간 무서웠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으나, 머글 출신인 나에게 ‘블랙’가의 이름이 가진 무게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는 것이 가장 컸다.

멍하게 딴생각을 하는 도중 빌헬름 교수가 갑자기 나를 지목했다.

“그래서 머글 세계에서 움직이는 그림에 대응하는 기계가 있다는 것은 이전에 배운 바 있지. 그게 뭔지 아는가, 블루로즈 양?”

“예, TV입니다. 머글들이 전자기파라고 부르는 광학 기술을 이용해 발명한 기계로서 움직이는 사진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신자에서 수신자에게 일방향으로 전달하므로 초상화와는 다르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녹화된 영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정도이죠.”

“좋아. 래번클로에 10점 주겠네.”

나는 수업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는 듯 명료하게 대답했다. 빌헬름 교수님은 매우 만족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읊은 답변은 재작년 빌헬름 교수가 국제 머글 연구 협회에 낸 논문에 나온 내용이다. 그는 구태의연한 머글 역사보다는 현대의 머글들의 신문물에 관심이 많다.

옆자리에 앉긴 했지만, 나는 그 후로도 시리우스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도 서로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시리우스 블랙에 관심이 아주 많긴 했다. 그를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까. 게다가 마루더즈들의 비상한 마법 응용력을 보면 그는 마법사로서의 자질도 우수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시리우스 블랙에 대한 선망과 관심은 금방 누그러졌다. 수업 진행과 무관한 챕터를 펴 놓는다던가, 수업 도중에 지팡이를 휘둘러 양피지로 학을 만들고 있다던가 하는 모습들은 그가 그렇게 모범적인 학생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이 3주 정도 지났을 때 우리는 데면데면한 사이를 넘어 서로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보통 수업 전에 내가 먼저 도착해 교과서를 읽고 있으면, 시리우스는 망토를 질질 끌며 수업이 시작하기 1, 2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나는 그가 왔음을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든 말든 시리우스는 빌헬름 교수가 들어오기 전까지 넥타이나 돌리며 딴짓을 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별로 머글 연구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왜 이 수업을 듣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교수가 그에게 갑자기 질문이라도 던지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 학업에의 열정보다는 타고난 좋은 머리 덕택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가 더 싫어졌다.

* * *

“으, 나는 목요일 오전 고대문자 수업이 제일 힘들어.”

“래번클로 4학년이라면 다들 그렇게 말할 거야.”

고대 룬 문자 수업은 이해하기보다는 외우는 것 위주였다. 그래서 수업 자체가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었다. 하지만 전날 새벽에 천문학 수업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정에 시작하는 천문학 실습을 끝내고 기숙사에 도착하면 새벽 두시쯤이었다. 물론 다음 날 아침 수업은 없었지만, 오전 열한 시에 고대 룬 문자 수업이 있었다. 목요일 아침마다 나는 반쯤은 몽롱한 상태에서 수업을 듣곤 했다.

오늘도 별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교수님이 오기 전 대충 교과서를 넘기다가 뒷부분에 눈에 띄는 삽화 하나를 발견했다. 검은 개가 짖고 있는 그림이었다. 고대의 벽화에 나오는 검은 개와 거기에 적혀 있는 룬 문자로 된 저주가 실려 있었는데, 마법세계에서는 검은 개가 불운의 상징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았다. 내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마법 세계에서는 검은 개가 불운의 상징이야?”

“응.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왜?”

아이작은 이를 긍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나는 그의 대답을 흘러 들으며 검은 개 블랙을 생각했다. 블랙과 몇 번 마주쳤지만, 그 개는 볼 때마다 멀리 도망갔다. 처음 봤을 때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멀리서 발견하면 도망치고, 말을 걸려고 해도 도망치는 덕에 나는 계속 그 개의 꽁무니만 바라볼 뿐이었다.

개가 그렇게 계속 도망가버리니 어쩐지 나는 묘하게 도전 정신이 일어, 조금이라도 여유 시간이 생기면 검은 개를 찾아다니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 개는 주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런 숨바꼭질이 한 달여 정도 지나자 나는 호그와트의 인적이 드문 장소를 모두 섭렵하고 다닐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그 검은 개를 쫓아다니는 게 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그는 적어도 나에게는 행운의 상징과 같았다. 우연치 않게 블랙을 발견한 날에는 수업 시간에 내가 아는 것들에 대해 교수가 질문해서 점수를 받는다든가, 과제를 칭찬받는다든가 사소하지만 기쁜 일이 생겼다. 나는 호그와트에서 블랙을 만나는 것이 점점 좋아졌다.

* * *

플리트윅 교수님의 호출에 불려갔었던 아이작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돌아왔다. 학년 수석이라는 소식에도 심드렁했던 그가 그렇게 흥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이작은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나에게 외쳤다.

“나 이번 학기에 한 달간 덤스트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거 확정됐어!”

“당연히 네가 되어야지, 축하해.”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놀랍진 않았다. 3년 내내 수석을 차지한 아이작 본즈가 아니면 누가 갈 수 있단 말인가? 사실 그의 덤스트랭 사랑은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이작이 덤스트랭에 교환 학생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마법사 협회의 위원장인 피에르 페르마가 2년여 전부터 덤스트랭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1학년 때부터 아이작은 마법사 페르마의 열렬한 팬이었다. 개구리 초콜릿을 사서 초콜릿은 먹지 않고 페르마 카드만 모을 정도였다. 지난겨울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강연을 다녀와서는 일주일간 그 얘기만 했었다. 열다섯 밖에 안 되는 아이의 우상이 퀴디치 선수도 아니고 거진 90세를 바라보고 있는 노년의 마법사라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여하튼 그에게 페르마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이돌이었다.

“덤스트랭에선 자그마치 페르마 교수님이 주 2회 마법 수업을 가르친데. 필요하다면 1:1 교습을 하기도 한다더라. 믿을 수 있어?”

“벌써 그 얘기만 열 번은 들은 것 같아. 인간 리멤브럴 같아 너.”

“그래? 그럼 한 번 더 얘기해 주지. 덤스트랭에선 페르마 교수가 마법 수업을 가르쳐!”

그가 없으면 거진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에게는 그가 교환학생을 간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좀처럼 들뜨지 않는 아이작이 어린 아이마냥 신나 하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결국 그 날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덤스트랭의 교과과정과 호그와트의 교과과정을 비교하며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 * *

도서관은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제 아이작과 덤스트랭 이야기를 하다가 약초학 과제를 마저 끝내지 못했다. 적어도 오늘까지는 끝마쳐야 했으므로 나는 약초학 관련 서적 목록을 뽑아 서가를 누비며 책을 찾았다. 이쯤에 아마 독버섯 백과사전이 있을 텐데. 꽂혀있는 서적들의 책등을 훑던 도중에, 반대편 서가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었어? 아이작이 다음 학기에 교환학생 가는 거.”

안나의 목소리였다.

“솔직히 우리 학년에서 갈 만한 애는 아이작밖에 없지.”

그들은 아이작의 마법 실력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작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익스펙토 패트로눔을 세 번 만에 성공했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래번클로에서 그의 우수함에 대해 나만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나는 그들의 속삭이는 대화를 한 귀로 흘러 들으며 독버섯 백과사전을 찾는 데에 열중했다.

“그러고 보면 아이작은 로웨나와만 붙어있는 것 같아.”

“로웨나?”

갑자기 내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들이 계속해서 말했다.

“응. 솔직히 래번클로에서 남자와만 다니는 건 로웨나 밖에 없지 않니?”

“아무래도 좀 그렇지? 사귀는 것도 아닌데.”

“아이작이 로웨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데이지의 목소리였다. 그 무리에서 유일하게 나에 대해 방어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은 데이지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스테이시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어. 본즈가와 아보트가와의 정략결혼이 벌써 오가고 있다던데. 얼마 전에 엄마가 순수혈통 모임에 가서 들었대.”

안나도 거들었다.

“들어보니 본즈가에서도 아이작이 로웨나랑 친하게 지내는 것이 꽤 못마땅한 모양이더라.”

“그렇겠지, 그녀는 좀…….”

머글 출신이잖아, 라고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보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찾던 책을 찾았는지 열람실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찾아가 따져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앞에서 직접 적의를 드러낸 것도 아니었고. 당사자가 없을 때 모여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사실 여자아이들의 생리상 당연한 부분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마음에 들 만한 행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므로 일견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는 항상 아이작과 어울렸고, 여자애들과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니까.

서가를 떠나 열람실 책상에 앉으며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들의 관심사를 억지로 맞춰야 한단 말인가? 무리 중 하나가 금발로 염색을 하고 온다면, 어느 상점에서 파는 마법약을 사용한 것이냐 너스레를 떨고, 블랙가와 혼담을 주고받는 순수혈통 가문을 줄줄 외면서?

그들의 관심사가 거기에만 국한된 건 아니겠지만, 나는 정말로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버거웠다. 저 아이들과 내가 어떤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그래도, 리들 교수님에 대한 얘기라면 밤새도록 할 수 있겠지. 그가 수업 시간에 입었던 복장이나, 사용한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는 우아한 동작 같은 것.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약초학 과제나 하자.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애써 떨쳐내면서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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