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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art 1 - (1)
호그와트 연회장에 도착하자, 나는 새 학기가 시작했음을 확연하게 느꼈다. 1학년 때에도 그랬던 것 같다. 머글 출신인 나에게 마법 학교로의 초대장은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진짜 내가 마법세계에 들어왔음을 절감한 것은 호그와트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연회장에 들어섰을 때였다.
오늘의 연회장은 평소보다도 훨씬 밝은 분위기였다. 어두웠던 대연회장이 파스텔 색조의 무지개색 머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입생과 저학년들은 전멸이었다. 어떤 애들은 눈썹과 팔의 솜털까지도 다양한 색깔로 염색되어 있었다. 입학을 고대하며 양 갈래 머리로 예쁘게 땋은 한 여학생이 계속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물들지 않은 머리카락 끝 부분이 금발인 것을 보니 머리카락에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마루더즈를 찾았다. 포터와 블랙은 키득거리며 본인들이 벌인 대참극에 대한 만족감을 표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루더즈들의 머리카락도 파스텔 톤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들의 장난기에 대해 별달리 할 말은 없지만 마법 응용력 자체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사실 안개를 형성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라던가, 머리를 염색시키는 마법약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별다른 기교 없이도 호그와트 3학년 정도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섞어 터뜨릴 발상을 하다니. 단순히 장난꾸러기라고 보고 넘어가기엔 그들의 능력이 너무 비상했다. 게다가 열차같이 밀폐되어 있는 공간에서 그 효과가 가장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했음이 틀림없다. 매번 마루더즈들이 활개를 치고 다님에도 교수들이 크게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교수님들도 그런 비범함을 쉬이 보고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녕, 로웨나. 기차에서 안 보이길래 너 이번에 학교 안 온 줄 알았잖아.”
“아이작이 우리가 탄 차량 전체에 투명마법을 걸었어. 마루더즈 때문에.”
“그래서 너랑 아이작이 멀쩡하구나.”
데이지 역시 머리카락 색이 전부 무지개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상급생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이작처럼 완전히 멀쩡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머리카락 끝이 물들긴 했지만 다소 양호한 편이었고. 슬리데린에서는 분노를 표하며 부득불 머리색을 바꾸려고 온갖 마법을 시전하는 것이 보였다. 래번클로는 뭐, 염색 축제라도 된 듯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2학년의 질데로이 록허트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독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은 무지개색 머리로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쟨 아마 커서 나중에 마법사 세계의 셀러브리티가 될 거야. 나는 아이작이게 작게 속삭였다.
곧 1학년들의 기숙사 배정식이 시작되었다. 대연회장 가운데 올해 입학하는 신입생들이 올망졸망 서 있는 게 귀여웠다. 나도 3년 전 저기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이름에 있는 ‘블루’ 때문에 상징이 파란색인 래번클로에 가고 싶었긴 했지만, 모자가 머리가 닿기도 전에 “래번클로!”라 외친 것은 인상 깊었다. 당시에 나는 호그와트 설립자 중 하나인 래번클로의 이름이 로웨나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래번클로 기숙사 학생들이 보낸 유난히 우렁찬 박수 소리가 얼떨떨한 따름이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의 연사를 한 귀로 흘러 들으며 데이지가 다시금 물었다.
“이번에 선택과목으로 뭐 들을 거야?”
“나? 룬 문자와 머글 연구을 선택했어.”
“머글 연구? 괜찮겠어? 너도 알다시피 요즘 좀…….”
나 또한‘죽음을 먹는 자’들로부터 비롯된 근래의 마법계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우려도 이해했지만, 단지 어깨를 한 번 으쓱해줄 뿐이었다.
데이지가 아이작에게 물었다.
“아이작, 너는?”
“작년과 같이, 고대 룬문자와 산술점.”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단상 쪽을 흘깃 쳐다봤다. 맥고나걸 교수님이나 슬러그혼 교수님은 하나도 변한 게 없네. 무심한 눈빛으로 익숙한 얼굴을 훑다가, 교수 테이블 가장자리에 처음 보는 얼굴을 발견했다.
짙은 흑안에 흑발의 남자. 이미 학생들은 새 얼굴을 눈치챘는지 그를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교수 자리에 앉아 있긴 했으나 교수직을 맡기에는 조금 젊어 보였다. 20대 중반 정도일까, 그 나이 대에 교수 임용이 될 수 있긴 한가? 잘생기긴 했어도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잘생겼다면 얼굴을 잊기도 힘든데, 왜 익숙한 느낌이 들지? 슬리데린 쪽 기숙사를 바라보던 그가 갑자기 래번클로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잠깐, 눈을 마주친 것도 같았다.
“그리고, 호그와트에서 올해부터 함께하실 교수님을 소개할 시간이 되었군요.”
때마침 덤블도어 교장님이 신임 교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내리뜨더니 망토를 정리했다.
“이번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담당으로 새로 부임한 톰 마볼로 리들 교수님입니다. 리들 교수, 나와서 학생들에게 인사 하는 것이 좋겠군요.”
“반갑습니다. 올해부터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게 된 톰 마볼로 리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무난한 인사말과 함께 고개를 한 번 가볍게 숙였다. 이미 여학생의 반쯤은, 아니 그 이상은 리들 교수에게 반한 것 같았다. 내 반대편에 앉아 있는 안나도 벌써 발그레해진 얼굴로 옆에 있는 스테이시에게 그가 잘생겼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언젠가 생각나겠지. 어쨌든 나는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인사하는 그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 * *
어제 늦게까지 마법약 공부를 하고 잤더니 정신이 혼미했다. 별로 입맛은 없었지만 학기 첫날부터 아침 식사를 거를 수는 없어 억지로 몸을 끌고 왔다. 아이작은 먼저 도착해 으레 그렇듯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었다. 그의 하루는 거의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작 옆에만 붙어서 그를 따라 하기만 해도 하루를 매우 알차게 보내는 기분이다.
“좋은 아침.”
“응, 로웨나. 잘잤어?”
그와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은 나는 건조한 호밀식빵을 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시선을 돌리는 도중, 교수 테이블에 앉아있는 리들 교수님을 발견했다. 그는 블루베리 잼을 빵에 바르며 맥고나걸 교수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버터 나이프를 쥔 손동작마저 굉장히 우아해서 나는 리들이라는 성이 내가 모르는 명문 순수혈통의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그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나를 원래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것처럼 빤히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 처음에 나는 그 웃음이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향한 것이 분명했다. 래번클로 쪽의 테이블에는 나와 아이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눈을 돌리며 시험에 나오는 마법주문이라도 적혀있는 것처럼 호밀빵을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열 있어?”
“아, 아니. 좀 덥네. 간절기라 그런지.”
방금 리들 교수님과 눈이 마주쳐서 그래, 라고 차마 대답할 수 없었던 나는 어설프게 변명하면서도 스스로가 멍청해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작은 망토라도 벗는 게 어때, 라고 충고하고는 다시 예언자 일보로 눈을 돌렸다.
흘끗 보니 리들 교수님은 이미 내 쪽에서 시선을 거두고 맥고나걸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괜히 관심도 없는 예언자일보에 관해 물었다.
“오늘의 메인타이틀은 뭐야?”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한 거지 뭐. 어제 호그스미드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대.”
“뭐?”
나는 아이작의 말에 깜짝 놀라며 예언자 일보를 테이블에 펼쳤다. 호그스미드의 한 펍에서 머글 출신 마법사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머글 출신 마법사의 죽음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예언자일보에 실렸다. 이런 기사가 예언자 일보에 실릴 때마다 조금 무서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내가 투덜댔다.
“이번 달 호그스미드 외출은 백방 금지겠다.”
“설마 대낮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호그와트 학생들에게 해코지하겠어?”
“덤블도어 교수님은 그럴 거라 생각하시지 않을까.”
나는 별로 넘어가지도 않는 호밀빵을 입에 억지로 집어넣고 책을 챙겼다.
“아무튼, 어서 일어나자. 난 마법약 시간에 제일 앞자리에 앉을 테니까.”
빨리 교실에 도착해야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미 아침을 다 먹은 아이작은 나와 함께 일어났다. 지난 3년 내내 그는 거의 모든 수업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여자인 친구들이 다소 불편했다. 그들은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애들은 보통 각 기숙사에서 잘생긴 축에 속하는 남자들이나 혹은 호그와트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질데로이 록허트와 시리우스 블랙 중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질데로이 록허트는 아직 어렸으므로 시리우스가 가장 잘생겼다는 평가가 더 힘을 얻고 있다─에 대한 이야기, 좋은 화장품에 대한 이야기, 교수에 대한 험담, 새로 나온 마법사 밴드, 뭐 그런 소재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들의 관심사 모든 것이 나와는 조금 맞지 않았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소재는 수업 시간에 잠깐 언급된 마법사의 사소한 에피소드나, 새롭게 출시된 마법 용품의 작동원리라던가, 뭐 그런 거였다. 보통의 여자애들은 질색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다른 여자애들과는 친해지기가 많이 어려웠다.
아이작은 나와는 달랐다. 그는 남학생들뿐만 아니라 여학생들과도 두루 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대대로 래번클로만 배출해내기로 유명한 순수혈통인 본즈가의 유일한 후계자였고, 재학 중인 3년 내내 학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작 자체도 모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행히 아이작과 나는 관심사가 비슷한 편인 데다 말도 잘 통했다. 거기에 우리 둘 다 학업에 몰두하는 성향이었고. 선천적으로 마법에 비상한 아이작은 그렇다고 해서 노력을 게을리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가 도서관에 있는 시간 동안 끈기 있게 함께 있어 줄 만한 사람은 래번클로에서 나밖에 없을 정도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슬러그혼 교수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나는 하고 있던 잡생각들을 멈추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