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웨나 블루로즈-1화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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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로웨나 블루로즈

김아흔

Prologue

나는 누군가가 쫓아오는 것처럼 급하게 기숙사로 들어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급한 심박 소리가 귓가에 윙윙 울렸다. 휴게실을 지나오면서 요한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걸 느꼈지만, 그것에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 내 방을 찾았다. 다행히도 룸메이트는 없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참았던 숨을 들이켰다. 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오한이 일어 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 그런지 심장이 뇌에서 뛰는 것 같았다. 내 심장박동 소리에 더 놀라 몸을 움츠렸다. 혹여 이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톰 리들 교수님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라니!

나는 방금 보았던 장면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하며 사실을 확인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착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분명했다. 분명히 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파셸 통크를 사용하고 있었고,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을 띄웠다. 한 번 더 생각할 때마다 기억은 희미해지기는커녕 더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동시에 예언자 일보에 실렸던 머글 마법사 살인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나의 공포심을 부추겼다.

덤블도어 교수님께 가야겠어. 가서, 내가 봤던 것들을 그대로 말씀드려야지.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이 정말 모르고 계실까? 그 또한 리들 교수와 한패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정상이라면 그에게 교수직을 줬을까? 지금 교장이 진짜 덤블도어가 아니라 폴리주스를 마신 죽음을 먹는 자라면?

아니면 예언자 일보에 익명으로 제보하자. 그런데 그렇게 했다가 혹시, 리들 교수가 나를 추적하면 어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속 공포로 점철된 바다 한가운데 표표하게 래번클로의 이성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 자동으로 작동한 래번클로 프로세스는 내가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현명한 대안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모른 척하자.

여기서 무엇을 계획하고 있든 그의 정체를 아는 머글 출신 마녀 하나를 처리하는 것은 그에게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호그와트 학생에 불과하다면? 굳이 그가 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애를 건드려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을까?

그래, 모른 척하자. 나에게 그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가 아니야. 그저 톰 리들 교수님일 뿐이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호그와트 학생일 뿐이고. 난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야!

* * *

1975년, 9월, 영국 런던

킹스 크로스 역은 언제나 붐볐다. 나는 일찍이 아이작과 약속했듯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가장 가장자리의 차량 쪽으로 트렁크를 집어넣었다.

“로웨나, 편지 자주 해.”

3년을 넘어 4년째로 접어들지만 아빠는 나를 호그와트에 보낼 때마다 불안해했다. 아빠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인사하고, 동생 미아와 루카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 잘 다녀와!”

“선물 많이 사와, 로웨나 누나.”

나와 4살 차이가 나는 이 쌍둥이 동생들은 매년 이렇게 꼭 호그와트 급행열차 앞까지 나와 나를 배웅하곤 했다. 기차를 타기 전, 동생들 볼에 작별의 키스를 한 번씩 해주면서 꽉 껴안았다. 또 거진 몇 개월 못 볼 생각을 하니 아쉬웠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인지, 루카스와 미아는 내가 차량 안에 들어가고 난 후에도 창문으로 보이는 나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트렁크를 끌며 안쪽으로 들어가 차량 가장 끝 칸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건너편 창가를 통해 들어온 빛에 비추어진 밝은 백금발이 눈에 띄었다. 아이작이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그의 빛나는 금발은 흔하디흔한 내 갈색 머리카락과 선명하게 비교되는 것 같았다.

“안녕, 아이작. 방학 잘 지냈어?”

“물론. 우리 편지도 자주 주고받았잖아?”

마치 어제 본 사람인 것처럼 대답하며 아이작이 지팡이를 휘둘러 내 트렁크를 짐칸에 집어넣었다. 그는 고모인 아멜리아 본즈와 휴가 기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방학 내내 그의 얼굴 한 번 본 일이 없었다. 세계 각지에서 오는 엽서를 통해서만 안부를 전해 받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두 달 만에 본 아이작은 그새 키가 좀 더 큰 것 같았다.

“유리 겔라는 어땠어? 스톡홀름에서 있었던 공연에 갔었다며?”

“글쎄. 난 잘 모르겠어. 가짜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고모는 곧 그 유치한 트릭이 밝혀질 거라고 장담하던데.”

“그래? 근데 내 생각에도 그가 마법사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머글 세계에서 초능력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리 겔라는 최근 마법사 세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가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인지, 성인이 되어서야 마법적 능력이 발화된 반쪽자리 머글인지, 혹은 그저 사기꾼인지 의견은 분분했다. TV에서 나오는 그의 숟가락 구부리기는 마법사가 보기에도 마법 같았기 때문에 그가 미등록 된 마법사라는 쪽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지만, 글쎄. 위즌가모트에서 위원장까지 맡고 있는 아멜리아 본즈가 실제 공연을 보고 그렇게 확언한 정도면 사기꾼이라는 쪽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아이작은 그의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래번클로 특유의 의심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지팡이가 없었어. 지팡이가 없는 상태에서 의지 마법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면 그는 잠재력이 지대할 거야.”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트렁크와 짐들이 정리되었다. 그는 지팡이를 그대로 문 쪽으로 향하더니 주문을 외웠다.

“콜로포터스.”

마법으로 문을 잠그고, 머글식 자물쇠로 이중으로 장치한 다음 방 자체가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마법을 건 다음에야 아이작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문을 잠그는 거야 그렇다 쳐도, 방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저 정신계 주문은 6학년쯤 되어야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주문은 어디서 배운 거야.”

“방학 때 개인 교습을 받았지.”

“역시 본즈가는 뭔가 다르긴 하네.”

1학년 때 이미 수업에서 배워야 할 웬만한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던 그를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 내가 래번클로 만년 2등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스스로 위안하며 나는 아이작과 4학년에 들을 선택과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머글 연구 말이야, 생각보다 까다롭다던데. 4학년 교과과정엔 머글들의 역사 같은 것들도 있더라.”

“그래도 머글 세상에서 15년을 살아온 내가 그 수업을 못 따라가겠어?”

“하긴, 화난 청동 독수리상의 퀴즈를 바로 풀어낸 너라면 뭐.”

아이작은 올해 방학 직전에 있었던 해프닝을 언급하며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래번클로는 기숙사에 들어갈 때마다 청동 독수리상이 내는 퀴즈를 풀어야 한다. 보통은 2, 3분 생각하면 쉽게 풀리는 단순한 퀴즈를 내지만, 그 날 스멀리언 교수의 초상화와 심하게 다툰 청동 독수리상은 화가 난 나머지 학생들이 쉽사리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문제를 냈다. 뭐였더라? ‘천문학 교수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중 하루 시험을 치는데, 어느 날 시험을 치는지 당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럼 언제 천문학 시험을 치느냐.’라는 문제였던 것 같다.

그 문제는 내가 머글 학교에 배웠던 것으로, 마법사에겐 다소 부족한 논리학적 지식을 요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학생들 대부분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내가 그 문제를 풀어냈을 때, 다이애나 선배는 나를 껴안다 못해 거의 키스까지 할 기세였던 기억이 난다. 급한 변신술 과제를 못해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더랬다. 그 이후 한동안 나는 래번클로의 독수리 여왕으로 불렸다.

나는 아이작의 말에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그냥 장난스럽게 ‘그래, 내가 없었더라면 아무도 기숙사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거야.’하고 웃고 넘어갔다.

그때, 갑자기 옆 차량이 소란스러워졌다.

“머리카락이 이상해!”

“지팡이, 내 지팡이 어디 있어?”

급박한 목소리만 듣고서도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루어지는 마루더즈의 공습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작이 우리가 타고 있는 차량을 마법으로 잘 숨겨둔 덕분에 우리가 있는 끝쪽까지 침입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보나 마나 똥 폭탄 같은 거라 지레짐작했던 나는 문틈으로 비집어 들어오는 무지개색 안개에 헛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그 안개는 내 갈색 머리에 닿자마자 형형색색의 파스텔 톤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윈디 프라토룸!”

지팡이에서 나온 바람이 무지개색 안개를 감싸고는 반대편 창밖으로 넘어갔다. 나는 지팡이를 한 번 더 휘둘러 트렁크에 있던 테이프를 꺼냈다. 머글 세계의 물품을 이럴 때 쓸 줄이야. 나는 혹여 안개가 더 들어올까 싶어 차량 문의 빈틈을 빠짐없이 테이프로 봉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탓에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를 살 수 없다는 것은 좀 아쉬웠지만 이렇게나마 마루더즈의 습격을 막아낸다면 그 정도로 만족할 듯싶다.

내가 테이프로 문을 봉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 얼빠진 양 무엇을 하나 쳐다보고 있었던 아이작은 갑자기 터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접착제는 뭐야? 종코의 장난감가게에서 산 거야?”

“이건 머글 물건이야. 테이프라고, 머글들이 박스 같은 것을 봉할 때 사용하는 물건이지.”

내가 머글 물품을 사용할 때마다 아이작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는 이번에도 테이프를 들고 이리저리 떼었다 붙였다 하며 흥미를 보였다.

“하여튼 머글들은 신기하다니까.”

“너도 머글 연구 수업 같이 듣자. 내가 많이 가르쳐줄게.”

“어쩌겠어, 이미 작년에 신청이 끝난걸.”

그렇게 말하긴 해도, 그의 선택과목인 고대 룬문자와 산술점의 교수가 고모를 통해 그와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선택 과목들은 그렇게 중요한 과목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학업적인 흥미보다는 인맥을 고려하여 고른 것 같았다.

아이작과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는 아마도 마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거나 뭐,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나 또한 졸업하고 나면 마법부에 말단직원으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이작은 순수혈통이기 때문에 마법부에 굳이 몸담지 않아도 그를 찾을 사람은 많을 테지만, 나 같은 머글 마녀가 마법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방법은 마법부에 들어가는 방법밖엔 없다. 성적만 좋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다.

두 달여간의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느라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급행열차는 곧 호그스미드 역에 도착했다. 늦게 내리면 마차를 탈 때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므로, 기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모든 짐을 챙긴 우리는 기차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 작품 후기 ============================

<2014-10-22 추가수정>

청동 독수리상의 문제에 대하여, 아스네리아님이 코멘 달아주신 내용이 옳은 것 같아 수정합니다. 답은 확정할 수 없다, 입니다. 시험을 치지 않는다는 것이 답이면, 원래 명제와 모순이 생기는 패러독스이므로, 답을 확정할 수 없다는 쪽에 가깝겠네요. 지적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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