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4)

시작.

술집에서 나오니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길 위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잔뜩 상기되어 웃고 떠들었다.

“어디 갈까?”

마지막으로 술집을 빠져나온 친구가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길 위를 오가는 저 사람들처럼 한별의 친구들도 한껏 들떠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고 딱히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별 역시 이대로 집에 갈 생각은 없었다.

“아까 말한 이 중에서 골라 봐.”

저들끼리 고민하다가 담배를 무는 한별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며 선택지를 넘겼다.

“그래!”

“오랜만에 사회의 향기를 맡은 예비역 겸 복학생이 가자는데 가야지!”

장난을 치는 친구들을 보며 실실 웃던 한별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고 있었다. 한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담담한 얼굴을 한 남자가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요령 좋게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지났다.

한별은 담배를 문 채 남자의 뒤를 쫓았다. 동그란 머리통에 곧은 목, 그리고 쭉 뻗은 어깨.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자세가 좋았다. 이런 무질서한 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 남자가 들어간 술집의 간판을 확인한 한별은 삐딱하게 입술을 기울였다.

“저기 가자.”

“어디?”

친구들의 물음에 한별은 턱으로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고는 아무렇게나 담배를 던졌다.

“어디? 저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대편을 두리번거리던 친구 하나가 신나서 펄쩍 뛰었다.

“너 저기 어딘지는 아냐?!”

“알다마다.”

혼자 반사판이라도 댄 듯 뽀얗고 말간 얼굴을 한 남자가 무심히 들어간 곳은 게이 바였다. 그것도 꽤나 물이 좋기로 유명한.

“번호 몇 개 땄음?”

“두 개. 넌.”

“새끼야, 난 세 개다.”

“미친놈들.”

“김한별은?”

“몰라. 이 새끼 월척 노리는 거 같은데?”

“저 사람?”

“어.”

친구들이 바(bar)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저를 두고 떠들어 댔지만 한별에게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벌써 몇 번째냐?”

맥주를 마시며 하는 친구의 말에 내내 침묵하던 한별이 답했다.

“네 번째.”

“이야, 저 남자가 일등이네! 분발해, 새끼들아!”

낄낄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오직 남자에게만 시선을 못 박고 있던 한별의 눈이 좁혀졌다.

무덤덤하게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남자의 눈이 아주 잠깐, 권태로 물들었다. 한별은 즉시 걸음을 옮겼다.

“야, 야! 미친놈, 이제 진짜 남자까지 건드리려고?”

“오, 김한별 도전!”

“존나 흥미진진.”

등 뒤에 따르는 경박한 목소리 역시, 완전히 몰두한 한별의 귀에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녕?”

가까이에서 본 남자는 먼 거리에서 보던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얀 데다 커다란 눈을 끔뻑이는 얼굴이, 엄청나게 청초했다. 한별은 살면서 남자에게 청초하다는 감상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 반말은 별로예요?”

혹시나 기분 상한 남자가 자리를 뜰까 초조해져 한별은 재빨리 물었다.

초조하다고?

지금도 남자의 뒤에선 무리가 한별이 퇴짜를 맞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별은 점점 이 상황이 재밌어졌다.

“아니.”

“그래? 그럼 나, 다섯 번째 도전잔데 어때?”

한별의 말에 남자가 한별을 쭉 훑어보았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아?”

“너 커?”

시발, 섹시하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이러면 오히려 얘기가 쉬워졌다. 당장 바지를 벗어 보여 주고 싶었다.

“당연하지, 만져 볼래?”

진짜 보여 주면 남자가 기겁을 하고 도망갈까 봐 나름 합의점을 찾아 물었는데 남자는 정작 한별의 중심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산뜻하게 일어섰다.

“나가자.”

모텔에 가자마자 달려들었다.

얼굴만큼이나 새하얀 피부는 예상보다 단단했다. 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근육을 보아하니 어쩌면 운동 전공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얼굴로, 격투기 같은 거라도 하면.

미친.

한별은 더 깊게 입술을 겹쳤다. 늘씬한 등허리가 손에 착 달라붙었다. 그때 남자가 고개를 비틀었다. 젖은 살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에 등줄기가 저릿했다.

“너 남자 처음이지?”

“응.”

남자는 이마를 짚고 드러누웠다.

“왜, 뭐가 문제야?”

한별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대로 남자를 보내진 않을 거지만 억지로 할 생각도 없었다.

“남자한테 서 본 적은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한별이 헛웃음을 흘렸다.

“뭔데?”

순식간에 제 다리 사이에 갇힌 남자가 새초롬하게 눈가를 구기며 아래를 내려 보았다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서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못 설 것도 없잖아?

“소프트하게 하는 거 좋아해, 하드하게 하는 거 좋아해?”

자신만만한 물음에 남자가 하,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힘없이 웃었다.

말끔하고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무언가 초연하게 구는 얼굴이었다. 한별은 어쩐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남자의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야.”

그러자 남자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두 시선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맞닿았다.

하, 이거 뭐야.

그 순간 한별은 제 아래 깔린 남자에게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남자를 향한 한별의 눈이 빛났다. 기습 공격을 당한 주제에 좋다고 입술이 휘었다.

<러브 어택(Love Attack)>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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