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14)

6.

택시를 잡아타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호텔이라는 명칭을 단 모텔들이 모여 있는 도심 한구석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해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모텔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데스크 직원에서 안에 일행이 있다고 말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작정을 하고 그런 것인지 모르고 그런 것인지 이동우가 알려 준 방은 해성이 처음 이동우와 왔던 때와 같은 방이었다. 모텔은 전체적으로 리모델링을 한 것인지 해성의 기억과는 달라진 부분들이 많았지만 방의 위치만은 그대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해성은 거침없이 걸어 어느 방 앞에 섰다. 낮게 숨을 내쉬고 문을 두드렸다.

“해성아.”

그러자 문을 연 이동우가 반갑게 해성을 맞이했다.

“들어와.”

해성은 잠시 이동우를 빤히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는데.”

이동우는 침대에 앉아 닫힌 문을 등지고 선 해성을 보며 웃었다. 그러고는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 둔 담뱃갑에서 담배를 뽑아 물었다. 해성을 향해 연기를 내뿜으며 이동우가 고개를 기울였다.

“하도 냉정하게 굴길래, 손만 잡아 줘도 황송해하던 시절 같은 건 싹 다 잊은 줄 알았잖아.”

한 번 더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 이동우는 계속해서 아무 말 없는 해성을 빤히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했어?”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와 손등으로 해성의 뺨과 귀를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우리 추억이 담긴 영상을 그 어린놈한테 보내기라도 할까 봐?”

“….”

“걱정 마. 그냥 전처럼만 하면 돼.”

“….”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기라면 기고. 익숙하잖아?”

해성은 이동우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기 전 고개를 틀었다. 뺨에 살짝 부딪힌 입술에 소름이 돋았다.

“나해성.”

“없잖아.”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해성이 무미건조한 눈으로 이동우를 바라보았다.

“없잖아, 형.”

무덤덤한 목소리에 이동우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형이… 그런 걸 남겼을 리가 없잖아.”

저와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던 이동우였다. 몇 년을 만나면서 휴대폰으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이동우는 사람들에게 저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 대며 제 능력을 과시하면서도 실질적인 흔적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이동우의 주변 사람에게 저는 남자에 미친 호모 새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만든 건 이동우였지만 그러면서도 이동우는 그 남자에 미친 호모 새끼를 제 인생에서 언제든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저를 좋아하는 호구 새끼한테 발목을 잡힐 일은 없도록.

“내가 장난으로 찍은 형 사진 하나에도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야, 형은. 그런 사람이… 뭘 가지고 있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해성을 응시하던 이동우가 한 발자국 물러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구둣발로 짓이기며 피식 웃었다.

“역시, 안 속네.”

“….”

“아닌 거 알면서 뭘 굳이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해?”

그러고는 침대로 가 벗어 두었던 재킷을 챙겨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뭐 그런 거였나?”

해성은 이동우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이동우의 행동과 말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래, 뭐. 어쨌든.”

“….”

“나야말로 괜한 수고를 했어. 옛날 생각에 다시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이왕 온 거 쉬다 가.”

제 어깨를 두드린 이동우가 방을 나간 후에도 미동도 없이 서 있던 해성은 그의 입술이 닿았던 뺨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느릿하던 동작이 점점 빨라지고 뺨이 빨개질 때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그러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율에 욕실로 뛰쳐 들어가 옷을 벗어 던졌다.

찬물 아래에 서서 입술과 뺨을 손바닥으로 박박 문질렀다. 가슴 안쪽에 뜨거운 돌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답답했다.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쳐도 명치에 걸린 돌덩이가 내려가질 않았다.

“내가… 내가….”

목구멍까지 조여져 말조차 드문드문 흘러나왔다.

“하아… 하….”

그렇게 해성은 이동우의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물 아래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죄송한데 좀 더 빨리 가 주실 수 있을까요?”

해성이 안절부절못하며 재촉하자 택시 기사는 허 참, 총각 성격이 급하네, 하며 속도를 더 내주었다.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휴대폰을 보며 망설이는 사이 전화가 끊기며 부재중 통화 숫자에 더해졌다.

미안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왔다가 집에 가고 있어

택시가 또 신호에 걸려 정차하자 초조해져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쉬지 않고 울리던 휴대폰이 잠잠해졌다. 그것에 해성은 더욱 불안해져 입술을 짓씹었다.

드디어 낯익은 길가에 택시가 서고 빠르게 내린 해성이 해가 져 어두워진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여전히 문짝에 스크래치를 단 검은 SUV 앞에 서 있던 김한별이 성큼성큼 해성에게 다가왔다.

“형.”

김한별은 무어라 말하려 입을 달싹이는 해성을 그대로 끌어안았다.

“김한별.”

해성이 그런 김한별을 마주 안으려 하는데 목덜미에 고개를 박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시던 김한별이 뚝, 숨을 멈췄다. 그러곤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해성의 덜 마른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천천히 훑었다.

“형.”

“….”

“그 새끼 만났어?”

해성의 눈이 크게 흔들리자 김한별이 입술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만났구나.”

“….”

“모텔도 갔어?”

“김한별.”

“응. 말해.”

“그게.”

“응.”

김한별은 웃으며 해성의 등을 쓸어 주었다.

“변명이든 뭐든 좋으니까. 뭐라도 말해 줘.”

“…아무 일 없었어.”

해성은 아마도 김한별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만한 말을 했다.

“정말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래?”

“어.”

“모텔에서 둘이 얘기만 하다 헤어졌어?”

“어. 이 상황에 믿기지 않을 거 아는데.”

“믿어.”

“….”

“믿는다고.”

김한별은 해성에게 정말로 신뢰 가득한 시선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렇지 않았다.

“근데 우리 오늘 데이트는 취소해야겠다. 다음에 하자, 데이트.”

손등으로 차갑게 식은 뺨을 쓰다듬은 김한별은 해성을 대문 안쪽으로 밀어 넣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해성이 잡을 새도 없이 차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차에 타자마자 이동우에게 전화를 건 한별은 조수석으로 휴대폰을 던지고 시동을 걸었다.

“우리 좀 봐야지?”

신호음이 끊기고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한 말에 상대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이 시발 새끼가.

한별도 입술을 비틀며 좀 더 명확하게 다시 물었다.

“너 지금 어디야.”

-내가 알려 줘야 할 이유가 있나?

“안 알려 주면 내가 내일 너네 그 좆같은 회사 찾아갈 건데?”

-….

“왜 농담 같아? 난 농담은 안 하는 스타일인데.”

-건방진 새끼.

“오해야. 내가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데.”

-….

“그래서 어디라고?”

-안 그래도 너랑은 한번 봐야 되지 않나 싶었어.

“하, 시발.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그래서 어디냐고.”

한별은 엑셀을 지르밟으며 이를 갈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열이 받았다. 나해성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쓸데없이 정직한 나해성은 거짓말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한별을 열 받게 하는 건 나해성이 저와의 약속도 잊고 이동우에게 달려갔다는 점이었다.

저는 끼어들 수 없는 그 좆같은 세월 때문에 저 개새끼가 아직도 나해성을 말 하나로, 손끝 하나로 휘두른다는 사실에 한별은 눈이 돌 정도로 화가 났다.

역겨운 목소리를 듣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쯤 씹새끼가 장소를 댔다. 한별은 곧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운전대를 돌렸다.

이동우 같은 새끼한테는 매가 약이었다.

한적한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선 한별은 차 옆에 서서 담배를 빨고 있는 이동우를 발견하고 그 맞은편에 차를 댔다. 잠시 운전대를 잡은 채 시트에 몸을 묻고 심호흡을 하며 창 너머 이동우를 응시하다 차에서 내렸다.

“빨리 왔네.”

“….”

“해성이가 나 만난 얘기 했나 봐?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뛰어온 걸 보면.”

말없이 이동우가 주절거리는 걸 지켜보던 한별이 쓱, 입술을 기울였다.

“시발. 아가리만 열면 쉰내가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한별의 말에 이동우는 코로 웃으며 담배를 던졌다.

“고작 그딴 말이나 하자고 만나자고 한 거야?”

“그럴 리가.”

“그럼 빨리 용건이나 꺼내.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까.”

“내가 조사를 좀 했거든.”

차에 기대 성가신 표정을 짓고 있던 이동우가 눈가를 좁혔다.

“아. 내가 보기보다 좀 더 부자고 좀 더 집안이 빵빵해.”

“….”

“우리 할머니가 나 어릴 때부터 가르친 게 하나 있어. 정보가 생명이다.”

한별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나해성 주변에 똥파리 하나 나타났을 때 바로 조사를 좀 해 봤어. 예를 들어 그 똥파리의 이혼 사유라든가.”

“너….”

“성격 차이. 아주 좋은 이유야. 전반적으로 상황을 어우를 수 있는.”

“….”

“심지어 좆이 안 서는 것도 커버가 되잖아?”

“이 씨발.”

눈에 핏대를 세우는 꼴이 우스웠지만 한별은 웃지 않았다.

“남자가 아니면 안 섰겠지.”

“닥쳐.”

“그런 주제에 게이인 널 만나 주는 걸 감사하라고 세뇌하듯 말했어? 정작 여자를 만날 수 없는 몸인 건 너인데.”

“닥치라고!”

한별은 이동우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입술이 터지며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 확인한 한별은 고개를 들어 이동우를 보며 말했다.

“이걸론 부족한데….”

“시발. 나해성이 시작했어. 나해성이 먼저였다고! 나해성만 아니었으면 내가, 내가! 남자랑 놀아날 이유 따위는.”

“좆도 안 서는 새끼가 말이 많아.”

“이, 이…!”

“내가 사실 너한테 좆같은 새끼라는 욕을 많이 했거든. 근데 그게 좆한테 참 미안한 일이더라고.”

퍽-!

이번에는 좀 더 정확하게 주먹이 날아와 꽂혔다. 직전에 고개를 틀지 않았다면 이가 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별은 만족한 듯 웃었다.

“시발. 운동을 하긴 한 모양이네. 실력이 없어서 돈으로 대학원까지 들어가 놓고도 제 아비 빽으로 겨우 회사 들어간 주제에.”

“이 좆같은 새끼가!”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리던 한별은 다시 날아든 주먹을 막아 내고 씩 웃었다.

“우리 할머니가 가르쳐 준 게 또 하나 더 있거든?”

“입 다물어.”

“절대 선빵을 날리지 마라.”

“….”

“근데 난 이미 두 번이나 맞았잖아? 그것도 전공자한테. 그 말은.”

한별은 제 손안의 주먹을 부서트릴 듯 세게 움켜쥐었다.

“윽!”

“이제부터는 정당방위라는 말이야.”

이동우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은 한별이 피가 맺힌 입술을 찢으며 웃었다.

“이 좆만도 못한 새끼야.”

* * *

조금 멍하니 닫힌 대문을 바라보던 해성은 황급히 문을 열고 나왔다. 하지만 김한별도 문짝에 스크래치를 단 검은 SUV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허망하게 방금 전까지 김한별이 있던 자리를 서성이던 해성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마침 도로를 지나는 택시를 잡아탄 해성은 택시 기사에게 김한별이 살고 있는 주상 복합 아파트 이름을 댔다.

설명이 부족했다. 당황했다는 핑계로 너무 두서없이 말했다. 김한별에게 제대로 설명해야 했다. 김한별은 저를 믿는다고 했지만 그 말과는 다르게 저를 두고 가 버렸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해성은 창밖을 내다보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어리숙하고 미성숙하게 굴 시기는 이미 지나고도 남았다. 왜 그와의 약속을 잊었는지 똑바로 설명하고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김한별의 집에 도착한 해성은 뭘 해야 할지 몰라 그 주변만 서성거렸다. 덜컥 겁이 나서였다. 김한별이 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말도 없이 찾아온 것에 화를 낼까 봐, 무섭고 두려웠다.

해성은 이를 악물며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하려 애썼다.

김한별은 그 누구도 아닌 김한별이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김한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전에 김한별과 저를 태운 택시가 정차했던 자리에 해성이 익히 알고 있는 검은 SUV가 멈춰 섰다.

해성은 저도 모르게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차에서 내린 김한별이 주상 복합 아파트를 두르고 있는 1층짜리 상가 건물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가 곧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수 옆에 서서 담뱃갑에서 담배를 뽑아 무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다. 지금까지 해성의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 없는 김한별이었다. 역광이 드리워 잘 보이지 않는 얼굴을 살피던 해성은 연기를 뱉으며 돌아본 얼굴에 얹어진 피딱지를 알아보았다.

저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멀쩡하던 입술이었다. 오연하고 어여쁜 입술이었다. 터진 입술이 따끔거리는지 김한별은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인상을 썼다.

왜, 누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해성은 반쯤 피운 담배를 손으로 튕기고 돌아서 다시 차에 올라타는 김한별을 지켜보았다. 차는 차단기를 통과해 이어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해성은 휴대폰 위에 도무지 머릿속에서 뽑혀지지 않는 번호를 꾹꾹 눌렀다.

“어디야?”

-….

“형… 지금 어딨어?”

애가 닳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해성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해성은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늦은 밤, 한적한 주차장 구석에서 해성을 기다리고 있던 이동우가 가까이 다가서는 해성을 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해성은 이동우의 앞에 서서 그의 부어오른 광대 부근과 터진 입술 그리고 찢어져 피가 맺힌 눈썹을 차례로 훑어내렸다.

“형이야?”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이동우가 핏,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해성아.”

“형이지.”

“….”

“맞지?”

물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빼내고 길게 한숨을 내쉬던 이동우가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네가.”

무표정한 얼굴에 언뜻 스친 건 처음 본 광경에 대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네가… 네가 뭔데….”

해성은 이동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참고 또 참고, 억누르고 짓밟던 케케묵은 감정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네가, 네가 뭔데, 걜 때려! 네가 뭔데!”

“너….”

“네가, 너 따위가 뭔데, 왜 때려! 왜! 네가 뭐라고 걔를 때려!”

해성의 얼굴에서 후드득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하아, 내가, 내가 너 같은 거 때문에, 하, 내가 너 같은 거를….”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간신히 호흡하면서도 해성은 눈물 가득한 눈으로 이동우를 노려보았다.

이동우는 저를 좋아했다. 그걸 모를 수 없었다. 저를 좋아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 이동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모를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제가 이동우 곁에 들러붙은 오물처럼 보였을 것이고 이동우는 저를 추악한 열등감을 상쇄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오물이 떨어져 나갈까, 도구가 망가져 버릴까 안절부절못하던 건 이동우였다.

그래서, 그래서 끝까지 그를 포기하지 못했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마음 아팠다. 그저 좋아하는 것뿐인데 마치 그걸 인정하는 순간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득바득 외면하는 그를, 해성은 동정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부모의 모진 말에도,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외면에도, 해성은 언젠간 이동우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저를 사랑해 줄 거라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홀로 자취방에서 끙끙 앓다가 제발 와 줄 수 없냐고, 잠깐 얼굴만 보여 주면 안 되냐는 애원에도 끝내 오지 않는 그가 보고 싶어 추운 겨울, 제대로 된 외투도 걸치지 않고 무작정 집을 나섰던 날. 그의 차에서 내리는 여자와 그 여자에게 다정한 웃음을 건네는 그를 보았을 때, 해성은 미루던 결심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드디어, 그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너를, 이따위 인간밖에 안 되는 너를, 내가, 내가! 차라리 다시 찾아오지 말지 그랬어! 왜 찾아왔어! 왜!”

그가 사실은 그다지 멋진 어른이 아니라는 걸, 결국 이런 식으로 확인받고 말았다. 아까 꾸역꾸역 그 모텔로 찾아간 것도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그래도, 적어도 밑바닥은 아닐 거라는 기대. 하지만 그와의 시간이 제 마음이 전부 다 싸구려가 되어 버렸다.

“너 같은 놈 때문에, 내가, 너를.”

그럼에도 해성은 부정할 수 없었다. 끝의 끝까지 와서도.

“너를, 너 같은 걸.”

좋아했다.

이제는 쓰레기통에 처넣은 마음이었지만.

해성은 이동우의 멱살을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심호흡했다. 차차 숨이 가라앉자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동우는 석상처럼 굳어 해성을 바라만 보았다.

“내가.”

손등으로 얼굴에 흥건한 눈물을 벅벅 닦아 낸 해성은 이동우를 향해 진정한 끝을 고했다.

“내가 너 버린 거야. 내가, 너 버린 거라고. 너는 나한테 버림받은 거야.”

“….”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마치 이제야 그걸 깨달은 사람처럼 경악으로 물들어 가는 이동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던 해성은 그를 남겨 두고 돌아섰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홀가분하게.

이제 남겨지는 건 자신이 아니었다.

* * *

집으로 돌아간 해성은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해가 뜨고 온 세상이 환해졌을 때 화장실로 가 샤워를 하고 작동은 하는지 모를 정도로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은 드라이기를 꺼내 머리를 말렸다. 어제 골라만 두고 입지는 못한 옷을 입고 제일 깨끗한 운동화를 챙겨 신었다. 신발장 위,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제 모습을 정돈한 후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계단을 밟는 해성의 머리 위로 아침 햇살이 졸졸 따라왔다.

거침없이 쭉쭉 뻗어 나가던 발걸음이 정작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을 때 우뚝 멈춰 섰다.

“형.”

정말 예쁘게 차려입은 김한별이 여전히 스크래치를 단 검은 SUV 앞에 서 있었다.

해성도 김한별도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해야 할 말도, 설명해야 할 것들도 많았지만 그보다 우선인 것이 있었다.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격정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는 것도 아니었다.

해성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태권도 공격의 기본 기술에는 지르기,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가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은.

“김한별.”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주시하며.

다시 걸음을 뗀 해성이 김한별에게 다가갔다.

앞으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일찍 왔네?”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정확한 방향으로.

“김한별.”

“응?”

“할 말이 있어.”

원하는 공격을.

“알고 있겠지만.”

찔러 넣는 것.

해성은 환한 대낮, 간간이 사람이 오가는 골목길 위에서 김한별을 향해 활짝 웃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데 밤의 힘을 빌릴 필요도, 어둠에 몸을 숨길 이유도 없었다.

“좋아해.”

“….”

“그것도 많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연하고 자신만만한 얼굴이 환희에 젖는 것을 생생하게 보기에도 더 좋았으니까.

“가자. 형이 맛있는 거 사 줄게.”

“나해성.”

“….”

“내가 더 좋아하는데?”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터진 입술을 휘는 김한별을 보며 해성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불쑥 솟아난 조바심과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던 한 해 마지막 날의 선택은 살면서 가장 제대로 저지른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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