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술자리가 끝나자 박재관은 택시를 잡아 제일 먼저 나해성을 태웠다. 그 택시에 그 건방진 놈이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올라탔다.
“걸어가도 되는데.”
“해성아.”
이동우는 택시 안에서 불편한 얼굴로 박재관을 올려다보고 있는 나해성을 불렀다. 나해성의 불안한 시선이 이동우에게 옮겨 왔다.
“조심해서 들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나해성은 최지민을 힐끗 본 후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받았다. 그러자 박재관이 바로 차 문을 닫아 버렸다.
“다음은 지민이.”
솜씨 좋게 다음 택시를 바로 잡아 도장 아르바이트생을 태워 보낸 박재관이 이동우를 돌아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 좋지. 근처에 적당한 곳 있으면 한잔 더.”
“아니.”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이동우의 말을 박재관이 단호하게 잘라 냈다.
“그렇게 긴 얘기는 아니라서.”
“그래? 음…그래? 그럼 어디 해 봐.”
이동우는 쓸데없이 심각한 박재관의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 후 박재관이 묵직한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곧게 폈다. 그 바람에 이동우는 살짝 박재관을 올려다봐야 했다.
“이동우.”
“….”
“앞으로 도장으로는 찾아오지 마라.”
이동우의 입술이 비틀렸다.
“도장으로 찾아오지 마.”
“좀.”
미미하게 눈매를 찡그린 이동우가 한쪽 눈썹을 검지로 긁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섭섭하네.”
“….”
“나는 그래도 우리가 꽤 친하게 지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야. 종종 밖에서 애들이랑 술도 마시고 그랬잖아, 우리.”
“….”
“설마.”
고개를 기울인 이동우가 죽, 입매를 끌어 올렸다.
“해성이 때문이야?”
“….”
“하긴, 나랑 해성이에 대해서 네가 몰랐을 리 없지. 그건.”
“이동우.”
박재관이 더 들어 줄 것도 없다는 듯 이동우의 말을 잘랐다.
“도장.”
“….”
“찾아오지 마. 괜히 해성이 흔들지도 말고.”
“….”
“이제 겨우 살 만해졌어. 이제 겨우 숨통 트였어. 이제 좀 웃고 떠들고 하는 애.”
박재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냥 좀 둬라.”
한동안 말없이 박재관을 바라보던 이동우는 습관적으로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엉망으로 구겨진 담뱃갑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회복한 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뿌연 연기 너머 우직한 박재관의 얼굴이 그래,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들었다.
거의 10년 만에 만났는데도 박재관은 변한 게 없었다. 처음 나해성을 봤을 때도 나해성은 박재관의 뒤만 졸졸 다녔다. 그런 나해성을 박재관은 무슨 어린 제자 보듯 했다. 나이 차도 세 살밖에 안 나는데 엄청난 어른인 듯 굴었다.
하지만.
“왜? 이제라도 보호자 행세하고 싶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떠들어 대는 사람 없고, 나해성도 어느 정도 정신 차린 거 같으니까, 좀 나서도 될 거 같아?”
이동우의 웃음기 밴 시선이 단단하게 움켜쥔 주먹으로 향했다.
“네가 보기에는 내가 악역 같겠지. 근데 그거 알아?”
“….”
“모든 선택은 나해성이 한 거야. 말 같지도 않은 핑계 대서 집을 나와 자취를 한 것도, 군대를 미루기 위해서 해마다 휴학을 한 것도, 가족이고 친구고 다 내다 버린 것도. 내가 강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나해성의 고백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물론, 고백을 유도한 건 저였지만 어쨌든 시작은 저를 보며 눈을 반짝이던 나해성이었다. 그 눈에 단순한 동경이 아닌 감정을 품은 것도 나해성이었다.
좋아한다기에 알았다고 했고, 심지어 게이인 것을 참고 만나 주겠다고 했다. 그것에 나해성은 눈물까지 흘리며 감격해했는데, 제삼자인 박재관 따위가 뭐라고 나서는 건지. 그 좋은 대학을 나와서도 고작 동네 태권도장이나 운영하는 박재관 따위가.
“그리고 좀 주제넘잖아.”
“….”
“이건 나랑 해성이 사이의 일인데. 해성이가 애도 아니고.”
“맞아.”
상냥한 목소리에 담긴 말은 신랄했다. 그 말에 박재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해성이 사이의 일이지. 이제 와서 나대는 것도 웃긴 일이고.”
“….”
“근데 내가 원래 오지랖 넓고 우스운 놈이잖아. 그때는, 그래, 그랬지. 기껏 해 봐야 학원 선배인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나해성에게 충고를 할까. 한다 한들 나해성이 듣기나 할까.”
정말로 그랬다. 소문 속 나해성은 남자에 미쳐서 가족도 버린 놈이었으니까. 그런 놈이 제 말은 들을까 싶었다. 하지만 종종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 나해성은 누구든 말해 주길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정신 차리라고. 왜 그러고 살고 있냐고.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
“나해성 없으면 우리 도장 망한다. 나해성 때문에 원생으로 등록하는 애들도 많고 학부모님들한테 인기도 많고. 너 때문에 해성이 도망가면 어떻게 하냐.”
박재관이 씩 웃었다.
“절대 안 되지. 그러니까 오지 마. 적어도 도장에는.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짐짓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목덜미를 긁적이던 박재관이 이동우를 보며 말했다.
“해성이가 설마, 너한테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아니, 해성이가 뭐가 아쉬워서 이혼남한테. 아, 미안. 미안.”
이동우는 손을 휘적거리며 사과하는 박재관을 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뭐. 오지 말라는데 내가 굳이 찾아가서 불편하게 할 이유는 없지. 알았어.”
어차피 박재관에게 볼일은 애초에 없었다.
“곤란했다면 미안하다. 그래도 종종 보게 될 거야. 해성이랑 같이.”
“….”
“갈게. 조심해서 들어가.”
할 말을 마친 이동우는 박재관에게서 등을 돌렸다.
하여튼.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에 안 드는 새끼였다. 여전히 주제도 몰랐고.
그나저나 그 건방진 놈에 박재관까지 저러니 나해성을 정말로 다시 제 손에 두고 싶어졌다.
나해성, 남자 후리는 솜씨는 여전한데?
비스듬히 입술을 휜 이동우는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 * *
“왜 그쪽으로 가는데?”
해성은 택시 기사에게 제집 주소를 말하는 김한별을 보며 물었다.
“나해성.”
그러자 김한별이 등을 시트에 기대고 심각한 얼굴로 해성을 응시했다.
“왜.”
그 얼굴에 남겨 두고 온 박재관에 대한 걱정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
“내가 어제 방에서 혼자 잠을 자는데.”
“어.”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분명히 나 혼자 있는데. 나 혼자인데. 무서워서 한숨도 못 잤어.”
누구보다 숙면한 얼굴을 한 김한별이 개소리를 했다.
“내린다.”
“형.”
해성이 당장이라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듯 차 문손잡이에 손을 얹자 김한별이 해성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해성이 혀엉.”
“….”
“나 혼자 자기 무서워.”
돌아본 시선에 어깨를 늘어트리고 한껏 연약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한별이 들어왔다.
당연히 전혀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하아… 진짜.”
그럼에도, 해성의 몸이 느슨하게 풀어졌다.
“역시.”
그러자 김한별이 해성의 새끼손가락을 움켜쥐고 입꼬리를 휘었다.
“용맹한 나해성.”
용맹하다니. 비겁한 제게 이토록 안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해성은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김한별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달리는 차창 밖, 어두운 길 위의 가로수가 성큼성큼 해성을 따라오는 듯했다.
집으로 가자는 것에 못 이기는 척 응한 것은 김한별이 제게 물을 것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못해도 이 상황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읏…!”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김한별은 해성의 입술부터 물어뜯었다.
“으, 야, 읍… 야!”
있는 힘껏 어깨를 밀어 내자 김한별이 해성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더운 숨을 쏟아 냈다.
“왜에. 하기 싫어?”
말끝을 늘이며 투정 부리는 말투와는 다르게 해성의 몸을 옭아매고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허벅지의 힘은 심상치 않았다. 근육이 팽창된 허벅지가 성기와 고환, 그리고 그 아래 여린 피부를 뭉근하게 문질렀다.
“김한별, 잠깐.”
“형이 좋아하는 거.”
저를 덮친 어깨를 밀어 내려던 손이 멈칫했다.
“형이 좋아하는 거 내가 다 해 줄 수 있는데.”
“….”
“만족시켜 줄 자신이 있거든, 내가.”
고개를 든 김한별이 해성을 보며 웃었다. 아주 진득하고 끈적한 웃음이었다.
* * *
나해성은 다정하게 어루만지면 어쩔 줄 몰라 하고 거칠게 다루면 안심한다. 그런 습성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단순히 짐작만 하는 것과 그 짐작을 확인받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그러니까 진짜로 더 이상 그 꼴을 봐 주고 있을 수가 없다, 이 말이지.
한별은 곧 죽어도 씻어야 한다며 품에서 발버둥 치는 해성을 안아 들고 침실 욕실로 갔다. 그러자 나해성은 자신이 이 집에서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처박힌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안심했다.
섹스를 하기 전 반드시 샤워를 해야 하는 습관도 그 쓰레기 새끼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 개씹새끼를 기다리며 해성은 강박적으로 자신을 씻고 정비했을 거다.
좆같네.
욕실 문 앞에 서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던 한별은 실실 웃으며 침실을 빠져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나해성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주 꼼꼼하게 직접 씻겨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나해성에게 시간을 주어야 할 때였다.
태연한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제 앞에서 어른인 척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게 감정을 갈무리할 시간.
나해성은 절대 모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그런 척을 하는 자신이 얼마나 위태롭고 연약해 보이는지.
섹시하게.
한별 역시 찬물을 맞으며 뜨거운 몸과 마음을 식혔다.
담담한 얼굴과 목소리로 스물 중반 넘은 사내새끼랑 무슨 재미로 놀아 주냐 말하던 나해성은 그 말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하던 나해성이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여 한별은 그야말로 꼭지가 돌아 버리는 줄 알았다.
“씹새끼.”
그 씹새끼는 운도 좋았다. 아직 어린 태를 벗지 못한 나해성이 눈을 빛내며 형, 형 하고 따라다녔을 테니까.
‘한별이 형.’
“하.”
한별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도복을 입고 매트 위에 앉아 형! 하고 저를 부르는 나해성을 상상만 했는데도 좆이 벌떡 서서 핏줄을 튕기며 물을 뚝뚝 흘려 대고 있었다.
한별은 제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물과는 다르게 델 듯 뜨거운 손으로 성기를 쥐었다.
뭐, 그 시발스러운 새끼가 이 시점에 나타난 게 어쩌면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해성의 마음속에 그 새끼가 엄청난 세기의 사랑쯤으로 심어져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더 좆같았으니까.
무슨 대단한 인물처럼 극적으로 등장한 척하는 그 새끼가 미치게 우스웠지만, 그 촌스럽고 청승맞은 재회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떠는 나해성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안쓰러웠다. 한별은 이 기회에 나해성 안에서 기생하고 있는 그 새끼를 완전히 제거할 생각이었다.
왜냐면.
눈을 감은 한별의 얼굴에 물줄기가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일자로 다물렸던 입꼬리가 꿈틀하는 순간 내리붓던 물줄기가 뚝 끊기고 한별이 눈을 떴다.
“나해성.”
왜긴 왜야, 시발. 나해성이 존나게 좋으니까 그렇지.
낮은 숨소리와 함께 정액이 흰 벽으로 튀었다.
“하여튼.”
한별은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사람 미치게 한다니까.”
그 얼굴에 시원한 웃음이 맺혀 있었다.
* * *
해성은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한별에게 달랑 들렸다. 엇, 하는 사이 등에 푹신한 침구가 닿았고 김한별이 제 위로 올라탔다. 성인 남자를 이렇게 쉽게 들어 옮긴다는 게 말이 되나 기막혀할 새도 없이 입술이 얼굴 곳곳에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김한별의 어깨를 밀어 내려던 해성은 순간 멈칫했다.
밀어 내기 싫었다. 김한별을 밀어 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동우에게 경쟁심과 질투 같은 걸 느끼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밀어 내지 않아도 저절로 소화될 불길이었다.
해성의 손이 김한별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자 김한별이 해성의 입술 사이에 제 윗입술을 끼워 넣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해성.”
“어.”
“해성아.”
“….”
“해성이 형.”
저를 부르는 웃음이 밴 목소리에 해성은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었다.
“할까?”
이 상황에서도 굳이 허락을 구하는 김한별. 가만히 그런 김한별을 바라보던 해성은 고개를 허공으로 띄워 김한별에게 키스했다. 맞닿은 입술이 잔뜩 휘어지는 게 느껴졌다.
김한별이 해성의 옆구리를 잡고 엄지로 쓸며 살살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흐트러지며 드러난 살에 김한별의 발기한 성기가 문질러졌다.
느리게 흘러나온 해성의 숨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다. 고환을 찌르던 성기가 서서히 단단해지는 기둥을 스쳤다. 절로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김한별이 두 성기를 거머쥐었다.
“나해성.”
한 번 더 해성을 부른 김한별은 해성의 턱선을 따라 흡입하듯 입술을 붙였다. 격렬한 움직임도 아니었다. 한낮에 흐르는 강물같이 느릿하고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성기를 죄는 적당한 압력과 겹쳐진 또 다른 성기 때문에 흥분은 점차 강해졌다.
“아으.”
결국 앓는 소리가 잇새로 흘러 나갔다. 해성은 이런 것에 별로 면역이 없었다. 낯설었다. 사실 이렇게 마주 보고 하는 행위조차 해성에겐 익숙한 것들이 아니었다. 해성의 하룻밤 상대들 역시 그랬다. 굳이 분위기를 따져 가며 성욕을 풀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은 다급하고 조급했다. 그래서 안심했다. 다들 그렇구나. 저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해성이 저를 거쳐 간 하룻밤 상대들에게서 찾은 허름한 위안이었다.
“그냥.”
“응?”
“그냥 해.”
단단하게 뭉친 아랫배 안쪽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말하자 김한별이 크게 허리를 움직였다.
“하읏!”
동시에 부푼 귀두를 찍어 누르는 손길에 해성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정액을 토해 낸 해성의 성기에 대고 제 성기를 처박으며 김한별이 속삭였다.
“나는 형이랑 하는 게 제일 좋아.”
유치하게까지 들리는 말이었다.
“형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말과 다르게 상체를 세우고 해성의 오금을 잡아 벌린 후 구멍에 정액을 사출하는 동작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래야 나랑만 하지.”
“야, 김한, 읏, 별.”
이어 꽉 다물린 구멍에 뭉툭한 귀두를 처박는 움직임 역시도.
해성은 엎드려 누운 채로 시트에 뺨이 짓눌린 채 눈만 끔뻑거렸다.
“미친놈.”
저를 향한 욕설에도 김한별은 웃기만 했다.
“잘 잤어?”
“잘 잤겠냐?”
어제 김한별은 아주 천천히 해성을 몰아붙였다. 잔잔하게 시작된 섹스는 해성이 더 이상 뽑아낼 정액이 없을 때까지 이어졌다.
“잘 자던데.”
“잔 게 아니라 기절한 거다.”
“그게 그거 아닌가?”
큰일 날 소리를 태연하게 지껄이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지만 차마 그걸 끄집어내 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바득바득 안 그런 척하고 있지만 기분 나빴을 거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한별이 해성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리고 해성은 답변을 회피하며 김한별과의 관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것에 안도했었다. 안일한 기대를 했다.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김한별이 이 관계가 지겨워질 때쯤 조용히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이동우가 나타난 거다. 고백한 사람을 곁에 두고도 지난 인연을 단호하게 떼어 내지 못하고 멍청하게 휘둘리는 모습이 김한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게 보일지 굳이 입장을 대입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김한별은 제게 마음껏 저울질을 하라 말한다. 해성은 나른하게 저를 보고 있는 김한별을 마주 보았다.
정말 흔들리는 저를 김한별이 잡아 줄 수 있을까.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해성은 이를 악물었다.
한심한 새끼.
이 순간에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자신을 잡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용맹한 나해성.
귓가에 스치는 목소리에 해성은 비웃음을 흘렸다. 늘 그랬든 그 비웃음은 해성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해성.”
살짝 잠긴 낮은 목소리.
“해성아.”
일순 진지해지는 눈빛.
“형이라고 한번 불러 볼래?”
“….”
“응?”
“간다.”
해성이 이불을 걷어 내기도 전에 낚아채 제 품에 가둔 김한별이 해성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고 웃었다. 살을 간질이는 숨결을 느끼며 해성은 몸을 늘어트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해성은 이동우에게 연락했다. 굳이 머릿속을 뒤져 그 번호를 기억해 낼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 봐도 지워지지 않던 숫자였다. 차라리 이동우가 번호를 바꾸길 바라기까지 했던 고작 열한 자리의 숫자.
잠깐의 신호음 후, 들려오는 목소리가 마치 수년 전 그때 같았다.
* * *
주말 늦은 오후, 해성은 3층으로 된 카페 제일 위층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1, 2층에 비해 덜하긴 했지만 3층 역시 사람들로 붐볐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들여다보며 집중하는 사람들. 그 평범하고 흔한 광경을 조금 신기하게 구경하며 해성은 카페에 도착한 후부터 느껴지는 어떤 감정 하나를 달래려 애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이 일찍 도착했다고는 해도 만나기로 한 사람은 한참이나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확인하니 역시나 약속 시간에서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어디쯤이냐, 연락을 해 볼 만도 한데 해성은 휴대폰을 꼭 쥔 채 그저 표면에 맺힌 물기가 흐르는 유리컵만 바라보았다.
그 물기가 컵이 닿은 트레이 위에 둥그런 웅덩이를 만들어 갈 무렵 해성의 맞은편 의자가 뒤로 밀려나고 시원한 공기가 해성에게 훅 끼쳐 들어왔다.
“미안. 주말이라 그런가 길에 차가 많네.”
해성은 물웅덩이를 보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많이 기다렸어?”
“아뇨.”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해성에게 그 정도 시간은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정도였다. 이동우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래.”
다리를 꼬고 앉은 이동우는 순하게 답하는 해성을 보며 웃었다.
“먼저 연락 줘서 고마워, 해성아.”
“아니에요.”
글쎄. 그가 고마워할 일은 아니었다.
이동우가 앞에 앉아 있었지만 해성의 시선은 여전히 트레이 위를 적시고 있는 유리컵과 주변 사람들을 배회했다.
“해성아.”
잠시 눈가를 좁혔던 이동우가 그런 해성을 불렀다.
“네.”
“우리 밥 먹으러 갈까?”
“네?”
흐릿하던 눈빛이 의아함에 선명해졌다.
“여기서 이야기 좀 하다가 같이 저녁 먹자. 형이 맛있는 거 사 줄게.”
“왜요?”
비꼬거나 비아냥거리려고 묻는 것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묻는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분명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환한 대낮,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카페에서 이동우를 마주하고 있자니 정신이 자꾸만 멍해졌다.
“해성아.”
“….”
“아직 내가 많이 미워?”
물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듯 먹먹하던 귓가에 이동우의 말이 꽂혀 들어왔다.
‘나랑 그 새끼를 두고 저울질하고 싶어?’
동시에 낮은 목소리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형이 그랬으면 좋겠어.’
아닌 척했지만 이동우가 저를 찾아온 이유를, 사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해성은 그 누구보다도 이동우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한별은 여전히 모르겠다. 어째서 제게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저따위는 이동우에게 넘어가 버려도 상관없기 때문인 걸까? 마음 한구석에서는 김한별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해성은 이미 얼음이 반쯤 녹아 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형.”
“응, 해성아.”
다정한 눈빛. 상냥한 말투. 바라고 또 바랐던 그의 모습.
“저는요. 그냥 신기해요.”
“뭐가?”
“형이랑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커피 마시는 게요.”
그래. 이동우를 기다리는 내내 해성이 느낀 감정은 위화감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밝은 대낮에 이동우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해성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앞으로는 자주 해.”
이동우가 해성에게 손을 뻗어 왔다.
“전에 못 한 거까지 더 많이 그렇게 하자.”
해성은 차갑게 식은 제 손을 잡은 이동우의 손을 빤히 응시하다 빼냈다. 저도 모르게 굳어 주변 눈치를 보았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역시나 상대방에 딴죽을 걸고자 하는 말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상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동우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 좁고 어두운 자취방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네 마음 풀어질 때까지 형이 노력할게.”
노력.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해성 자신이 잘 알았다. 그 누구보다도 노력하고 애썼다. 그러니 확신할 수 있었다.
해성이 단호히 고개를 젓자 이동우의 입술에 머물러 있던 웃음이 잠시 증발했다.
“해성아.”
“제가 아무리 도장에 찾아오지 말라고 해도 형은 제 말을 다 무시하겠죠.”
“그건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아니에요.”
의미 없는 사과를 받으려 한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해성이 무슨 말을 해도 이동우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해성을 들쑤실 것이다.
“형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요.”
원망도 미움도 담겨 있지 않은 무덤덤한 목소리에 이동우가 해성에게 기울어져 있던 몸을 뒤로 물려 의자에 기댔다.
“그러니까 형은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움츠러들었던 해성의 몸이 바로 세워졌다.
김한별은 제게 저울질을 하라 했지만 해성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강한 이동우가 제 말에 수긍해 멋대로 찾아오는 걸 그만두길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금으로서 기댈 수 있는 방법은 이동우의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지지부진하고 청승맞은 관계를 김한별이 견뎌 주길 바라면서.
‘내가 그 새끼한테 질 거 같냐고. 대답해, 나해성.’
‘그렇게 생각했다면 사람 잘못 봤어, 너.’
김한별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
“그냥, 이 말 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
“식사는 하지 말아요.”
“그래….”
분명 기분이 상했을 답이었을 텐데도 해성을 보는 이동우의 눈빛과 말투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잠시 침묵이 감돌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런데 해성아.”
“….”
“네가 나를 참아 주고 있다는 듯이 구는 건 좀 웃긴데.”
이동우가 비식 웃었다.
“즐기고 있잖아, 너. 내가 이렇게 너 찾아와서 매달리는 거.”
이동우의 말에 달싹거리던 해성의 입에 차차 다물렸다.
“이해해. 내가 밉기도 하고 그동안 마음 상했던 거 갚아 주고 싶기도 하겠지. 당연해. 그러니까 마음 풀릴 때까지 화풀이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찾아온 거야, 나도.”
저를 향해 미소 짓는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고 일어섰다.
“가 볼게요.”
겨우 짤막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해성을 이동우는 잡지 않았다.
약간은 가파르게 느껴지는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차갑다고 할 수 없는 바람이 해성의 무감한 얼굴을 스쳤다. 잠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던 해성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니 운 좋게 바로 열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생각 없이 앉아 있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 운은 의미가 바랬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그냥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지하철과 다르게 전광판에 뜬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은 20분 후였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멍하니 도로 위를 응시하다 문득 고개를 드니 해성이 타야 하는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 하며 전광판을 확인했더니 여전히 도착 예정 시간은 20분 후였다.
“…뭐야.”
고작 버스 하나 놓친 것에 허탈감과 무력감이 확 해성을 덮쳐왔다. 뭐 하나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해성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적어도 걸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큼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걷다 보니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겨우 낯익은 동네에 들어섰다. 빌라와 다세대 주택으로 이루어진 골목으로 들어서 모퉁이를 돌았을 때 지칠 줄 모르던 걸음이 뚝 멈춰 섰다.
“나해성.”
저를 향해 씩, 웃는 김한별을 보며 해성은 확신했다.
즐기고 있다고? 아니,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이동우를 만나러 가면서도, 이동우를 만나면서도, 이동우를 만난 후에도 내내 김한별만 떠올렸다. 이동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애쓴 것도, 그의 존재가 위협적으로 느껴진 것도 모두 그 때문에 김한별과 멀어질까 봐 두려워서였다. 김한별이 제게 질릴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김한별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저울질하라는 김한별의 말은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추는 이미 기울어진 후였다.
* * *
처음 시작은 자취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해성의 집과 학교는 자취를 할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학이 어렵진 않았다.
그런 해성이 모은 돈과 용돈을 모두 털어 좁은 자취방을 얻은 것은 이동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밖에서 만나는 거 불편하다.’
그전에도 이미 이동우와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저 말 한마디에 해성은 이동우가 마음 편하게 저와 있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소는 그의 학교와도 해성의 학교와도 먼 다세대 주택이었다. 너무 허름한 곳을 고르면 그가 오지 않을까 걱정해 나름 깔끔한 곳을 골랐는데도 사실 그가 머물기에는 턱없이 좁고 낡은 곳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건 해성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란 해성에게도 방 하나에 주방과 화장실이 모두 들어 있는 집은 처음이었다.
방을 얻기 전에 혹시 그가 말릴까 싶어 아예 계약까지 한 후에야 말을 했다. 그에게 자취를 하게 되었다고, 괜찮으면 거기서 보자고 말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괜한 짓을 했다고 형이 화를 내면 어떻게 하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밖에서 못 만날 사이도 아닌데 굳이 방까지 얻어 숨어 만나듯 할 이유가 있냐 다그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해성의 말을 들은 그는 묘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에 어쩌면 해성은 처음으로 무언가 어긋나고 있다는 걸 짐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짐작은 해성의 손을 잡고 그럼 앞으로 좀 편하게, 자주 볼 수 있겠다 하는 말에 증발되어 버리고 말았다.
처음 낯선 방 안으로 들어설 때에는 부모님 몰래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에 죄책감도 느꼈다. 자취를 하는 것이 비밀이었기에 해성도 외박을 할 수는 없어서 밖에서 머무는 시간에 대한 변명과 거짓이 늘어갔고 그럴수록 그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좋았다. 밖에서보다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의 곁에 좀 더 붙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 그게 시작이었다. 그랬었다.
“잘 만나고 왔어?”
곁으로 다가온 김한별이 이미 누굴 만나고 왔는지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하게 물었다. 해성은 물끄러미 그런 김한별을 바라보았다.
추의 무게가 실린 쪽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바득바득 애를 썼던 것은 누군가에 대한 열렬한 마음의 끝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김한별.”
“응.”
얌전히 답을 하면서도 김한별은 해성의 얼굴과 표정을 구석구석 살폈다. 입이 바싹 말라 왔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해성에게 달콤한 감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쓰고 씁쓸했다.
“오늘 같이 있을래?”
해성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아, 그게.”
막상 말을 뱉고 나니 후회가 되었다. 조급함에 이동우를 만난 것을 뻔히 알고 있는 김한별에게 가타부타 설명도 하지 않고 지껄였다. 하지만 해성이 뭐라 변명을 덧붙일 새도 없었다.
“응.”
“어?”
즉각적인 대답에 되레 해성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렀다.
“그 새끼 만나고 또 땅 파고 있을까 봐 얼굴이라도 보려고 온 건데.”
얼굴을 기울인 김한별이 입꼬리를 당겼다.
“오늘 운이 좋네?”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김한별에게 뭐라 말을 하려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해성과 김한별의 곁을 지나갔다.
“차는? 건물 뒤?”
“응.”
“일단 차로 가자.”
“응.”
김한별은 거절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성은 그런 김한별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피하고 앞서 걸었다. 그러자 김한별이 금세 따라와 옆에 섰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해성은 입을 다물고 앞만 보고 걸었다. 옆에서 빤히 쏘아지는 시선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정면만 응시했다.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면서도 여전히 김한별을 보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그 입술 위로 살짝 식은 입술이 내려앉았다. 안전벨트를 잡은 채 시선을 들자 바짝 다가와 있던 김한별이 천천히 물러섰다.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는 말에 해성은 김한별이 또 귀여워서 그랬다느니, 섹시해서 그랬다느니 하는 장난스러운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이은 말은 해성의 예상과는 달랐다.
“불안하잖아.”
여전히 휘어진 입술이었지만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알다시피 내가 막 불안감 같은 거 느끼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거든? 특히나 그 씹새끼 같은 놈들한테는 더더욱.”
잠시 말을 멈춘 김한별이 해성의 새끼손가락을 붙잡았다.
“근데 나해성이 혹시라도 흔들렸을까 봐 초조하고 걱정되고 그러더라고?”
느리게 눈을 끔뻑이며 검지로 붙은 손가락을 문지르던 김한별이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씩 웃는 얼굴에 안심해 낮게 한숨을 내쉬던 해성은 목덜미가 잡혀 끌려갔다. 빠르게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굳은 혀를 휘감았다. 게걸스러울 정도로 해성의 혀를 빨던 김한별이 고개를 뒤로 물리자 맞붙었던 표피가 떨어지며 진득한 소리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진짜 스토커 짓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김한별이 내뱉는 숨이 고스란히 해성에게 와서 닿았다.
“그 새끼 만날 때마다 따라가고 싶어. 아니, 내가 먼저 가서 죽치고 앉아 있고 싶다고.”
느릿한 음성에 집착과 집요함이 그득했다.
“그래도.”
해성의 뺨과 입술에 한 번씩 짧게 입을 맞춘 김한별이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알 수 없는 말과는 다르게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동작에서는 그다지 인내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