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역하렘 답게 가자!>
<다니엘 루트>
아비게일과 다니엘의 약혼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요르펜가와의 결합 자체는 찬성하지만, 어째서 적녀가 요르펜으로 가야하는 지에 원로들은 불만을 품었고, 샤펜공의 결정에 크게 반발할 것이었다.
또한 황실에서도 두 가문의 결합을 원한다면 차라리 나를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요지의 말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약혼 발표가 난 후에야 어쩔 수 없는 뒷말에 시달리더라도 약혼 전까지 그런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의해 다니엘과 아비게일의 약혼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 적자와 적녀의 결혼이니 결코 규모가 작을 수 없었으므로, 추수제에 의례하는 작은 파티를 열기로 했다. 알트라에서는 거의 열리지 않는 파티지만, 약혼을 숨기면서도 큰 파티를 열기 위한 명목으로 그것말고 적당한 것이 없었으므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큰 파티에 나는 준비하는 내내 몹시 골치가 아팠다. 아니, 사실 일이 많은 건 괜찮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나는 하루하루 핀치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오늘 예쁘네.”
몸에 딱 맞는 턱시도를 입고 장갑을 벗으면서 인사를 하는 다니엘의 언제나와 똑같은 얼굴에 나는 시선을 피했다. 좋아하는 남자의 약혼을, 그것도 이복언니와의 약혼을 기쁘게 축하해줄 수 있는 여자는 몇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의 원로와의 식사 때의 일도 있었으니까.
“감사해요. …아비게일양은 지금 대기실에 계신데, 안내해드릴게요.”
그를 피하는 것이 분명한 내 태도에 그가 조용히 물었다.
“…그 날, 별 일 없었어?”
순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 있다가 고개를 숙인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별 일 없었어요. 그리고 있다고 해도….”
다니엘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삼킨 뒷말도 그라면 분명히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굳이 말을 더 붙이지는 않고 하녀를 불러 다니엘을 아비게일에게 안내하라고 했다.
“라시아 양과 더 할 말이 있으니, 나중에 안내해주게.”
“…더 할 말은….”
그가 똑바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더 이상 그를 쫓아내려고 해봤자 움직이지 않을 게 뻔해서,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럼 자리를 좀 옮기죠. …그리고 저, 시간 별로 없어요. 약혼식도 곧 시작하고.”
“알아. 길게 안 끌게.”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와의 자리가 편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몹시 불편했다.
곧 내 이복언니와 약혼할 남자. 내가 좋아하는 남자. …이렇게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나는 괜스레 땅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침묵의 무게에 지쳐 입을 먼저 열었다.
“…하실 말씀, 하세요.”
“그 날… 미안했다.”
“마땅히 하셔야 할 걸 하신 거죠.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선배님.”
“난 너한테 약속한 게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게 됐다. 그래, 그가 내게 미안해할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내게 약속을 했으니까. 누가 나타나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우선으로 하겠다고 그가 제 입으로 약속을 했으니까.
“지키실 필요 없는 약속이라는 걸,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요.”
내가 그의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에,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다니엘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가끔은… 나를 참, 비참하게 했다. 그 동안 다니엘이 내게 베풀어준 호의나, 함께 했던 즐거운 시간들 같은 것이 그저 은혜 갚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허무했던 것이다.
가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만약 내가 그 때 당신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해도, 나한테 똑같이 잘해줬을 거냐고. 내가 당신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좋아한다고 했다면, 그러면 당신은….
“내게는 어떤 것보다 우선해야 할 약속이었어. 그래서 너한테 더 미안하고….”
“다니엘.”
허무하고 서글퍼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단순하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저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지금 우는 게 너무 창피했다.
별 일이 아닌데.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큰일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너무 당연한 일인데… 그 새삼스러운 진실에 혼자 상처받고, 또 상처받는다.
그가 내게 지나치게 잘 해줬기 때문에.
내가 코라와 싸웠을 때, 시드의 고백으로 로드리고와 약간이나마 어색해졌을 때… 내 옆에는 이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에. 싸웠을 때는 일부러 시간을 맞춰서 식사를 함께 해주었고, 로드리고와 어색해졌을 때는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나서주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외롭거나, 혹은 아무 일이 없어도 당신이 있어줬기 때문에 나는…
“잘 해주지 마세요, 다니엘… 의미 없이 그냥 잘해주지 말라고요… 중요할 때 나를 도와주지도 말고, 아는 척 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주지 마세요….”
============================ 작품 후기 ============================
다니엘 엔딩은 아니고.. 중간 커브? 같은 거예요. 이게 다니엘 테크 트리 타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해야하나...(마음 복잡)다니엘 엔딩을 바라신 분이 2분이 있어서 쪄왔어여. 치정 쓰느라 죽는줄.
이 엔딩에서 라시아와 다니엘은 몹시 돈독합니다.. 아쥬 돈독. ㅇㅅㅇ원래 얘가 초기 구상할 때 진남주였기 때문에 ㅋㅋ 아마 얘로 팠으면 역하렘은 안 나왔을 거예요. 다른 애들 비중이 오로지 다니엘을 위해 깔아주는 역할...!
하.. 좋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소장본 수요조사 링크는 댓글에 있고요. 약식 url은 http://goo.gl/forms/yZJ8Sw1ITC요것.
만약 다니엘 엔딩을 봤으면 아비게일과 라시아, 다니엘, 이렇게 삼각관계..! 치정!!!! 싸움!!!! 이런 느낌이었을 겁니다. 얘는 15키바 정도 되네요.
소장본을 만들게 되면 외전 들어가는 수는 각각
소장본> 이북=프리미엄
이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 머... 딱히 만들어지진 않을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적 느낌.
다음 외전으로 뭘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뭔가 이북에 다니엘 외전 들어가도 되려나???? 다른 엔딩 이북 독자들은 안 보고 싶어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래서 걍 후일담을 써야하나 고민중입니다.. 아 근데 후일담 콘티 짜기 진짜 너무 힘들어요. 죽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