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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106화 (106/113)

106화

<종장>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배가 고파서 우리는 사이좋게 식사를 한 후에 각자의 호수에 집채만 한 돌덩이를 던지기 위해 헤어졌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한참을 서로의 곁에 머물렀지만,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그의 반쪽으로서 자리하기 위한 계획을 보다 세세하게 정하면서 분명해진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있지는 않다는 거였다.

마치 사업 파트너처럼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도 다시 만난 그가 너무 좋아서, 나는 거의 어쩔 줄을 모르는 상태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 게 좋을 줄 알았다면 종종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질 나쁜 농담마저 떠오를 정도로. 이것저것 정하고 나서는 별로 할 말도 없이 그저 그의 옆에 앉아서 손장난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키스를 하고, 손을 잡고, 웃고… 그런 게 그냥 다 좋았다.

“아, 이제 진짜로 가야해.”

그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는 말은 벌써 다섯 번째였다. 나는 가세요, 하며 그의 손을 꼭 잡았고, 그는 내 손을 조물조물 만지면서 내 귀를 네 번째로 깨물었다.

“귀 정말 좋아하셔!”

내가 몸을 피하면서 외치자 이리하는 진지하게 어쩜 이렇게 맛있지, 하고 내 귀의 식재료화를 의심했다. 아무튼 못 말린다며 한참을 달래고 장난 치고, 결국 그 자리에서 20분이나 더 보내고서야 이리하는 이동마법을 사용해 궁으로 돌아갔다.

나는 벅찬 마음과 떠나지 않았던 웃음에 아프기까지 한 얼굴을 문지르면서 레스토랑을 나서서 샤펜 저택으로 돌아갔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제프리에게 부탁해 샤펜공과의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공작님께요?”

“네.”

“뭐라고 말씀드릴까요?”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면 돼요.”

“지금 당장 말씀하세요?”

“당장이면 좋고, 급한 거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바로 연락을 넣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놀라고 걱정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프리나 애니에게도 말해야하고, 교수님께도 말씀드려야 하고… 또 누가 있지. 꼽아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야 해서 마음이 복잡한 동시에 무척 뿌듯했다. 2년, 그렇게 헛살지는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부탁하신대로 내일 오후에 학생회 휴게실에서 보자는 전갈을 넣기는 했는데…”

“아, 고마워, 애니.”

내가 마치 일을 맡았을 때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애니가 영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어주었지만 애니는 별로 안심이 안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다녀오시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바빠지셨어요? …기분도 좋아 보이시고. 좋은 일 생기셨어요?”

“음.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고.”

생각해보니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내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잊고 있었던, 내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예정된 이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제프리나 애니는 다시 만나기 힘들겠지. 오를레아와 앨런이야 그럭저럭 초청을 할 수 있다지만, 아마 민디는 디라이크니 초청도 힘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도, 지금처럼 만큼은 쉽지 않겠지. 울적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샤펜 공에게 가서 할 말이나 걱정해야지.

“아가씨, 지금 시간이 된다고 하십니다.”

제프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하는 말에 고맙다고 말하고 차림새를 바로 한 후에, 나는 집을 나서 시 이동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가 샤펜가의 수도 저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모든 게 너무 쉬워서 오히려 허무할 지경이었다.

뭔가 이렇게 쉬우면 안 될 것 같은데. 정말 중요한 일 하나가 내 인생에서 지금 펼쳐지려는 건데… 그런 마음에 괜히 정문에서 머뭇거렸더니, 옛날 생각이 났다. 그 날 나는 비참했고, 한 편으로는 떨렸다.

외로웠고, 어렸고…

“아가씨,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공작님을 뵈러 왔어요.”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당신을 내 아버지로 보지 않았다. 2년의 시간이 내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변화시켰던가.

“…웬일이냐. 찾아올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서재에 앉아 서류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변했을 것이다, 분명히. 내게 그 자신의 욕심을 강요했고, 그걸 포기하고…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은회색 눈을 처음 보고, 내 눈이 저토록 차가워 보일까봐 걱정을 했었다. 샤펜 공작은 분명히 차가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아버지였다. 내가 기대했던 아버지가 아니었고, 바라던 아버지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샤펜가의 호적에서 빼주세요.”

아버지의 얼굴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놀라서일지도, 그 외의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천천히, 몹시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에요. 저는 샤펜이고 싶지 않아요. 샤펜이어서도 안 되고요.”

“…어째서냐.”

원하는 대로 살라, 고 말씀하셨지만 이런 것은 기대한 적이 없으셨나보다. 목소리가 떨려 몹시 불안정하게 들렸다. 나는 말을 고르며 한참 그를 기다리게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약혼 했어요.”

“뭐?”

이제 그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에게서 평범한 ‘아버지’의 얼굴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자연스러워서 놀랐다.

“그리고 제가 그 분과 결혼을 하려면, 샤펜가의 사람이어선 곤란해요.”

“대체 어떤 놈이랑 약혼을 네 멋대로… 내 허락도 안 받고 해!”

“보통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는 게 먼저긴 하지만, 음… 좀 급한 상황이기도 해서.”

“그 놈이 널 임신시켰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똑바로 쳐다봤지만 샤펜 공, 아니 아버지는 절대로 무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임신은 무슨. 그러니까, 상대가 오르제국의 오르안이라….”

그 말에 그의 얼굴이 놀라서 굳어졌다가 곧 풀어졌다.

“그래, 그러면 급한 상황인 건 설명이 된다만 그래도 그가 내게 물으러 오지 않은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딸이 약혼자를 두고 결혼하겠다고 아버지한테 물으러 와?”

“전통적으로 물론 그… 남자 쪽이 여자 부모에게 묻는 게 정석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꼭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결혼을 시키라는 말이냐? 전통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따님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을 하지도 못할 사람과는…”

줄줄이 엄격한 얼굴과 차가운 목소리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분이셨나, 지금까지 그와의 시간에서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에 나는 당황했고, 그가 더없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믿을 수 없게도, 앞으로의 시간이 아쉽기까지 했고 말이다.

“퇴적은 제가 말씀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일부러 말씀드리는 거예요.”

너무 나무라지 말라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그런데, 상대가 상대인데… 괜찮으세요? 놀라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그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내게 말했다.

“네 어머니와 닮았으니, 그건 놀랍지 않다. 네가 그저 샤하레로만 사는 삶에 만족할 수는 있다면, 상관없다.”

나는 그가 나를 어머니와 닮았다고 칭하는 것에서 퍽 놀랐다. 딱히 어머니와 닮은 삶의 궤도를 따른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하지만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신분에 맞지 않는 선택이긴 하니까.

“그건 다른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데리고 와주셔서도… 감사드리고요.”

목적이 있었건 없었건, 나는 그에게 빚을 졌다. 내보내주는 것도, 데리고 온 것도… 지금에 와서야 담백한 진심을 담아서 나는 감사하다고 말을 할 수 있었다. 그의 태도가 내 생각과는 달리 부드러웠기에 한 발짝 더 나서 용기를 내 나는 물었다.

“저, 그리고 가능하다면 혹시 혜현을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어차피 네가 데려온 사람이니, 데리고 가도 상관없다.”

작게 웃으며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서재를 나가는 내 뒤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은 찾아오렴.”

나는 대답을 하지는 않고, 그냥 방을 빠져나와 혜현에게 부탁을 전한 후에 알트라로 바로 돌아왔다. 일을 미루는 분은 아니니 분명 퇴적은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였다.

…기분이 묘했다. 라시아 클레이만으로 돌아가다니, 그럴 일은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허무하기도 하고, 너무 일이 급하게 돌아간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결심한 일을 나도 미루는 사람은 아니니까. 알트라의 샤펜 저택에 도착해서 씻고 자는데, 침대에 누워도 잠이 안 왔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가 내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니 그제서야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3, 4시간 밖에 못 잔 건 확실했다. 오늘도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평소에 일어나는 시각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의례 하듯이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데 감회가 남달랐다. 이제 이 교복 입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식사를 하고 페드윈으로 들어가는데 자꾸만 걸음이 느려져서 큰일이었다.

이거 조금 늦춰서 뭐 어쩌겠다고, 괜히 느려지는 걸음을 재촉해 페드윈으로 들어가 행정 실에서 자퇴서를 쓰는데 참… 학교 다니면서 당연히 졸업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했지 자퇴를 하게 될 줄을 알았나.

서류를 제출하자 당연하겠지만 담당 선생님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정말이냐고 내게 네 번이나 거듭 물었다, 그렇다고 네 번이나 대답을 하는데 나 스스로가 그 말이 얼마나 안 믿기던지. 개중에 침착한 사람 하나가 내게 며칠 걸릴 수 있고, 학장님과 상담이 있을 거라고 말해서 알겠다고 하고 행정 실을 나섰다.

“라시아!”

응? 벌써 학교를 그만 두는 게 소문이 났나. 상당히 놀란 얼굴의 민디가 내 쪽으로 달려와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왜, 왜?”

“너 이 소식 알아? 마사랑 오르안이랑 약혼이 취소됐대!”

어쩐지 신이 나기도, 불안해보이기도 한 그녀의 얼굴에 그냥 웃으면서 민디의 손을 잡았다.

“알아.”

“…어떻게 알아? 아, 너도 신문 봤구나?”

민디의 말에 섞인 불안감이 절절히 느껴졌다. 그녀라면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지금 너희랑 만나러 가려고 했어. 가자.”

곧 만날 시각이긴 했으니까. 민디의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동안 민디는 내게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많이 나아져 괜찮다고 했다. 학생회 실에 도착해 문 앞에 섰을 때, 그녀가 나를 불렀다.

“라시아.”

“응?”

“…아무것도 아니야.”

민디는 웅얼거리면서 학생회 실의 문을 열었다. 나는 그녀가 할 말이 어떤 것일 줄은 알았지만, 굳이 그녀를 위로하거나, 나도 보고 싶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말했다.

“같이 들어가자.”

“응.”

문을 열자 휴게실에서 아이들이 전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모였나 의아한 상태로 의자에 앉자마자 물었다.

“아니, 평소에는 한참 느지막히 모이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다들 열심히 앉아있어?”

“모이라고 한 적이 없는 애가 모이라고 하니까 긴장돼서 그렇지. 게다가 약혼 파기도 속보였고.”

앨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오를레아도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와 이리하 사이에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그 소식으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하는 게 너무 빤히 보여 나는 웃어버리고 나서, 자리에 똑바로 앉은 후에 오를레아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내가 지금부터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을 전할 건데, 너무 놀라거나 말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를레아가 내 손을 덩달아 잡으면서 안 그럴게, 하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이들을 둘러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 단호한 어조로,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나, 약혼했어.”

“…뭐?!!!”

“안 놀라기로 했잖아!”

앨런이 그녀 답지 않게 소리를 지르면서 반응하고, 오를레아는 입을 벌리면서 내 손을 놓았다. 그런 그녀들을 나무랐더니 앨런이 빽,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었지! 말도 안 돼! 누구랑?!!”

“누구랑 했겠니. 최근까지 사귄 애인이 딱 한 명이었는데.”

“오르안이랑?! 말이 돼?!! 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음, 그리고 그게 충격적인 뉴스의 끝이 아닌데.”

“또 뭐가 있는데?!!”

민디가 거의 의자에서 튀어나와서 물었다. 나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한 번에 모든 나쁘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눈을 딱 감고 줄줄 말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샤펜에서 퇴적할 거고, 자연히… 더 이상 귀족학교인 페드윈은 못 다닐거야.”

“뭐?!!!”

이건 몹시 놀랍게도, 오를레아였다. 그녀는 거의 내 손을 내팽겨 치더니 눈을 부라렸고, 나는 얻어맞는 기분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말을 이었다.

“방금 자퇴서를 그래서 내고 왔고.”

“뭐?!!”

이번에는 다니엘이었다. 나 빼고 모두가 서 있는 광경에 나도 일어설까 잠깐 고민했지만, 장난을 칠 때는 아닌 것 같아 얌전히 앉아서 모두가 드래곤처럼 불을 뿜으며 분노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게 말이 돼? 아니, 그걸 샤펜 공작님께서 허용해주셨단 말이야? 네가 누구랑 결혼을 할 거라는 것도 알고 계셔?!”

“음. 아버지는 오히려 잘 받아들이시는 것 같던데.”

“넌 그리고 이제야 샤펜공작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샤펜에서 퇴적하겠다고?!”

“대략 그런 내용이지, 응.”

“넌 그리고 샤하레가 될 거고?!”

“정확하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샤하레가 될 거지만, 응.”

오를레아가 불을 뿜기를 멈추더니 끈 떨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아서는 머리를 감싸 쥐고 다니엘에게 달려들었다.

“선배 어떻게든 해봐요!! 쟤가 미쳤잖아요!!”

“아니, 난 약혼까지는 하겠거니 생각은 해서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자퇴? 자퇴라고?”

“…제가 원하는 직위에 오르려면 베노암 제국의 공작가의 자녀라는 위치는 곤란하잖아요.”

“무슨 소리야! 샤하레잖아! 어느 출신이든 가능한데!”

발버둥을 치면서 나를 말리고 흔드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깐만 설명한다니까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다들 겨우 진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노려봤고, 나는 한 숨 돌릴 새도 없이 설명을 시작한다.

“저는 샤하레이긴 한데, 일반적이지는 않을 샤하레가 될 거예요. 아마 황후가 하는 일을 제가 다 하게 될 거예요.”

“그게 가능해?”

“불가능하다면, 아예 이리하의 청혼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거야.”

이 말엔 조금 찔렸다. 방법은 그냥 모르고 된다니까 덥썩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니까. 하지만 지나친 진실은 서로에게 마냥 좋은 게 아니니까, 나는 입을 싹 씻고 거짓말을 했다.

“어떻게 하게?”

“그건 내 즉위식에 알려줄게.”

내가 웃으며 한 말에 아이들이 모두 질렸다는 얼굴을 하더니 한참 적막이 흘렀다. 민디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웅얼거렸다.

“네가 즉위식 같은 말을 하다니.”

“…나도 이상해, 알아.”

“넌 그래서 지금 행복한 거야? 마냥 그렇게 행복하게? 넌 슬프지도 않아? 이제 우리랑은 제대로 만나지도 못할 거라고!”

민디가 쾅, 하고 탁자를 걷어차며 분노했고,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나무라지 않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녀의 슬픔이나 그리움을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있잖아, 나는… 너희가 나 때문에 이렇게 슬프고, 화를 내고… 그런 게 되게 좋아.”

“…뭐라고?”

민디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있잖아, 난 2년 전에 페드윈에 오기 위해서 집을 떠났어야 했어. 엄마랑, 집사 할아버지와 함께 내가 십 몇 년을 살아온 집을 말이야. 그런데, 음… 그 때 나한테는 떠난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도,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이나…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래도 잘됐다거나, 뭐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없었거든. 심지어 잘 지내, 보고 싶을 거야,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없었어.”

옆에 앉아있던 다니엘이 내 어깨를 끌어안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눈으로 감사를 전하면서 친구들을 돌아봤다.

오를레아는 섬세하고 예쁘게 생긴 미인이지만 독설가고, 앨런은 시원시원하게 생긴데다가 우리 중 가장 성실했다. 민디는 귀여운 얼굴에 왈가닥이지만 알고 보면 가장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고, 다니엘은… 내 첫 사랑이자, 내 오빠였다.

“그런데 고작 2년 사이에 이렇게 너희 네 명이 생겼잖아.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왜 가냐고 화도 내주고… 이번에야말로 내가 떠나는 쪽이 됐어. 난 매일 남겨지기만 했거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도 돌아가시고… 그래서, 음…”

나는 아이들과 오빠의 얼굴을 쾌활한 얼굴로 한 번씩 천천히 보고 나서, 내 손을 잡아오는 오를레아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너희를 많이 슬프게 할 것 같아서 미안하고, 또 걱정이 되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있잖아. 나 너희가 이렇게 슬퍼하고, 화를 내줘서 너무 좋아.”

그리고 그들의 기분이 너무 상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얼른 덧붙였다.

“…이런 친구라서 미안.”

뭔가 화를 내거나, 격한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이고 다니엘이고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적막이 흐르고 내가 어쩔 줄 몰라서 왜 그래, 하고 불렀더니 민디가 내게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왜 미워하지도 못 하게 만들어, 이 못된 계집애야.”

“그래, 이 못된 계집애야.”

그렇게 말하며, 앨런과 오를레아도 나를 꾹 끌어안았다. 세 명에게 끌어 안겨서, 나는 그저 웃어버렸다. 어쨌든 내 결정을 지지해 줄 이 아이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잘 될 거라는, 그런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고마워.”

“그래도 자주 보러 와야해, 알았지?”

“초청도 해야해.”

그렇게 한 마디씩 하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으면서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민디의 손에 질질 끌려와 우리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명의 울음보가 터지자마자, 나 또한 도리 없이 울어버렸다. 아쉬움과 그리움, 그들에 대한 우정과 사랑이, 내 생각보다 너무 컸기 때문에.

============================ 작품 후기 ============================

종장 시작합니다 ! ㅇㅅㅇ

전 맘정리 시작한..(시무룩

물론 떡밥과 기타 정리는 하고 끝날거예요 걱정 마세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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