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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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와 헤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사이가 된 이후, 내 학교생활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내가 이리하와 헤어졌다, 고 아이들과 오빠에게 말했기 때문에, 다들 상당히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는데, 약간 미안하긴 했지만 동시에 몹시 고맙기도 했다.
헤어지고 나서 나는 분노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에 대한 확신, 그리고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들로, 기분이 몹시 급경사를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며칠, 르 송쥬 드 뉴잇이 다가오자 나는 그 동안의 스트레스와 마력충돌 때문에 앓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잘 되었다고 오히려 생각했다. 어쨌거나 휴식이 필요하기는 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와줬지만, 그 중 다니엘 오빠는 아예 우리 집에서 옷도 갈아입고 밥도 먹고 손님방 침실에서 아주 늘어지게 잤다. 사실 옮는 건지 확실하지 않아 걱정이 되어 집에 가서 잤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다니엘은 제프리와 애니와 함께 짠 것 마냥 내 말을 못들은 척 했다.
“갑자기 감기에 걸려서 어떡해.”
“감기 아니라잖아요. 그냥 나른한 거고… 괜찮아요.”
내가 하품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자 다니엘이 내 이마를 툭, 하고 건드리면서 열이 나는데 무슨 소리야, 하며 웃었다. 날씨가 묘했다. 여름을 향해 다가가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우중충한데다가 빨갛고 파란 기운들이 공중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왜 이렇게 넋이 빠져있어.”
“응, 하늘에서 이상한 게 자꾸 보여서…”
내 대답에 다니엘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얘 상태가 진짜 심각한데.”
“그러게요. 의사가 마력 예민자들 중 몇이 이렇다고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기는 했는데.”
짐짓 심각하게 나 들으라고 제프리와 수군거리는 모습에 그냥 실실 웃어보였다. 하늘에서 마력이 부딪히는 게 보이는 거라고 설명하기 귀찮기도 해서.
“식사는 어떡할래? 자꾸 열이 안 떨어져서 큰일이네.”
“르 송쥬 드 뉴잇 당일이라 그런 겁니다만, 상태가 좀 심하네요.”
“아, 그게 벌써 오늘이에요…?”
“네, 벌써 그렇습니다.”
제프리가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며 내게 스프그릇을 건넸다.
“다 안 드시면 못 나옵니다.”
냉큼 방을 나가버린 그의 모습이 얄미워서 입을 불퉁하게 내밀자 다니엘이 어디서 입을 내밀어, 하고는 내게 숟가락을 건넸다. 얌전히 숟가락을 받아들고는 이 중순 봄에 눈이 내리는 걸 집 안에 처박혀서 봐야한다니 아쉽다는 얘기를 하자 다니엘이 그러게 누가 아프래? 하고 내 옆 의자에 앉았다.
“제가 페드윈 오고는 처음이네요. 마력 충돌로 인한 한 여름 밤의 꿈.”
처음 알트라가 중립지역으로 선정되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는 바로 당시 중립을 보증해준 드래곤이 이 지역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알트라는 지리적으로 화 속성 드래곤들의 영역이라 불리는 서쪽과 물 속성 드래곤들의 영역인 동쪽을 나누는 가운데 지점인데, 각 기운의 영역이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한다.
보통은 잘 발생하지 않는데, 가끔 이렇게 두 드래곤 족의 활동량이 동일하게 클 경우, 두 힘이 충돌해서 때 아닌 눈이 내린다고. 물론 사람들 눈에야 눈으로 보이는 거고, 사실 차갑지도 않은 자연 발생적인 환상 마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쨌거나 이 기운 싸움 때문에 내가 지금 나른하고 열도 나는 거라고 반데라스 교수님이 말씀해주셨다. 내가 분명 이 일 때문에 앓아누울 거라고 굳이 찾아와주시다니, 상냥하시다니까.
“그러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보통 한 2,3년 주기로 한 번쯤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여름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면서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이상해요.”
입맛이 영 없었지만 안 먹었다간 제프리가 울까봐 스프를 열심히 먹으면서 말하자 다니엘은 제프리가 두고 간 사탕 포장을 벗겨서 자기 입으로 가져가 넣더니 말했다. 그거 내 건데.
“처음 한 여름에 일어나서 그래.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어. 그래도 보통 놀기 좋은 날 이런 거 안 내리는데, 운이 좋네.”
“중간고사 공부해야 하는 시기니까 막 좋다고는 못하죠. 언제 내릴 것 같아요?”
“잘 모르겠네. 그보다… 괜찮니?”
“뭐가요?”
나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고, 그 또한 공기 사이를 반짝거리면서 흩날리는 하얀 것들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은은한 보라색 마력에 감싸여서 하얀 환상이 아름다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고…
“이리하랑.”
“…뭐 어쩌겠어요, 그렇게… 되어버린 걸.”
시선을 창밖에서 떼어내고 나서 손톱으로 손장난을 치면서 대답을 하자 다니엘이 조심스럽게 침대에 걸터앉더니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줄 생각은 없니?”
“그냥…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어요. 이리하께서는 약혼을 하시게 되었고, 저는… 이리하의 옆자리에는 못 서고….”
“어째서?”
그의 다정한 물음에 가만히 대답을 멈추고 머리를 굴렸다. 그 동안, 일부러 나는 이리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도, 조금이라도 그 사람이 생각나려 하면 멈춰 서서 다른 생각을 했고, 그건…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정말 저게 다예요.”
“정말?”
다니엘의 다정한 초록색 눈이 나를 위로하듯이 비추었다. 그의 눈에 비친 나 자신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리하께서는 제가 샤하레가 되기를 원하세요.”
“응.”
“저도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도 저를 사랑하시니까… 저도 그 분의 옆에 있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면, 만약 제가 샤하레가 되면….”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면 저는 제 이름을 잃게 될 거예요. 그 자리는… 제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자리니까.”
다니엘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렇구나.”
“…네.”
그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난 언제나 네 편이야, 그거 알지?”
“…알아요.”
다니엘은 아주 느리게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아주더니 말했다.
“얼마 전부터 계속해서, 한 사람이 나에게… 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
“…….”
“아주 끈질기게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지.”
궁금하니? 그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못한 채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알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할지,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할지. 그리고, 그리고….
“내가 얘기를 들어봤어. 그리고 나는… 네가 그 사람이 할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리고 답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다니엘의 말에 나는 입을 열었지만, 목구멍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너를 한 때 좋아했고, 그리고… 몹시 아끼는 사람으로서, 네가 내 동생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하면, 분명히 후회할 걸 알아.”
내 말을 들으라고, 그가 속삭이면서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 봤다가는, 내가 더 얼마나 이리하를 보고 싶어할 지 상상이 되지 않아서. 지나치게 모든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 두려워서.
“고개를 끄덕여, 라시아. …보고 싶잖니.”
나는 그 말에 결국 져버리고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어요.”
더 이상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절절하게 보고 싶었다. 우리의 마지막이 서로를 향한 분노와 화였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지막 뒷모습 때문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리고…
보고 싶었다.
죽도록, 미칠 것처럼… 보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워터 댄싱은 몹시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마카오 페리와 함께 예약했지요! 그리고 에그타르트도 참고하고 있습니다. 홍콩 계획이 여라분 덕에...풍성해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더 없나? (빤)친구들은 휴학하지 않아섴 ㅋㅋㅋ 저만 ㅠㅠ 다녀올겁니다.
라시아 완결이 진짜 금방 날 것 같네요. 한.. 110~120 이쯤 예상하고 있습니다. 완결입박 딱지를 붙여야곘네여 ㅋㅋㅋㅋ........ 이상하다 완결이 날리 없는데..(혼란)라시아는 소장본 안 만들어요. 너무 긴데다가 교정교열을 열심히 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뭣보다 별로 안 사실 것 같아서여! ㅇ0ㅇ ....헤헤.....
완결이 나자마자 1주나 2주 뒤 바로 닫고 교정 보고 나서 이북으로 보낼 겁니다. 가하에서 나올 거고요! 정주행 하실 분은 슬슬 하시는 게 좋게씁니다!!
오늘도 선, 추, 코, 감사드립니다. 토/일은 안 옵니다.(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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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 완전 삭제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