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100화 (100/113)

100화

앨런에게 빚을 졌으니 맛있는 걸 사오라는 말을 최대한 우아하게 요약한 후에, 우리는 즉각 다니엘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하루라도! 라는 내용을 담아 내가 대표로 썼는데, 일하느라 바쁠테니 늦게 오리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다니엘은 우리의 억지나 다름없는 편지를 받은 다음날 바로 우리가 부탁한 음식들과 함께 후작령에 도착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냐는 내 물음에 다니엘은 질린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게 다 망할 파혼 때문이야… 온갖 소문에 위로에. 심지어 약혼 제의가 벌써 들어왔어. 다들 중매쟁이가 되려고 작정들 했나봐. 거기에 일도 더럽게 많고…오빠 죽는다, 라시아야…”

다니엘이 다 죽어가는 얼굴을 하더니 장난스럽게 나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축 늘어졌다. 나는 그의 몸무게를 등으로 지탱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웃겨서 잘 되지가 않았다.

내 목 앞으로 늘어진 손목을 붙잡고 열심히 전진하려고 노력했지만, 축축 늘어지는 오빠는 끌어지지도 않았고 말이다. 둘이서 킬킬거리고 있자 앨런과 민디가 어느새 내려와 못 말린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다가와서 다니엘에게 인사했다.

다니엘은 킥킥거리면서 자세를 바로하고 손을 뻗어서 나를 가운데에 두고 민디와 앨런의 머리를 문지르듯이 쓰다듬더니 말했다.

“오랜만에 본다. 잘 지냈니?”

그녀들은 여전히 이 스스럼없는 인사가 쑥쓰러운지 약간 얼굴을 붉히고는, 네에, 하고 대답했다. 우리 셋이 다니엘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괴롭히고 있었던 케일럼 황자는 이 때다 싶었는지 그럼 나는 일을 해야 해서, 라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핑계를 대더니 오를레아의 손을 잡고 저택의 서재로 향했다.

“아니, 일을 해야 한다면서 오를레아는 왜 데리고 가는 거야?”

민디가 투덜거리는 데에 우리가 동의하자 다니엘이 씨익 웃더니 물었다.

“그래서 정말 저것들 때문에 부른 거야?”

“그쯤되면 부른 게 아니라 구해준 것 같은데요….”

앨런의 장난스런 말에 다니엘은 어쭈, 하는 얼굴을 하고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

“사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

“일단 들어가요. 현관 근처에서 뭐하는 거야.”

“아. 그러게, 가자, 가자.”

집주인 둘이 자리를 비워서 안내를 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적당히 집사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민디는 앨런의 팔짱을 끼고는 이 집이 크냐, 너희 집이 크냐, 따위의 9살이나 물을 법한 물음을 던졌고, 앨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너는 너희 언니가 예쁘니 동생이 예쁘니?”

민디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려다가 문득 우리가 그녀에게는 형제자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라는 앨런의 숨겨진 뜻을 알아챘는지 어깨를 으쓱했고 말이다. 다니엘은 민디가 남동생과 언니가 있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남동생이 네 언니보다 예뻐?”

그 말에 민디는 웃음을 잔뜩 참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다니엘에게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저보다 더 예뻐요.”

“잠깐만, 그러면 그냥 보통이라는 거잖아.”

그 짓궂은 말에 민디는 심통이 나선 고개를 훽, 돌리고 걸음을 빨리했는데, 나는 웃음을 참으며 다니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는 킥킥거리고 웃더니 앨런을 내 곁으로 보내고는 민디의 옆에 바싹 붙어서 따라가며 말했다.

“삐쳤어?”

민디는 아니요, 안 삐쳤는데요. 하고는 짐짓 부루퉁하게 대답했고 다니엘은 그녀의 어깨에 척 하니 손을 올리더니 말했다.

“너보다 예쁘다는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지, 나는. 민디보다 예쁜 사람이 없는 걸 내가 아는데.”

와, 이 나쁜 남자. 하고 앨런이 내게 속삭였다. 다니엘은 그 말을 귀신같이 듣고는 고개를 돌려 앨런에게 윙크했다.

앨런의 귀 끝이 조금 빨개져서 나는 그녀를 살짝 놀렸다. 아무튼 입에 발린 말이라도 기분이 좀 풀린 민디가 흥, 하더니 다니엘의 팔에 팔짱을 꼈다.

나와 앨런은 키득거리면서 다니엘의 치켜세워진 엄지를 따라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니엘이 물었다.

“그런데 내가 앨런한테 빚을 진 게 있어?”

“음. 그게요. 오빠 혹시 칸나라는 사람 알아요?”

내 옆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그가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같은 수업을 꽤 많이 들었었거든. 걔랑 이게 연관이 있어?”

나는 허허, 하고 웃으면서 말을 고르다 앨런이 직접 말하는 것보단 내가 말하는 게 낫겠다 싶어 물었다.

“그 애, 전학한 이유가 뭔지 기억나세요?”

“아니. 사실 난 그 애랑 같은 수업을 들었다 뿐이지 뭐 접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가끔 편지는 오긴 해. 자긴 잘 지내는데 뭐 어쩌고 저쩌고. 그 편지가 왜 오는진 좀 이상하지만.”

나와 앨런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다니엘의 의아한 눈빛과 물음을 받았고, 민디는 코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입을 내밀고는 말했다.

“웃기시네, 잘 지내기는 무슨.”

앨런은 그런 민디를 보다가 우아하게 다니엘이 들고 온 디저트 상자의 리본을 풀면서 말했다.

“그 애, 선배 스토커예요.”

다니엘은 그대로 마시던 차를 내뿜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앨런은 그의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기에 어느 정도 물이 튀었는지 인상을 확 쓰면서 아 진짜 더럽게, 하는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앨런의 말이 어지간히 당황스러웠는지 다니엘은 거의 숨도 못 쉬고 컥컥거리다가 얼굴이 시뻘개진 채 물었다.

“뭐, 뭐-라고?”

앨런은 자신의 손수건으로 묻은 곳을 슥슥 닦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스토커라고요.”

다니엘은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이후 처음으로 창백한 얼굴로 말을 잇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위로하기 위해 한숨을 쉬고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을 툭, 하고 두드리면서 말했다.

“앨런이 해결했대요.”

다니엘이 아연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우리에게 간절하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게, 걔가 스토커거든요.”

“그 말은 충분히 들은 것 같다만…”

“아, 정확히는 오빠가 잘 때 찍은 사진을 봤대요, 앨런이!”

“…나 윗도리 벗고 자는데….”

“진짜 벗고 자요?!”

민디가 피를 토할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고, 다니엘이 당황한 게 역력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뭐 레이스 잠옷이라도 기대 했니…?”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사진을 들고 있는 걸 앨런이 보고, 또 다른 일로도 여러 가지 연관이 돼서,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낸 거예요.”

내가 앨런이 했던 구체적인 얘기를 덧붙이자 다니엘은 그걸 묵묵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 자세한 건 진짜로 알아봐야 하겠지만… 그 때는 왜 말 안 했어?”

앨런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뺨을 살짝 긁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잘 모르는 사이고, 해결도 다 됐는데 굳이 그렇게 알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일단 고맙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말해주라… 또 하면 어떻게 해.”

질색하는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한 다니엘의 모습이 웃긴지 민디가 물었다.

“남자도 스토커 무서워해요?”

“당연하지! 성차별 하지마라!”

“아니, 그런 뜻은 없었어요.”

다니엘은 옆에 있는 나를 확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쟤네랑 놀지 마, 라시아. 오빠 저렇게 대하는 거 봐, 못된 애들이라니까.”

“그러게요. 안 되겠네!”

내가 장난스럽게 다니엘의 품에서 깔깔거리고 다니엘이 머리를 쓰다듬다가 머릿결 상했다고 나를 놀리자 그걸 지켜보던 앨런과 민디가 어, 하고 잠시 침묵하더니 우리를 약간 의심스럽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둘이 진짜 뭐 있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내가 불퉁하게 말하자 다니엘이 우리 질투하나봐, 하며 쪽, 하고 내 정수리에 키스를 했고, 민디가 진짜 뭐 둘이 있어! 하며 투덜거렸다.

“그냥 우리가 유별나게 사이가 좋은 거야. 게다가 난 사귀는 사람 있잖아.”

“…넌 그걸 언제 나한테 말해주려고 했는데?!”

아. 그러고보니 제대로 말을 해준 적이 없구나. 좀 미안해서 표정을 한껏 갖추고 조심조심 말했다.

“그… 누군지 말씀드리기가 좀.”

“너흰 알아, 누군지?”

그 말에 앨런과 민디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그 말에 다니엘은 와, 진짜 섭섭하다, 하며 나를 떨어트렸다. 나는 다니엘에게 싹싹 빌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고 말이다. 겨우 마음이 좀 풀린 다니엘이 그래서 누군데! 하기에 우물우물하다 대답했다.

“…오르제국의.”

“뭐?! 네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한 게 그 놈이야?!

“…다니엘한텐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말을 했어?! 세상에!”

“어쩜 너 우리한테는 말 한 마디 없고!”

…왜 한 쪽 불을 끄니 다른 쪽에서 불이…. 나는 소파에 얼굴을 묻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몇 번이고 사과했다.

“…앞으로는 다 말할게.”

“그래야지! 우리 전부가 있을 때 말하라고!”

민디의 말에 앨런과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끄덕, 격하게 끄덕였다. 왜… 내가….

“그나저나, 일단 네가 이리하랑 사귄다고.”

“…네, 그게… 어쩌다보니….”

“와, 정말… 너 괜찮겠어? 그 자식이 잘 해주긴 해?”

“…그 자식이라고 하실 필요는….”

오빠 동생이잖아요, 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다니엘이 엄격한 눈으로 잘라 말했다. 그에게서 어떤 질투나 고통의 흔적이 없어서 나는 몹시 안심했다.

“오빠는 네가 남자를 만난다면 일단 걱정부터 되는 사람이야. 어떤 놈인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잘 해주는 거야?”

그 말에는 아이들 앞이라 하는 말이 아닌, 진심이 팍팍 담겨 있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동생이라 괜찮을 줄 알았더니…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에 제대로 소개 할게요… 라고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아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야. 둘이 형제인데.

“우리는? 우리는 소개 안 시켜줘?!”

“그래, 라시아. 너무한다.”

“…너희도 소개시켜줄게….”

경쟁심에 불타서 서로를 노려보는 세 사람을 보려니 굉장히 심적으로 힘들었다. 오를레아… 약혼자랑 그만 놀고 나 좀 구해줘….

그렇게 3학년 2학기가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새학기 시작!! ^0^

여러분 드디어 100화예요!! ㅠㅠㅠ 넘 조은... 진짜 완결이 얼마 안 남았네요.

넘 오지게 긴 글인데,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다가 여러분끼리 서로 꽁냥거리는 걸 보니 넘 웃기고 좋네옄ㅋㅋㅋㅋ신나게 불러보자 이리하 이리하~ (모님의 코멘트 )-> ㅋㅋㅋㅋㅋ 모님 ㅋㅋㅋㅋ 노래 자동재생되네여!! (다른 분 코멘트)그래여 여러분! 친하게 지내세요! 코멘트 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친하게 지내쟈!!

오늘은 1,2,3등 제가 다 할겁니다. 부들부들...

--- 칸나 이야기 비중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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