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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97화 (97/113)

97화

캄톤에서 짧은 관광을 마치고 빌헬름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교수님이 이른 새벽부터 나와 라티를 깨웠다. 비몽사몽해서 정신도 못 차리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으신지, 교수님은 빌헬름과 우리를 마법으로 씻기신 후에 포샴파 썰매를 타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빌헬름이 하품을 하면서 썰매를 보여줬을 때, 나는 기겁을 하고 교수님에게 말했다.

“타프에서 뵙겠습니다, 교수님.”

“아 왜 그러나. 이런 기회가 어디 있다고.”

“위험해보여요, 특히 라티한테는.”

포샴파의 크기가 크기니만큼, 앉아서 썰매를 타면 분명 제대로 된 시야 확보가 힘들어 서서 타는 썰매가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키가 작은 라티는 탈 수 없는 구조고 말이다.

보통 캄톤의 어린애들은 어릴 적부터 썰매를 탈 줄 알고, 어린 포샴파를 타고 이동한다고 하지만, 과보호라고 해도 좋다. 나는 도저히 라티를 그냥 혼자 썰매에 타게 할 수 없었고, 라티 또한 겁에 질린 게 너무 분명했다.

“확실히 라티가 운전을 하기에는 힘들긴 하겠구나. …그럼 내 썰매에다 태우면 안 되나? 작은 바구니 같은 거에 태우면 되잖아. 아니면 뒤에 하나 더 매달수도 있고.”

“충분히 가능하죠. 차라리 제가 운전을 할까요? 어차피 이 녀석들을 데리고 돌아와야 하고.”

빌헬름의 제안은 고마웠지만, 그의 방학을 우리의 일로 방해하고 싶지는 않는데다, 그가 끼여있으면 일행과 있을 때 솔직히 불편할 것 같았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한 후에 교수님이 포샴파는 마법으로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빌헬름은 포샴파 때문에 우리와 합류하고자 했던 것일 뿐인 듯, 반가워하면서 동의했고 말이다.

“타프까지는 얼마나 걸리는 지 알 수 있을까?”

“쉬지 않고 반나절 정도 걸려요. 밥은 충분히 먹여뒀으니까, 하루 달린 후에 우리 쪽으로 다시 보내주면 우리가 다시 먹일 거예요.”

“…어째 동물 학대 같은데.”

“힘이 남아돌면 쉴 때 서로 싸워요. 그보다 얘들한테 신호주는 방법 알려줄게요.”

빌헬름은 지도를 건네주면서 세세하게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알려준 후에, 좌회전과 우회전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기본적으로 말을 잘 듣고 튼튼한 아이들인데다 여차하면 교수님이 계시니까 별 걱정은 안 됐다.

온몸을 꽁꽁 싸고 목도리까지 단단하게 매어 입을 가린 후에야 포샴파 썰매는 출발했는데, 라티는 교수님의 썰매 뒤에 매달아 둔 썰매가 안정적인지 흥겨워하다가 지쳐서 잠까지 잤다. 나란히 달리는 건 위험해서 나는 교수님 뒤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차가운 바람에 눈이 시려서 자꾸 눈물은 나지, 계속 서있어야 하니 다리랑 허리는 아프지…내게는 퍽 괴로운 여정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분명히 즐거웠다. 내 썰매를 끄는 포샴파 둘은 기운이 넘쳤고, 얼얼한 찬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끝없는 설원에 사각사각, 포샴파가 발을 디디는 소리와 드물게 선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는 소리, 그리고 챠아아, 하는 눈을 해치는 소리는 분명 인상 깊은 것이니까. 중간 중간 서서 포샴파는 눈을 먹어 수분을 보충하고, 나와 교수님은 뻣뻣해진 허리와 온 몸을 풀어주었다.

“타프에서 탈 기차란 것도 서서 타야한다고는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교수님.”

“특등석으로 예약하마. …저 녀석이 잘 자는 걸 보니 더 빈정이 상하는군.”

“라티라도 잘 자니 어디예요. 으…. 그래도 확실히 풍경이 아름답기는 하네요.”

“…그렇구나.”

교수님은 가만히 숨을 고르시면서 설경 끝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이 눈의 땅에서 가장 어두운 그의 눈을 떠올리며 차가운 겨울 북풍 속에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만약에 정말 제가 저주를 풀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정말 죽으실 작정이세요? 그런 말이 혀 끝까지 달려 나왔다. 교수님은 나를 돌아보시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진하고 어두운 푸른 빛에 숨이 턱 막혔다. 심해가 이런 색일까. 감히 어두움과 깊이를 짐작할 수 없게 느껴졌다. 그건 내가 감히, 그의 지독한 고독과 시간을 짐작하기 때문이겠지.

“…라시아.”

“…네, 교수님.”

“나는 그저 자유를 가지고 싶을 뿐이란다.”

무슨 자유를 말씀하시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 어쩌면 그에게는 그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그에게는 죽을 자유가 있을테니까.

더 이상의 어떤 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나는 담담하게 네, 그렇게 의미 없는 대답을 한 후에 그를 따라 다시 썰매에 올라탔다.

우리는 3시간 후, 타프에 도착했고, 나와 교수님은 완전히 지쳐서 여관방에서 목욕을 하고 난 후에 거의 5시간을 꼬박 잤다. 그 동안 실컷 잔 라티만 중간에 일어나 우리를 깨우려 시도하다 실패해 쫄쫄 굶고 있었을 뿐.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라티를 먹이고 나와 교수님도 식사를 했다.

포샴파들을 캄톤으로 돌려보낸 이후에는 바로 레디데일의 수도로 떠나는 기차를, 당연한 말이지만 특등석 자리로 예매를 했고 말이다. 타프에는 볼거리가 퍽 많았기 때문에 우리 셋은 꽤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야간 시장이라든지, 먹거리가 그나마 풍부해서 라티의 볼은 지내는 동안 몹시 빵빵했고, 나는 라티를 그렇게 많이 먹이는 데에 매우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 애는 잘 먹는 게 최고야.

타프에서 나는 열성적으로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과제와 공부할 거리가 얼마나 많던지 내가 여행을 왔는지 사사를 받으러 떠나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공부할 게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라티는 약간 섭섭해 했지만 우리 둘 다 떨어져 지내는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므로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 날도 그런 밤이었다. 교수님이 라티를 데리고 놀러나간 저녁, 여관의 2층 방에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타프의 거리가 전등으로 하나 둘 밝아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오르제국의 밤이 보고 싶었다.

여행을 갔을 때 위에서 내려다본, 그 사막의 삭막하고 아름답던 세상이. 아니, 어쩌면 그냥 그가 보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책상 위에 팔을 올린 채 턱을 괴고 있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구두를 두드렸다.

“오르궁의 지붕!”

왜 지붕을 선택했는지는 나도 몰랐다. 어쩌면 정말로 풍경이 보고 싶어서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는지도. 어쨌거나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마음에 들었다. 오르는 높은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몹시 멀리 볼 수 있었고…. 눈 앞의 광경은 감히 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탁 트인 광경에 황토색 땅, 저 멀리로 아스라이 보이는 청명한 오아시스의 색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그 주변에 서 있는 초록색도, 마치 신이 거기에 있으라, 그렇게 명령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땅을, 세상을 물들이는 노을에 숨을 죽였다.

어떤 예술을 보면 이런 마음이 들게 되는 걸까. 하늘이라는 물에 빨강색, 남색, 노란색, 온갖 색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마치 처음 색을 바라보는 색맹의 기분으로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에라도-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간 후에라도, 여기서 풍경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넋을 놓고 서있는 내 뒤로 인기척이 느껴져 깜짝 놀라 구두를 발동시키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라시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내 시야를 가렸지만, 나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끌어질 것 같은 지붕 끝에서, 나는 천천히 구두를 벗은 채 그에게 다가갔다.

“이리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넘기며 그를 향해서 웃자 그 또한,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이리하의 약간 긴 머리카락 사이로 아름다운 심홍색 눈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손님이라 이렇게 인상 깊게 등장하는 건가?”

내 쪽으로 손을 뻗은 그의 손을 구두를 들지 않은 손으로 잡자 그가 내 손을 꽉 쥐면서 물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이리하는 눈이 예쁘세요.”

그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쥐면서 말했다.

“어째서?”

“…예쁜 건 그냥 예쁘죠,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의 질문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리면서 대답했는데도 그는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런 걸 세세하게 말하는 재주는 없는데,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바람에 날리는 치맛자락을 겨우 잠재우면서 말했다.

“심홍색 눈은 드물잖아요. 드물고, 그리고 가끔… 당신 눈을 보면, 마치….”

나는 말을 고르다가 잠시 멈춰섰다. 이리하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쥔, 노을 아래 반짝이는 눈, 바람에 불어오는 당신의 향.

아마도 이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하겠지.

“…신의 눈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내 속삭이는 목소리에 그는 내게 다분히 충동적으로 입을 맞췄다. 나는 그의 건조하고, 다정한 입술에 잠시 머물다가 멀어졌고, 이리하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손을 뻗어 그를 잡느라 구두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지만, 나도 이리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째서 내가 여기에 왔는지, 그가 어떻게 내가 여기에 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저 서로가 여기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게 당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서있을 뿐이고, 그리고 그런 게 당연한 사랑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보이는 건 심홍색 눈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눈가를 매만지다가 그제서야 어떻게 그가 내가 온 것을 알아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마침 산책 중이었거든, 저 아래에서. 그대가 아주 당당하게 서있던데.”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다가 떨어진 구두가 보여서 들었더니 그가 내 뺨에 키스하면서 말했다.

“일찍 온다는 사람이 너무 늦잖나.”

“…기다리셨어요?”

“기다렸지, 그걸 말이라고.”

그의 툴툴거림에 기분이 좋아져 나는 환하게 웃었고, 그는 웃어? 하며 심술궂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그의 웃옷으로 덮었다.

“들키면 곤란하니까, 우선 가리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손을 잡고 대담하게 손바닥에 쪽, 하고 키스를 하자 그가 금세 모든 화가 풀린 얼굴을 잠깐 하더니 다시 심술이 난 얼굴을 했다.

“이런 거 해봤자 안 풀려.”

“정말요?”

다시 한 번 쪽, 하고 손가락에 입술을 대자 그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더니 웃옷을 걷어 내 얼굴을 쭉 잡아당겨 다시 한 번 키스했다. 새들이 쪼는 것 같이 간지러운 키스에 웃음을 터트렸더니 그가 귀 뒤를 고양이에게 하듯이 긁어주면서 말했다.

“응접실 가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오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개인 무사인 것 같은 사람이 나를 안내했고, 그를 따라 한참을 어마무지하게 꼬여있는 길을 따라 걸으니 곧 문이 나왔다.

시녀가 문을 열어주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 뒤가 조용히 닫혔다. …이걸 보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참 우습지만, 만약 내가 그의 샤하레로 들어가면 계속 이런 삶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람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오고, 그리고 그가 시킨대로… 그렇게 그를 기다리는 삶.

얼기설기, 황금색의 문양으로 수놓듯이 장식한 창문이 몹시 아름다웠다. 창문 너머로 찬란한 햇살이 호수 위로 번쩍이는 게 보였다.

이 풍경만 보고 있으면 사막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면서 이리하를 기다리는 시간은 뭐랄까, 아련했다.

바깥의 풍경도, 내가 들어와 있는 세상도 아름다웠다.

내 발 아래 깔린 카페트의 자줏빛 직물에 놓인 수많은 문양과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황금색 술이 달린 쿠션들, 그리고 무늬 하나하나에 예술적 가치가 담긴 벽과 천장. 햇볕이 멋대로 들어와서 굽혀져 있는 내 무릎 끝을 희롱하듯 다가오다 멀어져가고 고요한 침묵이 이 커다란 응접실에 가득 차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진짜같이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마치 물방울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아롱아롱, 물방울 너머의 세계가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깊은 물속에서야 느낄 수 있는 부유감이 나를 나른하게 가라앉혔다. 멍하니 카페트 위에 주저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구름이 지나가 어두워졌다.

가만히 저 멀리의 세상을 보는데… 그래, 나는 쓸쓸하고 허무했다.

달칵,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이리하를 바라보는 순간, 구름이 지나가는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빨리 오셨네요.”

그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의 금빛 장식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괜찮으시냐고 묻기 위해 미소를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리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라시아.”

나는 어쩐지 그 말이, 일어나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려서 다시 주저앉아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네?”

“당신은 진짜지?”

그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말했는데, 너무 엉뚱한 말이라 나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렇죠. 하고 대강 대답했다. 그는 내 뒤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에 눈이 부시는지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면서 내게 다가왔다.

“가짜같이 존재하고 있길래.”

가짜같이 존재하는 게 무슨 말이세요, 하고 나는 웃으면서 대꾸하고는 내게 손을 뻗으며 허리를 숙인 채 키스하는 그를 가만히 기다렸다. 가벼운 인사처럼 그는 자연스럽게 내게 키스하고는 어딘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당신… 살아있는 사람이기는 하군.”

그는 가볍게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리게 했다. 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너무 예뻐서 놀라셨어요?”

그러자 그가 부끄럽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을- 황금색으로 해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방금 깨달았을 정도로.”

칭찬에 기분 나빠할 여자는 없어서, 나는 웃어넘겨버렸다.

“감사해요. 의미있는 분한테 칭찬을 받으니 좋네요.”

“당신이 지나가던 고양이였어도 내가 데려다가 평생을 귀족처럼 대접하고 살게 할 정도로 예뻤어.”

비유에 웃음이 확, 하고 터져나왔다. 그가 내 웃음에 빙긋이 웃으면서 내 앞에 주저앉더니 다시 한 번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진짜 고양이였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가까이에서 은은하게 미소짓는 붉은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니, 제가 고양이인게 사람인 것보다 더 이리하께 좋을 게 뭐예요?”

그러자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 나 아니면 못 먹고 살잖아. 게다가 어디 갈 필요도 없어서 궁에 있을 거고, 어딜 가나 내가 준 목걸이나 뭐 그런 걸 하고 있을 거니까 온 나라에서도 내 고양이인 걸 알거고. 게다가 작고 따뜻해서 안고 다닐 수도 있지.”

헛웃음이 나서 코웃음을 쳤더니 이리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내 손을 잡아 당겨 잡았다.

“내 젤리.”

진짜로 내가 사람인 것보다 고양이인게 좋단 말이야? 하고 내가 조금 질려서 눈을 세모꼴로 뜨고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내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삐쳤어?”

“조금요.”

나는 냉정하게 말하고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가 냉큼 깍지를 낀데다 힘은 얼마나 센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리하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뽀뽀.”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해달라고 하세요.”

“지나가는 고양이는 그대만큼 안 예쁘잖아.”

나는 잠깐 풀어지려던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이 남자가.

“끼부리시는 거예요, 지금?”

그는 헛! 하는 표정을 억지로 지어보이더니 말했다.

“들켰네.”

나는 잡힌 손을 매만지고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괜히 우울해지는 것은 싫었기에 나는 부러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예뻐서 좋아하시는 거죠?”

내 심술궂은 질문에 그는 내 머리카락이 간지러운지 손으로 쓸어서 넘겨주면서 말했다.

“응. 그거랑 성격도 좋고, 머리도 좋고… 그대라면 다 좋아.”

그의 솔직함에 숨이 탁 막혔다. 나라면 정말 다 좋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 내 입 안에서 나오기 전에 나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에게 내가 방금까지 떠올렸던 미래에 대한 불가능에 대해 말하기 싫었기 때문에.

“잘 지내셨어요, 저 없이?”

그래서 나는 서로를 불편하게 할 질문 대신 쉬운 것을 물었다. 그도, 나도 대답하기 쉬운 것을.

“나는 조금 힘들었는데, 당신은?”

“여행을 했어요. 이리하가… 좋아할 곳을 많이 알아뒀어요. 내일은 기차를 타고 레디데일 수도로 가요.”

“…결국 오늘은 못 자고 간다는 말을 돌려하는 거로군.”

“어쩔 수 없잖아요. 교수님이 그 날도 눈치 채셔서 얼마나 당황했는데요. …그리고 기차도 특등석이라 꼭 타보고 싶어서.”

“당신은 나보다 그깟 기차가 더 좋나.”

그의 얼굴이 진지해서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니,지금 그런 문제가 아닌데.

“아니, 어차피 가기는 가야하고….”

“내 나라에 기차가 있으면 오래 머물 건가?”

그의 열성적인 태도에 나는 어, 어, 하고 말을 더듬었고, 이리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놔줄테니까 좀 자주 와.”

그의 억지가 얼마나 귀엽던지, 실컷 웃자 그가 왜 웃나, 하고 물었다. 나는 자주 올 거라고, 꼭 오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등 뒤의 식은땀을 명확하게 의식하며 물었다.

“…진짜 만드실 건 아니죠?”

내 물음에 이리하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진짜, 만드실 거 아니죠? 이리하? 대답 좀…, 전하?”

============================ 작품 후기 ============================

전 몹시 침착하고 짜게 식은 눈으로 얘네 둘의 연애를 씁니다.(침착아아아아 빨리 완결 났으면 좋겠다..(시무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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