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애써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이렇게 간단하게 도망칠 수 있는데, 이렇게 쉬운 건데. 겨우 도착한 곳은 레디데일 마을 간판이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추운 줄도 모르고 거기에 주저앉아서 그저 울었다. 정말로 좋아하는데, 정말로 좋아하는데 그 사람과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했던 삶을 지금 사랑이라고 버리면, 언젠가는 끝나거나 변할 사랑에 변하지 않은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분명히 후회할 거였다. 그런데도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라시아.”
휘몰아치는 바람이 매섭게 내 얼굴을 때렸다. 눈물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공기에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울고 있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더 크게,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교수님은 쉬, 하고 나를 달래면서 안아주셨고, 몸을 감싸는 따뜻한 훈기와 고동색 마력을 마지막으로, 나는 깊이 잠에 들었다.
*
멍하니 눈을 뜨니 단단한 가슴팍이 보였다… 정신이 제대로 깨어나지 않아서, 멍청하게 흰색 셔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만… 분명히 어제 울다가, 교수님이 마법을 쓰셨고, 그리고… 어깨에 둘러져있는 검은 색의 모피에 고개를 번쩍 들자 교수님이 무겁지도 않으신지 나를 라티를 다루듯이 무릎위에 앉혀두시고 안경을 낀 채 신문을 작게 접어 읽고 계셨다.
"…교수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멍하니 진짜 교수님이 맞나, 싶어서 작게 불렀더니 교수님은 눈만 살짝 돌려 나를 힐끗 바라보시더니 일어났냐,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지나치게 여상스러워서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잘 줄 알았더니.”
“어…아뇨, 다 잤어요. 그… 마법이었나요?”
“음.”
천천히 신문을 넘기시면서 대답하는 교수님에게서 벗어나야하는 지 어째야 하는지 상황파악이 안 되어서 나 답지 않게 버벅거리는 중이었다.
"라티는 아~아무것도 못 봤어!"
라티가 소파 뒤에서 쏙, 하고 튀어나오더니 빙글빙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러워서 얼른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일어났다.
"그게, 음. 라티야. 엄마는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도 그런 게 뭔지 모르는 상태로 더듬거리며 라티에게 말했지만, 라티와 스승님은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아침식사 할 거냐고 묻던데 선생님 먹을거야요? 하는 둥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한테 힘들다고 광고를 하고 다녀라, 아주. 여기저기 틈이 막 보이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정신 차려야지.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을 봤는지 라티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괜찮아요?"
라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말에 괜히 부끄럽고 미안해서 라티를 안아주며 웃었다.
"괜찮아. 조금 추워서 그래. 라티가 꼭 안아주면 싹 나을 걸?"
“정말?”
불안해 하는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응, 하고 말하자 고사리같은 손과 세상 어느 것보다도 따뜻한 몸으로 라티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작은 아이의 긴 남색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살랑이며 간질거렸다.
접어야지. 그 사람은, 나와는 어울리는 사람도… 그리고 그 사람의 옆자리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가볍게 감고 있다가 힘을 주었다. 차가운 속눈썹이 눈 밑을 덮었으리라. 눈 전체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감각을 뻑뻑하게 느끼며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엄마, 오늘 그러면 레어 찾으러 가지 말까요?”
“아냐,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엄마, 흠, 도 라티가 집 찾는 거 보고 싶은걸.”
그 말에 라티는 헤헤, 하면서 나를 꼭 안았다. 라티 덕분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우리를 팔짱을 끼고 쳐다보던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늦게 오는 애는 아침 없다.”
“…교수님이 다 먹을라. 얼른 가자!”
내가 라티를 안은 채로 식탁으로 뛰어가자 라티가 신이 나서 꺅꺅 거렸고, 교수님은 한숨을 쉬면서 우리 뒤를 따라 오셨다.
밥도 잘 먹고, 깨끗하게 씻고 나서 라티의 옷을 단단하게 입혔다. 나도 최대한 겹쳐 입고 나자 교수님이 마법을 걸어주셨고, 오후가 되기 전에 우리는 산을 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직접 찾는 쪽이 의미가 있기도 하고 교수님도 카리페니아 산맥은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산을 타보기로 했다. 다는 아무래도 무리여서 산중턱으로 이동하고 나서 그냥 걸어다니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라티가 내 신발에 마법을 걸어줘서 나는 눈 속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실제로는 걷는 게 아닌 약간 떠서 다니게 되었다. 차가운 바람도 그저 춥구나, 정도로만 느껴질 뿐, 전혀 죽을 것 같다거나 숨을 못 쉬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아서 딱히 괴롭지도 않았고 말이다.
무엇보다 내 체력이나 능력대로 이 산을 등반한다면, 분명히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전에 얼어 죽었을텐데 둘의 도움 덕에 감상할 수 있게 된 겨울에 깊이 잠긴 산의 아름다움은 몹시 특별하게 내게 다가왔다.
"엄마 눈사람! 이게 엄마 눈사람이고, 이거는 내 눈 사람이고, 이거는 선생님 눈사람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음, 엄마랑 안 사귀는 아빠 눈사람!"
볼이 빨개진 채로 헥헥거리면서 뛰어와 내 손을 잡아끄는 라티를 종종 따라가니 옹기종기 서 있는, 애치고는 정말로 훌륭하게 만든 눈사람이 있었다. 귀엽고 기특해서 라티를 마구 칭찬해주었다.
라티가 제일이라느니, 똑똑하다느니 예뻐 죽겠다는 듯이 마구마구 말을 하자 아니나 다를까 스승님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럴 때면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니까. 나는 역시나 후끈 후끈한 라티를 안아 올리면서 물었다.
“라티는 어떤 곳에 집이 생겼으면 좋겠어?”
나름대로 심각한 얼굴을 한 라티가 한참을 으음~ 으음~ 하는 소리만 내더니 말했다.
“호…호수! 호수가 있는 곳이 좋아요! 앞에 호수가 있어서 반짝반짝하고, 하얀 곰이랑 펭귄이랑 잔뜩 잔뜩 있어서 물 마시러 오는 그런 곳!! 토끼도!!”
과연 아이라고나 할까, 난 당연히, 교통망이며 치안이 좋은 그런 거 생각했는데, 하기사 하프이기는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니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데 아이들은 곰이랑 펭귄이랑 토끼가 와서 물마시고 가는 곳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구나, 세속적으로 생각한 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구나. 곰이랑 펭귄이 라티를 많이 좋아해서 자주자주 들렀으면 좋겠다.”
생긋이 웃어주면서 말하자 라티는 얼굴이 발그스레 변하더니 나를 꼬옥 껴안고 엄마, 정말정말 좋아! 라고 말했다. 나도 라티가 정말정말 좋아. 하고 말하니 스승님이 그런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곰이랑 펭귄이랑 토끼는 같은 곳에서 못 살아.”
곰이 펭귄이랑 토끼 다 잡아먹을 걸. 어른의 이야기를 하려는 교수님의 발을 한 발로 꾸욱 밟았다. 글쎄 여기서 꼭 애의 꿈을 짓밟으셔야 쓰겠어요? 애초에 레디데일에 북극곰도, 펭귄도 없는 거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고 있는데! 라는 눈빛으로 교수님을 바라보자 너 까짓 것이 이렇게 눌러봤자 하나도 안 아프다, 라는 얼굴로 라티에게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알고 있는 걸요! 그냥 꿈이잖아요! 선생님 바보, 못 됐어요!”
나는 재빨리 발을 교수님의 발 위에서 떼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티에게 물었다.
“알고 있었어?”
“그럼요, 라티 똑똑한 걸. 하지만 나, 이래 보여도 반쪽은 드래곤이니까 노력하면 흰 곰이랑 펭귄이랑 토끼랑 다 살 수 있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구나, 하고 라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교수님은 바보, 와 못 됐다, 는 말에 꽤 충격을 받으셨는지 약간 의기소침해지신 건지, 삐치신 건지 횡, 하니 앞서 걸어가 버리셨다.
“교수님 삐치셨나봐, 라티야.”
그러자 라티는 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폭, 하고 내쉬더니 아이 참, 하고 내게 내려달라고 했다.
“선생님 너무 잘 삐쳐.”
“음… 하지만 라티도 선생님이 바보라거나, 못 됐다거나 하면 싫잖아?”
“선생님 나한테 맨날 못난이라고 하고 괴롭히는 걸.”
입이 조금 튀어나와서 그렇게 맞는 말을 하니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그것도 그랬다. 하긴 이게 다 자업자득이시니 아이 쪽에서 참으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나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앞서가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삐뚤어지신 부분이 있어서, 못난이- 라고 하는 것에는 사실 귀엽다, 는 의미가 숨어져 있을지도 몰라.”
라티의 코를 톡, 하고 건들이며 말하자 라티가 인상을 부- 하고 찌푸리더니 말했다.
“솔직하지 못한 어른은 미워요.”
아, 그건 좀 날카로운 말인데, 하고 나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엄마도 솔직하지만은 않은 걸.”
“아니요, 애정을 말하거나 좋은 점이 보일 때는 곧이곧대로 말하는 게 좋다고요. 좋은데. 싫은 척 하면서 못된 말을 하면 심한 말이잖아! 하고 싫어지는 걸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라티는 방긋이 웃으면서 그래서 엄마는 좋아요. 라고 말했다. 글쎄 나도 너에게는 좋은 걸 좋다고 말하지만-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라면, 좋은 것을 좋다고, 그렇게 단순하게만은 말할 수가 없는걸.
“하지만 교수님은 얼굴에 빤히 보이시잖아. 라티를 좋아한다고 말야.”
그건 그렇지만… 라티는 머뭇거렸다. 때마침 교수님이 이쪽을 돌아봤다. 그는 안 오고 뭐하니, 하고 말하는 듯 손을 흔들었다. 나는 라티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라티도 똑같이 하는 건 어때? 못됐어요! 하면서 안기거나- 선생님 미워, 하면서 이럴 때는 쪼르르 달려가는 거야. 어때, 공평하지?”
그러자 라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선생님 쪽으로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면서 달려가버렸다. 나는 그런 아이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단순하게- 당신이 좋다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단순한 용기만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작은 용기가 아닌, 그와 함께 있는 미래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였다. 아니- 용기가 아닌, 각오라고나 할까.
한숨을 내쉬면서 둘을 따라가다가 이상하게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잠깐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곧이라도 부서져내릴 것 같은 설경에 숨을 몰아쉬고 있다가 스승님과 라티가 다가오는 걸 보고 다리를 다시 움직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당황해서 그저 둘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많이 힘드냐.”
“조금요. 견딜만해요, 그래도.”
“아냐, 우리 쉬어가요. 빨리 고를 필요 없는 걸.”
라티가 교수님의 품에 안겨서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손이 내 얼굴에 닿아서, 몹시 기분이 좋았다. 아기 손은 어쩜 이렇게 부드러운지 몰라.
“별로 힘들어하지 않더니.”
“…그게 사실은, 라티가 교수님 쪽으로 가고 나서부터 이상하게 발을 움직이는 게 무겁고 힘들어요.”
그 말에 교수님은 갑자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런, 하고 혀를 차셨다.
“혹시 눈이랑 비슷한 색의 마력이 보이니.”
그 말에 놀라서 내 발밑을 자세히 바라보자 흰색의 미미하게 반짝이는 마력들이 보였다.
“…어….”
“그것도 못 알아보고. 수련을 쉰 티가 너무 나는구나.”
“…죄송해요.”
할 말이 없어서 얌전히 반성하는 얼굴을 하고 있자 교수님이 혀를 차시면서 말했다.
“어딜 부수면 되겠니. 3분 주마.”
웬일로 삼 분이나 주시지. 의아했지만 일단 집중해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세상에 삼분을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심지어 눈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낑낑거리면서 한참을 바라봐도 도무지 해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마법이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 삼분이 한참 지나고, 또다른 삼분이 지나서도 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저로서는 무리예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방식인데다가, 엄청나게 꼬아놔서 그 기저에 있는 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네가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제자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로군.”
그거 참 감사한 말이네요…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가만히 서있자 교수님께서 이런,하고 놀란 얼굴을 하셨다.
"…그래, 그러고보니 이 곳이 있었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군. 잘 됐군, 꼬마 둘. 모두 알아둬라. 여기가 그 오랜 옛날, 가장 넓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건했던 세상 단 하나뿐이던 마법의 제국."
교수님은 천천히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 끝에서 황금색을 담은 고동색의 화려한 수식들이 피어올라 우리의 시야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그저 환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풍경 속에서- 거짓말같이 홀로 서 있는 궁이 보였다.
"지금은 저주받은 얼음제국이라 불리는, 모두에게서 사라진 베러티의 궁 앞마당이란다."
그는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얼굴을 보였다. 내게는 다정하기 그지없었던 사람의 얼굴에서 지독하게 잔인하고 차가운 쓸쓸함을 찾는 것은 무섭고도 매혹적인 것이었다.
"내게 걸린 마법과도 비슷한 종류의 것이지."
라티는 내 손을 꼭 잡고는 말했다.
"아마 그것 때문에 멸망 했을 거예요. 순리를 어긴 마법일테니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그저 묵묵히 스승님의 보폭에 맞춰 걸어 나가다가 물었다.
“저주에 걸려있으세요?”
“…그래.”
“어떤…”
“대단한 마법사 몇이 저주를 걸었지. 그들은 그들 머리 속에 있는 모든 지식과 마법적 체계를 내 머릿속에 강제로 쑤셔 넣었단다. 저주로 인해 난 죽지 못하고, 그리고 마법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손을 가지게 됐다.”
그는 몹시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고,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몹시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죄송해요.”
“죄송할 일은 아니다. 난 이미 나이가 많이 먹었고, 그들에게 더 이상 나쁜 감정도 없으니까.”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 말에 그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입을 꾹 다물다가 말했다.
“아마 네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도울 수 있는 인간일지도 모르겠구나.”
어째서냐고 물으려다가 깨달았다.
“제가 마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 …하지만 아직 멀었단다. 네가 좀 더 마력에 예민해지고, 좀 더 훈련을 받아야만 날 도울 수 있어. 그리고 나는… 네가 그 정도로 이 일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제서야 그가 내게 배워보지 않겠냐고 말을 꺼냈을 때, 얼마나 관대하고 나를 배려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절대로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냐고, 생각해보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 자신의 이익이 달려있는 일인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교수님이 존경스럽기도 하면서, 몹시… 몹시 서글프게 느껴졌다.
“노력할게요, 교수님. 제가 언젠가는….”
“말이라도 고맙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그는 몹시 늙고, 지쳐보여서 나는 괜스레 라티를 끌어안았다.
“선생님, 있지…죽고 싶은 거예요…?”
라티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목을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반데라스 교수님은 가만히 그런 아이를 보다가 아니야, 선생님은 오래오래 살거란다, 하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라티는 안심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죽고 싶은 것이다. 지나치게 오랫동안, 그는 죽음만을 바래왔던 것을 나는 그 때서야 알았다.
“다음에… 마법을 보여주세요. 볼 수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자 교수님은 가만히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을 뿐,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내 도움이 그를 죽음에 이끌게 될까, 마음이 복잡해졌다.
============================ 작품 후기 ============================
반데라뚜 교뚜님...더럽.
사랑에 힘입어 다음 편을 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