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겨울왕국 레디데일>
그 날 나는 가장 늦게 알트라에서 나간 오를레아를 배웅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알트라는 한창 여름이라, 햇빛은 강하고 날씨는 무척 더웠다. 그나마 습기가 없어서 견딜 만 했지만, 기온이 무척 높아 일사병을 조심하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아무래도 괜찮은 척 했지만, 실은 혼자 남은 기분에 조금 씁쓸했다. 깨끗한 하얀 리넨천에 파란색 무늬가 들어간 드레스를 입은 채 더운 날씨 때문에 땋아올린 머리를 매만지면서 저택으로 약간 울적한 상태에서 돌아왔다. 짧은 흰색 장갑을 벗으며 방으로 올라가려하는데, 약간 머뭇거리며 제프리가 내게 말했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응? 손님이요?”
누구지, 이런 시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지인들은 모두 각자의 일로 한창 바쁠 때였고, 친구들은 막 배웅을 했다. 게다가 제프리의 말도 이상했다. 그냥 손님?
"이름은 안 밝히시던가요? 용무는?"
"이름은 밝히지 않으시고 용무도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차림이기는 한데 귀족가의 자제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의외였다. 용무를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알트라의 학생들이 사는 저택에 평민은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물론 영지의 저택의 경우는 용기가 있다면 자신들의 고충을 말하러 찾아오는 경우가 있지만, 알트라는 그럴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제프리는 여자 두 명이서 사는 집이라며 보안을 누구보다 철저히 하는 편에 속했다. 그 답지 않은 행동에 이상하다 생각하는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그는 입을 열었다.
"아가씨가 자신을 알아볼 거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평소라면 그냥 돌려 보냈을텐데, 저번에 아가씨가 덱센타의 제의를 받은 것이 걸려서요."
생각도 안 했던 걸 짚고 넘어가는 제프리의 말에 좀 놀랐다. 그렇군. 그 쪽에서 제의를 하러 온 걸 수도 있겠네. 하지만 보통 이런 제의를 하러 올 경우 상당히 여유롭고 잘나 보이는 사람을 보내기 마련인데… 평민 차림이라니, 이상하네.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다시 장갑을 꼈다. 또각 또각, 하는 내 구두소리가 들리고, 나는 하녀가 열어주는 응접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응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마주친 눈은 언뜻 금색으로 보이는, 몹시 예쁜 갈색이었다. 나는 이런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오로지 한 명밖에 몰랐다… 깜짝 놀라서, 원피스를 입고 있는 꼬마 여자 아이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라티?”
그러자 아이가 환하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와 내게 안기면서 외쳤다.
"엄마!!!"
제프리가 내게 안긴 여자아이를 경악한 얼굴로 보고 섰다. 나는 재빨리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탁자에 내려놓으면서 제프리는 엄청나게 질문이 많은 얼굴을 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무시하며 내게 찰싹 달라붙어있는 여자애… 그러니까 리콜라티와 오페의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지금쯤이면 울고 징징댈 나이지, 걸어다니면서 여자아이 티를 내고 다닐 때는 아니었다.
그녀는 적어도 10살은 넘어보였다. 사실 전혀 라티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녀가 라티라는 확신이 있었다.
리콜라티를 닮은 눈이며, 고운 남색 머리카락은 오페를 닮았으니 말이다…. 나가려고 하지 않는 제프리에게 눈치를 몇 번 줬지만, 그 또한 모른 척 하고만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제프리, 우리끼리 잠깐 이야기 좀 나누게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요?"
이렇게 꼭 집어 말하니 제프리는 어쩔 수 없어서 몹시 불안한 얼굴로 응접실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내 허리쪽에 얼굴을 파묻고 생글 생글, 그러나 어쩐지 불안해보이는 꼬마 숙녀에게 말했다.
"안녕, 라티."
라티는 생긋, 웃으면서 나를 다시 꼭 껴안았다. 허… 허리, 신경 쓰여.
"안녕하세요, 엄마."
"그 호칭 말인데…"
나는 어떻게 말하면,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없었던 아이가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쓰는 엄마라는 호칭을 철회시킬 수 있을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그냥 웃어버렸다. 길거리의 새끼 짐승이 그녀보다 더 불안해보일까, 나는 어쩔 수 없이 라티를 그냥 껴안고만 말았다.
"잘 지냈니?"
그러자 라티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녀의 남색 빛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내 품에서 엉크러졌다.
"목 마르지 않아?"
라티는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계속 품에 안겨있었다. 나는 그녀를 떼놓으려는 시도가 부질없음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금색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뭔가 같이 할까? 하고 싶었던 것 있니?"
그러자 라티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지금은 없어요, 하고 아이다운 장미 빛의 뺨을 붉히면서 조곤조곤 대답했다. 그제서야 좀 안심한듯,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서 나는 그래, 그러면 이렇게 하자. 하고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소설책을 하나 집어서 소파 끝에 앉았다.
"이리 와, 무릎 베개 해줄게."
그러자 라티는 환하게 웃더니 거의 달려오다시피해서 내 무릎을 베더니 한참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책 너머로 미소를 지으면서 라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한참 나를 꿈꾸는 듯이 바라보더니 웅얼거리며 뭔가 말하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읽히지도 않는 책을 내려놓고, 나는 남색의 머리카락을 조금 쓰다듬었다. 어쩌면 좋지. 오페에게 연락을 해야겠지만, 오페를 피해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는데… 굳이 날 찾아온 아이를 억지로 보내야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오페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이 이 아이인 것을 알아서 말을 안 하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현명하게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깰까봐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제프리가 들어와서 나와 라티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를 짓더니 곧 나를 째려봤다.
어떻게 이렇게 다 큰 애가 있을 수 있냐는 눈에 나는 눈을 부라리면서 그를 바라봤다. 제프리는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이 말했다.
"홀튼 교수님이라는 분께서 오셨습니다."
순간 저절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완벽한 상대였다! 오페와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면서, 적당한 라티의 보호자였기 때문이다. 혹시 짐작하고 오신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얼른 속삭였다.
“들어오시라고 해줘요.”
제프리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나갔고, 얼마 뒤 반데라스 교수님이 방안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들어왔다.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라티가 내 다리를 베고 너무 편안한 표정으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교수님도 그다지 인사를 기대하시지는 않는지, 찌푸린 얼굴로 인사는 됐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는 왼손을 들더니 작게 손짓을 했다. 나는 그의 손에서 옅은 금색이 섞인 고동색의 문자들이 피어올라, 라티를 감싸 안는 것을 보았다.
"이 놈의 꼬맹이가."
전에도 한 번 이 문자 패턴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무음마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딱 맞게 오셨네요.”
교수님은 내 무릎에서 도롱도롱 자고 있는 라티를 빤히 내려다보시더니 입을 열었다.
"요 녀석이 집을 나간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는군. 오페가 미치기 일보 직전이야."
“저런. 저한테도 오늘 와서 전혀 몰랐어요. 음… 지금 당장 가야할까요? 절더러 엄마라고 하던데.”
그 말에 교수님은 약간 놀란 얼굴로 라티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씀하셨다.
“일단 오페에게 말은 해둬야할 것 같구나. …그런데 얘는 정말로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널 어떻게 알고?"
“저도 모르겠어요. 우선 불안하고 피곤해보이길래 일단 재우긴 했는데… 사정은 잘 모르지만 리콜라티 교수님의 딸이니까…."
“…고맙다. 일단 너는 오페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겠지. 알았다, 일단은 내가 오페랑 다른 용한테도 말해두마."
순간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스승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그 용, 르웬인가요?"
"…어떻게 아느냐, 제자여."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는 게 생각보다 귀여우셔서 좀 웃겼다. 말투는 할아버지인데 얼굴은 젊으시고, 아무튼 특이하시다니까.
"본인이 알려주던걸요. 지금은 많이 같이 다니지는 않지만, 2학년 때는 무척 친한 친구였어요. 지금도 로드리고에서 만나면 서로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건 전혀 드래곤으로서의 정체성을 밝힌 이유가 되지 않는데. 그런 거면 '시드'의 친한 친구들은 모두 그녀석이 드래곤인 걸 알고 있겠군."
"뭐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무튼, 제가 라티는 데리고 있을게요. …일단은 라티가 뭔가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물을 예정이니까, 오페한테도 힘들겠지만 좀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달라고 해주세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라티의 앞 머리카락을 쓸어넘기자 스승님은 가만히 우리 둘을 보더니 말했다.
"귀엽구나, 너희 둘. 옹기종기."
내가 뭔가 입을 열기도 전에, 스승님은 그럼 난 이만 가마. 하고 사라져버리셨다. 나는 어느새 사라져가는 고동색 마력을 손으로 휙, 하고 만지려고 하다가 라티가 움직이는 바람에 가만히 있었다.
남색의 속눈썹 사이로 환한 금색 눈이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잘 잤니? 하고 라티에게 말을 걸었다. 라티의 눈이 몇번이고 깜빡이더니, 수줍은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오래 자지는 않았어. 배는 고프지 않고?"
라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엄마는요?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뭐라고 말하면 이 아이가 진심으로 배가 고픈 건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라티가 고프면 나도 고파."
그러자 라티는 놀란 얼굴을 하더니 정말요? 하고 물었다. 웃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라티는 일어나서 내 앞에 서더니 말했다.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
나는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라티는 자기의 입맛에 맞는 것이 나오면 무척 좋아했다.
제프리를 불러 아이의 방을 대충이나마 꾸며달라고 하고, 하녀에게는 저녁을 일찍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라티는 하녀와 집사, 라는 개념의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지, 굉장히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정원에서 간단한 간식을 하녀들이 내왔는데, 라티는 어쩐지 무척 수줍어하면서 조심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에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라티."
"네?"
"내가 엄마인 걸 어떻게 알았니?"
나는 그냥 그녀가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물었다. 라티는 쿠키를 꿀꺽 삼키더니,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엄마는 내가 라티인 걸 어떻게 알아봤어요?"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잠깐 머뭇거렸지만 곧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의외로 자신들과 관련된 거짓말은 쉽게 알아챈다. 특히 심각한 것일수록 말이다.
"그냥, 네가 라티인 것 같았어. 네 금색 눈이나, 아빠를 닮은 머리카락이라든지…"
그리고 어렴풋하게 리콜라티 교수님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라티를 바라보면서 대답하자, 라티는 조금 놀란 눈으로 나를 동그랗게 쳐다보다가 갑자기 웃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웃음소리가 컸다고 생각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조곤 조곤 대답을 시작했다.
"저, 엄마는 전형적인 북방계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빠가. 엄청 예쁘고, 친절했다고… 그리고 뭣보다, 나를 단번에 알아보고 라티, 라고 불러줄 거라고 했거든요. 상냥하고, 또 나를 꼭 안아주고, 아빠가 하는 듯이 내 머리카락도 쓸어 넘겨주고… 실은 저기, 엄마가 남겨둔 기록에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나중이 되면 내가 꼭 찾아가야할 사람이라고 아빠가 전에 말한 적도 있었고… 음, 또… 그래서 찾아왔는데, 엄마가 엄마인거예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오페는 왜 리콜라티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안 해준 거지. 게다가 내 이름은 왜 적어둔 건지… 어떻게, 어떤 말을 꺼내야할 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조용히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라티의 잔뜩 기대하는 눈에 씁쓸한 미소를 겨우 숨기고 웃어줬다. 라티의 손에 쿠키를 쥐어주면서 말했다.
"고마워, 찾아줘서."
라티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고는 행복하게 쿠키를 먹기 시작했다. 입에 맞으니 다행이다. 애기 입맛에 맞춰서 잘 만들었나 보네. 라티는 쿠키를 암냠암냠, 하면서 뽀시락대며 먹다가 문득 고개를 번쩍, 들더니 어쩐지 급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엄마, 우리 여행가요!"
"…여행?"
"네! 음. 거기, 아무데나 좋아요. 우리 같이 가요."
어쩐지 초조해보이는 얼굴에 순간 깨달았다. 아하, 누군가 자길 찾고 있다는 걸 숨기려고 하는 구나. 그렇지만 스승님은 이미 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계시단다. 어쩐지 웃겼다. 필사적으로 도망다니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이래봤자 어른들 손바닥 안이라는 점이 어쩐지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다.
"그럴까, 그러면?"
여행은 사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일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일할 필요도 굳이 없으니 의외로 괜찮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한 이주 정도 있다가 오를레아네로 가볼까.
"정말요?"
내가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에 사실 좀 놀랐다. 설마 내가 안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오페라면 딸바보가 되어서 해달라는 건 다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고 어디로 가면 좋을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가고 싶은 곳, 있니? 하고 묻자 라티는 골똘히 생각을 하는지 턱에 손을 모아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응!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엄마, 엄마 옷 챙겨야해요!"
"응? 지금? 저녁 먹고 가면 안 돼?"
"먼저 챙기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알았어, 하고 하녀를 불렀다.
"질, 애니한테 여행가방 좀 싸달라고 해주세요."
"갑자기 여행가방이라니… 여행가시게요?"
고개를 끄덕이자 질이 어디로 여행을 가실 거냐고 물었다. 하기사 나라에 맞게 짐을 싸기는 해야 하니까.
"라티, 어디에 가고 싶은데?"
"레디데일이요!"
레디데일이라면… 베노암 북쪽의 소왕국 아닌가? 한 계절 빼고는 일년내내 눈이 내리고, 호수는 얼어있는 곳?
"그럼 겨울 옷을 준비해야겠네."
“레디데일에 맞춰서 짐을 싸겠습니다. 집사님께도 알릴게요.”
“응, 부탁해요.”
질은 내게 절을 하고 얼른 물러났다. 그나저나 짐을 싼다고 해도 알트라는 레디데일에 비하면 추운 게 아니라서 사실 제대로 된 겨울옷이 없었다. 그럼 쇼핑을 해야 하는군.
"라티는 겨울 옷 있니?"
"…응? 필요 없는데…"
"아, 그러고보니 라티는 체온 조절이 되는 구나. 부럽다."
"엄마도 해줄게요, 나 마법 잘 하는 걸?"
"어머, 그거 든든한데. 그래도 우리만 추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테니까, 가서 쇼핑을 하더라도 일단은 겨울 옷 하나는 사야겠다."
하기사 지금까지 굳이 계절별 옷이 필요한 곳에서 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래도 여자아이니까,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게 많지 않을까…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끙, 여러 가지로 복잡하구나.
“라티는 쇼핑 좋아하니?”
"쇼핑?"
금색 눈동자가 갸웃, 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것저것 사는 것 말이야. 예쁜 옷이라든지, 신발이라든지."
"해본 적 없어서 모르겠어요. 재미있어요? 엄마는 좋아해요?"
"글쎄, 라티가 좋아하면 재미있는 게 되겠지. 좋아, 그러면 쇼핑을 해보자! 라티 주변에는 쇼핑을 좋아하는 여자가 없으니까, 나랑 해보는 것도 좋겠지."
생긋, 하고 웃었더니 라티는 엄마 너무 좋아요, 하는 눈으로 울망울망 나를 쳐다봐서 조금 쑥쓰러웠다. 정말 귀엽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좋아하지만, 라티처럼 순진하고 열정적으로 나를 좋아해주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그래, 마치 동물처럼 나를 좋아해주는 느낌. 뿌듯한 마음을 겨우 누르고, 같이 가자. 하고 라티를 영차, 하고 안아 올렸다. 근력 운동을 열심히 하길 잘했어.
============================ 작품 후기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