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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87화 (87/113)

87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내가 그를 걷어차려고 하자 그가 가볍게 피하면서 말했다.

“자, 이제 내가 그대에게 빚을 하나 졌지.”

“무슨 빚이요?”

이리하는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에게 걷어차이지 않았잖나, 방금.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언어학적으로 말고.”

“…그래서요?”

“그래서 내 생각에는, 그대가 여전히 날 걷어차고 싶을 거고.”

팔짱을 끼고 그를 뚱하게 바라보니 이리하는 내게 손을 뻗어 내 턱을 잡아 당기더니 말했다.

“찾아오길 기대하고 있겠네.”

“이리하를 한 번 걷어차려고 지금 제가 찾아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음, 바로 그거지. …난 그대가 좋고, 그대도 내가 좋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그렇게까지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지게.”

“그게 무슨… 전 저 스스로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예요.”

“아니, 그대는 미래의 그대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지. 현재에 그대는 그 결정에 몹시, 아주 격하게 불만스러울거야.”

그는 능청스러운 얼굴로 내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 키스하고는 말했다.

“그러나저러나, 내 혀가 물어뜯긴 거에 대해서 약이라도 보내주게. 그 정도의 양심은 있겠지.”

“다리를 걷어 차러는 가드릴게요. 다리가 걷어차이면 혀가 아픈 건 눈치도 못 채실 거예요.”

내가 비아냥거리자 그가 시원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내 뒷머리를 잡더니 내 입술을 살짝 물더니 말했다.

“이 정도로 찾아와줘서 고맙군.”

“…세게 찰 거예요.”

그 말에 그가 내게서 물러나더니 웃었다. 기대하지,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그의 수하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

도대체 방금 내가 무슨 어리석은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그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떠났고, 나는 몹시 복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쉬었다.

터덜터덜 오를레아가 있는 곳으로 갔더니 오를레아와 아이들은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사탄이랑 키스를 했거든.”

그러자 앨런과 민디, 오를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더니 오를레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음…그래서 뭘 얻었는데?”

“뭐?”

내가 질문에 귀를 의심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자 오를레아가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사탄이랑 키스를 했으면 뭔가 얻은 게 있을 거 아냐? 보통 계약은 그런 거니까?”

그러자 민디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 쪽으로 다가와 앉더니 말했다.

“그건 모르지,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무슨 질문?”

앨런이 인상을 찌푸리며 민디를 바라보자 그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짓궂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가 잘 하든?”

그러자 오를레아가 질색하는 얼굴로 민디! 하고 외쳤다. 나는 오를레아에게 고마워, 하고 말했고 앨런이 눈을 크게 뜨면서 내 쪽으로 다가와 민디랑 똑같은 자세로 물었다.

“아니라는 말이 안 나오는데, 그래서 그 사탄이 누구야?”

“그래! 그리고 잘 하든?”

“뭘 자꾸 이상한 걸 물어!”

내가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둘이 동시에 내 양 팔을 잡아당겨 자리에 앉히면서 물었다.

“그래서 사탄이랑 키스를 해서 뭘 얻어낸거야, 아니면 사탄한테 뭘 줘서 키스를 얻어낸거야?”

“아, 좋은 지적이네.”

“뭐가 좋은 지적이야. …뭘 하든간에 결과는 똑같잖아, 파멸이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지. 뭘 얻어내려고 키스를 한 거면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사탄한테 뭘 줘서 키스를 얻어낸거라면, 무슨 그렇게 나쁜 일이 생기겠어?”

민디가 급하게 덧붙였다.

“키스가 별로였다면 그건 좀 나쁘겠다만.”

나는 아이들의 대화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머리를 감싸쥐고는 결국 속삭이듯이 말했다.

“너희한테 은유란 건 진짜 어려운 거였나보다.”

“그래서 결국 네가 누구랑 키스를 한 건데?”

“기겁하지 마, 알았지?”

“사탄이랑 키스한 것도 안 놀랐는데, 당연하지.”

오를레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 말에 나는 한숨을 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리하.”

“이리하가 도대체 누구……헉!”

민디가 숨을 멈추고 기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크게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고, 민디는 휘파람을 휙, 하고 불었다.

“내 비밀도 당장 하나 말 안 하면 큰일 날 정도겠네.”

“왜? 누구길래 그래?”

오를레아가 답답한 얼굴로 민디를 재촉하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앨런은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고만 있었고 말이다. 어쩔 수 없어서 두 손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결국말 하고 말았다.

“오르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민디가 오를레아와 앨런에게 말했다.

“만약에 라시아가 샤하레가 되면 우리 뭐 해달라고 할까?”

앨런이 그녀를 째려보더니 말했다.

“지금 그걸 걱정할 때야? 얘가 샤하레가 되는지가 더 문제지.”

오를레아가 앨런과 민디를 밀쳐내면서 내 옆에 앉더니 말했다.

“너 진짜 그 사람 좋아하는구나?”

할 말이 없어서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그 사람이랑 뭘 하기에는… 일단 미래가 안 보이잖아.”

침묵이 방안을 채웠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사탄이랑 키스를 했다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탄이랑.”

오를레아가 내 등을 조심스레 쓸어주더니 내게 물었다.

“그, 사탄이… 널 좋아하기는 해?”

“샤하레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으니까, 아마도?”

내가 대충 대답하자 오를레아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음… 그 분이랑 연애는 못 하는 거야? 미래가 안 보여서?”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미래는 찾거나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내가 보기에, 설사 네가 이 분과 잘 못된다고 해도 네가 잃을 게 없는데.”

“왜 잃을 게 없어? 난 그냥… 내 시간을 낭비하는 거잖아.”

“그래서?”

“…뭐라고?”

내 귀를 의심하면서 오를레아를 보자 오를레아가 약간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드레스가 엉망이 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네가 네 시간을 좀 낭비해서 달라지는 게 있어? 어차피 넌 이제 후계자도 아니고, 네 힘으로 살아갈 준비도 하고 있고. 내 말은, 네가 연애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온 세상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는 거야. 넌 당장 결혼하고 싶어?”

“…그건 아니지만….”

“끝은 물론 이상하겠지. 그야 상대가 상대니까, 넌 상처 받을 수도 있을 거고, 어쩌면 끝나고 행복하지도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잖아. 너랑 결혼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널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고.”

앨런이 틀린 말은 아니네, 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민디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말했다.

“사실 난 그리 좋은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상대가 너잖아. 자유연애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여성으로서, 네가 좋으면 사귈 수도 있다고 생각해. 재미 좀 본다고 큰 일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재미 좀 본다고….”

험한 단어 선택에 앨런과 오를레아, 나까지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그 분을 상대로 재미 좀 보는 게 가능할 진 모르겠다만.”

“뭐 어때. 너도 성인이고, 저 쪽도 성인이고. 그 사람은 남자고, 넌 여자고… 연애 좀 한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니고.”

민디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으면서 오를레아의 대기실에 준비된 샴페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를레아가 질린 얼굴로 그녀를 보다가 약간 어지러운 얼굴을 하더니 눈을 꽉 감고는 말했다.

“평소라면 저 말 하나도 듣지 말라고 했겠지만… 뭐 어때. 난 빼도 박도 못 하고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야 하는 운명인데. 넌 그냥 해버려.”

“너희 전부 너무 갑작스럽게 내 연애에 호의적이다… 그것도 이상할 정도로.”

앨런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오를레아는 결혼할 사람이 정해져 있어서 약혼 우울증이고, 민디는… 민디는 원래 저런 사람이고, 나는 그냥… 너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좋겠어. 좋아하는 사람이랑 몇 개월 지낸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니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생각해 봐, 하고 한 마디를 더 해줬다.

“만약에 네가 심하게 상처를 받는다고 해도, 그런다해도 죽지는 않을 거야. 나랑 민디, 앨런도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고. …그리고 다니엘도.”

그거 알지? 그렇게 조심스럽게 되묻는 그녀에게 두 손을 뻗자 그녀가 나를 껴안아주었다. 민디가 나도, 나도! 하면서 오를레아가 떨어지고 나자 바로 나를 껴안았고, 앨런이 으, 하는 얼굴을 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게 끌려와 안겼다.

“너희가 최고야.”

“당연하지. 그나저나 오를레아 이제 나가야겠다. 다시 한 번 정리해달라고 하고.”

괜히 부르지 말라고 하고 나는 오를레아를 제대로 한 번 다듬어준 이후에, 그녀의 약혼자가 보내준 많은 꽃다발 중에서 제비꽃을 하나 꺾어 예쁘게 그녀의 팔에 묶어주었다.

“행운을 빌어.”

“1등해!”

“잘 하고 와.”

그녀가 고맙다고 하고 미인대회의 출전을 위해 나섰다. 그녀가 먼저 나서고, 나와 앨런, 민디가 잠시 어쩐지 차오르는 감동 때문에 대기실에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휴, 하고 한숨을 쉬자 민디가 갑자기 물었다.

"그런데 나 계속 네 그… 예비 남자친구인지 뭔지를 사탄이라고 불러도 돼?"

"…안 돼."

그러자 민디는 혀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뭐 어때, 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듣는다고 해도 내가 너더러 재미 좀 보라고 한 걸 들으면 용서해줄텐데."

"그래도 안 돼."

"그러면 이제 뭐라고 부르는데? 네 남자친구 얘기를 할 때 오르안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누굴 말하는 지 다들 눈치 챌 거라고."

"사탄이랑 사귄다고 하는 건 안 이상하고?"

앨런이 우리 둘의 말싸움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 라고 해."

"그게 뭐야, 재미 없잖아."

"난 재밌는데."

못 말려 하여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둘을 끌고 밖으로 나와 간식을 몇 가지 사서 우아하게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오를레아가 웃기는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즐겁게 간식을 먹으며 참관했고, 그녀는 우리의 덜 열렬한 응원과 몹시 열렬한 약혼자의 응원으로 올해 최고의 미인이 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헤헤 오늘은 좀 짧아요! 이제 다음 편은! 방학입니다!!! 어예!

ㅇㅅ<

많은 분들이 불안에 떠시길래.. 걱정마세요 전 피폐는 못 써요...

이번 편으로 많이 안심하실듯. 제가 완급조절의 제왕이라서여!(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ㅅ<

다음편으로 뵙겠습니다 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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