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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아-86화 (86/113)

86화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다.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거고, 난 사실 그와 밥을 함께 먹은 적도 있었다.

식사 한 번이 뭐 별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는데도 자꾸만 쓸데없는 기대가 쌓여갔다. 언제 만나게 될까,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뭐 그런 하잘 것 없고, 그러면서도 당연한 기대들이. 이리하와 뭔가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끝이 보이는 관계니까. 더 이상 그런 관계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끝이 보이는 것은, 록진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러니 말하지 않겠다고 나는 결심했다. 시작해봤자 좋을 것이 없는 관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괜히 만나기로 한 날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니엘은 미덥지 않아하며 시간을 빼주었고, 그 날은 마침 오를레아가 미인대회…에 참여하는 날이기도 해서 어차피 쉬는 거 그 날 만나자고 해서 잘됐다는 생각도 좀 했다.

“그래서, 우리가 갈 만한 곳이 있나?”

“…어 진짜로 놀러 가시게요?”

“그럼 가짜로 식사 한 끼 하자고 했겠나. 내가 노는 데 시간을 내는 게 얼마나 힘든 사람인데.”

“그건 알지만.”

“알면 빨리 안내하게. 그대가 좋아하는 걸 먹어주도록 하지, 난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거 무척이나 감사한 말이네요…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면서 평소에 좋아하던 레스토랑으로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는데,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물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저한테 식사 권유를 하신 거 아닌가요? 정치적인 문제라거나, 아니면….”

내 말에 이리하가 정력적으로 접시를 비우더니 물잔에 입을 대면서 말했다.

“전혀.”

의아한 얼굴을 하고 내 쪽의 약간 남은 접시를 물리라고 식기로 표시하자 웨이터가 다가와서 깨끗하게 치워주더니 디저트를 물었다.

“홍차면 좋아요.”

“나도 홍차로.”

적당히 추천을 해주기에 그걸로 해달라고 하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그러면 정말 그냥 밥 한끼 먹자고 부르신 거예요?”

“하루 휴가를 그대가 그렇게 싫어할 것 같지 않았거든.”

“맞는 말이지만.”

자상한 배려에 감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냅킨으로 손끝을 매만져 닦았다.

“기타의 하실 이야기가 있을 줄 알았어요. 좀 더… 중요한 것들이요.”

“휴식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그대는. 심지어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은 필수적인 건데 말이네.”

웨이터는 홍차를 금세 준비해서 내어왔고, 나는 우유와 설탕을 내 차에 적당히 넣고는 그가 나와의 시간을 즐겁게 여긴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만끽했다.

“그래서, 이쯤이면 그대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물어볼 때인 것 같은데…. 참고로 말하면 난 잘 못 지냈어. 그대와 그렇게 즐거운 이별을 하고 나니 밤에 잠이 잘 안 오더군.”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우유 넣으실래요?”

내 말에 그가 시큰둥한 얼굴로 됐어, 하고는 설탕만 하나 넣더니 말했다.

“날 좋아하는 여자치고는 재미없는 반응이야.”

“죄송해요, 얼굴이 안 빨개지고 밤에 잠도 잘 자서.”

배실배실 웃으면서 대답하자 이리하가 턱, 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반항하는 10살짜리 꼬마처럼 불퉁하게 대답했다.

“그래, 노력하란 말일세.”

노력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하고 나는 속으로 웅얼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냥 웃고 말았다.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셨죠? 음… 그러고보니 할 말이 있긴 하네요. 일단 옮길까요? 디저트를 사주신다고 하셨으니까.”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 나가지. …디저트라, 어떤 게 좋지.”

“오르 제국의 디저트 가게도 있어요. 원 하신다면 그리 가도 좋고요.”

“장난 하나? 내가 오르 제국에서 매일 먹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색하고 다른 거! 를 외치는 그의 말에 웃겨서 깔깔 웃어버렸다. 뭐가 웃기나, 하면서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을 잡더니 영수증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잡힌 손을 꼼지락대다가 그가 결제를 할 것 같기에 재빨리 그의 손을 꽉 쥐어 못 움직이게 만든 후 수표를 끊고 내밀었다.

“그대가 왜 돈을 내나?”

“글쎄요, 제가 오른손잡이고 이리하는 왼손잡이라서요?”

내가 잡힌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웃자 이리하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더니 이 복수는 디저트 가게에서 하지, 라고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럼요. 그것도 제가 이길걸요. 이리하께서 저한테 이기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어야지요.”

“…맞는 말이지만 불공평한데. 난 그대한테 잘 보일 필요가 있다고.”

“글쎄요, 그걸 제가 허용해드릴지는.”

그가 퍽 유쾌한 얼굴로 내 손을 꽉 잡았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 아닌가.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그걸로 끝이니까.

“그대가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게 보여.”

천천히 생각나는 가게로 걸어가는 와중에, 그가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다.

“표정이 굳었군.”

“…다른 생각을 잠깐 했어요.”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짓자 그가 말했다,

“내가 손을 쥐고 있는데 긴장감이라고는 없군.”

“항상 노력하는 편이죠. 음, 멀리 가지는 말고, 여기 들어가요. 퓨전 디저트로 유명한 곳이에요. 알트라면 퓨전이죠.”

이리하를 끌고 가게에 들어와서 개인적인 공간을 요구하니 그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실로 안내했다. 이리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제일 유명한 걸로 들고 오라고 하고 바로 물었다.

“그래서, 할 말이 있다고?”

“네. 물론 알고 계실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제 입으로 듣는 거랑은 다를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희의 우정, 으로… 음.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아셔야할 것 같으니까.”

“우정이라.”

그가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이 말했다.

“그대와 내 사이에 오가는 게 지금 당신에게는 우정 같은가?”

“그게 지금 포인트가 아니잖아요, 이리하.”

“…글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을 말을 고르다가 결국 한숨을 짧게 내쉬고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당겨서 앉았다.

“이리하도, 저도 서로를 좋아하죠…”

“우정으로?”

그가 한껏 비꼬았다. 나는 갑갑한 마음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물론 그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요.”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어떤 방식이 있지?”

그의 신랄한 말투에 나는 그를 째려보듯이 노려보다가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고 결국 말했다.

“키스할 수 있는 방식으로요?”

“…흠, 그 정도로 만족하지.”

나는 얄미운 인간! 하는 표정으로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지만 이리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나를 똑같이 노려보았다.

“이제 원래 하려던 말을 해도 될까요?”

그 말에 이리하는 어깨를 으쓱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 더 이상 샤펜의 후계자가 아니에요. …제 이복언니가 후계자지요.”

“그거 나한테는 나쁘지 않은 소식인데.”

“끝까지 들어보시면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내가 쏘아붙이자 그가 두 손을 살짝 들어 항복 포즈를 취하더니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저는 그리고 샤펜공께서 허락해주신대로, 더 이상 샤펜가로서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 말은… 제게 여러 가지 길이 열렸다는 걸 의미하지요. 그래서 저는 많은 고민을 했어요. 앞으로 뭘 할지, 어떻게 살지….”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웨이트리스가 몹시 아름다운 디저트를 들고 테이블에 놓은 후에 적당한 소개를 해주고는 나갔다. 나도 그도 포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아주 천천히,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저한테 좀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걸 교수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제가 언제나 원하던 자유로운 삶을 유지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부담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 말에 이리하가 차분하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렇군.”

“…네.”

잠깐의 무거운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결국 속삭이듯이 말하고 말았다.

“좋아해요, 이리하. …하지만, 그게 다예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떤 관계에도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거로군.”

“네.”

나는 씁쓸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말했다.

“제게는 그래요.”

“그대를 비난하고 싶어.”

“그러세요, 그걸로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내 말에 이리하는 허탈하고, 그리고 괴로운 얼굴로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편해지지 않아.”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리하와 있는 시간은 언제나 제게는… 과분했어요.”

그 말에 그가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 난 그대에게 받은 것만을 해줬어.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저트에 우리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그의 뺨에, 몹시 천천히 키스를 한 후에 속삭였다.

“즐거운 축제 보내세요.”

그가 그대도, 하고 힘 없이 말했다. 나는 그를 등지고 가게에서 나와, 덧없이 나려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한숨을 쉬었다.

별 일 아니었다. 그저, 잠깐의 설렘일 뿐이었으니까… 금세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한참을 걸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금방 이겨낼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혼자 있으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마음 정리 같아서 한참을 걷다가 결국 오를레아가 미인대회에 나가는 걸 도우러 갔다.

다른 일이라도 도우면 내 이 비정상적인 상태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 대기실로 간 건데 의외의 일이 내 정신을 사로잡았다. …내 친구가 예쁜 건 알고 있었고, 어쩌면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가능성도 보고 있기는 했는데…

“그래서 대공께서 이 사람들을 전부 보내셨다고?”

나는 오를레아의 대기실에 가득찬 꽃다발과 온갖 향수, 화장품, 드레스들에 질려서 물었다. 오를레아가 민망해 미칠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민디는 여기 환기 좀 시키자며 창문을 벌컥 열면서 투덜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대회라고 생각하시는 거야? 그냥 학교에서 하는 작은 행사같은 거 아니었어?”

“사람들이 바보같은 일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잖아.”

앨런의 말에 오를레아가 머리를 하면서 그녀를 째려보더니 말했다.

“너 지금 내 약혼자 바보 취급 하는 거야?”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앨런이 잠깐 눈을 굴리더니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변명을 못 찾겠네. 응. 난 사실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눈에만 제일 예쁘면 됐지.”

“그건 별로 맞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오를레아가 여기서 지면 무척 자존심이 상할 걸? 그걸 보호해주고 싶어서 이런… 음, 과한 일을 하시는 거라고.”

나는 문까지 살짝 열고 서서 바깥 공기에 매달리면서 말했다. 오를레아가 고마워, 하고 말하면서 약간 자신도 질린다는 표정을 했다.

“어쩌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기는 수밖에.”

“맞아, 나 오늘 걔 봤다? 그… 칸나.”

민디가 앨런을 툭 치면서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앨런이 윽,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욕설을 했다.

“왜? 칸나가 누군데?”

“아, 그 여자. …너도 그러고보니 조심하기는 해야겠다.”

앨런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충고했다. 아니, 누군데 이렇게 다짜고짜 조심하라고 하나 싶어서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채자 앨런이 소름이 끼치는지 몸을 살짝 떨더니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소름끼치는 여자 중 한 명인데, 정령사야.”

“아 정말? 나 정령사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한가한 말이 나올 사람이 아니야. 그… 그 여자가 다니엘을 좋아하는데.”

“그게 뭐? 오빠가 인기있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다니엘 인기는 2년 전만해도 암암리에 있었던 거야, 절대로 지금처럼 막, 온 동네 방네 인기있는 스타일은 아니었어.”

“응? 정말? 딱히 좋아하기 부끄러운 스타일도 아닌데, 왜…?”

“그게 칸나때문이야. 그러니까,…”

뭔가 말을 더 이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하고 하녀가 묻자 부회장을 찾아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어, 잠시만.”

“다녀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사람 몇 명이 다급한 얼굴로 내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셔야 할 것 같아서… 2차 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2차 습격? 축제가 시작된 이후 습격이란 걸 받은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명 뿐이었다.

이리하.

“어디… 현재 어디 계시나요. 아니, 알겠어요. 난… 잠깐….”

뭐라고 말을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신없이 사람이 없는 곳으로 빠져나와 구두를 발동시켰다. 내가 간다고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하의 옆.”

그럼에도 불구하고.

“왔군.”

그리고 그가 헤어졌을 때와 똑같은 얼굴과 태도로, 이리하는 주머니에 손을 가볍게 넣은 채로 나를 반겼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느긋하게 바람에 휘날렸다… 그가 나를 기다렸다는 것이 너무 분명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저한테 거짓말 하셨어요?”

“아니. 습격은 진짜로 있었어. 그래서 지금 당장 난 오르제국으로 돌아가야하고. 잔당이 두 번이나 습격 시도조차 했다는 건, 내가 덜 무섭단 거지.”

그의 산뜻한 태도에 기가 찼다.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한숨을 쉬어서 제대로 머리를 돌게 한 후에 떨면서 물었다.

“그러면, 괜찮은 거예요?”

“경과도 모르고 온 거니, 내가 준비시킨 거짓말도 소용 없어서 좋고, 그대가 생각보다 날 더 진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거니 희망적이라 좋은데.”

그의 냉소적이면서도 차가운 태도에 다리에 힘이 절로 빠졌다. 하, 하고 쪼그려 앉으려고 하자 그가 어딜, 하면서 내 팔을 잡아 채서 억지로 일으켰다.

“…아파요.”

“물어볼 게 있으니 대답해.”

심홍색 눈이 햇빛에 음침하게 번쩍였다. 그의 눈이 신처럼, 그것도 매우 잔혹한 신처럼 나를 관통하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곧 떠나야 해. 그러니 하나만 물어보지.”

뭘, 하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나를 우악스럽게 쥐고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샤하레, 미래, 과거, 전부 다 뒤져버리라고 하고, 지금 당장.”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팔에서 힘을 줬지만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고, 나 또한 그를… 우악스럽게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나를 좋아하나?”

“저는…”

입을 벌리고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에는, 결국에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은 진실이고, 바뀔 수는 없는 거니까.

“좋아해요. 그렇지만, 저희의 끝을 생각하지 않고는…”

“그대가 걱정하는 건 뻔하지! 지금 좋아해도 나중에 우리 미래는 어차피 안 될 거고, 그러면 우린 헤어져야 하고!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건가! 그 미래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는 걸 어떻게 막아줄 수 있어?! 왜 그렇게 방어적으로 굴어?!”

그가 거칠게 소리를 지르는 걸 듣다가 잡힌 손에 힘을 줘 그를 밀쳐냈다. 그는 그대로 밀려나면서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를 있는 힘껏 노려보면서 외쳤다.

“조심하는 게 그렇게 나빠요?! 세상에, 어느 여자가 끝이 정해진 관계에 좋다고 뛰어들어요! 왜 제가 이렇게 방어적으로 구냐고요?!!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이 끝이 아무것도 안 남길 걸 아니까 그러죠!”

“아무것도 안 남으면 뭐가 어때서!”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서 숨을 고르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고통스러움 뿐인 관계잖아요. 나는 당신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거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요. 그러면, 그 때 당신을 사랑하기까지 한 내가 무너지는 걸 당신은… 그렇게 보고 싶으세요?”

이리하는 한숨을 내쉬고 그를 등지고 걸어가려는 나를 향해 말했다.

“난 그딴 거 신경 안 쓰네.”

“…뭐라고요?”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성큼성큼 걸어서 내게 다가와 내 코앞에 그의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다시 말해줄까? 난 그대가 아프든 말든,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난 그대가 내 앞에서 당장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에 환장하는 일차적인 사람이라, 그대가 날 사랑한 후의 일은 하나도 신경 안 써. 그거 아나?”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정답을 찾은 사람처럼.

“난 그대를 지키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냐. 난 그대를 부숴버리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지.”

그러더니 손을 뻗어 내 뒷목을 잡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다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날 부수기 전에 당신이 부숴질거야.”

“어떤 식으로든, 난 상관 없어. 깨물고 싶다면 깨물든지 말든지, 그대 마음대로 해.”

그가 내 입술에 닿는 순간, 나는 그의 팔에 내 손톱을 박아넣었다.

그래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났고, 나도 화가 났다. 그래서 좋아하는 남자와 키스를 했지만, 하나도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그저, 잡아먹고 잡아먹힐 것 같았을 뿐.

혀 끝에서 피 맛이 났다.

============================ 작품 후기 ============================

헤헤....(눈치)

여러분이 뭘 좋아하실 줄 몰라서.. 제가 음.. 제 맘대로 쪄왔는데 마음에 안... 안 드시나...? (땀뻘뻘)리메이크 전엔 라시아가 납치를 당해서 고초를 겪었져!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슬쩍 바꿨습니다... 좋아.. 좋아하셔야 할텐데......(땀)ㅎ... 오랜만에 20위 안으로 들어갔어! 기뻐!! 이랬는데 시원하게 미끄러졌네여...!쳇 언젠간 오르고 만다 에베레수투산.

그나저나 HOT<소개글을 뭘로 할까 고민입니다..(심오) 멋진 소개글을 적어주세요!>HOT ++ 여러분 이리하한테 뭐 받아 드셨어여..? 왤케 다들 좋아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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