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축제>
축제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아예 끝물이 되자 오히려 할 일이 없어져 숨통이 좀 트였다. 물론 자잘한 사건 사고야 어쩔 수 없었고 누군가가 일부러 만든 문제가 아니라 그저 진행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니 사실 상당히 무난하게 끝난 편에 속했다.
말 많고 탈 많은 학생회나 페드윈도 재미는 있었겠지만, 그거야 학생회 입장이 아닐 때에나 즐길 수 있는 일이지 학생회의 부회장씩이나 된 마당에 그런 말 많고 탈 많은 건 그저 속만 뒤집어지는 일일 뿐이니까.
아프고 바쁘게 지내면서 타의 반, 그리고 본의가 반으로 다니엘이 건드린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상대가 이리하였으니까.
하지만 각 국가의 수장에게 보내는 초대장을 쓸 때는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베노암과 그 외 여러 나라의 황제나 국왕에게 편지를 쓸 때는 그냥 무난하게 매뉴얼에 따라서 써놓고는, 유난히 이리하에게 보낼 편지만큼은 펜을 들고 몇번이고 고민을 했다.
결국 쓸내용은 다른 것과 하나 다름이 없으면서, 혹여나 설렘과 긴장 같은 것이 느껴질까봐…. 이런 걸 고민하는 것 자체가 좀 한심하기도 하지만. 결국 별 다를 것 없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기획자인 로드리고와 로디나의 입장에서는 이 축제의 가장 불꽃 튀고 무서운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황족을 맞이하는 날이다. 특히 이번대에는 참석하겠다는 국가가 기록적일 정도로 많았고, 각 제국의 수장급인 베노암의 황녀와 이리하 또한 온다는 답장을 엄청나게 빠르게 보내버렸다.
일단 두 수장 급이 참여하겠다고 하면 그 때부터는 그냥 세계 정상 회담이다.
심지어 어느 국가에서 주최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누가 먼저 연설을 할 것인가, 연설은 몇 분 정도인가, 음료는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을 쓸 것이며 어느 나라 장식물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꾸며질 것인가 등등, 몹시 까다로운 선택을 해야하는데다가 이 모든 것을 어우러지게 만들어야 하니 당연히 이가 갈릴 정도로 짜증나게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살은 빠지지 피부는 푸석하지, 감기는 다 낫지도 않았지. 성적이 신경 쓰이다보니 쉴 수도 없어 내 꼴이 영 엉망이었다. 사람 꼴은 갖춰야 하는지라 하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인 신관을 불러 축복도 받고, 전문 관리사도 불러서 마사지와 피부 관리까지 받기 시작했다.
페드윈의 부 학생회장으로서 호스트인 다니엘과 함께 이 외교 수준의 파티의 호스티스 역할을 해야 하는데, 웬 피곤에 쩐 여자여서는 안 되지 않겠나.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오랜만에 애니가 머리를 말려주는데, 세상에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거의 정신을 놓고 잠들 뻔했다. 겨우 무거운 눈을 뜨자 애니가 가위를 들고 웃고 있었다.
“어… 단정하고 예쁘게.”
“그 말은 원하시는 스타일이 없다, 는 말과 동일한데요.”
“이런, 들켰네, 그렇지만 애니가 나보다 내 머리에 어떤 게 잘 어울릴 지 더 잘 아니까.”
그러자 애니는 내 말이 치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 들기는 들었는지, 나 참, 하면서도 열심히 다듬고 잘라서 정리하고, 뜨거운 열판으로 곧게 펴주었다. 단정하게 전부 머리를 넘겨 검은 머리띠를 한 후에 똑같은 천으로 묶어 뒤에서 단단하게 리본을 매니, 단정하면서도 귀여운데다 내 금발 머리에 몹시 잘 어울렸다.
“아, 에쁘다. 마음에 쏙 들어.”
“이런 스타일이 잘 어울리시네요. …물론 머리 풀고 웨이브 준 것도 예쁘기는 한데… 섀도우도 진한 거 안 했는데.”
“난 색조화장은 하면 할수록 과해지는 기분이 들더라.”
“어쩜 이렇게 완성도 있는 얼굴로 태어나셨나 몰라요. 조금만 진한 화장을 하면 바로 과해보이는데다 딱히 건드릴 곳 하나 없이 예쁘셔서….”
“…그거 칭찬이지?”
“좀 더 꾸미기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냥 칭찬은 아니에요. 자, 이제 옷을 고를 차례네요.”
“나 그건 골라뒀어. 검정색의 굵은 세로 줄무늬 속치마.”
“정복에 금색이 들어갔으니, 괜찮네요. 아가씨 머리 스타일과도 잘 맞고.”
애니가 재빠르게 골라둔 속치마와 구두를 챙겨오고는 보석 상자를 들고 왔다. 그런 말을 들었으니 또 검정으로 가볼까, 하다가 그냥 깨끗한 다이아로 하고 팔찌는 어떡할까 고민을 하자 애니가 골라주기에 그냥 그걸로 했다.
오랜만에 사람 꼴을 하니 거울만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애니에게 고맙다고 하고 집을 나와 오를레아와 만났는데 그녀는 파랑색 스카프로 머리를 땋아내려서 몹시 특이했지만, 굉장히 잘 어울리고 예뻤다.
“예쁘다!”
“고마워, 너도 예뻐. 금발은 그래서 부럽다니까.”
“금발은 흔한 색이잖아 대신. 우리 축제 끝나면 같이 쇼핑이나 가자.”
황가의 대표들을 맞이하는 틈틈이 오를레아와 어딜 갈까, 뭘 먹을까 이런 얘기를 한참 하고 있자니 어느 새 베노암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 마지막 사람에 와서는 어쩐지 기다리는 와중에도 제대로 오를레아와의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가 도착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예정된 시간보다 한 삼십분 정도 늦어졌기에 긴장감이 더욱 컸다. 물론 다니엘이 모든 말을 다 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나보다 훨씬, 아주 훨씬 높은 사람인, 내가 좋아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보는 것은 묘하게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 내 영상석에서 반짝, 빛이 났다. 나는 함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만요, 하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잠깐 벗어나 영상석을 켜고 말했다.
"부회장입니다. 문제 생겼나요?"
-회장 영상석의 마력이 다 됐나봅니다. 연락이 안 되네요. 정문 개방합니다. 문제 없습니까?
아, 그러기에 제대로 충전하라니까, 정말. 인상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한번 휙, 돌려 상황을 체크한 후에 말했다.
"알겠습니다. 정문 개방해주세요."
-예, 그럼 문제 없는 걸로 알고 정문 개방하겠습니다.
"걱정 말아요. 이제 문제가 생기면 이건 우리 탓이 아니라 천재지변이거나 뭐 그런 거니까."
그러자 영상석 너머의 사람이 조금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문이 개방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끊습니다.
핏, 하고 영상석이 꺼졌다. 나는 다니엘 쪽으로 다가가서 그에게 말했다.
"오빠 마력 다 떨어졌나봐요. 연락이 안 된다고 이쪽으로 연락이 왔어요. …제대로 충전 안 할래요, 정말?"
“어… 진짜네. 넌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모르니. 어떻게든 연락을 끊고 싶은… 오빤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단다.”
"축제 끝나면 속세에서 벗어나서 무슨 짓을 해도 신경 안 쓸게요. 아무튼 가장 바깥 측 문, 개방한다고 해요. 슬슬 이쪽도 준비하죠."
알트라의 외벽 문은 총 3개로, 가장 바깥측의 문에서 가장 안쪽의 문까지는 걸어서는 20분이 걸렸다. 우리는 가장 내부의 문과 2번째 문의 사이에 있었는데, 이 곳에서 마지막 공격의지 없음, 의 의사를 우리와 상대가 확인하는 것을 전통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번이 마지막이다, 제군들!"
사관학교 풍으로 다니엘이 힘차게 소리치자, 학생회가 의욕 없이 예에에… 하고 소리쳤다.
"갑갑하고 답답하고 당장 시원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이 분만 모시면 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일한 게 지금 잠시 힘들기 때문에 생긴 어영부영한 태도로 망가지지 않게, 기운들 좀 내봐."
그러자 다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서서히 제 2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흑마를 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긴장한 상태로 그와 그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천천히 우리 앞에 다가오는 남자는 몇몇의 지나가던 오르사람의 옷자락에 키스하는 것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이 물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볍게 말에서 내린 그가 가벼운 태도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햇빛을 받아 초콜릿색의 긴 머리카락이 유난히 눈에 띄었고, 키가 컸기 때문에 심홍색 눈동자가 우리를 정확하게 내려다 보았다. 다니엘은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다가 다가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
"오르 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알트라 축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황제를 대하는 각자의 절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이리하와 다니엘이 어떤 표정으로,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모두의 절을 지켜보던 이리하는 우리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환영에 감사하는 바이오. 그대가 이번 페드윈의 장이지, 다니엘이라고 했던가. … 즉위식에서 인상이 깊었다."
우리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둘의 형식적인 인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더 이상의 지체는 멀리서 오신 분들을 어렵게 하는 일밖에는 되지 않겠군요. 부디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이리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트라에 들어오는 중립지에 대한 비공격 의사에 대한 각서와 거대 살상무기 존재 유무 확인을 위해 학생들이 움직였고, 나는 검을 소유해도 좋다, 는 허가가 떨어진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을 확인했다.
허가증을 가진 사람 이외의 칼과 무기 등을 모두 따로 보관하는 보관소에 넣는 작업까지 마치고 나서야 다니엘에게 손을 동그랗게 말아 완료 표시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모든 확인 작업을 끝내자, 다니엘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협조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하고는 이리하와 악수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얼른 영상석을 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롸져, 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영상석을 타고 나오더니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릴 틈 없이, 그 문 안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어…!"
알트라의 바깥에서 무력이 침범해오는 경우는 생각해봤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얼굴을 가린 자들이 이리하에게 달려들었다.
"잠까…!!!"
내가 외치려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그저 부는 그런 바람이 아니라, 내 앞으로 뭔가가 날아가는 그런 바람이.
'챙그랑!!!'
깜짝 놀라 바라봤더니, 이리하의 긴 머리카락이 날린 그 앞에, 한 남자가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심홍색 눈을 가진 오르안은 자신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순식간에 무기 허가를 받은 전사들이 다가오는 적들을 해치웠고…
그리고 이리하는 거기에 가만히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피냄새 사이로 흐르는 것은 끔찍한 침묵이었다. 알트라 내부에서 황제를 시해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이는 곧, 어떻게 보면 완전한 중립지대인 알트라를 위협하는 일로 번져나갈 수 있는 일이다. 알트라 내부 보안과 안전이 위태로운 이상, 트집을 잡자면 모든 국왕이 자신의 호위와 경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수의 군사를 허용해달라고 할테고, 그러다보면 당연히 군비경쟁으로 번져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오려는 비명을 참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봤다… 그는 긴장된 표정으로 이리하를 바라보다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리하의 앞에 쓰러진 한 자의 얼굴 두건을 휙, 하고 벗겨내더니 능숙하게 죽은 시체의 옷을 뒤졌다.
"…쿤 족이군요."
다니엘은 능숙하게 웃었다. 나는 그가 왜 웃는지 몰랐지만, 아무튼 이렇게 까딱하면 큰일 날 상황에서 웃어보인다니 역시 배짱 한 번 두둑하구나 싶어서 조금 자랑스러웠다.
"원한이 무섭네요."
그 말로 다니엘이 이 상황을 어떻게 끌어갈 지 깨달았다. 알트라의 내부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르제국의 현 상황,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북방족의 군사력을 알리고 싶지 않을 법한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록진의 형이 죽은 전쟁이, 바로 이 쿤족과의 전쟁이었으니. 이리하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국의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유감이로군. 이거 미안하게 됐어. …이 일은 우리 쪽에서 해결할 수 있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해도 되겠나?"
그까짓 것 알려도 좋은데 알려봤자 너희의 내부 경비 약화를 핑계로 군비 경쟁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것은 여전하다, 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살은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 이거로군. …정말 이러다가 알트라가 전쟁에 휘말리는 걸 보게 생겼다. 더 없이 긴장한 상태로 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내 속이 바짝 바짝 타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 저 형제만 빼고. 둘은 빤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갑작스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문에서의 사건은 이문에서 끝난 걸로."
“그 정도라면 만족하지. 대신 대책팀을 꾸리기는 해. 페드윈 측과 우리 측의 합이 필요하겠군. …그리고.”
이리하가 재미있는 걸 발견한 아이처럼 웃더니 그가 고개를 쓱 돌리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걸어서 다니엘의 뒤에 섰다.
“자네 부회장도 빌려야겠어.”
“…라시아를요? 왜 빌리시는 지 여쭈어도…”
그러자 그가 홍색 눈을 가볍게 휘면서 눈웃음을 쳤다.
“오, 내가 부회장 정도의 사람에게 밥 한 끼는 얻어먹을 수 있는 정도의 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었다. 누가 감히 한 제국의 황제가 밥 한 끼 사라고 하는데 못 산다고 버티겠는가. …다만 드문 일인데다 굳이 날 요구한 게 찜찜했을 뿐.
“굳이 샤펜양이어야만 할 이유는 있습니까?”
“자네가 나라면 자네랑 밥 한 끼 먹고 싶겠나, 미인이랑 밥 한 끼 먹고 싶겠나.”
그가 여상스레 웃으면서 하는 말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나랑 비슷한 동년배의 남자가 능구렁이 아저씨처럼 구는 것이 웃겼던 까닭이다. 하지만 내가 웃는 것과 달리 다니엘은 무슨 딸을 데려가겠다는 포주 사장을 보는 사람 같은 표정으로 이리하를 바라보기만 할 뿐, 그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네가 영 탐탁지 않은 얼굴이니, 샤펜양에게 물어보지. 오랜만이군, 샤펜양. 작년 여름 이후로 처음인가?”
“네, 오르안.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쁨은 전부 내 것이니, 영광은 가져도 좋아. 자, 그래서… 어떤가, 축제 중 하루 정도에 내가 그리 나쁜 상대는 아닐텐데.”
나는 살짝 다니엘의 눈치를 봤다. 그는 당연히 내가 현란한 핑계를 대서 거절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거절해봤자 좋을 게 없었다.
저 쪽이야 그냥 놀라운 일로 끝나고 전쟁의 해프닝 정도로 다룰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쪽은 사활이 걸려있었다. 알트라가 중립을 잃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내가 다니엘의 눈치를 보는 것을 알아챈 이리하가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고 웃더니 말했다.
“너무 비싼 걸 사달라고 하지는 않겠네. 디저트는 원한다면 내가 사도 좋아.”
그 능청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작게 웃어버렸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베노암식의 궁정인사를 했다.
“영광입니다. 원하시는 시간에 연락 주세요.”
이리하는 좋아, 하고 시원하게 대답하더니 말에 올라타서 나중에 보자며 사라졌고, 다니엘은 포주와 연애를 하겠다는 딸을 본 얼굴로 내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나를 닦달했다.
“아니, 그러면 어떡해요. 안 했다간 큰 일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 말은 맞는 말인데도 다니엘은 어쩐지 걱정이 태산이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오빠가 저번에 사준 프로텍터 아직 가지고 있지?”
“…가지고 있긴 한데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그는 저번 파티 전, 내게 프로텍터를 사주었다. 상당한 양의 전기가 흐르는데 시전자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으니 어느 상황에서건 쓸 수 있다고 설명을 직접 줄줄 해주던 그의 얼굴이 몹시 진지해서 질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꼭 들고 가라.”
“저기,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데.”
“직위가 무슨 소용이야! 알았지? 오빠 말 들어, 응?”
“듣긴 듣겠지만…”
목소리를 죽이고 오빠 동생이잖아요, 하고 속삭이자 다니엘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남자 새끼는 다 똑같아!”
“…라고 남자가 말했습니다.”
윈프레드 선배가 침착하게 대꾸하면서 내게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챙겨가, 알았지?”
“네에.”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주 따라 오시겠네, 두 분이. 오를레아에게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뭘 입을 지나 얘기 했더니 아주 철딱서니 없는 여자애보듯이 보는 게, 아주 못 말린다니까.
그래도 두 분이 그렇게 말해서,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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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나난 나나~
담편은 늦어질지도 몰라요 ㅠㅠ 담 편은 내용이 리메가 아니라 쪄와야하는...
젱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