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로드리고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시험을 패스해 정상적인 학기를 영위할 수 있게 되자마자 반데라스 교수님은 재빠르게 수속을 밟으시더니 나를 앉히고 즐거운 표정으로 강습을 시작하셨다. 내가 선택한 거지만 정말로 과감하게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어렵고, 무척이나 까다로운 과목이었지만 다행히도 내 적성에 맞는지 재미있기는 했다.
들을 필요가 없었고, 나와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던 마법에 대한 이야기라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빴다, 나는. 우선 축제의 시행에 부회장으로서 빠질 수 없는 노릇인데다 교수님의 수업까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마음이라도 편하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당장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문제는 내 마음만 너무 편하다는 거지만.
“라시아, 너 소문 진짜야?!”
문이 세게 열리면서 학생회실의 사람들이 다 충혈 된 토끼눈으로 들어온 사람을 노려보았다. …토끼 몬스터가 열이니 들어온 사람들이 힉, 하고 숨을 몰아쉬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지금 여기 학생회실인데요….”
내 떨떠름한 표정에 로드리고는 아, 이런 실례, 하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뭐, 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빤히 바라보자 다들 답답해 미치고 팔짝 뛰겠네! 하는 얼굴을 하더니 시드가 나를 일으켜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어, 여보세요? 이거 납치 아닌가요?”
“비슷하지. 빨리 나와, 빨리.”
다들 재촉해서 뚱한 얼굴로 눈을 비비면서 나왔는데, 휴게실로 끌고 가 앉히더니 다짜고짜 웬 음료수를 내민다.
“…이건 뭐예요?”
“쭉 들이켜, 몸에 좋은 거야.”
“무슨 몸에 좋은…”
아 거참 말 많네, 하고 카일이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병의 뚜껑을 따더니 얼른, 쭉 들이키라며 다들 나를 노려봤다. …이 사람들이 왜 이래. 소문 때문에 온 거 아니었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모두를 슬쩍 바라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음료수에 혀를 대자마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뭐예요?! 엄청 맛 없어!”
“엄청 좋은 거래. 우리 집 집사가 건강주스라면서 줬어.”
진지한 얼굴로 쭉 들이키라면서 병 아래를 받쳐주는 그들의 열성에 어쩔 수 없이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리면서 다 마셨다. 건강을 해치는 맛인데 정말 건강에 좋은 거 맞아?
“…캔디 없어요? 초콜릿이라든가.”
그러자 자비에르가 딱하다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사탕과 초콜릿 여러 개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면서 그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이런 걸 들고 올 바에야 말렸어야지.”
“들고 다니는 건 귀여운 아가씨가 기분이 안 좋을 때를 대비해서지, 건강 주스가 그렇게나 맛이 안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아무튼 핑계는 좋아요. 코웃음을 치고 등을 소파에 파묻고 앉자 다들 내 주위로 몰려들어서 자리를 잡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그나저나 그 소문 사실입니까?”
“대체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건지 알아야 내가 대답을 해주죠… 무슨 일인데요?”
“아, 얘가 답답하게구네. 아비게일, 너, 다니엘… 뭔가 떠오르는 거 없니.”
그 말에야 이게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나는 끙, 하고 침음성을 내뱉고는 벌써 소문이 돌아요? 하고 물었다.
“당연하지! …잠깐만, 네가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니까 진짜인거잖아!”
그 말에 다들 더 내 주변으로 더 모여들었다.
“…저기, 엄청 부담스러운데요. 잠깐 거리를 두는 게 어떨까요.”
내 질색하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자비에르, 카일, 시드, 빌헬름, 루퍼트의 수근거림은 그칠 기색도 없었고,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완전 엄청나네요. 아비게일이 샤펜가의 차기 가주가 되면 다니엘 선배님과의 약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슬금슬금 엉덩이를 빼내서 옆으로 가자 다들 머리를 맞대고 시끌시끌, 난리도 아니었다. …남자들이 더 하다더니, 여기가 바로 그짝이네. 시큰둥하게 자리에 앉아서 초콜릿 껍질을 까서 천천히 먹고 있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다니엘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심술궂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입술을 말고 입을 꾹 다문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 그래서. 내 약혼이 깨질 게 아주 재밌는 일인가 보군요.”
그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어버버, 하고 우물쭈물하더니 루퍼트가 조심스럽게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라시아선배님은 이제 후계자가 아니잖아요, 선배님. 그게 더 슬픈 일이고요.”
나는 제법 상처받은 얼굴을 잘 지을 수 있어서, 재빨리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렇죠. 저는 이제, 후계자도 아니고….”
그러자 다들 루퍼트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장난인데.
“흠, 그래서 말인데.”
빌헬름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열었다.
“싱글로 돌아온 걸 축하할 수도 있고, 또… 가주라는 것도 사실 책무가 상당한 거잖아요? 거기서 벗어난 걸 축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다들 표정이 퍽 밝아졌다. 하기사 다들 빡빡한 일정으로 힘들고 피곤하니, 이런 가십에라도 달려들어 좀 일이 아닌 걸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거겠지.
“술도 마시면 어때?”
“미성년자는 어쩌고.”
“미성년자는 빼면 되지. 어때, 학생회장. 끌리지 않나!”
“…나야 괜찮지만, 윈프레드가 허락해줄지 모르겠네.”
이번 대 로드리고의 장은 하기사 윈프레드였으니까 말이다. 그 말에 빌헬름이 허가 없이 그냥 하면 되지요, 뭐. 하는 의견을 냈다. 공식적인 행사일 필요가 없으니 뭐, 굳이 결정을 할 필요가 있…나? 다들 약간 밍숭맹숭한 표정이었지만, 어쨌거나 간절하게 파티가 열리기를 바라는 모양이기는 했다.
“계획은 따로 세우지 말고, 그냥 각자 먹을 거랑 회비 정도만 걷죠. 술값으로 회비를 내면 되는 거고.”
내가 대충 의견을 말하자 남자들이 하나같이 눈을 부라리고 내게 말했다.
“좋은 의견이긴 하지만, 넌 오면 안 된다.”
“…잠깐만, 절 축하해주시려고 만드는 파티 아니었어요?”
“응, 그 의견은 좋았지만 기각하기로 했다.”
“누가 정했는데요?”
“우리가, 방금.”
다니엘을 제외한 모두가 입을 모아 나를 엄하게 노려보는 시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저번에도 나 빼고 술자리를 가지더니, 이 사람들이 나를 정말 따돌리려는 건가.
“저 빼고 모여서 도대체 뭘 하길래 절 자꾸 이렇게 소외시키는 거예요?”
내 퉁명스러운 질문에 자비에르며 사람들이 난리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널 소외시키는 게 아니야, 라시아!”
“완전 아니야!”
“진짜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왜 못 참가하게 하는 건데요? 내 일인데, 심지어!”
“왜냐면 라시아 넌 여자애잖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내 귀를 의심하면서, 나는 팔짱을 단단하게 낀 채로 그들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뭐라고요?”
내 태도가 과연 심상치는 않았던지, 시드가 잽싸게 나서서 진지한 어조로 변명을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이상하게 듣지는 마. 이건 절대로, 절대로 남녀차별적인 그런 문제가 아니야. 우린 그냥 걱정하는 거라고. 술이 들어간 파티에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때 널 우리가 보호해주기가 힘들잖아.”
눈썹 한쪽을 들어올리면서 뚱하니 서 있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나한테 지금 너무나도 바보 같은 질문이 두 개가 있는데, 그 질문을 하기 전에 철회했으면 좋겠네.”
“…뭔데?”
“첫째는, 도대체 얼마나 쳐, 마실 예정이시기에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겨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면서 노려보자 앉은 남자 모두 어쩐지 고개를 푹 숙이고 엄마한테 혼나는 애들 같은 표정을 취했다.
“그리고, 말하는 뉘앙스가 어째 성적인 문제에 대한 것 같은데… 댁들은 술만 마시면 그저 치마 두른 아무한테 껄떡대십니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나같이 고개를 저어대는 모습이 아주 그냥, 얄미운 애들의 전형 그대로였다. 다니엘만이 쯧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 모두를 내려다보면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더니 말했다.
“걱정 마, 얘네 술 버릇 다들 엄청 귀여워. 시드는 그냥 자고, 루퍼트는 했던 말 또 하고. 자비에르는 시를 읊는데다가 카일은 훌쩍거리거든. …빌헬름은 모르겠다만, 쟤는 장담하는데 말술이야.”
그 말에 파티에 가고 싶은 생각이 순식간에 최대치를 찍었다. 나는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다니엘을 바라보기 위해서 살짝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고 물었다.
“꼭 갈게요. 기다리는 게 힘들 정도로 기대되네요.”
“그리고 혹시, 네가 너무 예쁜데다가 술 취하면 뭐든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얼간이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오빠가 프로텍터를 죽이는 걸로 준비해줄게.”
그 말을 듣고 있던 남자들이 그럼 나도 사줄게, 하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팔짱을 풀고 말했다.
“글쎄요… 저 술버릇을 가지고서는 제가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니엘이 킥킥거리면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 때, 아비게일의 일 이후로 그는 가끔씩 이렇게 나를 투과라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내려다보고는 했다. 나는 그게 이상했지만, 언젠가 왜 그러는 지 얘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재촉하지는 않고 있었다.
“얘기 다 끝났으면 이제 나랑 이 부회장은 돌아가봐야겠어. 이렇게 가십에 관심이 많았는지는 몰랐으니, 앞으로는 내가 가십지를 6부 정도 구해서 댁들한테 주지.”
“…우린 다섯명이야.”
“너희랑 놀아주려면 나도 하난 읽어야지.”
그렇게 비아냥댄 그가 웃으면서 내 등을 세게 두드렸다. 이만 일어나라는 표시에 얌전히 일어나서 일하는 곳으로 끌려가면서 말했다.
“받으면 중요한 거 별표 쳐서 저도 보여주세요, 아가씨들!”
그 말에 모두들 뚱한 얼굴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 기분은 꽤 좋아졌다.
소문은 그리고, 그들이 다녀간 다음 날부터 크게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커진 이유는 거의 아비게일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우선 다니엘과 아비게일은 몇 번이고 대로변에서 싸웠는데, 일방적으로 아비게일이 화를 내는 모습이었으며 다니엘은 잔인할 정도로 침착하게 대응해서 아비게일이 더욱 부각되어보였다.
워낙 친하다고 알려진 사이고, 약혼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다 샤펜에서 깬 건데 아비게일이 화를 내니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고, 그래서… 더 소문은 커졌다.
괜히 아는 척 해봐야 좋을 일도 없으니 끝까지 모르는 걸 고수하기로 했는데, 아비게일과 다니엘의 싸움에 자꾸 내 이름이 나오자 사람들은 점점 더 나와 이 모든 일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나와 다니엘을 엮는 질나쁜 소문이 번져가기도 했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 파티는 왜 이렇게 처량맞게 변했냐.”
우리 둘이 함께만 있으면 소문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사이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를레아나 민디, 앨런이 불편하지도 않냐고 걱정한 것과 달리 나와 다니엘은 매일 농담 따먹기를 하며 일에 치여 사는 인생을 한껏 즐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제 생각에는 자기들이 얼마나 처량맞은 생활을 하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연 파티라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안주로 나온 땅콩을 주워먹으면서 말하자 다니엘이 에, 뭐. 하면서 다리를 꼬았다. 그래도 서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동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슬슬 웃기는 술버릇도 나오고 한참을 떠들며 놀고 있자 스트레스도 꽤 풀렸고 말이다.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너무 웃어서 좀 지치기도 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다니엘이 찬 공기 좀 쐬자며 날 끌고 밖으로 나왔다.
“와, 너무 웃었더니 광대가 다 아파요.”
“그래, 재미 좀 보는 것 같더라.”
다니엘은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더니 쥐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는 약간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내가 내 비밀 장소 알려줄까, 라시아.”
“응? 웬 비밀장소예요, 뜬금없이.”
그가 그 말에 씩, 크게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확, 하고 잡고는 말했다.
“이리와봐.”
이 분도 취하셨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도 좋았고, 나도 영 알딸딸하기도 하고… 어쨌거나 다니엘이라면 믿을 수 있어서 얌전히 끌고 올라갔더니 그가 로드리고 건물의 뒤편으로 가서 뛰어올라가더니 사다리를 내려줬다.
“잠깐만, 이걸 타고 올라오라고요?”
말도 안 돼, 웃음을 참으면서 그를 올려다봤더니 다니엘이 아, 제발, 하면서 나를 재촉했다.
“취했잖아, 이 정도 용기는 내주라.”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 하고는 취했으니까, 하면서 결국 낑낑거리면서 올라갔더니 그새 지붕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다니엘이 있었다.
“여기가 다니엘 비밀 장소예요?”
바람에 머리카락이 확확 휘날려서 간신히 한 손으로 쥐고 소리치듯이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기분 좋지?”
틀린 말은 아니라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다니엘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가자 다니엘이 내 쪽으로 다가와 손을 건넸다. 음, 뭐, 위험하니까. 얌전히 잡고 끝부분까지 걸어오자 시야가 탁 트여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비밀장소 값을 하네요.”
“이젠 아니지, 네가 왔으니까.”
“비밀 지켜드릴 수 있는 걸요, 뭘.”
그가 그래? 하고 말하더니 실없이 웃고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하는 행동들이 다니엘 답지 않아서 슬슬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어디 아프세요?”
“음… 아주 좋아. 대충 네가 예뻐서 그런 걸지도.”
응? 이젠 아주, 아주 많이 이상한 말이 나왔다. 내 귀를 의심하며 그를 바라보자, 정말 기분 좋게 취한 얼굴의 그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내가 예쁘다고 하면 안 돼?"
"…잠깐만, 술 많이 드셨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좀 마셨지."
하아아아- 하고 그가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술에 취한 사람치고는 술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나도 마셔서 그런가? 의아하게 그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자니 그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난 사실 내가 아비게일이랑 그냥 결혼 할 줄 알았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릴 적부터 내 인생의 길이 딱 정해져 있는 거 말이야. 그래서 다른 길은 생각도 안 해본 거지. 다른 쪽 선택지는 너무 위험했기도 하고….”
“…유감이에요.”
바람에 머리카락이 자꾸 날려서 시선을 가리는데도, 나는 다니엘 쪽을 보고 있었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난 너한테 좀 미안했어.”
“…왜요?”
“나 때문에 너무 많은 거, 겪을 필요도 없는 걸 겪었잖아. 그래서 난 너한테 당연히 다 갚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했거든.”
다니엘은 그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헤집더니 갑자기 두 손을 쫙 펼치면서 말했다.
“그런데 네가 그 때… 갑자기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 글쎄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게 그렇게… 음, 놀랄 일인가요?”
“아니.”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내 시야를 자꾸 흐리는 금색 머리카락 때문에 그가 잘 보이지 않아서 신경질이 좀 났다.
“그럴 일이 아니지, 고마운 일이야. …그런데, 난 그 때… 놀라고, 섭섭하고… 아쉬웠어.”
“…왜요?”
그 말에 그가 손을 뻗더니 내 머리카락을 헤쳐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좋아해, 라시아."
그리고 다니엘이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내게 다가왔고, 내 입안으로 그제서야 술냄새가 쏟아들어졌다.
"…이런 의미로."
나는 그저 멍청하게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초록색 눈이 시원하고, 상냥하게 접혀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 작품 후기 ============================
ㅓ트암님이 새벽에 올라올 것 같다고 하시기에 제가 에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에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랬는데 그러고 있네요. ...(얌전)다음 편 빨리 안 가져오면 여러분이 절 몹시 혼내시거나 싫어하시거나 농성을 벌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