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시아-79화 (79/113)

79화

<새학기>

이리하는 정말 카라얀, 예쁜이를 데리고 깔끔하게 돌아갔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야하는 내가 지치지 않게 배려해준 그의 태도에 감사하며, 나는 마지막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페드윈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가끔은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내가 편입생으로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 새 신입생이 들어오는 걸 보게 되다니. 사람들이 나를 페드윈의 학생으로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도 내가 이 학교의 학생인 데에 익숙해졌다. 비록 이 감회가 5분도 안 되어 다 떨어지고, 그저 빨리 졸업이나 하기를 바라게 됐지만.

"감동이 오 분을 못 가네."

다니엘은 진지한 얼굴로 내게 조용히 말했다. 나름 회장과 부회장인지라 학생회 멤버끼리 앉은 특별석에 앉아있는데, 다니엘은 자신의 연설을 하고 난 이후로는 영 의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감동이요?"

"이제 부회장도 돌아왔으니, 내 이 페드윈을 훌륭히 치세할거라는 스스로의 포부에 약간 감동했는데, 교장선생님이 입을 열자마자 거품처럼 사라져버렸어."

겨우 웃음을 참느라 표정이 영 웃기게 변했다. 겨우 헛기침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농담하지 마세요. 여기서 웃었다가는 내내 부끄러울 거라고요."

그러자 다니엘이 인상을 더 찡그린 채 내게 말했다.

"난 진지하네 부회장. 학교가 기면증의 위험에 처했어!"

뒤에 앉아있던 윈프레드가 진지한 목소리로 우리 사이에 조금 내밀어 소근거렸다.

"큰일입니다, 회장! 기면증이 제게도 옮은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둘이서 놀지 못하면 그 누구와도 놀지 못하고 그저 일에 치여 죽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끝없는 만담을 즐기고는 했는데, 오를레아는 심지어 약간 재밌어하면서 은근슬쩍 여기에 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도 지겨운데 잘 됐다는 표정으로 우아하게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기침하는 척 하며 소근거리는 것이다.

"공기를 통한 거라 피할 수도 없는 것 같은데. 아, 이렇게 잠이 드는 걸까요?"

그리고 나를 굉장히 기대하는 눈으로 반짝반짝 쳐다보는 것이다. 뭐야, 이걸 내가 이제 받아쳐야 하는 거야? 한참 그들을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교장선생님이 째려보시는데요."

그러자 다니엘과 학생회사람들이 재빨리 교장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사실 그건 거짓말으로 기면증의 유포자 되시는 분께서는 열정적인 연설 중이셨다.

"이 배신자."

그들은 나를 장난스럽지만 확실히 째려보았고, 나는 결국 미소를 지으면서 말해버렸다.

"뵙고 싶었어요, 다들."

그러자 다들 웃어주었다. 다니엘은 내 팔을 강하게 쥐어주었고, 오를레아와 윈프레드도 뒤에서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벅차올라서 큰 숨을 내쉬었다. 반 학기 동안 내 인생도, 내 주변도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게 나를 안심시켰고, 이 곳에 오기 전 긴장했던 나 스스로를 기쁘게 바보라고 칭할 수 있게 했다.

"보고 싶었어, 오를레아."

특히나 보고 싶었던 친구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하자 오를레아는 조심스럽게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나도."

그리고 우리의 감동적인 재회를 메리웨더 교수님은 몹시 냉정하게 째려보심으로써 끝내셨다. 교장선생님의 긴 연설이 끝나자마자 다니엘은 재빨리 탈출하자며 우리를 끌고 학생회실로 가려다 결국 붙들렸고, 나는 명복을 빌면서 오를레아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로드리고들에 의해 끌려 동아리관으로 들어갔다.

“짠!! 라시아를 모시고 왔습니다!!”

나를 끌고 온 주축 중 카일이 소리를 지르자 다들 와!! 하는 함성을 질러주었다. 반겨줘서 기쁘긴 기뻤지만, 이렇게 끌고 온 어디가 모시고 온 거…?

“자자, 주목! 이 쪽이 그 유명한, 로드리고 유일한 여자이자 최고의 미녀, 그리고 그동안 집안 사정에 의해서 잠시 자리를 비웠던 부학생회장님이신,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 양이십니다."

로드리고 2,3,4학년이 엄숙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1학년들은 여자!! 여자다!! 하는 얼굴로 신기하고 떨떠름하게 박수를 쳤는데, 처음 보는 얼굴에게 밉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엉망인 모습을 대충이나마 정리하고 웃어보였다.

“선배님, 질문 있습니다!”

“좋아, 해봐!”

“행가레는 언제 합니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 일을 주도했을 다니엘을 찾았지만, 그는 타이밍 좋게도 메리웨더 교수님께 영혼까지 털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일단 그래도 이 일에 대해 물을 대상이 있으니 다행이라, 윈프레드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행가레요?”

내 시선과 말투에서 황당함과 어이없음을 감지한 윈프레드가 어색한 얼굴을 하다가 뻔뻔스러운 말투로 내 등을 팍, 치면서 말했다.

"귀환을 환영한다, 홍일점."

그리고 자비에르가 그러면 시작할까요, 하고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서 순식간에 멀어지고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다시 물었다.

“행가레라니, 무슨 소리예요.”

“아,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요, 선배! 우리 진짜 열심히 연습했다고요!”

다들 신나서 내게 한 번만 믿어보라고 닦달하는데 내가 어이가 없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뭘 어떻게 연습을 했는데요?”

그러자 1학년생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아, 소피아 선배님의 인형을 빌려서 던지고 받고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내 신중한 질문에 이제 2학년이 된 웬델이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팔이 부러졌죠.”

“연습하면서 누구 팔이 부러졌어요? 그 인형이 그렇게 무겁단 말이야?”

놀라서 묻자 자비에르가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아니, 인형의… 팔이요.”

나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 모두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그래, 한 번 해보죠, 그 행가레라는 거.”

“진짜요?!”

“응. 내 시체랑.”

그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고, 분위기는 더없이 싸해졌다. 그러자 자비에르가 샴페인을 터트리더니 외쳤다.

“홍일점의 귀환을 축하하며!”

“축하하며!”

다들 잔을 높이 들어 외치고나니 분위기가 매우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있는 시드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소피아는 자기 인형 팔이 부러진 건 알아?”

시드는 약간 놀라다가 내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에 약간 목소리를 떨더니 장난스럽게, 평소의 그처럼 대답했다.

“아니.”

“…좋아, 그럼 언젠가 알게 되긴 해?”

그러자 시드가 약간 고민하는 흉내를 내더니 대답했다.

“아니. …아마 빌려간 것도 모를 걸.”

나는 오, 하고 가볍게 대답하고는 말했다.

“그럼 난 그냥 소피아한테 다니엘이 네 인형을 부숴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랬다고 말하면 되겠네.”

그러자 시드가 킥킥대면서 웃더니 조심스럽게 돌아온 걸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고 대답하고서 자비에르가 따라준 샴페인을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고 죄다 뱉어버릴 뻔 했다.

"이거 진짜 술이잖아!!!"

자비에르와 다른 로드리고들이 잔을 함께 들어올리더니 쭉 들이키고는 말했다.

"신사들의 클럽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레이디."

"너희 이거 어디서 들고 왔어, 대체."

그러자 루퍼트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막 로드리고 관으로 들어오는 다니엘을 두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학생회장님께 찬사를."

다니엘이 자비에르가 건네주는 잔을 들어올리더니 웃었다. 불법은 아니지만 이래도 되나, 영 찝찝하기 그지없네. 떨떠름한 얼굴로 일단 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자 잉그럼이 1학년들을 불러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왼쪽부터 리베론, 테이, 빌헬름이야."

웃으면서 안녕, 우리 자주 보고 지내자, 하고 말하자 리베론이라는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금발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애가 느닷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샤펜 공녀님, 당신을 보기 위해서 로드리고에 가입했습니다!!"

응? 내가 기대했던 인사말과는 너무 다른 말에 순간 당황해서 다른 로드리고들을 황급히 바라보니 그들은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이래서 뽑았구만.

"…어, 그래요. 음, 내가 로디나에 있었으면 큰일 날 뻔 했겠군요."

“그 때는 로디나라도 될 자신이 있습니다!”

어디서 이런 열혈팬이 나타났담. 농담에 죽자고 달려드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고 뭐라고 말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래, 어…고맙, 고맙네요."

크크크크큭, 하는 소리가 온통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조용히 안 해, 하고 그들을 째려보자니, 크흠, 하고 겨우 가다듬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음…. 그쪽들도 나한테 반해서 여기 가입했나요?"

그랬으면 참 재밌었을텐데, 그렇게 자포자기한 채 묻자, 테이와 빌헬름은 킥킥대고 웃더니, 빌헬름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랍니다. 안녕하세요, 빌헬름 키에론 델트라고 합니다. 승마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야망 있는 청년이라 뽑았어. 감히 승마로 널 이겨보려는 작정이더라고."

카일이 웃으면서 사족을 붙였다.

“그거 재밌겠네요, 잘 부탁해요, 후배님.”

공식적으로 내가 로드리고 내에서 가장 승마에 소질과 재능, 그리고 노력까지 쏟아붓고 있었고, 로드리고들은 더 이상 열심히 승부욕을 불태우는 데에 관심이 없어졌다. 자연히 승부 자체가 좀 시시해져버린 데에 아쉬움을 금치 못하던 나는, 이 새로운 후배님이 몹시 반가웠다.

"저는 테이 코르슈카 캘트로프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선배님."

"잘 부탁해요. 아, 그러고보니 록산느네 가문 사람이군요. 캘트로프 양께서는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테이는 약간 지친 얼굴로 잘 지내고 계세요, 하고는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매일 사람들이 그거 묻겠네요. 그 분이 워낙 인기가 많으셔서…"

어색하게 웃고는 덧붙였다.

"저도 샤펜 공작님이랑 많이 닮아서, 첫인사가 그런 거였는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실례를 저질렀네요, 미안해요."

그 말에야 지친 얼굴이 슬쩍 녹아내렸다.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배들이 하나같이 라시아를 만났을 때 첫 마디로 샤펜 공작이랑 꼭 닮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안 그래도."

"저도 군의 후배들한테는 그러라고 말해줄게요. 그래도 저보다는 시작이 나은 셈이네요, 그래도! 록산느를 모르는 사람은 많은데, 샤펜 공작님은 지나치게 유명한 편이셔서."

말이 길어진 느낌이라서 웃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해, 하고 말을 끝내자마자, 시드가 다가오더니 내 옆 의자에 앉았다. 일단 아직까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이 리베론을 어쩔까 싶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 우리는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눌까?"

그러자 그는 소년같은 초록색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쪼르륵, 하고 내 앞의 의자에 앉았다. …배우나 가수들은 어떻게 이걸 견디나몰라.

"그래서 샤펜 공작은 잘 지내셔?"

"완전히 회복하셨어. 원래 페이스를 되찾으셔서, 지금은 원기왕성하시고. 너는 잘 지냈니?"

“나야 뭐, 그냥 그렇지.”

"코라랑은 어때?"

내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시드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나는 약간 답답하다는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왜 그래. 뭐 못 물어볼 것 물은 것도 아닌데.”

"…그렇지. 음…요즘 바쁘대, 후계자 수업도 시작했고."

“그렇구나. 어…잘 됐네.”

어색한 분위기가 우리 둘 사이에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루퍼트가 우리 둘을 구제해주었다.

"그것보다, 우리 신입생 환영회, 네가 돌아오면 하려고 한참을 기다렸다고."

루퍼트가 내 쪽의 소파 걸이에 주저앉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줬던 것이다.

"날 기다렸어?"

나는 정말로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나 기뻤다. 내가 지나치게 감격하자 그는 퍽 당황하더니 별 거 아닌데, 하고 어물어물 말을 흐렸다.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들 정말로 다정하시네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서 로드리고들에게 감사를 전하자, 그들은 하나같이 이상할 정도로 쑥쓰러워하면서 코를 문지르고는, 다니엘이 결국 입을 열 때까지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힘이 못 되어줘서 미안하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한 게 있는데.”

다니엘의 말에 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헹가레는 됐어요.”

“젠장.”

다니엘의 불퉁하고 아쉬운 목소리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리면서 서로를 편안하게 다시 볼 수 있는 것을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돌아오자마자 이런 부탁을 드려야 한다는 점이 부끄럽기도 했고 말이다.

“헹가레말고, 부탁드릴 게 있어요.”

그들은 어쩐지 반가운 표정으로 내 부탁을 기다렸다. 나는 빙긋이 웃고는 말했다.

“제가 1학기 중간고사 대체 시험을 치거든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는 공부를 아예 안 했고요. 그러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빌헬름이 말했다.

“대리시험이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빌헬름을 빤히 바라봤고, 그가 흠칫 놀란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제가 방금 선배님 마음을 읽었나요?”

“…아니.”

“오, 그렇다면야.”

그가 어깨를 으쓱, 하면서 한발짝 물러났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서 말했다.

“쪽집게 과외 좀….”

다니엘이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빠라고 부르면 해주지.”

“그게 뭐 어렵다고… 부탁드려요, 오빠.”

그 말에 모두가 약간 김이 샌 얼굴로 한숨을 쉬더니 넌 언제 남자를 만날래, 하며 어쩐지 잔소리를 시작했다. …잘 만났는데…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그런 잔소리를 하면서 어쩐지 기뻐보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발랄!

저 방금 확인했어요 ㅠㅠㅠ 후원쿠폰 주신 열둘의 정월님,Isabella님 정말 감사드려요 ㅠ

여..열심히 쓰겠습니다 ㅠㅠ

댓글도 잘 읽고 있어요 ㅠㅠ 감사드려요 ㅠㅠ 후에..

말린 귤님이 인증샷찍어죠쬬요 ㅎ헤헤ㅔ헤헿...헤헤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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