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불행의 이름>
졸업식이 끝나고 다음 날, 나는 부회장직과 기타의 학생회 구성원들을 알아냈다는 신문부의 대서특필에 놀라 신문을 받아 카페테리아에 앉아 오를레아를 기다리는 중에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어제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는데 무슨 소문이 이렇게 빨라.
'현 회장 다니엘 이셀리아 요르펜이 학생회장이 된 이후 그가 만든 학생회 구성을 보면 자율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니엘 이셀리아 요르펜 (4학년.) 총 학생회장라시아 클레이만 샤펜.(3학년) 부회장.
오를레아 엘다 아를리오스 (3학년) 서기 윈프레드 아스람 페테르.(4학년) 부장대표3학년 여학생이 두명이나 들어간데다가 로디나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 학생회 구성원의 특징이다. 전대 학생회에서 인수인계된 학생회 부장임원들이 물론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임원중 3학년 학생들이 둘이나 있다는 것에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귀추가 궁금해진다.
특히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은 뽑히고 나서 모두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뜨거운 감자다. 어디에서도 그녀가 주도해 일을 처리한 것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회 일과 파티는 어마무지하게 다른것이니 관련 경험을 제외하고, 인턴쉽 경험도, 귀족 사회 경험도 전무한 그녀가…'
한창 흥미진진하게 신문을 읽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누군가 내 신문을 빼앗아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불만에 가득찬 표정의 오를레아가 서있었다.
"한창 잘 읽고 있었는데."
"이런 기사는 대체 왜 읽고 앉아있어?"
"그야 재밌잖아.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은 뭐가 사실이야."
그녀가 투덜거리면서 의자를 끌어당겨 내 옆에 앉았다. 예의상 시킨 스콘에 관심이 갔던지 먹어도 되냐고 묻길래 고개를 끄덕이자 오를레아가 자기 쪽으로 바구니를 끌고 가더니 소콘을 가볍게 쪼개 입 안으로 넣었다.
"뭘, 다 사실이지. 제대로 공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정확하게 기사가 나오는 게 신기해서 읽어봤어. 그보다, 지금까지 안 물어봤는데 너는 어쩌다가 서기 하기로 한 거야?"
"서기할 생각 없냐고 그 분이 졸졸 따라다니셔서…."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4학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분이 사실은 이렇습니다, 여러분! 뭐 그런 광고라도 하고 싶었다. 일 시킬 때 이렇게 집요하고 얄밉게 구는 모습을 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항상 궁금했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다니엘이랑?"
"아, 필수교양인 토론수업을 우연히 같이 들어서. 그 때만 해도 전 약혼자 취향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과목밖에 못 듣는 상황이라 필수과목들이 나한테는 엄청 소중했거든.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들었었어. 그 때 다니엘 선배님이랑 같은 조였는데, 습관처럼 토론내용을 적어둔 걸 보여줬는데, 그 뒤부터 친하게 지내자고 하시더라."
"… 그 분도 그런 거 보면 참 목적에 충실하다니까."
"네 말 들으니 정말 부려먹으려고 친하게 지내자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3학년이 이런 자리 앉는 게 드무니까 이런 잡기사가 나는 것 같은데, 일을 열심히 하면 금방 사라질거니까 일단 참아."
"별로 신경 안 썼어. 그래도 걱정 해줘서 고마워."
내가 방긋이 웃으며 대답하자 오를레아가 마주 웃어주면서 손을 들어서 차를 한잔 더 주문하고는 말했다.
"민디랑 앨런 이쪽으로 온다고 하던데, 같이 놀아도 괜찮아?"
"어? 당연하지. 그러면 자리를 옮겨야 하나? 좀 좁지 않니?"
민디와 앨런은 오를레아와 함께 다니던 여자애들이었는데, 민디는 서민 요리에 관심이 있는 활달하고 장난기 많은 사람이었고, 앨런은 이지적인 동시에 다소 빈정대는 기질이 있는 서람이었다. 둘은 어렸을 적부터 친한 단짝이라는데, 그런 것치고는 성격이 영 닮지 않아서…. 어쨌거나 로디나와는 백만광년 쯤 거리가 먼 두 사람을 나는 오를레아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난 그녀들과 몹시 친하게 지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옮기긴 해야 할 것 같아. 시간표 같이 짜기로 했잖아."
"아. 그렇지. 그럼 아무래도 다들 책을 두세권은 꺼내야할테니까."
3학년이 되어서 과목에 대한 자율성이 높아진 덕에 우리가 참고해야할 교과 자료와 교수님에 대한 자료는 끝이 없을 정도였고, 이를 잘 짜는 것이 학기를 훌륭하게 시작하는 왕도 중에 하나였으므로 모두들 시간표 짜는데 몹시 열성이었다.
"어디 보자, 자리가 있나."
오를레아가 고개를 돌려 자리를 살피다가 재빠른 솜씨로 종업원이 치운 자리를 매우 맵시있게 차지했다. 오를레아는 카페에서 자리를 찾는 콘테스트가 있다면 단연 1등을 차지할 것이라고 모두가 단언할 정도로 좋은 자리 잡기에 능했다.
나는 짐을 싸서 옮기면서 그녀의 공을 치하했고, 오를레아는 콧대를 세우며 스콘을 요구해서 기꺼이 바구니 채로 건네주었다.
"와, 역시 오를레아. 자리 진짜 최고다."
때마침 민디가 밝은 걸음걸이로 우리 테이블 쪽에 다가와서 모자를 벗고는 의자에 주저 앉았다. 앨런이 그런 민디를 타박하며 자리에 단정하게 앉더니 앉자마자 말했다.
"배고픈 사람 없어? 아침을 안 먹고 나왔더니."
"브런치라도 먹을래? 여기 카페가 그런 메뉴가 있던가?"
내가 손을 가볍게 들어 점원을 부르자 그가 메뉴판을 들고 와 내게 건네주었다. 다행히 꽤 풍성한 브런치가 있기에 그걸 주문하자 앨런이 고맙다고 하면서 반가운 얼굴로 오를레아가 방치해둔 스콘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문화사 교수님 새로 바뀌었잖아. 누군지 아는 사람?"
오를레아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금시초문이라 그저 고개를 저었는데 역시 페드윈의 소식통, 민디는 달랐다.
"에데일락 홀튼이라는 교수님이야. 시간이 달랑 두개 열리는데, 첫 강의치고는 꽤 몰릴 것 같더라."
원래 처음 나서는 교수님에게 이렇게 몰릴 일이 없는데 어쩐 일인가 싶어 의아한 얼굴을 했더니 민디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잘 생기셨어. 그래서 나도 신청 할거지요~"
"얘는 안 그렇게 생겨서는 얼굴 되게 밝힌다니까."
앨런이 스콘을 삼키면서 민디를 놀렸다. 그러자 오를레아가 담백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얼굴 완전 밝혀. 그게 내가 그 가금류를 찬 이유야, 사실은."
"거짓말하지마!! 넌 가금류라서 싫어한거잖아!!"
"가금류라도 얼굴만 잘 생겼으면 내가 참아줬을텐데."
우리 모두 그녀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난색을 표했다. 오를레아는 어 안 믿네? 하는 식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내 약혼자 딱 보면 모르겠어? 잘 생겼잖아!"
참아야 했는데, 그 순간 참지 못하고 진실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오를레아 네가 황자님 처음 뵜을때 한 말이, 초상화에서 미화 진짜 많이 시켰다, 였는데."
세상에! 하고 민디와 앨런이 소리를 질렀다.
"너 진짜 그랬어?! 황자님한테?!"
"꺄하하하하! 뭐? 미화?!!"
둘이 소리를 높여 오를레아를 놀리자 그녀는 드물게 볼이 빨개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장난 좀 쳐보려다가 된통 당한 그녀에게 좀 미안해져서 미소를 짓고 덧붙여줬다.
"그랬던 애가 지금은 콩깍지가 씌인거지."
그 말에 오를레아가 나를 확, 하고 째려보고서는 두 손을 들었다.
"그만해, 그만. 내가 잘못했어. 민디가 얼굴 밝히는 걸 변호해주려다가 그런거야."
그 말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깔깔거리다가 점원이 다가오려는 기색에야 겨우 웃음을 참았다. 오를레아의 차와 앨런의 브런치, 그리고 민디의 차가 나왔는데 앨런의 브런치가 어찌나 맛있어보이는지 우리 모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안 줄 건데."
접시 가득 푸짐한 차림인데도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그녀가 얄미웠던지, 민디가 냉큼 포크를 가로채고는 말했다.
"잘 먹을게, 앨런."
"당장 포크 안 내놔, 미란다 올란 아이렛?"
정색하고 째려보는 얼굴에 민디가 시무룩한 얼굴로 포크를 건네주었다. 현명한 오를레아는 점원을 불러, 몹시 우아한 태도로 말했다.
"이거 한 접시 더 주세요."
점원도 몹시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포크는 3개면 되겠습니까?"
"네."
여자애들이랑 있으면 내 위가 하나쯤 더 생긴 기분이다. 어쩜 이렇게 잘 들어가나 몰라. 나는 찻잔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미지근한 차로 입맛을 돋웠다.
***
그다지 많이 먹은 것 같지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엄청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절로 끙, 하는 신음같은 소리가 나와서 좀 걸어야겠다고 말하고 아이들과 헤어져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오를레아는 정식으로 학기가 시작하면 만날 기회가 적을 황자를 만나러 갔고, 민디는 요리 동아리로 앨런은 도서관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보니까 내가 제일 한가한 사람같네. 하지만 뭐, 앞으로 학생회 일로 바쁠 건데 이 정도 여유는 누려도 될 것 같았다.
느긋하게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자니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급속도로 외로워지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왜 록진은 연락하지 않는 걸까. 이런 식으로, 아무 말 없이 그냥 나를 내버려둔 채로 무시하는 게 그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법이었던 걸까.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하게 서로를 방치하는 것은, 내게는 정말 최악의 이별방식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얼굴을 보고,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당신에 대한 내 감정도, 그리고… 그래, 뭐가 됐든 당신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마지막이 아니면 아마 내가 다시 당신을 똑바로 볼 일은 없을테니까…
그 정도는 우리가 서로에게 해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보게, 아가씨."
누군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젊은 남자였지만 교복은 아니었고, 말투나 복장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일단은 약식인사를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혼자 너무 깊이 생각에 빠져있었거든요."
"아니, 내가 놀라게 해서 오히려 미안하지. 그보다, 잠깐 날 좀 도와주겠나?"
그가 가볍게 묻더니 쥐고 있던 지팡이로 바닥을 툭, 하고 쳤다. 몹시 화려한 빛이 어우러진 진한 녹색의 마력이 피어나 단단한 선으로 천천히 바닥에 초록색 선을 긋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많은 마법사를 본 건 아니지만, 이토록 균형적이면서 화려하고, 또한 몹시 규칙적인 마법을 보는 게 처음이라 거의 넋을 잃고 마력의 움직임을 좇았다.
"내가 그리 길눈이 밝은 편이 아니라서 말이네.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아. 그제서야 그의 마력이 그린 게 페드윈의 지도라는 걸 깨달았다. 아주 정신이 빠졌지, 라시아. 내 쪽으로 그려진 지도에 그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확인하니, 교수동을 말하는 거였다. 그나저나 생긴 것과 달리 말투가 영… 그 차이가 너무 심해 좀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심하게 동안이신 걸까.
"교수동이네요. 여기서 금방이기는 한데, 괜찮으시면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가 경쾌하게 지팡이를 다시 한 번 두드리자 마력이 지팡이 안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이렇게 화려하고 격조있는- 그러니까 수준급의 마법을 쓰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새로 오신 마법 교수님이세요?"
"전혀. 마법을 가르치려면 마법학교에 가야지."
하기사 이 정도의 마법사가 여기서 마법을 가르치고 있다면 마법 학교는 무능력의 온상이라 소문이 났을 터였다. 그렇지만 가르친다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 걸 보니, 교수님은 맞는 것 같은데. 천천히 그의 옆에서 약간 앞서서 걸어가며 나는 그의 기색을 살폈다.
전형적인 남부의 남자였는데 옅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빛때문에 금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눈동자는 남색에 눈은 확실히 큰편이었고, 북부인에 비하면 당연하지만 좀 진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얼굴에 어딘지 시큰둥해보이는 나른함과 약간의 따분함이 섞여서 특유의 인상을 자아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려고 오셨는지, 여쭤봐도 실례가 안 될까요? 참, 저는 라시아 클레이만 샤펜이라고 하고, 이번 대의 부회장이에요."
신분을 의심스러워할까봐 먼저 말하자 그가 약간 놀란 눈을 하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높은 사람을 만나버렸군. 에데일락 홀튼일세. 문화사의 임시, 교수지."
"높은 사람이라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교수님."
싹싹하게 인사하고 절을 하자 그가 손을 휙휙 젓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맞잡고 악수를 하자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에 웃어보였더니 말했다.
"보아하니 겸손은 아닌 것 같고. 자네는 아직 부회장 자리가 높은 지 잘 모르고 있구만."
"예? 아, 네… 일단은 어제 임명이 되어서요."
"뭐, 다른 데에서 왔나?"
"네. 2학년 때 편입 해왔고, 알트라에서 1년 덜되게 지냈답니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더니 고생 좀 하겠군, 하고 혀를 찼다.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될까요?"
"흠… 뭐, 그러지. 알트라는 중립구역이라 통치자가 따로 없지. 그럼 여기서 문제네. 과연 어디가 알트라의 군대일까?"
이 단순한 질문을 아직까지 단 한번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없다는 사실에 사실 굉장히 당황했다. 내가 왜 이걸 궁금해한 적이 없지? 일단은 대답을 해야하니 머리를 굴렸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치안대는 있으나 군대는 없었다. 당황한 상태에서 일단 되는대로 답을 내뱉었다.
"어, 혹시 사관학교인가요?"
"… 소 뒷걸음질하다 쥐를 밟았구먼. 그럼 다음으로, 마탑은?"
"앞의 대답이 맞다면, 마법학교겠지요."
"정령사는 그러면 정령학사일테고, 그렇지?"
"네…."
"자, 그러면 여기가 중요한 부분이네. 그렇담 알트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면, 누가 나서야 할까?"
당연히, 페드윈 밖에 없잖아. 내 경악한 얼굴을 즐거운 표정으로 보던 홀튼 교수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기관의 대표는 어디지?"
"…학생회…겠군요."
"그렇지. 뭐, 물론 실제로 문제가 생긴 적은 몹시 드물지만, 그렇다고 의무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지. 높으신 분이 된 걸 축하하네."
다니엘 이셀리아 요르펜… 이 사람, 날 대체 어디다가 앉힌 거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무서운 무게가 덜컥 내 이름 앞에 붙어있다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그나마 샤펜가로 입적했을 때는 내가 알기라도 했지! 이거 사기 아냐?!
"어이쿠. 괜한 걸 가르쳐줬나?"
"아니에요! 무척, 무척 도움이 됐답니다. 무거운 직함을 담고 있는 줄 몰랐다면 훨씬 쉽고 가볍게 생각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 교수님."
뭘, 하고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이후로 걸어가는 내내 이어질 것 같은 적막에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문화사 교수님이시라면, 혹시 리콜라티 교수님과 아는 사이세요?"
"내가 그 녀석 스승이었어.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서도."
"아, 그러셨군요. 제가 그 분께 짧은 기간이지만 사사받아서… 결혼만 아니었어도 여전히 계실 텐데."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문득 기척이 안 느껴져서 뒤를 돌아봤다. 교수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그를 향해 다가가려다 내 실수를 깨달았다. 페드윈에서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자네가 바로 그, 인간 아가씨로군."
그가 두어 번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치자 아까의 그 아름다운 초록색 선이 몹시 빠르게 뻗어와 그와 나를 둘러싼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가벼운 공간 왜곡 마법일세. 놀랄 필요 없어."
애초에 이렇게 완벽하게 마법을 다루는 사람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는 없을테니 반항에 의미는 없을 거고. 나는 홀튼 교수가 혀를 쯧, 하고 차더니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는 것을 보며 자세를 바로했다.
"용과 인간의 결혼식이라니, 재미있는 볼거리를 놓쳤단 말야. 그래서 말인데, 결혼식은? 오페 녀석 성격에 죽자고 화려했을 것 같구만."
킬킬 웃으면서 그가 묻는 말에 나는 좀 당황했다. 리콜라티와 오페의 결혼식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사실 그다지 재밌거나 신나는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리콜라티는 죽음을 각오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당황해서 머뭇거리자 그 또한 의아한 얼굴이어서 일단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디까지 아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다른 건 없는데…. 리콜라티, 그 녀석이 편지 쪼가리 한 장을 보냈더군. 자기가 결혼해서 사임하기로 해서 나보고 이 교수직을 임시적으로나마 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지."
이 정도면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거였다. 나는 이 말을 정말로 내 입으로, 다시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말했다.
"리콜라티 교수님, 임신하셨어요. 그래서…"
다행히 그는 그 말의 무게를 아는 것 같았다. 홀튼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져 무서울 정도로 공기가 싸늘해졌다. 나는 더 말을 이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자네가 죄송할 것이 뭐 있겠어."
그러나 말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그는 씁쓸하고 슬픈 얼굴이었다. 많이 친근한 사람이었나보다. 나는 몸둘 바를 모르고 있다가 충동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행복해 하고 계세요, 교수님은."
그가 그 말을 듣고나서 가만히 고개를 들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충동적으로 한 말이었기 때문에 다음 말을 생각해내려고 안간힘을 써야했다.
"그러니까, 오페와 리콜라티는 서로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낳기로 한 거예요. 특히 리콜라티가, 아주 많이…아이를 보고 싶어했어요. 아마 후회하지도 않을 거고, …많이 사랑하고 계시니까, 서로."
쓸모 없는 위로를 꺼낸 것 같은 기분에 한숨을 작게 내쉬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그냥…"
한숨을 푹, 내쉬고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안타까운 일에 죄송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네. …라시아라고 했던가?"
"네, 교수님."
"내 진짜 이름은 반데라스라네. 반데라스 에데일락 홀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있다면 말이지만, 반데라스라고 불러. 대외적으로 부를때는 에데일락, 아니면 홀튼 교수가 적당하겠다만."
갑작스러운 본명 공개와 이름의 허락에 좀 당황했지만, 겨우 타이밍에 맞게 적당한 대꾸를 할 수 있었다.
"음. 저는 아까 말씀드린 게 제 진짜 이름이에요."
"그러길 바라네. 난 나처럼 숨겨진게 많은 사람이 많은건 질색이야."
그리고 그가 투덜거리더니 다시 지팡이를 쾅, 찍어눌러 공간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나는 반짝거리는 초록색이 마음에 들어서 그에게 웃어주면서 말했다.
"교수님 마법은 굉장히, 음… 정갈하네요."
다른 수식어를 잔뜩 붙이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만 말했다. 그는 눈썹을 슬쩍 올리더니 나를 가늠하는 얼굴을 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됐네. 설마 그러려고. …안내는 됐어. 리콜라티 그 녀석을 보러 가야겠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안부를 부탁했다. 그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콜라티….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감히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 작품 후기 ============================
헤헤 요즘 아는 분이랑 용량 대결하는데 제가 이길 듯요!!
추천, 선작, 댓글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여러분의 댓글이 재밌네여. ㅎㅎㅎ 진남주랑 진도가.. 좀.. 늦게.. 나갈..지도.. 모르...........................지만 나가기는 합니다. 조금만 기다려봐여 그래도 리메 전보단 빨라지지 않겠어여?!!
궁금한 거 있으면 @ 달고 물어보세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답해주고 싶으면 대답해드리지요 머!!! ㅇㅅaㅇ 아마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질문 젤 먼저 하겠습니다@ 작가님 정체가 머예여?
A. 우주요정입니다. 삐끼삐끼뿌 샤랄라.
@ 작가님 댓글 좋아해여?
A 독자님 치킨 좋아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