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돌아온 알트라는 씁쓸함과 활기가 동시에 자리하는 듯 했다. 아마도 신입생과 졸업식 때문일 거다.
4학년 졸업식이 곧인게 먼저 다가와 들어올 사람들에 대한 기대보다는 선배님들의 졸업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졌다. 다음대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도 다가오고, 모두들 송별과 다음에 대한 준비를 하는 모습이 괜스레 섭섭하게도 느껴졌지만, 어린애 같은 생각같아 눌러 참아버렸다.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이번 학생회장직 선거는 꽤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일단 로디나에서 누구도 학생회장직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아비게일이 다니엘과 약혼함으로서 공식적인 리더십을 강조해 남을 게 없는 위치인데다 다니엘이 학생회장으로 나가니 대립해서 좋을 것도 없어졌다.
다음으로 유력한 사람으로는 일란성 쌍둥이인 프랜시스와 제니어 자매가 있는데, 그들은 아비게일이 나가지 않는다면 관심이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사실 이 둘은 아비게일의 단짝이니 아비게일이 좋아하는 남자의 앞길을 막을 이유가 없기도 하다.
결국 학생회장으로 다니엘과 잉그럼이 출마했고, 여자로는 로디나가 아닌 한 명이 출마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잉그럼이 아비게일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학생회장에 출마한거라고들 말하기도 했고, 혹은 그게 다는 아닐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난 전자를 믿는 쪽이다.
그 남자라면 아비게일을 위해서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거야, 아마.
"아가씨는 그러고보니 누가 학생회장이 될 것 같으세요?"
그리고 이 학생회장 직이 어쩐지 모두의 관심사인지, 하녀며 하인들이며 서로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응? 그건 왜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인데 아가씨는 어째서 이렇게 심드렁 하실까, 하고 궁금해서요. 아까부터 신문도 그 기사만 나오면 대충 넘기시고."
"그건 또 왜 지켜보고 있어요… 하여간 이상한 구석이 있다니까. 그야 너무 뻔한 일이니까 그렇죠."
"누가 될 것 같으시기에…."
"요르펜 공자가 안 될 리가 없잖아요. 그 정도야 날로 먹지 않으면 굳이 아비게일이 약혼한 이유가 없는데."
신문을 접어버리고는 제프리에게 고개를 돌리며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다들 학생회장직에 관심을 가져요?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그런 말씀을. 페드윈에 살면서 학생회장이 어떤 분이 되는 지가 얼마나 중요한 데요."
"응? 왜 중요해요? 그냥 학교 회장일 뿐인데."
그러자 제프리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짜 모르나!?! 하는 얼굴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아니, 뭐… 말을 잘못했나. 틀린 말도 아니고.
"와, 아가씨 진짜 모르시는군요."
"아니, 뭐길래 이런 반응이에요? 이젠 진짜로 궁금해지네. 그냥 학교 회장 아니었어요?"
"그냥 학교 회장이라니, 출마하는 사람한테 너무한데."
들려오는 목소리에 순간 넘어질 뻔 했다. 탁자 위에 은근슬쩍 올려뒀던 발을 재빨리 내리고 자세를 고친 다음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다니.. 다니엘?”
그가 오랜만이네, 하고 웃고는 어쩔줄 몰라하는 제프리에게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제프리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황급하게 주변을 정리한 다음 제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
“잠깐만, 음, 차라도 드실래요? 제프리, 저는…”
“심장에 좋은 차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떨어진 간에 좋을만한 차는 저도 한 잔 마셔야겠군요.”
제프리가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그걸 보던 다니엘이 웃음을 터트렸다.
“집사 혀가 꽤 날카롭군.”
“깜짝 놀랐잖아요, 기척도 없이. 연락도 없이 오시고… 어쩐 일이세요?”
"그냥 심심해서 놀러왔지."
"무슨 그런… 믿을만한 소리를 하셔야죠."
그가 이야, 섭섭하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그의 태도에 진짜로 뭔가 부탁할 게 있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짜로 무슨 일이세요? 그것도 이런 시기에."
“너무 본론만 강요하는 기분인데? 아무튼, 수강신청할 때, 다른 사람처럼 몇 가지 과목만 하고, 내 부회장 해라.”
순간 할말을 잃고 그를 바라봤다.
"에… 뭐라고요? 잠깐만, 잠깐만요. 저 3학년인데요? 아무리 학생회장 마음대로 서기관이며 부회장이며 정할 수 있다지만…”
“4학년이어야 한다는 기준 같은 거 없어. 다만 4학년이 충족하기 쉬운 기준이 많을 뿐이지. 그리고 내가 살펴본 바로는 넌 충분히 자격이 있고.”
그래도 그렇지, 내가 오르면 그 뒷감당은 다 어떻게 하시려고 이 분이 이런 무리수를 두시나… . 전혀 힌트도 주지 않고 하신 갑작스런 제안이라 황당하다는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을 보던 그가 작게 웃더니 말했다.
“그럼, 생각해봐. 긍정적으로. 생각 정도야 해볼 수 있잖아.”
그가 그제서야 외출용 모자를 벗더니 탁자위에 올려뒀다. 이게 용건의 끝이 아니면 대체 뭐가 또 남아있나 캄캄해서 빤히 다니엘을 바라보고 있자니 응접실 문이 열렸다. 제프리가 직접 차를 들고 응접실에 들어서 탁자 위에 세팅을 해주었다.
“그리고 입학식이랑 졸업식에 황족들이 참석하는 건 알지?”
“네. 그거야 유명하니까요.”
“베노암에서는 황태녀께서 오시기로 했어. 아무래도 입지 다지기에 적합한 자리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리하께서 오시겠군요.”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자연스럽게 황위와 관련될 급의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대단한 규모의 입학식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제프리. …엄청 피곤한 일이 되겠네요. 규모도 규모일 거고.”
“뭐 이 정도야 3~4년에 한번쯤 있는 이벤트니까 그다지 신경은 안 쓰이는데, 문제가… 이번 신입생 중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오르제국에서 와.”
뭔가 제프리가 들어서는 안 될 이야기는 아니지만 들어서 좋을 이야기도 안 나올 것 같아 일단 제프리를 물렸다. 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말을 고른 후에 입을 열었다.
“신기하네요. 오르제국 측에서 페드윈에 굳이… 원래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니까 말이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쨌든 그래서 꽤 재미있어. 그네들 예의는 알지?”
아. 그제서야 그가 즐겁게 말하는 문제, 가 뭔지 깨달았다. 오르제국에서 황제가 받는 예법은 타국 어디에도 없는, 완전한 복종을 드러내는 거였다. 완전히 무릎을 꿇고 그의 가장 낮은 옷자락에 입을 맞추는 거니까 말이다.
다수가 오르안을 뵐 때는 모두 절을 하고, 감히 고개를 들 수도 없다. 오르제국에서 학생들이 많이 오지 않았을 때는 엎드린다고 해봤자 가만히 서서 인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았을테지만… 오르제국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는 경우면 이야기가 달라질 거다.
게다가 그들의 부모님이나 관련자들도 오는데, 수십명이 모여서 한 사람에게 절하는 광경은 충분히 압도적인 광경일테고 말이다. 베노암제국 황태녀로서의 권위를 살려야 할 시기에 타국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런 모습에 밀려서 좋을 게 없으니 아마 황태녀 골치가 깨나 아플 것이다.
“곤란하겠네요. 페레일라님께서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게다가 이리하는 심심하면 오르인을 괴롭히는 북방의 쿤족의 씨를 말리고 왔으니 뭐… 권위를 살릴 필요도 없이 현재 엄청난 인기인이고.”
다니엘이 곤란한 얼굴로 찻잔을 들어 매만졌다. 더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했는데, 그냥 이거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뭐, 나라고 좋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페레일라 황태녀에게 특별히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딱히 별 생각 없이 어깨만 으쓱이고는 그에게 말했다.
"뭐 알아서 하시겠죠."
"그치. 우린 앉아서 퍼레이드나 보고 술이나 한 잔 얻어 마시면 되지."
"디저트나 맛있는 거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데 그가 모든 이야기의 끝을 그러니까 부회장이 되어라 소녀여! 뭐 이런 식으로 내서 나는 결국 성질을 약간 부리고 말았다.
"아, 무슨 말 끝마다 부회장, 부회장."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하려고 하는 지 몰라서 그런다, 이 아가씨야."
"생각해 본다니까요."
"너 약속 했어?"
"약속해요, 약속."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렇게 몇 번이고 당부하던 다니엘이 내 뺨에 비쥬하고는 모자를 들고 응접실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신경질이 나서 티세트를 한 쪽으로 치우고 탁자 위에 발을 올렸다.
이렇게 집요한 구석이 있을 줄이야. 학생 회장 안 되면 어쩌려고 저런 자신감을 부리나, 내가 안 되면 삼일 밤낮을 비웃어줄 거라고 다짐한 것과 달리 다니엘은 당연하다는 듯, 뻔뻔스러운 얼굴로 학생 회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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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 넘 길어서 일부러 잘랐습니다.